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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반유대주의(Antisemitism)에 대한 연구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독일의 반유대주의(Antisemitism)에 대한 연구 | 2003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최형식(선문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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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A00014
선정년도 2003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7년 02월 27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7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첫 번째 연구결과의 내용으로서 19세기 독일 유대인의 직업적․사회적 특징이 반유대적 선동의 중요한 조건이었음을 분석하였다. 근대적 반유대주의의 중요한 조건이 되었던 독일 유대인의 직업적 구조의 특징을 요약하면 첫째, 상업과 금융업에 집중적으로 종사하였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유대인들을 빠른 시일 내에 하층계급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부의 축적을 통해 경제적 지위를 확보하였으며 몇몇 분야에서는 결정적인 역할과 영향력을 가능케 하였다. 둘째는 전문직과 인텔리 계층 분야로의 진출이 크게 증가하였다는 점이다. 상업을 통해 유대인의 경제적 지위가 어느 정도 상승하였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시민계급으로의 진입에 필요한 기본조건은 될지언정 충분한 조건은 아니었다. 유대인의 진정한 시민계급으로의 진입은 고등교육을 통한 전문직과 인텔리 계층 분야로의 진출로 가능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경제적인 권력뿐만 아니라 사회와 문화 그리고 정신분야에 이르기까지 상승한 유대인의 영향력을 경계하는 배경이 되었다. 유대인의 세 번째 직업적 구조의 특징은 독립적인 자영업의 비중이 매우 컸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특징은 유대인과 비유대인 집단 사이의 일종의 사회적 분리를 야기함으로써 두 집단 간의 경제적․사회적 교류를 가로막는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유대인 시민계층은 종교, 직업구조 그리고 정치적 성향 측면에서 일반적인 시민계층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 유대인의 끊임없는 문화변용에도 불구하고(또는 문화변용 때문에) 유대인 시민계층은 독일 제2제정기에 독일 주류사회에서 어느 정도 소외되었으며 독일시민계층에 완전히 통합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들은 객관적인 집단갈등의 심화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해방과 연관되어 있던 기대감으로 인하여 유대인과 기독교인 사이의 관계에 심각한 부담과 잠재적인 긴장을 초래하였다.
    두 번째 연구결과의 내용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의 반유대주의에 대한 연구로서 19세기 근대적 반유대주의와의 비교분석을 통하여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바이마르 공화국에 이르기까지 반유대적 슬로건들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졌으며 이론적인 증명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반유대주의가 보수적인 민족주의 조직들의 선동적 전략의 중요한 요소로 뿌리를 내리면서 보편적인 세계관으로 진화되어가는 과정을 분석하였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의 반유대주의와 관련 있던 키워드는 이미 제2 제정기에 드러난 주제들이었다. 근대적 반유대주의의 뿌리를 1914년 이전 독일 제2 제정기에서 찾아야 한다면 반유대주의의 엄청난 역동성과 조직적 과격성은 1918년 이후의 전쟁패배, 혁명 그리고 폭력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새로운 근대적 반유대주의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 (제2 제정기에 존재하지 않았던) 패전으로 인한 경제적․사회적 불안, 민족적 치욕과 좌절이라는 특수한 배경이 덧붙여져 더욱 조직적으로, 더욱 대중적으로, 더욱 정치적으로, 더욱 문화적으로 세련되어졌으며 폭력과 보이콧이라는 새로운 수단을 사용하게 되는 특징을 가졌다. 전체적으로 보면 제2 제정기의 반유대주의가 새롭게 탄생한 정치질서를 강화하고 안정시키려는, 그리고 유대인의 권력을 차단하려는 지배계층과 교양시민계층의 운동이었지, 손해를 본 민중들의 자발적인 운동은 아니었다면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의 반유대주의는 제2 제정기의 근대적 반유대주의의 중요한 패러다임을 유지하면서도 폭력과 보이콧 그리고 정치적 선전전략이라는 새로운 수단을 통하여 대중적 호응을 얻게 되었다.
