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의 필요성. ①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이냐 칸트 윤리학이냐’의 문제점. 오늘날 실천철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관심의 부활은 ‘계몽의 기획에 대한 맥킨타이어의 반대’, ‘왈쩌의 공동체주의’, ‘개인 성품의 덕을 강조하는 덕 윤리’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 ...
연구의 필요성. ①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이냐 칸트 윤리학이냐’의 문제점. 오늘날 실천철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관심의 부활은 ‘계몽의 기획에 대한 맥킨타이어의 반대’, ‘왈쩌의 공동체주의’, ‘개인 성품의 덕을 강조하는 덕 윤리’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 기획들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칸트 실천철학과의 양립 불가능성을 주장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냐 칸트냐’를 주제로 한 많은 연구들이 양자의 ‘상이성’에 초점을 맞추어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회페(O. Höffe) 등은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의 기획이 양자택일의 관계에 있다는 것에 대해 의심한다. 칸트와 아리스토텔레스는 도덕에 대한 신학적 근거지음에 반대하고, 윤리적 기획에서 정의의 문제를 강조하며, 덕 윤리에 대한 법 윤리의 우선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관건은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 양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일치하는지, 설령 일치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양 기획의 ‘핵심’에서 확인될 수 있는 것인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긍정적인 답이 내려 질 경우에만 ‘아리스토텔레스냐 칸트냐’하는 대결 구도는 그 동력을 상당부분 상실할 것이다. ② 칸트의 행복주의 비판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 개념을 적중하는지의 여부를 고찰할 필요성 ‘목적론이냐 의무론이냐’ 하는 물음은 아리스토텔레스 기획과 칸트 기획 간의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물음의 핵심에 ‘칸트의 행복주의 비판’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칸트는 그의 기획에서 행복이라는 목적을 겨냥하는 행위를 배제하고 선의지에서 나온 행위, 즉 ‘의무로부터의 행위’를 옹호한다. 만일 칸트의 행복주의 비판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 개념을 겨냥하고 있다면 칸트와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학적 기획의 지향점에 있어 상반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칸트의 행복 비판에 아리스토텔레스적 행복(εὐδαιμονια), 즉 ‘영혼의, 덕에 따른 활동 및 이에 동반되는 즐거움’이 해당되지 않는다면, 더 나아가 칸트 윤리학에 아리스토텔레스적 행복에 상응하는 것이 있을 뿐 아니라 또 이에 입각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이 더 잘 이해될 수 있다면, ‘목적론이냐 의무론이냐’라는 대결 구도는 약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연구 목적. 칸트가 ‘비판하는’ 행복은 아리스토텔레스적 행복이 아닐 뿐만 아니라, 칸트가 ‘옹호하는’ 행복의 관점에서면 아리스토텔레스적 행복이 더 잘 독해될 수 있음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덕에 수반되는 즐거움’과 칸트의 ‘자유의 의식에 동반되는 참된 만족’의 동일성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도덕철학적 기획에 있어 칸트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양립 가능성을 모색함.
기대효과
① 서양 고대 윤리학을 대표하는 기획 중의 하나인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과 근대 윤리학을 대표하는 기획중의 하나인 칸트 윤리학을 ‘행복 개념’을 중심으로 비교 검토하는 이 연구는 덕 윤리의 기획과 의무 윤리의 기획 간의 논쟁에 새로운 관점을 제공할 수 있다.
② ...
① 서양 고대 윤리학을 대표하는 기획 중의 하나인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과 근대 윤리학을 대표하는 기획중의 하나인 칸트 윤리학을 ‘행복 개념’을 중심으로 비교 검토하는 이 연구는 덕 윤리의 기획과 의무 윤리의 기획 간의 논쟁에 새로운 관점을 제공할 수 있다.
②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냐 칸트냐’라는 대립구도를 의문시하는 이 연구는 서양 고대와 근대의 윤리적 기획에 관철되는 동일성을 추출함으로써, 주로 상이성에 주목하는 기존의 연구들에 새로운 지평을 개시할 수 있을 것이다.
③ 아리스토텔레스의 ‘덕에 수반되는 즐거움’은 도덕 교육학적 의의, 즉 도덕 교육에 있어 정의적 요소라는 의의를 가진다. 만일 이 즐거움이 ‘자유의 의식에 동반되는 지성적 만족’(칸트)에 결합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면 ‘아리스토텔레스 및 칸트의 情意的 도덕교육’이라는 방향성을 정립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점에서 이번 연구는 도덕교육에 이론, 실천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④ 이 연구의 결과물은 대학 혹은 대학원에서 강의 및 세미나 교재(윤리학, 윤리 교육학)로 활용될 수 있다.
