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당한 혹은 적합한 행위에 관한 이론을 추구하였던 근대 윤리학의 과도한 보편주의는 20세기, 윤리적 상대주의와 이기주의의 설명력과 윤리적 보편성에 대한 인식 불가능성이 학계에 호응을 얻게 됨으로써 뒷걸음질 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메타 윤리학의 터전을 제공해 ...
타당한 혹은 적합한 행위에 관한 이론을 추구하였던 근대 윤리학의 과도한 보편주의는 20세기, 윤리적 상대주의와 이기주의의 설명력과 윤리적 보편성에 대한 인식 불가능성이 학계에 호응을 얻게 됨으로써 뒷걸음질 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메타 윤리학의 터전을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언어 분석적인 메타 윤리학은 윤리적 삶과 행위에 관한 도덕 이론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너무 분석에만 치우친 윤리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타 윤리학의 등장으로 인해 독단이나 맹신에 가까운 비반성적인 윤리 이론들을 비판할 수 있는 방법과 도구를 제공해 준 큰 소득이 있었다. 이제 윤리학은 사회 일각에서 일어나는 많은 도덕적 이슈들에 대해 거침없는 분석과 비판을 실행할 수 있었고 또한 응용 윤리학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의 실천적 문제들에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현대는 또 다시 윤리학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과학 기술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지구의 글로벌화 그리고 합리성은 이미 기존의 가치와 사고방식에 도전하기 시작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다운 삶, 행복한 삶, 올바른 삶, 좋은 삶을 살기 위해 인간은 어떤 실천적 삶을 살아야 되는지, 어떤 종류의 인간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성찰적 삶이 요구되고 있다. 더욱이 칸트주의와 공리주의 간의 지리멸렬한 논쟁,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소모적인 논쟁으로부터 얼룩진 윤리학은 오히려 좋은, 행복한 실천적 삶으로서의 윤리를 요구하고 있다. 일반적인 행위를 인도하는 보편적인 도덕 법칙에 대한 과도한 탐구는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나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윤리적 물음들에 대해서는 도외시했기 때문이다. 도덕 법칙과 보편성에 집중함으로써 ‘유덕한 인간은 어떻게 행위하는가’를 성찰하기 보다는 도덕적 판단과 지식을 추구하고, 좋은 인간, 유덕한 인간, 좋은 삶에 대해서 함구해 온 결과 오늘날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윤리가 요청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오늘날의 윤리학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윤리에 지극한 관심을 보이면서도,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우정이 필요하다고 본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대해서는 별로 주목하지 못했다. 이미 오래 전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윤리적 삶,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친구가 반드시 필요하며 우정이 행복한 삶을 완성한다고 내다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에 다시 그의 우정에 관한 논의를 재조명 받는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오늘날 좋은 삶, 행복한 삶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친구의 역할 다시 말해서 우정의 역할을 논의하고 우리가 우정을 통해 얼마나 도덕적으로 성장해 가며 도덕적 변혁을 경험하는지를 성찰하고 따라서 우정의 윤리학적 분석의 필요성을 역설하고자 한다. 오늘날 현대 사회는 전통과의 단절, 고립된 원자화된 개인주의, 물질만능주의, 생명경시풍조가 만연되면서 도덕적 위기를 겪고 있다. 인간은 사회로부터 그리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소외되어, 고립속에서 우울증을 겪기도 하고, 사소한 기다림이나 잘못에도 화를 다스리지 못하며, 타인의 생명을 무자비하게 해치고도 도덕적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탈도덕화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도덕적 위기는 현대 사회의 여러 가지 요인들로 인해 발생된 것이어서 유독 윤리학에만 그 책임을 돌릴 수는 없겠지만, 전통 윤리학이 과도하게 도덕 판단과 도덕 법칙 그리고 보편성을 추구함으로써 유덕한 인간에 대해서는 함구한 책임도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타당한 도덕 판단과 보편화가능한 도덕 법칙이 어느 부분에서는 특히 공적인 영역에서는 필요한 것이지만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도덕적으로 성장하며 변화해 가는지에 관한 연구도 지극히 필요하다. 우리는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도덕적으로 성장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연구해야 한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도덕적으로 성장하는데 친구들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함을 역설하면서 우정과 도덕적 성장과 변혁과의 관계에 대해 논의해 보고자 한다. 프리드만은 몇몇 철학자들이 우정과 도덕의 관계를 논의하고 있지만 그것이 어떻게 도덕적 성장과 도덕적 변혁에 기여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우정과 도덕적 성장과 변혁의 관계를 기존의 철학자들과 차이를 드러내고 있는 프리드만의 우정에 관한 논의를 살펴볼 것이다.
