기본 정보 |
출처 | 실존 인물(1907-1954) |
| 인물소개 | 장애와 남편의 부정을 예술을 통해 극복한 여성 | |
| 가족관계 | 기예르모 칼로의 딸, 디에고 리베라의 아내 | |
인물 원형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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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는 1907년 멕시코 코요아칸에서 헝가리계 독일인 기예르모 칼로와 멕시코인 어머니 마틸데 칼데론의 장녀로 태어났다. 6세에 소아마비에 걸려 오른쪽 다리 장애가, 18세에 큰 교통사고로 여러 차례 대수술을 받는다. 육체적 고통은 그녀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며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1929년 칼로는 멕시코의 문화운동을 주도하던 예술가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한다. 그리고 리베라를 내조하며 멕시코 혁명을 지지하지만 논쟁에 휘말려 멕시코 공산당에서 탈퇴한다. 이듬해 미국에서 벽화를 의뢰받고 칼로는 디에고와 함께 떠난다. 이후 멕시코로 돌아온 후 리베라는 칼로의 둘째 여동생과 부정을 저지른다. 이 사건은 칼로에게 큰 상처와 고통을 주며 작품에 영향을 남겼다. 1939년 파리 피에르 폴 갤러리의 <멕시코전>에 출품한 칼로는 뒤샹, 피카소, 칸딘스키 등 동시대의 예술가들로부터 초현실주의 화가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칼로는 자신의 예술이 유럽 예술보다 멕시코 전통 민중예술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밝힌다. 그 해 칼로는 리베라와 이혼하지만 이듬해 다시 재결합한다. 이후 칼로는 교육부 부설 회화조각학교 <라 에스메랄다>의 교사로 선발되고, 그녀를 따르는 학생들은 이후 <젊은 혁명 예술가>라는 단체를 조직하여 민중을 위한 예술을 실천한다. 1954년 폐렴으로 사망할 때까지 칼로는 척추가 부러지고,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는 등 육체적 고통을 겪으면서도 꾸준히 활동한다. 이후 1970년대 일어난 페미니즘에서 칼로는 페미니스트로서 재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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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유형 |
재능형 여성, 조력형 여성, 진보적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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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용 콘텐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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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워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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