    세 번째 연구내용은 근대 시민사회 체제와 반유대주의 위협 속에서 유대주의를 유지하고 유대인의 정체성을 보존하는데 가족의 중요성과 유대인 여성의 역할을 분석하였다. 독일 제2제정기 반유대주의의 분위기속에서 독일유대인들의 일상은 비록 고립되고 폐쇄적인 세계는 아니었지만 긴장과 갈등이 해소되고 안정과 평온이 유지되는 세계였다. 왜냐하면 일상에서는 습관화된 사고나 행위에 의해 외부에서 나타나는 비일상적인 자극이나 충격이 흡수되거나 조정됨으로써 혼란이 수습되고 평정이 회복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일상은 사회적 경제적 삶의 현실을 경험하고 인식하면서, 여기서 파생되는 긴장과 갈등 속에서도 급변하는 현실에 대한 적응과 끊임없는 변화를 모색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에서 유대인에 대한 편견과 증오가 다시 부활한 독일 제 2제정기 독일유대인의 일상영역, 특히 가족은 일상의 중요한 요소로서 비일상에서 비롯된 자극과 충격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외부로 부터의 영향을 독자적으로 수용하고 변화시켰다.
  • 영문
  • An important condition of the anti-semitic agitation was the occupational and social characteristic of the German Jewish people of 19th century. In order to publicize the existing unbalance between ‘the property of Jewish people and the labor of Christians,’ the advocates of anti- semitism asked to introduce the statistics of jobs based on religion. They understood the liberation as the complete assimilation through the reconstruction of job structure. However, the result of statistics showed them that Jewish people selectively utilized only the advantage, and benefit of liberation. In this sense, the characteristic of the job structure of the German Jewish as an important condition to the modern anti-semitism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they mostly concentrated in commercial and financial businesses. This helped them escape from the lower class in a short time, but also made to have higher economic status by way of the accumulation of wealth. Second, they increasingly moved into the professional and intellectual fields. Jewish people's entry into the civil class was possible by their advancement into the professional and intellectuals fields through high education. This fact became a background from which the Jewish influences that had been elevated to the economic, socio-cultual, and even psychological fields were being watched. Thirdly, the independent business of Jewish people had increased in its proportion. These characteristics caused the separation between the Jewish group and non-Jewish group so as to take a role prohibiting the socio-economic interchange between them.
    Thus, the Jewish citizens had shown different features from non-jewish citizens in their aspects of religion, job structure, and political orientation. In spite of (or because of) their constant acculturation, the Jewish citizens had been somewhat isolated from, and were not integrated into, the mainstream of society during the Second Reich of Germany. Moreover, in a short period during which the Jewish had achieved socio-economic status, and in the period of economic crisis, the Jewish problem had become not the problem of Jewish liberation but the problem demanding the liberation from the strong Jewish people.
