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문학 속 여성의 다매체적 변용 - 원형 콘텐츠 상세보기

<마리 앙투아네트 Marie Antoinette> 원형

기본
정보
출처 실존인물 (1755~1793)
인물소개 오스트리아 출신의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왕비.
가족관계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 루이 16세의 아내. 마리테레즈 샬롯과 루이 조제프의 어머니.
인물
원형
설명

<장미꽃을 든 마리 앙투와네트의 초상> 비제-르브렁(1783)
마리 앙투아네트는 18세기 프랑스의 왕비로, 사치와 허영의 대명사로 알려진 인물이며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생을 마감한다. 그녀는 순수하고 자유로운 성품이나 어린 나이에 이국의 왕비가 되어 부정적으로 평가 받는 여성이다. 오스트리아의 함부르크 왕조의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로 태어나 당시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자유로운 궁정 분위기에서 자라난다. 1770년, 마리가 14살이 되던 해 그녀의 어머니는 적대국 프랑스와 동맹 강화를 위해 당시 프랑스 왕 루이14세의 손자인 루이 오귀스트와 정략결혼을 시킨다. 그녀는 프랑스 왕실에서 적국 출신이라는 이질감에서 오는 소외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사교에 몰두하고 사치와 도박을 일삼는다. 1774년, 루이 15세가 병으로 서거하고, 루이 16세가 즉위하자 마리는 18세의 나이로 프랑스의 왕비가 되지만 정치적 영향력은 얻지 못한다. 남편 루이 16세로부터 베르사유의 쁘띠 트리아농 궁전을 선물 받은 그녀는 그곳을 전원적인 분위기로 개조하나 또 호화별장 개조로 소문이 나버린다. 그녀는 결혼 8년 만에 임신에 성공해 첫 딸 마리 테레즈 샬롯을 낳는다. 그녀는 곧 궁정 내의 관습에 변화를 도입하기 시작하는데, 분리된 식사 공간의 폐지를 비롯하여 간결한 옷차림과 적은 화장을 추구하고자 한다. 이즈음에 그녀는 궁정에서 아마추어 연극 및 뮤지컬에 출연하기도 한다. 1780년 그녀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가 세상을 떠나고, 이듬해 그녀는 둘째이자 황태자 루이 조제프를 낳는다. 하지만 프랑스의 경제 상황은 안 좋아져 적국 출신의 왕비로 본래 곱지 못한 시선을 받던 그녀에게 ‘적자부인’이라는 비난 어린 별명이 붙여지며 국민들의 비난의 대상이 된다. 1785년에는 부르봉 왕가의 치세 말기를 상징하는 스캔들인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이 발생하며 그녀에 대한 민중의 언성은 더욱 높아진다. 이후 그녀는 유산을 겪은 뒤 셋째 왕자 루이 샤를르를 출산한다. 황태자 루이 조제프는 폐결핵에 걸려 건강이 악화되고 결국 1789년 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그해 7월 바스티유 감옥이 함락되며 혁명이 시작되고, 베르사유의 많은 귀족들이 궁을 떠난다. 왕가는 베르사유에 남기로 결정하지만 스웨덴의 페르젠 백작의 도움으로 바렌느까지 도망을 가다가 결국 시민들에 의해 붙잡힌다. 이 사건으로 왕가는 모든 국민의 신뢰를 잃는다. 1792년 프랑스 혁명전쟁이 발발하고 국왕 일가는 탕폴 탑에 모두 유폐된다. 그리고 그 해 8월 1일에 마리 앙투아네트는 콩세르쥬리 감옥으로 이감된 뒤 공개 재판을 받고 반역자로 불린다. 그녀는 반혁명의 혐의로 심문 내내 담대하게 대처하고 품위를 잃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혁명 재판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기요틴에서 참수 당한다. 18세기 화려하던 왕가의 삶에서 몰락한 왕비 마리 앙투와네트는 현재까지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변용되며, 오늘날 긍정적인 시각으로 새롭게 평가되기도 한다.
인물
유형
순수한 여성, 허영심이 많은 여성
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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