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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일본국민체조"의 보급과 활동에 관한 연구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일제강점기 "대일본국민체조"의 보급과 활동에 관한 연구 | 2014 년 | 황의룡(한국외국어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2014S1A5B5A07041731
선정년도 2014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16년 02월 29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16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일제는 1938년에 후생성을 신설하고 국민의 체력향상과 일본정신 고양을 위한 건민정책으로 “대일본국민체조”를 제정, 보급하였다. 이 체조는 일반형과 대일본청년체조(남자청장년형), 대일본여자청년체조(여자청장년형)의 세 가지 대상별 형태로 세분화한 특징이 있다. 조선총독부의 대일본국민체조의 보급과 활동에 관해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먼저 근대 일본사회에서 보건체조가 주목받은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보건체조가 활성화 된 원인을 검토하였다. 1928년에 시작된 라디오체조를 검토하고, 국군주의 국가를 성취하려고 후생성 신설과 국민체력 정책인 대일본국민체조의 취지 및 보급, 실태를 고찰하였다. 조선총독부는 대일본국민체조를 어떻게 보급하였고 그 실태는 어떠하였나? 이전의 보건체조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일제가 보건체조를 조선에 정착시키려 한 목적은 무엇인가?를 고찰하였다.
    우리 사회의 건민체조는 조선총독부의 건민정책으로 시작되었다. 1931년 라디오체조와 1937년 황국신민체조, 1939년 대일본국민체조가 시행되었다. 총독부는 조선인은 매우 게으르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길러야 하기 때문에 아침에 라디오의 구령과 반주로 실시하는 체조를 권장한다. 세계대전이 확산되면서 일본건국 2,6000년을 기념하는 국가행사로 라디오체조회를 이용, 집단적 훈련을 통해 조선인의 체력향상을 도모하였다. 여럿이 한 곳에 모여 체조하는 집단성을 통해 황국신민의 강제된 건강을 배양하였다.
    조선총독부는 대일본국민체조를 교육 잡지를 통해 설명하고 국민운동으로 강제하였다. 매년 여름에 라디오체조회는 궁성요배와 같이 시행하여 일본의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을 높여 권력에 충성하는 조선인을 만드는데 이용하였다. 전쟁심화와 함께 각 지역의 애국반원을 동원해 라디오체조회를 지도하고 학생과 일반인의 참여를 독려, 전력증강에 집중하여 일제의 군국주의적 국가목표를 달성하는데 주력하였다. 대일본국민체조는 이전의 체조에 비해 운동강도가 강하고 특히 하체를 강화하는 다리운동에 역점을 두었다. 이는 15년 전쟁기의 일제가 국민체조를 통해 얼마나 강력한 군사를 양성하려 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국가권력에 의한 보건체조정책은 해방 후에도 계속되어 미군정기의 국민보건체조, 1960년대의 재건체조, 그리고 1980년대 국민체조로 이어졌다.
  • 영문
  • In 1938, Japan government established “Ministry of Welfare” and they enacted and dis- seminate “Tainihonkokumintaisou(대일본국민체조)“ as a mean to improve the public’s strength and enhance their spirit. This gymnastics can be subdivided into standard type, Tainihonseinentaisou, and Tainihonsyosiseinentaisou. There are the results of analysis of distribution and activities of Tainihonkokumintaisou enacted by the Chosun Government-general as follows.

    First of all, we studied the reasons why health gymnastics were vitalized in modern japanese society from 1920s to 1940s. Also, we examined Radio Gymnastics, which started in 1928, and study purpose, dissemination, and actual condition of Tainihonsyosiseinentaisou and ministry of welfare, which were for accomplishing militaristic nation. We examined how the Chosun government-general propagated Tainihonkokumintaisou, and how the reality was, how different the radio gymnastics was from prior health gymnastics and why the Japan government wanted to get health gymnastics taken root in Chosun

    Our society’s Sound People Gymnastics started from the Chosun govern- ment-general’s Sound People Policy. Following radio gymnastics in 1931, and Kokokushinmin(황국신민) gymnastics in 1937, Tainihonkokumintaisou were enforced in 1939. Using the excuse that people in Chosun were lazy, the Chosun government-general encouraged the public to follow the verbal order and accompaniment coming from the radio in the morning to habituate to wake up early. As the world war spread, using radio gymnastics meeting as a national event to celebrate 2600th year of national foundation, Japan planned to reinforce Chosun people’s strength through collective training. Through collectivity that everyone gathers to exercise, they cultivated Kokokushinmin’s forced health.

