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문학 속 여성의 다매체적 변용 - 원형 콘텐츠 상세보기

<노국공주 魯國公主 NoGukgongju> 원형

기본
정보
출처 실존인물(? - 1365)
인물소개 고려 공민왕과 결혼하여 반원정책을 지지하며 백성들을 위해 헌신한 여성
가족관계 원나라 위왕의 딸이자 고려 공민왕의 왕비
인물
원형
설명

<노국공주> 초상화
노국공주는 원나라 황족 위왕의 딸이자 고려 공민왕의 왕비이다. 노국공주는 원의 정략결혼 정책으로 원나라 수도 연경에 볼모로 있던 고려 왕손 왕기(공민왕의 아명)와 결혼하여 함께 고려에 들어온다. 노국공주는 다른 원나라 출신 왕비들과 달리 공민왕이 추진했던 반원정책과 고려의 자주정책을 지지한다. 공민왕이 원의 기황후 친족인 기철 세력에 의해 위기에 처하자 노국공주는 위험을 무릅쓰고 왕을 보호한다. 또한 어려운 백성들을 보살펴 국모로서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다. 노국공주의 현명함은 홍건적의 침입으로 왕이 안동으로 피신했을 때 잘 드러난다. 노국공주는 안동에서 공민왕에게 말타기 훈련을 시켜 남편을 강건한 국부가 될 수 있도록 헌신하고, 백성들과 길쌈을 함께하며 역경을 헤쳐 나간다. 또한 흥왕사에 역모를 꾀한 50여명의 반군이 침입하여 공민왕을 시해하려 하자 노국공주는 “저 방에 들어가려면 내 목을 베고 들어가라”고 하며 왕을 보호한다. 노국공주가 남편과 고려를 사랑한 여성이라는 사실은 <고려사> 후비열전에서도 확인된다. “나라를 가지고 가정을 지키는데/ 배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이렇게 내조의 공을 세운 이에 대해서는/ 더욱 잊을 수 없는 것이다/ 노국공주 덕에/ 우리나라가 오늘까지 존속하게 되었다/ 영원히 국가를 지키고/ 함께 살아야 할 터인데 그만 세상을 떠났구나!/ 슬픈 마음은 더욱 깊어만 간다.” 노국공주가 죽은 후 공민왕이 상심하여 정사를 돌보지 않아 고려멸망의 빌미를 제공한다.
인물
유형
도전적 여성, 애국적 여성, 용기 있는 여성, 자비로운 여성
변용
콘텐츠
키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