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후는 전한 고조 유방의 황후이며 전한 혜제의 어머니로 휘는 치이며 자는 아후이다. 시호는 고황후이며 여태후, 여후 등으로 불린다. 여치는 지방 호족인 여씨 가문의 딸로 태어난다. 그녀의 아버지 여공은 패 현 출신의 유방이 보통 인물이 아님을 알아보고 자신의 딸 여치를 내놓는다. 유방과 혼인한 후 여치는 유방의 전처 아들과 시아버지, 그리고 자신의 아들과 딸을 돌보며 어려운 살림을 꾸려가지만 유방은 매일 술타령에 계집질을 일삼는다. 어느 날 유방이 반군의 우두머리가 되더니 관중에 입성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러나 초한 전쟁 중 유방이 팽성 전투에서 패배해 달아나자, 성에 머물러 있던 여치와 시아버지 유태공은 항우의 인질이 된다. 여치는 2년여를 항우의 포로로 살아가지만 유방은 그녀의 생사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황제가 된 다음 유방은 여치를 황후로 책봉하지만 지아비의 사랑은 주지 않는다. 여태후는 유방의 공신들이 태자에게 언젠가는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보고 공신들을 제거하는 계획을 추진한다. 여태후는 한신에게 모반 혐의를 씌워 죽인 후 유배 중이던 팽월을 유인하여 죽게 만든다. 여태후는 팽월의 시신을 젓갈로 만들어 제후들에게 돌린다. 유방이 후궁 척희를 총애하자 여태후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유방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척 부인은 자신의 아들 유여의를 태자로 세워 주기를 눈물로 호소한다. 한고조 유방이 죽자 여태후의 세상이 된다. 사마천은 이때부터 여태후가 죽는 BC 180년까지를 <여후본기>로 서술한다. 고조가 죽자 여태후는 태자를 바꾸려 했던 척 부인과 그녀의 아들 조왕 여의에 대한 복수를 시작한다. 여태후는 어린 여의를 독살 한 뒤 척 부인을 인간돼지로 만들어 자신의 아들 혜제를 불러 보여준다. 이 모습을 본 혜제는 일 년이 다 되도록 일어나지 못한다. 척 부인과 여의에게 한 여러 잔혹한 행동을 들어 역사가들은 여태후를 측천무후, 서태후와 더불어 ‘중국 3대 악녀’ 중 하나로 꼽기도 한다. 그러나 또 다른 후대의 역사가들은 그녀가 왕조 초기의 혼란한 상황을 극복하고 백성들은 오랜만에 도적이 없는 평화로운 시대를 맞게 했다고 평가한다.
여태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