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문학 속 여성의 다매체적 변용 - 원형 콘텐츠 상세보기

<에르체베트 바토리 Erzebeth Bathory> 원형

기본
정보
출처 실존 인물(1560-1614)
인물소개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살아있는 여성들의 피로 목욕한 잔혹한 여성
가족관계 프란츠 나다스디 백작의 부인
인물
원형
설명

에르체베트 바토리
에르체베트 바토리는 바토리 부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살아있는 여성들의 피로 목욕한 잔혹한 여성이다. 그녀에 관한 이야기는 연쇄살인범으로 기소된 실제 재판기록과 전설이 뒤섞여 있다. 1560년 에르체베트는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헝가리 왕국의 명문 가문인 바토리 가문의 딸로 태어난다. 바토리 가문은 당시 유럽 제일의 명문가인 합스부르크가와 겨줄 정도로 정치적 세력과 부가 막강한 가문이었다. 에르체트는 열다섯 살이 되던 해 군인이었던 프란츠 나다스디 백작과 결혼한다. 에르체베트는 남편 보다 신분이 높고 경제적으로도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결혼 후에도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는다. 나다스디는 헝가리 군대의 지휘관으로 터키와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다. 나다스디는 터키와의 전쟁으로 인해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다고 한다. 1604년 남편이 죽자 에르체베트는 모든 재산을 상속받는다. 미망인이 된 에르체베트는 자신의 소유지인 슬로바키아 지방의 체이테 성으로 거주지를 옮긴다. 그녀는 당시로는 드물게 여자로서 합스부르크 왕가보다 더 많은 재산을 지니게 된다. 그녀에게는 2남 3녀의 자식들이 있었으나 그녀가 재산을 한 명의 아들에게 모조리 상속하려 하자 다른 자식들과 사위들이 앙심을 품는다. 에르체베트가 마녀 혹은 살인자의 죄를 쓰고 처벌을 받게 되면 재산을 나누어 갖게 될 것을 노린 자식들과 친척들이 거짓 증인들을 돈으로 매수하고 증거를 조작하여 연쇄살인범의 죄목으로 그녀를 법정에 세운다. 전설에 따르면 어느 날 에르체베트가 하녀를 때리다가 피가 얼굴에 튀자 에르체베트의 피부가 하얗고 탱탱해졌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에르체베트는 젊은 여성의 피가 자신이 잃어버린 젊음을 되돌려 줄 것으로 굳게 믿게 된다. 처녀들이 그녀가 살고 있는 체이테 성에만 들어가면 살아 나오지 못하자, 사람들은 그 성을 악마의 성이라 부르며 성에 가까이 가는 것조차 꺼렸다고 한다. 에르체베트의 처녀사냥은 그녀의 사촌인 게오르그 투르조 백작의 방문으로 끝난다. 1611년 헝가리 비체에서 열린 재판에서 생존자와 피해자 가족들의 증언과 에르체베트의 만행을 도왔던 하녀들과 하인들의 자백이 있었다고 한다. 그녀에 대한 재판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카르파티아 산맥의 언덕 꼭대기에 있는 자신의 체이테 성으로 농부의 딸들을 끌어들여 발가벗겨 고문했으며 소녀들이 피를 흘리며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즐기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에르체베트는 철의 처녀, 철의 새장과 같은 다양한 고문도구를 제작하여 처녀들의 피를 뽑아내 목욕을 즐겼다고 전해진다. 에르체베트는 왕족의 친척이라는 이유로 죽음을 모면하는 대신에 창과 문이 폐쇄된 방에 감금되어 감옥에서 3년을 보낸 뒤 1614년 죽는다. \r\n\r\n관련자료: \r\nhttp://www.youtube.com/watch?v=65m7xbfb1_Y&feature=youtube_gdata_player
인물
유형
광기형 여성, 사악한 여성, 지배적인 여성, 폭력적 여성
변용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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