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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상트 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 재조명: -러시아의 세계화와 지리·공간적 권력이동을 중심으로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21세기 "상트 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 재조명: -러시아의 세계화와 지리·공간적 권력이동을 중심으로 | 2002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기연수(한국외국어대학교(글로벌캠퍼스))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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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번호 AM2516
선정년도 2002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4년 05월 28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4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약 천년 역사를 가진 러시아는, 세계의 주요 국가들 중, 미국 다음으로 젊은 국가이다. 현재의 우크라이나 키예프 지역을 중심으로 10세기 말 비잔틴 정교회를 받아들이면서 국가형태를 갖춘 러시아는, 몽골 침략을 계기로 일부 세력이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16세기 중반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적 체제를 형성했다. 러시아 역사의 물길을 크게 바꾼 인물이 표트르 대제(1682-1725)다. 상트 페테르부르그 천도 이후 러시아는, 과거 교회 중심 국가에서 탈피하여 세속 문화, 즉 인간 중심의 문화를 일궈냈다. 모스크바가 1,600 여 개 교회의 황금 빛 쿠폴라와 종소리로 가득 채워진 종교적, 중세적 공간이었다면,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풍요로운 지상의 삶을 지향하는 근대적 이성의 도시였다. 모스크바를 상징하는 건축물이 종교와 그것에 복종하는 세속 권력을 상징하는 크렘린 이었던데 비해, 네바 강변에 들어선 새 도시의 대표적 건축물은 실용적 성곽과 기능적 교회가 결합한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군산복합체의 산물 해군성 본부건물, 그리고 계몽 및 교육의 산실 쿤스트카메라가 함께 연출하는 기하학적 앙상블 이었다. 표트르 대제의 혁명적 개혁은 러시아 영토의 중심과 변방 개념을 바꾸어 놓았다. 고도 모스크바는 상트 페테르부르그에 모든 권력을 넘겨주고 약 200여 년 동안 러시아 제 2의 도시로 전락했다. 한편 제국의 수도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18, 19세기를 거치면서 군사, 산업, 무역, 해운 교통, 그리고 예술과 학술의 중심지로 유럽 주요 도시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볼셰비키 혁명 이후인 1924년 레닌그라드로 개명한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마치 모스크바로부터 보복이라도 당하듯 가파른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모스크바로 소련의 수도를 옮긴 사건은, 상트 페테르부르그 창건 못지않은 복합적 의미를 갖는다. 표트르 대제에게 모스크바가 극복과 청산의 대상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볼셰비키들에게 상트 페테르부르그은 제정 러시아의 낡은 유산을 간직한 도시로 인식되었다. 한편, 러시아 구세주의 발원지 모스크바는 세계 공산주의 운동 본산의 이미지에도 부합되었다. 상트 페테르부르그에서 모스크바로의 수도 이전은, 공산 러시아가 유럽과 교류를 단절하고 독자적 발전을 추구하겠다는 것을 의미했다. 모스크바를 수도로 하는 소비에트 러시아는 혁명의 화석화 과정을 겪으면서, 20세기말에 이르러 17세기 말 표트르 대제가 경험한 것과 동일한 유럽으로부터의 낙오를 목도하게 되었다. 그리고 중요한 세계사적 전쟁에서 여러 번 승리한 강대국 러시아는 외부의 침략 없이 스스로 해체되고, 이전 영토의 상당 부분을 상실한 채 혼란 속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러던 중, 옐친의 후계자로 예기치 않던 푸틴이 등장했다. 상트 페테르부르그 출신인 이 젊은 지도자는 제2의 표트르 대제를 자처하고 나섰다. 퍼스낼러티, 개혁의 범위와 추진속도, 시대적 배경 등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표트르 대제와 푸틴의 비교는 흥미로운 시사점을 갖는다. 두 통치자가 전임자로부터 물려받은 정치, 경제적 혼란도 그렇거니와, 위대한 강국 러시아 건설(푸틴의 경우는 재건)의지를 천명하면서 공통적으로 그 해결책을 서구 발전 모델에서 찾고 있는 것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두 지도자 모두 개혁적인 대 내외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점도 공통된 특징이다. 아울러, 러시아 역사에서 유럽을 향한 창, 서구적 근대화의 시발점, 그리고 국가 웅비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상트 페테르부르그와 이 두 통치자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시사점을 갖는다.