기대효과
우정에 대한 철학적, 윤리학적 분석은 거의 전무한 형편임을 앞서 말해왔다. 우정은 자서전에서, 문학에서, 도덕 발달 심리에서 연구되고 있지만 이 모든 개별 학문들의 자양분이 될 철학적, 윤리학적 분석은 매우 얕은 수준에 있다. 현대 사회에서 우정은 인간 관계의 처 ...
우정에 대한 철학적, 윤리학적 분석은 거의 전무한 형편임을 앞서 말해왔다. 우정은 자서전에서, 문학에서, 도덕 발달 심리에서 연구되고 있지만 이 모든 개별 학문들의 자양분이 될 철학적, 윤리학적 분석은 매우 얕은 수준에 있다. 현대 사회에서 우정은 인간 관계의 처세술쯤으로, 또는 자기 계발서로서 논의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한 논의는 오로지 자기 이익으로서의 우정을 논의할 뿐이다. 본 연구에서는 우정이 다른 감정들, 예컨대 사랑과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봄으로써, 이타적 감정에 대해 풍성한 논의를 할 것이다. 또한 친구들은 단지 내가 좋아하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타인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보살핌과 관심과 애정을 쏟아 줌으로써 더 나아가서 나의 자아에 대한 인식과 도덕적 성장에도 영향을 주는 ‘제2의 나’임을 밝힘으로써 아름답고 풍성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데 일조할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최초의 보살피는 자로서인 부모로부터 보살핌을 받고 성장한다. 우리는 친척과 선생님과 사회로부터도 보살핌을 받지만 부모의 품을 벗어나서는 무엇보다도 친구들과의 상호작용과 상호적인 보살핌으로부터도 성장한다. 친구들과의 만남은 가정을 벗어난 최초의 사회적 경험의 시작이자 토대가 된다. 우리가 어떤 친구를 사귀고 또 어떻게 우정을 나누는지에 따라서 성인이 되었을 때 우리 자아관과 퍼스낼리티가 건강할 수 있다. 그것은 따뜻하고 정겨운 우정의 사회를 나누는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들은 도덕적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작은 밀알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도 외국인 근로자의 유입과 그에 따른 다문화 가정이 늘어남에 따라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가치들이 충돌하고 있으며 그러한 가치들이 양립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일 수도 있고 그것들을 중재할 공통 분모가 없어서 심각한 갈등과 딜레마를 경험할 수도 있다. 이질적인 문화와 전통 속에 자라 온 타자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사랑이 요구된다. 우정 연구가 그러한 역할을 하기에 충분할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동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안에서도 특이한 도덕적, 성적 취향과 성품으로 동질적인 공동체에 흡수되지 못하는 문화적 이방인들이 늘고 있다. 우정이라는 사랑을 통해 그들에 대한 인식의 확장이 일어날 수도 있다. 또한 향후 본 연구를 통해서 우정에 대해 논의한 철학자들을 다룰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 아퀴나스, 몽테뉴, 홉스 등 서양의 철학자들의 연구뿐 아니라, 동양에서도 우정을 논의한 유학과 불교 그리고 노 ․ 장자의 사상을 연구하는 데 밑거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연구요약
우정에 관한 철학적 관심은 플라톤의 《리시스》로부터 시작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절정에 달한다. 그 후 《우정에 관하여》을 저술한 키케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정 논의를 현상적으로 반복하고 있다. 우정은 중세에는 이타적 사랑을 뜻하는 아가 ...
