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문학 속 여성의 다매체적 변용 - 원형 콘텐츠 상세보기

<엘리자베스 1세 Elizabeth I> 원형

기본
정보
출처 실존인물, 1533-1603
인물소개 자신의 삶을 국가에 헌신하여 잉글랜드 절대주의의 전성기를 이룬 “처녀여왕”
가족관계 헨리 8세와 앤 불린의 딸, 메리 스튜어트와 친족으로 잉글랜드의 공동 왕위계승권자
인물
원형
설명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한 여왕>
“처녀여왕”(The Virgin Queen 또는 The Maiden Queen) 내지는 “글로리아나”(Gloriana) 혹은 “좋은 여왕 베스”(Good Queen Bess)라고도 불렸던 엘리자베스 1세는 자신의 노력으로 권력을 얻고 국가를 위해 헌신한 지도자적인 여성의 대명사격인 인물이다. 그녀는 1533년 그리니치에서 튜더 왕조의 헨리 8세와 본래 시녀에서 왕비가 된 앤 불린(Anne Boleyn)의 딸로 태어났다. 세 살 때 어머니가 억울한 간통죄로 처형당하자 엘리자베스는 왕위계승서열에서 제외된다. 여섯 살 때부터 왕궁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은 그녀는 다국어에 능통했고 철학과 역사에도 밝았다. 11세의 나이에 계모 캐서린 파르의 힘으로 다시 왕위계승서열에 오르게 된다. 헨리 8세가 죽은 후 캐서린 파르는 토머스 사이모어와 재혼하는데 토머스 사이모어와 14세의 엘리자베스 간에 의심스러운 관계가 생기자 캐서린은 엘리자베스를 쫓아낸다. 다음 해 캐서린이 죽자 사이모어는 정식으로 엘리자베스에게 청혼하지만 반란음모죄로 사형 당한다. 21세 때에는 개신교도로서 반란 혐의를 입어 런던탑에 유폐되기도 한다. 그러나 1558년 25세의 나이에 잉글랜드의 왕위에 오르게 되고 사망할 때까지 여왕으로 군림한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유년의 친구였던 로버트 더들리(Robert Dudley)를 오래 동안 연인이자 친구로 두기도 했다. 엘리자베스는 개신교회와 가톨릭교회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중도 노선을 취했으며 왕위지상권을 통과시켜 가톨릭의 정치적 간섭을 배제하고 잉글랜드의 성공회를 영국의 국교로 삼으면서 종교문제를 해결하였다. 또한 모직물 공업을 육성하고 사회복지정책을 시행함으로 빈민을 구제했다. 그 밖에도 엘리자베스 여왕 제위시기의 잉글랜드는 윌리엄 셰익스피어, 프랜시스 베이컨 등의 뛰어난 인물들을 배출했으며,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범선으로 세계를 탐험했고,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찌르고, 미국에 잉글랜드의 첫 번째 식민지역인 ‘버지니아’를 개척하고, 아시아에서는 동인도회사를 창설하여 후에 대영제국의 기틀을 마련하는 등 ‘엘리자베스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번영을 누렸다. 엘리자베스 1세는 태어날 때부터 권력이 주어졌던 메리 스튜어트와는 달리 권력을 얻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위태로운 삶을 견뎌온 여성인물이다. 그러나 엘리자베스의 잉글랜드 왕위를 인정하지 않았던 메리 스튜어트와의 갈등과 반목은 평생 계속되었다. 선정에도 불구하고 말년에는 독점권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반란이 일어나는데 에식스 백작 2세인 로버트 데버루(Robert Devereux)의 반란이 대표적이다. 데버루는 로버트 더들리의 양아들로서 엘리자베스 여왕의 연인으로 여겨지기도 했는데, 여왕의 허락 없이 다른 여성과 결혼했다. 데버루의 반란은 진압되고 그는 35세의 나이로 처형당한다. 하지만 반란의 후유증으로 엘리자베스 여왕은 우울증과 노인질환에 시달리다가 70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인물
유형
권력지향형 여성, 노력형 여성, 애국적 여성, 지도자적 여성
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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