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느 도트리슈는 1601년 합스부르크 왕가의 스페인 왕 펠리페 3세의 딸로 태어난다. 그녀는 유럽 내 가장 강력한 가톨릭 세력 중 하나인 프랑스와 스페인의 결혼 동맹에 따라 10세에 부르고스에서 후일 프랑스 왕국의 국왕 루이 13세가 되는 루이 왕태자와 결혼한다. 이러한 정치적 정략결혼에 의해 성립된 가정에서 안느 도트리슈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고, 실질적으로 모든 일에서 그녀는 무시된다. 안느는 프랑스사회에 완전히 흡수되지 못한 채 지낸다. 안느 도트리슈는 밝은 갈색 머리카락과 투명한 흰 피부, 녹색 빛이 감도는 다갈색 눈을 가진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기품 있는 자태와 우아함을 지니고 있었으며, 특히 희고 긴 손이 유난히 아름다워 유럽에서 손이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도 불렸다. 루이 13세는 리슐리외 추기경을 재상이자 조언자로서 총애하는데, 리슐리외 외교 정책은 안느 도트리슈의 가문인 합스부르크 왕가가 통치하는 스페인과 오스트리아를 적대시하는 정책이었던 탓에 리슐리외는 안느의 정적으로 인식된다. 두 사람을 둘러싸고 각종 음모와 계략이 계속된다. 안느 도트리슈는 모국인 스페인과 프랑스의 전쟁이 심화되면서, 은밀히 스페인을 돕는다. 그리고 이것이 발각되어, 루이13세와의 관계가 악화되고, 안느는 거의 감금상태로 지낸다. 이러는 중에 왕실의 후손을 위해 동침했던 두 사람사이에서 왕자가 태어나고, 이 왕자가 후에 태양왕 루이 14세가 된다. 항상 아내를 의심하고, 섭정에 대해 불신하고 있던 루이 13세는 사망 직전 안느의 섭정을 막으라는 유언을 하고 죽는다. 그러나 고등법원의 판결에 의해, 안느 도트리슈는 어린 아들을 대신해 섭정을 하게 된다. 남편의 통치기와 달리 아들의 왕국의 국익을 위해 안느는 친 스페인정책을 버리고, 유능한 인재인 쥘 마자랭 추기경을 기용해, 혼란스런 프랑스 정국을 잘 이끌어간다. 그녀의 총애를 받던 마자랭 추기경은 안느 도트리슈의 비밀 연인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1651년 루이 14세가 즉위하면서 안느는 섭정자리를 내놓았으나, 이후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1661년 마자랭 추기경이 사망하자 발 드 그라스로 은퇴한 안느 도트리슈는 이후 유방암으로 사망한다.
<안느 도트리슈> 페테르 파울 루벤스 (162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