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문학 속 여성의 다매체적 변용 - 원형 콘텐츠 상세보기

<클레오파트라 7세 Kleopatra VII> 원형

기본
정보
출처 실존인물, B.C.69 - B.C.30
인물소개 정치적 야망을 가진 여장부이자 권력을 가진 남자들을 파멸시키는 팜 파탈
가족관계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둘째 딸, 두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 14세와 결혼하여 B.C.51~30년까지 이집트를 공동으로 통치한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 여왕
인물
원형
설명

<버나드 쇼의 희곡을 영화화한 <시저와 클레오파트라>에서 클레오파트라 역의 비비안 리, 1945>
클레오파트라 7세는 실제로는 뛰어난 미인은 아니었지만 뛰어난 외교적 수완과 결단력의 소유자로 여장부의 이미지와 더불어 권력을 가진 남자들을 이용하는 요부인 팜 파탈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그녀는 본래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혈통인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후손이다. 프톨레마이오스 11세 이후 쇠퇴하기 시작한 이집트는 독립국가로 살아남기 위해 로마의 동맹자가 되는 길을 택한다.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둘째 딸인 클레오파트라는 어린 시절부터 재색을 겸비했으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여왕으로서는 처음으로 이집트의 문자와 말을 배운 영리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18세에 아버지도 죽자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하여 4년간 섭정(攝政)들과 함께 이집트를 공동으로 통치한다. 그녀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힘을 회복해서 강대국 로마에 대항할 수 있는 이집트를 만들고자 하는 정치적 야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섭정들은 그녀를 왕위에서 쫓아낸다. B.C. 48년 로마의 집정관인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자신의 정적인 폼페이우스를 추적해 이집트로 오게 되는데, 폼페이우스를 놓고 이집트의 섭정들과 적대적인 관계가 된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와 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공동 통치를 재개시킨다.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에게 호감을 느낀다. 클레오파트라는 프톨레마이오스 13세가 전사하자 공동 통치자로서 더 어린 13세의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4세와 결혼한다. 나이 21세의 클레오파트라는 52세의 카이사르와 함께 지내며 아들 카이사리온을 출산한다. 카이사르를 따라 로마에 머물던 중 카이사르가 암살당하자 그녀는 다시 이집트로 돌아온다. 프톨레마이오스 14세가 죽자 클레오파트라는 아들 카이사리온을 공동통치자로 세운다. 그녀는 카이사르의 암살범을 추격하다가 이집트로 오게 된 안토니우스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유언장에 자신의 후계자로 카이사리온이나 안토니우스가 아닌 옥타비우스를 지명해 놓는다.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우스의 누이와 이미 결혼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불법으로 클레오파트라와 이중결혼을 함으로써 두 사람의 정치적, 인간적 유대는 강화된다.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와 낳은 쌍둥이를 적자로 인정하고, 로마의 속주와 동맹국이 포함된 오리엔트의 통치권을 클레오파트라에게 준다. 이러한 모습에 로마인들은 반감을 갖게 되고 이를 이용해 옥타비우스는 민중들로 하여금 이집트를 적국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이러한 대립관계는 결국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연합군과 옥타비우스가 이끄는 로마군과의 악티움 해전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클레오파트라는 전선을 탈출하고 이에 충격을 받은 안토니우스는 전투를 포기한다.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온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안토니우스에게 전하게 한다. 절망한 안토니우스는 칼로 자결한다. 포로가 되어 로마로 연행된 클레오파트라의 나이는 39세였으며, 그녀는 독사를 풀어 자기 가슴을 물게 하고 죽는다. 이에 감복한 옥타비우스는 그녀를 여왕으로 예우하여 안토니우스와 합장시킨다. 그녀의 죽음은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가 300년의 종말이자 이집트가 결정적으로 로마의 속국이 되게 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아우구스투스 옥타비아누스 초대 황제에 의한?로마제국의 개막을 의미한다.
인물
유형
권력지향형 여성, 애국적 여성, 전사형 여성, 지도자적 여성, 팜 파탈형 여성
변용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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