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조는 북송의 제남 출신으로 학자이며 산문가인 아버지 이격비(李格非)의 영향을 받아 사서에 정통하고 문학적 감성을 갖춘 여성이다. 이청조는 18세에 금석학의 수재인 조명성(趙明誠)에게 시집간다. 이청조와 조명성은 둘 다 책 읽고 글 짓는 것을 즐기며 편안하고 윤택한 삶을 보낸다. 두 사람은 옛 서적과 그림, 글씨 등 골동품을 모으고 금석과 서화 연구에 몰두한다. 그 시절 이청조는 스스로를 ‘편안하게 지내는 사람’, 즉 이안거사(易安居士)라 부르기 시작한다. 이청조는 이 시기에 후대에 전하는 많은 시를 쓰며 남편과 함께 <금석록(金石錄)>을 편찬하기도 한다. 북송 말 금의 침입으로 이청조는 집과 많은 장서를 잃고 남편과 사별한다. 이청조는 전란을 피해 떠돌면서도 수집품들을 안전하게 보관하려고 노력하지만, 외로움과 궁핍한 삶이 지속되면서 시련을 겪는다. 이청조는 홀로 강남지방을 전전하다가 말년에 금화 지방에 살고 있는 동생에게 의지하여 살아가게 된다. 금의 침입 전인 이청조의 전반기 작품에는 고적한 규중생활, 남편과의 사랑과 그리움의 정서를 참신하고 섬세한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후반기에는 전란으로 풍비박산 난 나라와 개인의 삶을 재기 넘치는 위트와 발랄함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청조는 송사(宋詞)의 대가로 알려져 있는데, 남편이 외지로 파견되어 잠시 이별했을 때의 기다림을 노래한 <취화음 醉花陰>과 남편이 죽은 이후 처량한 노년을 보내며 지은 <성성만 聲聲慢>은 불후의 명작으로 알려져 있다. 이청조는 중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여류 시인으로 평가된다.
<이안거사멱구도(易安居士覓句圖)> 왕이울(王伊蔚) (1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