    The Chosun government-genral taught Tainihonkokumintaisou through educational magazine and compelled people to practice it. Every summer, radio gymnastics meeting used Kyujoyohai(궁성요배) to heighten Japanese identity and community spirit making Chosun people loyal to the authority. Leading radio gymnastics meeting and encouraging people by mobilizing Patriotic Presidents of Neighborhood Association from different regions while the war got intensified, the Chosun government-general focused on fulfilling militaristic goal. Tainihonkokumintaisou was relatively intense than prior gymnastics, especially concentrating on the leg exercises reinforcing the lower body. This shows us that during the war, Japan tried to forge strong armies with national physical exercises. This health gymnastics policy from governmental power continued after the emancipation, followed by health gymnastics in period of US Military Government, reconstruction gymnastics in 1960s, and national physical exercise in 1980s.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일제는 1938년에 후생성을 신설하고 국민의 체력향상과 일본정신 고양을 위한 건민정책으로 “대일본국민체조”를 제정, 보급하였다. 대일본국민체조는 일반형과 대일본청년체조, 대일본여자청년체조의 세 가지 대상별 형태로 세분화한 특징이 있다. 조선총독부의 대일본국민체조의 보급과 활동에 관해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먼저 근대 일본사회에서 보건체조가 주목받은 1920년대부터 15년 전쟁기까지 집단체조가 활성화 된 원인을 검토하였다. 1928년 체신성 간이보험국이 제정한 라디오체조를 검토하고, 국군주의 국가를 성취하려고 후생성 신설과 국민체력 정책인 대일본국민체조의 취지 및 보급, 실태를 고찰하였다. 조선총독부는 이 체조를 어떻게 보급하였고 그 실태는? 이전의 보건체조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보건체조를 조선에 정착시키려는 목적은 무엇인가?를 고찰하였다.
    우리 사회의 건민체조는 조선총독부의 건민정책으로 시작되었다. 1931년 라디오체조 제1과 1937년 황국신민체조, 1939년 대일본국민체조가 시행되었다. 총독부는 조선인은 매우 게으르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길러야 하기 때문에 아침에 라디오의 구령과 반주로 실시하는 체조를 권장한다. 세계대전이 확산되면서 황기 2,6000년을 기념하는 국가행사로 라디오체조회를 이용, 집단적 훈련을 통해 조선인의 체력향상을 도모하였다. 여럿이 한 곳에 모여 체조하는 집단성을 통해 황국신민의 강제된 건강을 배양하였다.
    조선총독부는 대일본국민체조를 교육잡지를 통해 설명하고 국민운동으로 강제하였다. 매년 여름에 라디오체조회는 궁성요배와 같이 시행하여 일본의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을 높여 권력에 충성하는 조선인을 만드는데 이용하였다. 전쟁심화와 함께 각 지역의 애국반원을 동원해 라디오체조회를 지도하고 학생과 일반인의 참여를 독려, 전력증강에 집중하여 일제의 군국주의적 국가목표를 달성하는데 주력하였다. 대일본국민체조는 이전의 체조에 비해 운동강도가 강하고 특히 하체를 강화하는 다리운동에 역점을 두었다. 이는 15년 전쟁기의 일제가 국민체조를 통해 얼마나 강인한 군사를 양성하려 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국가권력에 의한 보건체조정책은 해방 후에도 계속되어 미군정기의 국민보건체조, 1960년대의 재건체조, 그리고 1980년대 국민체조로 이어졌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약 10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국민체력향상이나 건민정책의 일환으로 보급된 국민체조는 시대별, 또는 정치권력의 의도에 따라 변화하여 왔다. 그러나 아직도 보건체조의 보급과 장려활동이 일제의 건민육성이라는 정책적 의도에 따라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 사회의 건민체조는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 초반부터 조선총독부의 사회건민정책의 하나로 시작된 라디오체조 제1에 이어 1937년 황국신민체조로 이어졌고, 1939년 일본의 후생성이 제정한 대일본국민체조가 제3의 라디오체조라는 이름으로 보급되어 시행되었다.
