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문학 속 여성의 다매체적 변용 - 원형 콘텐츠 상세보기

<알마 쉰들러 Alma Maria Schindler> 원형

기본
정보
출처 실존인물, 1879-1964
인물소개 남성예술가들의 연인이자 뮤즈, 팜 파탈로서 예술에 헌신한 여성
가족관계 작곡가 구스타브 말러,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 작가 프란츠 베르펠의 부인이자 화가 오스카 코코슈카 및 기타 유명 예술가들의 연인
인물
원형
설명

<오스카 코코슈카, 바람의 신부>
\r\n <알마 쉰들러>\r\n\r\n <두 딸과 함께 있는 알마>\r\n알마 마리아 쉰들러는 20세기 전환기 유럽 최고의 팜 파탈이다. 그녀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명한 화가였던 아버지 에밀 야콥 쉰들러와 가수인 어머니 안나 폰 베르겐 사이에서 태어났다. 알마는 아버지를 숭배했으며, 아버지는 음악과 문학에서 일찍이 보였던 알마의 재능을 키워 주었다. 알마가 13세였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아버지의 제자이자 조수였으며 나중에 빈 분리파(Secession)를 이끌게 되는 칼 몰과 결혼한다. 곧이어 알마의 집은 빈의 유명 예술가들의 모임장소가 되었고, 뛰어난 미모와 지성과 열정의 소유자인 알마는 청소년기에 이미 “빈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라고 불리며 유명한 남성들의 연모의 대상이 된다. 구스타브 클림트, 부르크테아터 감독 막스 부르크하르트, 작곡가 쳄린스키와의 격렬한 연애에 이어 알마는 빈에서 가장 유력한 작곡가이자 지휘자였던 19살 연상의 구스타브 말러와 갑작스럽게 결혼한다. 하지만 알마가 작곡가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아내로서 충실하길 원했던 내향적인 말러와 사교적이며 자의식이 강했던 알마는 원만한 결혼생활을 하지 못한다. 알마는 말러와의 결혼생활 중에도 건축가 그로피우스를 만났고, 말러가 죽은 뒤에는 화가 오스카 코코슈카와 3년간의 격정적인 연애관계를 갖는다. 그로피우스와 재혼한 후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작가 프란츠 베르펠과 만나고 그로피우스가 전쟁에 나간 사이 그의 아이를 낳는다. 그로피우스와 이혼한 뒤 알마는 곧 프란츠 베르펠과 세 번째 결혼을 한다. 베르펠이 유태인인 이유로 이들은 나치를 피해 프랑스를 거쳐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한다. 알마는 계속해서 유럽과 미국의 수많은 저명한 예술가들과 교류한다. 레너드 번스타인, 벤자민 브리튼, 리온 포이히트방어,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 후고 폰 호프만스탈, 칼 추크마이어, 모리스 라벨, 오토 클렘퍼러, 한스 피츠너, 하인리히 만, 토마스 만, 알반 베르크, 레마르크, 브루노 발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아놀드 쇤베르크 등이 그들이다. 심지어 요한네스 홀른슈타이너 신부가 그녀의 마지막 애인이 되기도 한다. 1945년 베르펠이 죽자 알마는 뉴욕으로 이주하고 그곳에서 중요한 문화적 인물로 명성을 남기다가 1964년 사망한다. 알마에 대한 평가는 뮤즈와 팜 파탈로 매우 엇갈린다. 알마는 재능이 뛰어난 남성 예술가들의 뮤즈 역할을 하면서 그들의 창작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여성이다. 그녀는 젊은 시절 직접 작곡을 하기도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작곡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말러) 누드모델이 되기도 하는(코코슈카) 등 예술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또한 유명한 남성들을 지배하고 이용하는 물질주의적이고 섹스에 사로잡힌 나르시시즘적인 팜 파탈이라는 비난도 받는다. 한 마디로 철저히 남성 예술가들의 욕망의 대상이 되는 한편, 그들의 재능을 지배한 여성이기도 하다. 게다가 많은 유태인 애인을 둔 것과는 모순되게 반유태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만큼 알마는 복합적인 인물이다. 역사 속에서 여성상이 남성에 의해 성녀 아니면 악녀, 혹은 뮤즈 아니면 팜 파탈 유형으로 양극화되어 왔다고 한다면, 알마 쉰들러야말로 이 두 유형을 모두 갖고 있는, 하나의 유형으로 규정짓기 힘든 대표적인 여성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물
유형
뮤즈형 여성, 팜 파탈
변용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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