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카테리나 2세는 독일 귀족 출신으로 표트르 3세와 결혼 후 궁내 혁명으로 황제가 된 인물이다. 러시아 왕조 중 가장 오랜 기간 재위한 여황제이다. 본명은 조피 프리데리케 오귀스트로, 프로이센 지방 왕국 중 하나인 안할트체르프스트 공국의 공녀로 태어난다. 어릴 적부터 남자 아이들과 어울리며 말타기를 즐겼고 넉넉지 않은 형편 속에서 어머니의 교육열로 교양을 지닌 여성으로 자라난다. 어머니의 정치적 야심에 의해 16세에 그녀는 러시아의 왕위 계승자 칼 표트르 울리히와 결혼하여 예카테리나 알렉시브냐 대공비가 된다. 예카테리나는 러시아 정교로 개종하고 러시아어를 열심히 익히는 등 신분상승을 위해 필요한 것은 어떠한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능이 떨어지며 유아적인 거친 성격의 남편 표트르에게 실망하고, 예카테리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낸다. 표트르가 정부를 들이는 동안 예카테리나 역시 여러 남성을 만났고, 이로 인해 그녀의 문란함에 대한 소문이 퍼진다. 예카테리나는 그동안 세 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모두 아버지가 달랐다고 전해진다. 그녀는 애정 없는 결혼생활을 하며 18년간 황태자비로 살아가고, 엘리자베타 여제에게 총애를 받는다.?1762년 엘리자베타 여제가 죽은 뒤 표트르 3세가 황위에 오르고 예카테리나 2세는 황비가 된다. 곧 표트르 3세는 기이한 행동과 정책으로 국민과 신하들의 신임을 얻지 못하는 반면 야심차고 총명한 예카테리나는 러시아에 대한 애정과 지식으로 외국인임에도 귀족과 백성의 지지를 받는다. 예카테리나는 궁정 귀족과 군대와 협력하여 쿠데타를 계획하고, 표트르3세가 즉위한지 6개월 만에 쿠데타를 일으켜 왕권을 빼앗는다. 곧 표트르 3세는 암살당하고, 예카테리나는 러시아 차르의 자리에 오른다.?계몽군주로도 불린 예카테리나2세는 볼테르를 비롯한 유럽의 석학들과도 교류하며 러시아에 서유럽 문화를 도입하려 한다. 하지만 1789년 프랑스 혁명이 루이 16세를 처형한 이후 그 자신 황제인 예카테리나는 자유주의 사상을 배척하고, 보수 반동정책을 추종한다. 예케테리나는 예술, 문학, 교육의 열렬한 후원자로서 최초의 여학교를 세우는 등 문화 진흥과 교육에도 열정적이었다. 긴 재위기간 동안 그녀는 러시아를 근대화시키기 위해 지방행정개혁과 법치주의적 확립을 위해 노력한다. 그 뿐 아니라 귀족들과의 협력 관계를 강화하는데, 그 부작용으로 농노제가 확장되어 ‘푸가초프의 난’ 등 민중들의 봉기를 야기하나, 절대 군주 예카테리나는 이를 잔혹하게 진압한다. 그녀는 또한 귀족만 살찌우고, 백성들을 빈곤하게 만들고 스스로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표트르 대제 이후 가장 강성한 러시아를 만든 인물로 평가 받는다. 67세의 나이에 사망한다.
<예카테리나 2세> 표도르 로코토프(17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