연구요약
칸트의 행복주의 비판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적중하는가? ① ‘목적론 대 의무론’이라는 통념. 칸트 의무론적 윤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윤리학에 맞세워지곤 한다. 연구자의 주장은 칸트의 행복주의 비판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 개념에는 해당되지 않으며, 칸 ...
칸트의 행복주의 비판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적중하는가? ① ‘목적론 대 의무론’이라는 통념. 칸트 의무론적 윤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윤리학에 맞세워지곤 한다. 연구자의 주장은 칸트의 행복주의 비판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 개념에는 해당되지 않으며, 칸트의 ‘최고선으로서의 선의지’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덕에 따르는 영혼의 활동이라는 최고(상)선’ 간에는 본질적 동일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② 칸트에서 ‘비판되는 행복’과 ‘옹호되는 행복’. 칸트에서 비판되는 행복이란 ‘감각적 욕망의 충족’이다. 그런데 우리는 칸트에서 이와는 다른 ‘만족’을 발견하는데 그것이 “참된 만족”, “자기만족”이다. 이 만족은 ‘선의지로서의 최고선’과 결합된 만족으로서 결국 “자신의 존재에 대한 만족”, 즉 “덕의 의식에 필연적으로 동반됨이 틀림없는” “자기만족”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 개념의 파트너는 칸트의 이러한 ‘참된 만족’, ‘자기만족’이다. 칸트에서 이 자기만족은 보편적인데 선의지의 실현이 모든 사람에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③ ‘참된 만족’(칸트)의 관점에서 본 ‘즐거움’(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최고선은 행복이다. 이 행복은 ‘덕에 따르는 이성 활동’이다. 마찬가지로 칸트의 최고선으로서의 선의지는 이성이 의지를 규정할 때의 의지이다. 칸트의 ‘자기만족’에 조응하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것은 ‘덕에 따르는 것이 주는 즐거움’이다. 그리고 칸트처럼 아리스토텔레스도 “행복은 탁월성과 관련하여 아주 불구이지 않은 이들 모두에게 통해 부여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행복의 보편성을 용인한다. ④ 행복과 행운. 요컨대 칸트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옹호되는 행복은 ⓐ 감각적 쾌락과는 관계없는 ⓑ 도덕적 이성의 활동에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 자족적인 ⓓ 원칙상 모든 사람에게 경험 가능한 즐거움이다. 더 나아가 칸트와 아리스토텔레스는 ‘도덕성에 동반되는 즐거움’ 이외의 육체적 즐거움의 필요성 및 인간의 소관 밖에 있는 행운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유사한 생각을 갖는다.
Selbstzufriedenheit Kants,Teleologie und Deontologie,wahre Zufriedenheit Kants,Kritik Kants an Eudämonismus,Glück und Glückseligkeit,Freude mitbringende Tugend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국문
.. 칸트의 행복주의 비판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적중하는가 1. 목적론 대 의무론이라는 통념. 칸트 의무론적 윤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윤리학에 맞세워지곤 한다. 연구자의 주장은 칸트의 행복주의 비판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 개념에는 해당되지 않으며, ...
.. 칸트의 행복주의 비판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적중하는가 1. 목적론 대 의무론이라는 통념. 칸트 의무론적 윤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윤리학에 맞세워지곤 한다. 연구자의 주장은 칸트의 행복주의 비판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 개념에는 해당되지 않으며, 칸트의 최고선으로서의 선의지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덕에 따르는 영혼의 활동이라는 최고(상)선 간에는 본질적 동일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2. 칸트에서 비판되는 행복과 옹호되는 행복. 칸트에서 비판되는 행복이란 감각적 욕망의 충족이다. 그런데 우리는 칸트에서 이와는 다른 만족을 발견하는데 그것이 참된 만족, 자기만족이다. 이 만족은 선의지로서의 최고선과 결합된 만족으로서 결국 자신의 존재에 대한 만족, 즉 덕의 의식에 필연적으로 동반됨이 틀림없는 자기만족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 개념의 파트너는 칸트의 이러한 참된 만족, 자기만족이다. 칸트에서 이 자기만족은 보편적인데 선의지의 실현이 모든 사람에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3. 참된 만족(칸트)의 관점에서 본 즐거움(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최고선은 행복이다. 이 행복은 덕에 따르는 이성 활동이다. 마찬가지로 칸트의 최고선으로서의 선의지는 이성이 의지를 규정할 때의 의지이다. 칸트의 자기만족에 조응하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것은 덕에 따르는 것이 주는 즐거움이다. 그리고 칸트처럼 아리스토텔레스도 행복은 탁월성과 관련하여 아주 불구이지 않은 이들 모두에게 통해 부여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행복의 보편성을 용인한다. 4. 행복과 행운. 요컨대 칸트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옹호되는 행복은 a 감각적 쾌락과는 관계없는 b 도덕적 이성의 활동에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c 자족적인 d 원칙상 모든 사람에게 경험 가능한 즐거움이다. 더 나아가 칸트와 아리스토텔레스는 도덕성에 동반되는 즐거움 이외의 육체적 즐거움의 필요성 및 인간의 소관 밖에 있는 행운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유사한 생각을 갖는다.