  • 영문
  • Russian history is characterized by drastic changes and discontinuity, rather than evolutionary developments. Peter the Great‘s reform in the early 18th century served as a momentum for Russia's great leap forward. The energetic tsar's westernization policy enabled Russian empire to rise as a major European power during a short period of time. And this also led to the so-called Russia's identity crisis as it straddles both Asia and Europe.
    Peter the Great and Vladimir Putin, quite different rulers in terms of personality, leadership style, and historical surroundings they are faced with, however, share some similarities. First of all both rulers are closely related to St. Peterburg, the most European city in Russia. Peter the Great decided to create this new capital with a vision to break with Moscow-based conservatism and to orient Russia's future toward Europe. Since the October Revolution Putin has become the first Russian ruler from this maritime city bordering on the Baltic sea. Russia which he has inherited from Yeltsin was confronted with many serious problems: social instability, economic backwardness, bureaucratic corruption etc. And in his efforts to introduce reforms into Russian society the young Russian president tends to imitate Peter the Great's policies.
    Putin's strategy to use Peter the Great's image in his political behavior can be explained by the widespread popularity of this historical figure among Russians. In his inauguration speech Putin proposed "the construction of great, strong, and powerful Russian state" echoing Peter the Great's ambition. Despite initial reserved expectations on his presidency at home and from abroad Putin turned out to be a competent leader with political skills. He succeeded in establishing social order, stopping the economic decline, and strengthening the central power vis-a-vis centrifugal regionalism. But it does not necessarily mean that he can drive reform measures as Peter the Great did 300 hundred years ago.
    The background for Putin's reforms is quite complicated. In the process of implementing reformative measures he has to cope with negative, inertial Soviet legacy on the one hand, and to take into consideration democratic-minded public opinion on the other. The scope and intensity of his reformative measures will be decided by his choice between two alternatives: to be a revolutionary like Peter the Great or to be a pragmatic modernizer aiming at Russia's gradual development.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러시아에서 천도논의 이슈화는 2000년 1월 이곳 출신 푸틴의 크레믈린 입성에 힘입은바 크고, 2003년이 상트 페테르부르크 시 창건 300주년이라는 역사적 의미에 의해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최근 러시아 정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천도문제 논의는 그 가능성 여부를 차치하더라도, 모스크바의 위세에 짓눌려 왔던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부활을 의미하고, 증대되고 있는 이 도시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21세기적 재조명을 요구한다. 