    In a sense that the Jewish culture and religion were the basic premise for the preservation of the Jewish identity, the Jewish family has taken an important role in preserving the Jewish religion and culture. Moreover, for Jews who set a high value on their religious activities, family meant an important space for community building and religious activities. The rigid observance of table rule(Speisegobot) as well as the observance of the Sabbath, and the performance of religious festival was a factor that ruled their family. The children who were too young to take religious class had acquired the traditional Jewish emotional mood at home. The close relationship between family and religion has made it possible for Judaism to exist for thousands years. Taking these kinds of religious roles, Jewish women also tried to transform their families with the values of middle-class civil family. The Jewish families have experienced a rapid change for the nineteenth century. The liberation of Jews, the cultural transformation(Akkulturation), and the upgrade of the socio-economic status of Jews have made the civil family and its value to be the typical factors of the Jewish families. The construction and function of family changed after their social upgrade. Now Jews no longer live only within their own socio-cultural world, but, maintaining their own unique group identity with the acquired legal equality, try to devote themselves to the integration of the whole Germans. Thus, the Jewish family took tow kinds of function.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연구의 목적은 19세기 독일의 근대적 반유대주의, 바이마르공화국 시기와 나치시기의 반유대주의 그리고 홀로코스트 이후 현재까지의 독일의 반유대주의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2000년에 걸쳐 전 유럽적인 현상으로서의 반유대주의의 연속성 및 그 고유성을 살펴보는 것이다. 각론적으로는 반유대주의 탄생의 신학적 논거, 인종적 요인, 경제적 배경과 사회구조 그리고 사회적 인식 및 정치권력의 태도를 분석하면서 근대적 반유대주의의 본질과 기능 그리고 그 영향을 규명함으로써 그 이전(중세시대)과 그 이후(나치시대와 현재)의 반유대주의와의 연속성 및 그 고유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본 연구는 시기별과 주제별로 3년의 계획을 설정하고 있다. 1차 년도에서는 19세기 독일의 근대적 반유대주의에 대한 연구로서 이 시기의 반유대주의가 그 이전(중세시대)과 비교해 어떠한 새로운 변모를 이루었으며 바이마르시대 특히 나치시대의 조직적인 반유대주의로의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점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2차 년도는 바이마르 공화국시기와 나치시대의 반유대주의에 대한 연구로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민족적 좌절과 경제적 몰락의 단계에서 반유대적 슬로건들이 어떻게 그렇게도 쉽게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졌으며 이론적인 증명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반유대주의가 히틀러의 정치활동의 확고한 부분으로 전환되어 가는 과정을 추적하였다. 이로써 19세기 독일의 반유대주의와 나치시대의 조직적인 반유대주의에 대한 비교분석이 가능하다. 3차 년도는 홀로코스트 이후의 반유대주의에 대한 연구이다. 여기서는 진실로 독일사회에서 반유대주의가 사라졌는가라는 의문에서 시작된다.
    첫 번째 연구결과의 내용으로서 19세기 독일 유대인의 직업적․사회적 특징이 반유대적 선동의 중요한 조건이었음을 분석하였다. 근대적 반유대주의의 중요한 조건이 되었던 독일 유대인의 직업적 구조의 특징을 요약하면 첫째, 상업과 금융업에 집중적으로 종사하였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유대인들을 빠른 시일 내에 하층계급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부의 축적을 통해 경제적 지위를 확보하였으며 몇몇 분야에서는 결정적인 역할과 영향력을 가능케 하였다. 둘째는 전문직과 인텔리 계층 분야로의 진출이 크게 증가하였다는 점이다. 상업을 통해 유대인의 경제적 지위가 어느 정도 상승하였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시민계급으로의 진입에 필요한 기본조건은 될지언정 충분한 조건은 아니었다. 유대인의 진정한 시민계급으로의 진입은 고등교육을 통한 전문직과 인텔리 계층 분야로의 진출로 가능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경제적인 권력뿐만 아니라 사회와 문화 그리고 정신분야에 이르기까지 상승한 유대인의 영향력을 경계하는 배경이 되었다. 유대인의 세 번째 직업적 구조의 특징은 독립적인 자영업의 비중이 매우 컸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특징은 유대인과 비유대인 집단 사이의 일종의 사회적 분리를 야기함으로써 두 집단 간의 경제적․사회적 교류를 가로막는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유대인 시민계층은 종교, 직업구조 그리고 정치적 성향 측면에서 일반적인 시민계층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 유대인의 끊임없는 문화변용에도 불구하고(또는 문화변용 때문에) 유대인 시민계층은 독일 제2제정기에 독일 주류사회에서 어느 정도 소외되었으며 독일시민계층에 완전히 통합되지 않았다.