영문
The question 'either deontology or teleology' seems to push us to choose one out of Kant's ethics or Aristotle's. If Kant's critique of happiness (Glueckselighkeit) could be imposed on Aristotelian happiness (eudaimonia) which is Aristotelian ultimat ...
The question 'either deontology or teleology' seems to push us to choose one out of Kant's ethics or Aristotle's. If Kant's critique of happiness (Glueckselighkeit) could be imposed on Aristotelian happiness (eudaimonia) which is Aristotelian ultimate end of action, 'either Kant or Aristotle' might be inevitable. By showing that there is a structural sameness between 'Aristotelian pleasure accompanied by the consciousness of virtue' and 'Kantian contentment accompanied by the good will', I hope to find compatibility between Kant's ethics and Aristotle's. My arguments are as follows. 1) The happiness (Glueckseligkeit) criticized by Kant is not Aristotle's happiness (eudaimonia). 2) The real Kantian counterpart of 'Aristotelian eudaimonia as the highest good' is certainly not Glueckseligkeit as a satisfaction of inclinations', furthermore, nor Kant's the highest good in Dialectic in Critique of Practical Reason, i.e. the combination of virtue and Glueckseligkeit but rather 'the good will together with true contentment'. 3) If we call Aristotle's ethics teleological in the sense that eudaimonia, i.e. 'the consciousness of virtue together with moral pleasure' is the highest good, in the same light we can find a clue to 'the Kantian teleological ethics' in 'the true contentment accompanied by the good will'.
연구결과보고서
초록
칸트가 ‘비판하는’ 행복은 아리스토텔레스적 행복이 아닐 뿐만 아니라, 칸트가 ‘옹호하는’ 행복의 관점에서면 아리스토텔레스적 행복이 더 잘 독해될 수 있음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덕에 수반되는 즐거움’과 칸트의 ‘자유의 의식에 동반되 ...
칸트가 ‘비판하는’ 행복은 아리스토텔레스적 행복이 아닐 뿐만 아니라, 칸트가 ‘옹호하는’ 행복의 관점에서면 아리스토텔레스적 행복이 더 잘 독해될 수 있음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덕에 수반되는 즐거움’과 칸트의 ‘자유의 의식에 동반되는 참된 만족’의 동일성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도덕철학적 기획에 있어 칸트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양립 가능성을 모색함.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① 서양 고대 윤리학을 대표하는 기획 중의 하나인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과 근대 윤리학을 대표하는 기획중의 하나인 칸트 윤리학을 ‘행복 개념’을 중심으로 비교 검토하는 이 연구는 덕 윤리의 기획과 의무 윤리의 기획 간의 논쟁에 새로운 관점을 제공할 수 있다. ② 윤 ...
① 서양 고대 윤리학을 대표하는 기획 중의 하나인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과 근대 윤리학을 대표하는 기획중의 하나인 칸트 윤리학을 ‘행복 개념’을 중심으로 비교 검토하는 이 연구는 덕 윤리의 기획과 의무 윤리의 기획 간의 논쟁에 새로운 관점을 제공할 수 있다. ②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냐 칸트냐’라는 대립구도를 의문시하는 이 연구는 서양 고대와 근대의 윤리적 기획에 관철되는 동일성을 추출함으로써, 주로 상이성에 주목하는 기존의 연구들에 새로운 지평을 개시할 수 있을 것이다. ③ 아리스토텔레스의 ‘덕에 수반되는 즐거움’은 도덕 교육학적 의의, 즉 도덕 교육에 있어 정의적 요소라는 의의를 가진다. 만일 이 즐거움이 ‘자유의 의식에 동반되는 지성적 만족’(칸트)에 결합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면 ‘아리스토텔레스 및 칸트의 情意的 도덕교육’이라는 방향성을 정립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점에서 이번 연구는 도덕교육에 이론, 실천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④ 이 연구의 결과물은 대학 혹은 대학원에서 강의 및 세미나 교재(윤리학, 윤리 교육학)로 활용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