소련의 와해라는 변화된 여건에 고무되어 신 러시아 연방 출범 초기,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1917년 볼셰비키혁명 이후 모스크바에 빼앗겼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자구 노력을 경주하였다. 오랜 기간 레닌그라드 인으로 살아야 했던 상트 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은 1991년 스스로의 국민투표에 의해 고유 도시 명을 되찾은 데 이어, “소련의 수도는 모스크바였지만, 이제 소련이 사라진 상황에서 페테르부르크가 신 러시아의 수도가 돼야한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제기하였다. 초대 민선시장 아나톨리 소브차크는 1992년 의회를 그 태동지인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옮길 것을 중앙정부에 요구하였고, 그 후임 야코블레프 시장 또한 1997년 연방정부에 공문서를 발송해 의회 이전의 당위성 역설과 함께 이의 실현을 위한 예산확보를 요청하기도 했다. 물론 이런 요구는 당시 모스크바의 반발과 중앙정부의 외면으로 반향 없는 메아리가 되었지만,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 역사의 중심지로서 그 정통성과 위상을 확보하고자 하는 노력을 꾸준히 전개하였다. 그러나 새 천년의 경계선에서 도약을 위한 충분조건이 점차 구비되면서 재차 천도논의 활성화와 함께 상트 페테르부르크가 21세기 러시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외교의 중심 축으로 급부상하기 시작하였다. 그런 현상은 상트 페테르부르크 시 정부 자체의 지속적이고도 열성적인 노력에서 비롯되기도 하였지만, 푸틴 정권의 출범과 그의 강력한 리더십에 따른 러시아의 대내외적 정치환경의 안정에 기인한 바 크다. 여기에 2003년이 시 창건 300주년이라는 역사적 의미는 제 2의 전성기를 구가하기 위한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의지를 강화시켜주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비상’에는 러시아 경제의 플러스 성장세로의 전환, 내정의 안정, 서방세계와의 관계개선, 외국인 투자의 증대 등이 기여하였으나, 이에 추동력을 제공한 가장 중요한 충분조건이라면 2000년 1월 “제 2의 표트르”로 회자되는 푸틴의 등장일 것이다. 실제로 푸틴은 자신의 고향이자 정치적 기반이며 한때 부시장으로 몸담았던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지대한 관심과 자부심을 갖고 도시의 재건은 물론이고 그 위상 강화에 연방정부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따라서 21세기의 개막과 함께 급부상하고 있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도시공간을 시 탄생 300주년과 푸틴 정권의 출범이라는 “클로즈업된 장면”을 통해 러시아의 세계화 여기서 러시아의 “세계화”란 러시아 “경제의 세계화”를 중심 의미로 설정하고 “정치, 사회, 문화의 세계화” 의미까지 포괄을 연구목적으로 하였다. 즉 요약하면 첫째, 상트 페테르부르크로의 의회 및 수도이전 이슈화에 즈음하여 천도 논의의 현황과 그 정치적 의미, 천도 가능성에 대한 기회요인과 제약요인을 규명하였, 둘째, 다가오는 2003년 상트 페테르부르크 시 창건 300주년이 주는 역사적, 정치적 함의를 표트르 대제와 푸틴과의 유비를 통해 파악하였다. 셋째,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부활이 러시아 경제의 세계화 선도와 제도적, 비제도적 권력의 지리.공간적 견인력을 강하게 흡인하고 있다는 인식 하에, 증대되고 있는 이 도시 공간의 위상과 역할을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측면에서 모스크바와 비교하면서 권력의 무게중심 이동이라는 맥락에서 고찰해 보았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학문적 기여도 - 본 연구 결과의 활용방안이 갖는 학문적 기여도는 첫째,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시공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한 포괄적이고도 종합적인 고찰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되고, 학제간 협력연구를 통해 완성된 연구결과물이 이 도시에 대한 체계적인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기여하고 학문적, 실용적 측면에서 중요한 기초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둘째, 상대적으로 학문적 소외지역인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관심의 대상으로 끌어올림으로써, 러시아 지역연구에 대한 편식을 줄이는데 기여할 것으로 판단된다. 셋째, 전통적인 "서유럽을 향한 창"으로서, "서구화정책의 상징"으로서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대한 총체적 연구는 탈 소비에트시대 신 러시아의 체제전환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넷째, 푸틴의 의지가 개입된 천도논의 현황 파악과 시 창건 300주년의 역사적 함의를 고찰하는 작업은, 향후 러시아 국가의 미래적 지향성과 대내외정책 방향성을 예측하는데 하나의 판단 지표로 활용할 수 있다. 