    1930년대 일본을 비롯한 식민지 조선은 전시체제로 전환되어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서 일본 군부의 야욕을 채우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일제의 통치자들은 조선인은 매우 게으르다는 인식 하에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는 명목을 내세웠고 1930년대부터 아침에 라디오 방송을 통한 구령과 반주에 맞춰 실시하는 보건체조 정책을 적극 권장한다. 1940년대 들어와 이러한 움직임은 이전과 다른 측면을 보인다. 중일전쟁이 세계대전으로 확산되면서 일본건국 2,6000년(1940년)을 기념하는 국가행사로 라디오체조회를 대대적으로 이용하였고, 집단적 육체 훈련을 통해 조선인의 체력 및 체위향상을 도모하였다. 더불어 여럿이 한 자리에 모여 체조하는 집단성을 이용해 일본정신의 함양, 즉 황국신민으로서 강제된 건강을 배양하는데 몰두하였던 것이다.
    일본 내에서 군부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1938년 후생성을 신설하고, 그 첫 사업으로 제정한 대일본국민체조를 조선에서도 동일한 시간대에 소개, 보급하는데 주력한다. 여러 교육 잡지에 대일본국민체조의 장점을 나열하고 이를 국민적 운동으로 거행할 것을 역설하였다. 매년 학생들의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라디오체조회를 한 달 동안 시행하였고, 이를 궁성요배와 황국신민의 서사와 같은 행사와 같이 거행함으로써 일본민족의 정체성 형성과 공동체적 의식을 높여 통치 권력에 충성하는 식민지민을 만들기 위해 강제하였다. 전쟁이 본격화하면서 언론 매체를 통해 강력한 체력을 가진 인적 자원이 요구된다는 점을 역설하고, 그 일환으로 각 지역의 애국반원을 교육시켜 라디오체조회를 지도하도록 하고 학생들은 물론 일반인에게까지 참여하도록 강요하며 전력증강에 집중하여 일제의 군국주의 국가 목표를 달성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이와 같이 조선총독부가 시기별로 라디오체조에서 황국신민체조, 그리고 대일본국민체조를 적극적으로 보급하고 시행을 독려한 의도를 분석함으로써 식민지 조선에서의 정치적 목적과 일본사회와의 밀접한 관계성, 그 보급과정에서 추진한 의도 등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이 연구는 우리 사회에서 시행된 보건체조의 계보와 관계성을 연결해 주는데 학문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15년 전쟁기에 접어든 일제가 식민지 사회에서 대일본국민체조를 통해 일본정신에 투철하고 강인한 체력을 갖춘 인적 자원의 양성과 관리를 추구하고자 했던 점도 파악할 수 있었다. 근대사회로 접어들어 국가권력에 의한 보건체조 진흥 정책은 해방 후에도 계속되어 미군정기의 국민보건체조, 1960년대의 재건체조, 그리고 새마을체조로 이어졌다. 1980년대에도 국민체조가 제정되어 관공서와 기업, 학교 등에서 시행되었다. 우리 사회의 많은 국민이 모여 시행하는 집단보건체조의 역사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연구결과의 활용 방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나라에서 민중들의 건강과 체력, 체위 향상을 위해 실시한 보건체조는 일본의 정치적 목적을 그대로 이식한 수준에서 전개되었으며, 그들의 군국주의 정치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보급, 장려되었다는 체육사적 기초지식의 축적을 기대할 수 있다.
    둘째, 일제 강점기 후반의 사회체육 진흥 목적이 인적 자원의 양성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는 점과 특히 집단체조회를 장려한 것은 일제의 민족적 정체성 형성에 체조라는 운동이 이용수단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었다. 한편, 우리 사회에서 시행된 집단체조의 전체적 계보를 보완함으로써 건민체조를 포함한 스포츠의 존재와 그 가치성을 탐구하는 교육 자료로 활용이 가능할 것이다.
    셋째, 이러한 연구결과를 토대로 일제의 정책적 목적과 스포츠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해 왔다는 문화정치 자료로 활용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체육사, 또는 문화사적 연구 범위를 확장하는데 좋은 방안이 될 것이다.
  • 색인어
  • 후생성, 대일본국민체조, 국민보건체조, 라디오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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