    두 번째 연구결과의 내용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의 반유대주의에 대한 연구로서 19세기 근대적 반유대주의와의 비교분석을 통하여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바이마르 공화국에 이르기까지 반유대적 슬로건들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졌으며 이론적인 증명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반유대주의가 보수적인 민족주의 조직들의 선동적 전략의 중요한 요소로 뿌리를 내리면서 보편적인 세계관으로 진화되어가는 과정을 분석하였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의 반유대주의와 관련 있던 키워드는 이미 제2 제정기에 드러난 주제들이었다. 근대적 반유대주의의 뿌리를 1914년 이전 독일 제2 제정기에서 찾아야 한다면 반유대주의의 엄청난 역동성과 조직적 과격성은 1918년 이후의 전쟁패배, 혁명 그리고 폭력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새로운 근대적 반유대주의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 (제2 제정기에 존재하지 않았던) 패전으로 인한 경제적․사회적 불안, 민족적 치욕과 좌절이라는 특수한 배경이 덧붙여져 더욱 조직적으로, 더욱 대중적으로, 더욱 정치적으로, 더욱 문화적으로 세련되어졌으며 폭력과 보이콧이라는 새로운 수단을 사용하게 되는 특징을 가졌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연구주제에 대한 연구결과물 중 3편은 현재 전국학술지에 그리고 2편은 대학학술논문지에 게재하였다. 그리고 앞으로 2편의 논문을 전국학술지에 게재할 예정이다. 발표된 논문은 다음과 같다
    1. 바이마르공화국시기의 반유대주의, ‘역사비평’ 75호
    2. 전통과 변화, 독일 제2제정기의 유대인가정과 유대인여성, ‘역사와 경계’ 57호
    3. 독일유대인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상승과 반유대주의, ‘사림’ 23집
    4. 19세기 독일유대인의 해방에 대한 연구, ‘인문연구‘(선문대 인문과학연구소) 2호
    5. 독일의 반유대주의와 시오니즘의 탄생, ‘인문연구‘(선문대 인문과학연구소) 1호

    본 연구결과에 기초하여 현재 본인은 ‘반유대주의 하의 독일유대인의 일상사 연구’ 를 진행하고 있다. 이 연구는 독일 제2 제정기와 바이마르공화국 시기 그리고 나치정권 시기에 독일유대인들이 반유대주의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반응하였으며 그리고 사회적․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구조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그들의 정체성과 전통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근대시민사회의 가치관도 적극 수용하였던 태도를 그들의 일상사를 통해 분석하는 것이다. 즉 이 연구는 근대 독일사회의 소수집단인 유대인을 대상으로 그들의 태도나 행위들을 ‘안으로부터’의 시각에서 분석함으로써 흔히 일반화의 과정에서 놓칠 수 있는 그들만의 고유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이에 기초하여 그들이 거대한 외부의 충격과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였으며 그 역사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데 중요한 목적이 있다. 여기서 일상의 질적인 측면들 - 감정, 지각(Wahrnehmungen) 그리고 멘탈리티 - 을 강조하는데 노력을 기울인다. 각론적으로는 급변하는 근대 시민사회체제 안에서 유대주의를 유지하고 유대인의 정체성을 보존하는데 있어서 가족의 중요성과 유대인 여성의 역할을 분석하고자 한다. 전통과 새로운 변화가 혼재해 있었던 독일 제2제정기에 전통적 가치를 보존하면서도 근대시민사회의 가치관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독일유대인 여성들의 역할과 기능은 반유대주의 분위기 속에서 어떠한 역사적 의미가 있는지를 살펴본다. 그리고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 절정에 달한 근대적 반유대주의의 분위기 속에서 탄생한 유대인들의 다양한 조직과 단체는 독일 유대인들에게 무엇을 의미하였으며 어떠한 기능을 하였는지의 문제는 그들의 생존전략과 정체성의 위기를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또한 나치정권 시기에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반유대 정책의 위협 속에서 유대인들은 나치즘을 어떻게 이해했으며 생존하기 위한 전략은 무엇이었는지를 분석하는 것은 나치시대의 지배와 순응 그리고 저항이라는 코드를 이해하는데 중요할 것이다.
  • 색인어
  • 유대인 해방, 경제적 지위상승, 반유대주의, 직업구조, 문화변용, 동화, 개종, 반자유주의, 반자본주의, 반사회주의, 민족주의, 제1차 세계대전, 나치즘, NSDAP, DDP, SPD, DNVP, Zentrum, 히틀러, 전독일연맹, 지주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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