우정에 관한 철학적 관심은 플라톤의 《리시스》로부터 시작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절정에 달한다. 그 후 《우정에 관하여》을 저술한 키케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정 논의를 현상적으로 반복하고 있다. 우정은 중세에는 이타적 사랑을 뜻하는 아가페의 차원에서 논의되다가 근대 이후에는 문학과 자서전에서 인생을 위한 지침이나 경구 정도쯤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현대의 우정에 대한 관심은 공동체주의를 지향하는 덕 윤리와 여성주의 윤리학에서 비롯된다. 친밀한 사적인 영역에 대한 재발견과 특수하고 구체적인 사람들에 대한 개입이 새로이 윤리학적 관심을 일으키면서, 친구들 사이에서의 우정이 인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재인식하게 된다. 오래전부터 우정에 대한 관심을 가져 왔고 우정을 통해 자아가 형성되고 도덕적으로 성장함에도 불구하고, 우정이 어떻게 우리의 도덕적 성장과 변혁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주목되지 못했다. 본 연구에서는 우정과 도덕적 성장의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연구한 프리드만의 주장에 관심을 가진다. 본 연구는 네 가지 차원에서 논의될 것이다. 첫째, 우정에 대한 철학적 토대는 도덕적 경험주의이다.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는 일은 친구들의 과거와 현재의 경험들을 상호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이야기로 구성되기 때문에, 친구를 통해서 그들의 경험들과 관점들을 이해하게 되며, 그들의 도덕적 규칙 그리고 가치와 조화를 이루는 생생한 삶의 지식을 얻을 수 있으며, 우리 자신의 경험적 토대를 넓혀주고 풍성하게 해준다. 따라서 우정은 도덕적 경험주의에 토대를 두고 있다. 둘째, 우정은 구체적이고 특수한 사람들에 대한 개입이다. 추상적인 도덕과는 달리, 독특한 특수성 속에서 한 인격체에 대한 개입은 예컨대, 특수한 인격체의 욕구, 바람, 정체성, 역사 등등에 대한 독특한 연결에 초점을 둔다. 그것은 그 인격체에게는 특별한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일반화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친구의 독특함을 인정하는 것이며 그러한 독특함을 존경하거나 칭송한다고 말할 수 있다. 친구의 이익과 최상의 이익은 그 자신의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를 그리고 목표들과 열망들이 가치 있는지를 결정하는 데 핵심적이 된다. 셋째, 우정의 본질은 자발성이다. 친구가 되고자 하는 일은 특수한 사람들에겐 관습이나 전통에 의해 강제되지 않는다. 친구란 활동과 친밀성을 공유하기 위해 자진하여 스스로 선택한 사람들로 간주된다. 우정은 적어도 두 가지 방식에서 자발적이다. 우리는 아는 사람들 중에서 친구가 될 수 있는 각별한 사람을 선택한다. 우리는 친구와 더불어 상호적인 부양과 양육의 범위, 공유된 친밀성의 깊이를 전개한다. 넷째, 우정은 도덕적 성장과 도덕적 변혁을 가져온다. 전통적인 도덕에서 도덕적 성장이란 도덕 법칙을 이성적이고 자율적으로 따를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설사 철학자들조차 우정을 논의하면서 우정이 어떻게 도덕적 성장과 관계가 있는지를 성찰한 학자는 거의 없다. 이들과 달리 프리드만은 우정과 도덕적 성장의 관계를 연구한다. 프리드만에게 있어 도덕적 성장이란 우리의 경험들을 이해하고 배울 때 일어나는 상태이자 현상이며 기존의 도덕적 사고와 행위를 형성한 도덕적 패러다임으로부터의 이동을 의미한다. 그것은 친구와 생각을 공유하고 정서와 감정을 교류함으로써 친구 간의 자아를 형성하며 도덕적 성장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특별하고 특수한 존재인 친구의 삶에 대한 개입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가치와 원칙을 숙고하도록 한다. 그럼으로써 우정은 우리의 도덕적 변혁을 자극하는 것이다. 얇은 자아로부터 두터운 자아로, 자기 중심적 자아로부터 이타주의적 자아로 그리고 자아와 타아를 모두 고려하는 도덕적 변혁을 경험한다. 동심원적으로 넓어지는 타인들에 대한 자아의 배려의 범위와 정도는 새롭게 조정이 이루어진다. 그것은 무조건적인 의무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며 효용성으로부터도 나오지 않는다. 우정을 통한 도덕적 변혁은 단순히 개인적인 변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적 변혁을 의미하기도 한다. 전통적인 가치들에 위배되는 사고와 행위를 보여주는 사람들, 중심부에서 이탈한 사람들에 대한 보살핌과 우정은 사회 자체에 대한 변혁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다. 따라서 우정은 자아의 도덕적 성장과 도덕적 변혁을 물론 사회적 변혁의 가능성까지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