다섯째,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부활에 따른 제반 권력의 무게중심 이동현상을 포착 규명함으로써 그것이 러시아의 국가 통합성에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연방체제성격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 여섯째, 상트 페테르부르크 경제모델 분석은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전환, 러시아 경제의 서구경제와의 통합 및 세계화 과정을 고찰하는데 매우 유용한 준거 틀을 제시해 준다. 일곱째,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중요한 사회적 영역, 즉 시민사회의 형성과 발전과정, 일련의 선거과정에서 투영된 시민들의 정치적 성향, 언론의 역할 등에 대한 분석은 러시아의 다당제적 민주화, 분권화, 국가와 사회관계의 변화, 러시아 정치사회운동간의 수평적 혹은 수직적 연계 상황과 추이 등을 동적으로 파악하고 관찰하는데 기여한다. 2) 사회적 기여도 - 시의적 성격을 띤 본 연구과제의 수행은 한국 사회의 내부적 요청에 부응할 뿐만 아니라 러시아 지역학 발전에 유익한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이 연구과제 수행의 사회적 의의를 구체적으로 적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본 연구작업은 웅비하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지역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기능과 역할을 조사.분석.유형화하고 그것을 리포트 함으로써 새로운 러시아의 중심지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지역에 대한 한국의 경제적 진출뿐만 아니라 한반도에 깊은 이해관계를 투영하고 있는 러시아의 대외정책 변화에도 신속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을 것으로 본다. 둘째,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간 지역갈등 구도를 분석 이해함으로써 동일한 지역주의 문제점을 안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의 처방전을 제시해 줄 수 있다. 셋째, 러시아에서 모스크바의 권력집중과 비대화를 극복하기 위한 수도 기능 분산 논의에 대한 모니터링은 향후 서울의 비대화가 초래하는 사회적 비용 경감과 국토의 균형적 발전차원에서 우리에게도 유용한 적용이 될 것이다. 넷째, 러시아는 관료주의가 강하게 지배하고, 제도보다는 인맥이라는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국가라는 측면에서, 피테르 권력집단에 대한 분석은 한국정부의 대러 인적 네트웍 형성 및 강화에 기여할 것이다. 다섯째, 러시아 물류의 중심지로서, 동시에 러시아내 TSR의 기종점으로서 상트 페테르부르크 도시공간 및 그 광역권 연구는 TKR/TSR의 연계에 대비해 우리의 경제적 기대효과를 증대시킬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한 전면적 고찰은 다민족 다문화로 형성된 러시아 국가구조의 다층성에 대한 국내 일반인들의 이해의 폭을 확대시킨다. 3) 교육과의 연계 활용방안 - "21세기 상트 페테르부르크 재조명"에 관한 본 연구 결과는, 일차적으로 학술진흥재단에 등재(후보)된 본 연구팀 소속 연구소의 학술지에 특집형태로 게재할 할 것이고, 여기에 행정, 군사, 안보, 외교 영역 등 부족한 부분을 추가로 보완하여 학술적 및 실용적 완성도가 높은 단행본 형태로 출간할 것이다. 동시에 현지답사를 통해 수집된 사진, 영상, 인터뷰 자료 그리고 본 연구결과를 압축적으로 요약한 콘텐츠를 제작하여 본 연구소 홈페이지에 별도의 사이트를 개설함으로써 정보의 공유를 꾀하고, 학습효과를 증진시키며 연구의 기초자료로서 활용도를 높일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본 연구는 러시아 지역학, 특히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시공간에 대한 연구수준의 제고와 교육에의 활용이라는 지역학의 근본적 수요를 만족시키고, 그 지평을 확대시키리라 생각된다.
  • 색인어
  • 천도, 표트르대제, 푸틴, 페테르마피아, 서구문명, 유럽과의 단절, 수도이전, 아이덴티티, 국가발전전략, 권력구조, 중앙, 지방, 연방제도, 연방개혁정책, 정치엘리트, 정치변화, 엘리트 충원과 교체, 지배층 변화, 엘리트 구조, 세계경제통합, WTO 가입, EU, 대외무역, 외국인직접투자, TSR, 물류, 지역경제, 금융, 국가두마, 선거, 정치성향, 정당, 시민사회, 비정부기구, 시민포럼, 인권단체, 이익단체, 세계화, 사회의식, 국영언론기관, 언론의 지방화, 정치변화, 상류문화, 귀족문화, 문화헤게모니,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사회주의 리얼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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