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속에 묻혀 있거나 단서가 될 만한 극히 일부분의 유적을 발굴·분석하여 1차 자료를 만드는 일이 고고학의 몫이라면, 이를 기초로 건물의 형태를 추정해 3차원으로 구성해 내는 것이 건축학의 몫이며, 왜 이러한 건물이 그곳에 있어야 했는지의 인문학적 단서를 찾아가 ...
땅 속에 묻혀 있거나 단서가 될 만한 극히 일부분의 유적을 발굴·분석하여 1차 자료를 만드는 일이 고고학의 몫이라면, 이를 기초로 건물의 형태를 추정해 3차원으로 구성해 내는 것이 건축학의 몫이며, 왜 이러한 건물이 그곳에 있어야 했는지의 인문학적 단서를 찾아가는 작업이 역사지리학의 몫이다. 지금까지 이 세 전공분야는 각각 자신들의 관습과 틀대로만 역사유적을 해석해 왔다. 발해 상경성과 같이 발굴된 지 오래된 역사유적은 더 그러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변화와 발전으로 이들 학문의 문턱이 점차 낮아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각 학문분야의 융합연구가 대세를 이루고 있고, 이러한 연구방법은 전 학문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고고학자가 건물 구조의 이해 부족으로 건물 추정에 중요한 단서들을 훼손해 버린 경우가 많았으며, 반대로 건축학자가 지표면 이하 유구 구조의 이해 결핍으로 당시의 생활상을 재현해 내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또한 인문학적인 접근 부재로 건물의 생활을 담당하는 생활자의 인문환경 재현을 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지금부터라도 이러한 실수는 지양해야할 것이다.
더더욱 우리의 연구 필드에서 벗어나있어 접근이 어려웠던 발해 상경성 유적은 1930년대 일본 고고학자에 의해 발굴된 이래, 1960년대 북한과 중국학자들에 의해 조사되었고, 근년에는 중국이 이를 이어갔다. 각각의 결과들은 발굴보고서로 나와 있다. 그러나 발굴보고서를 작성한 사람들은 우리가 아닌 일본, 중국, 북한 고고학자가 주도되었으며, 발굴결과 해석이 고고학에 치우쳐있어 건물의 실제적인 형태 추정에는 많은 한계가 있었고, 또 많은 세월이 흘러 원형 훼손이 심각해져가고 있다. 발해유적은 대한민국의 역사이며,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당시의 건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밝혀 나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고고학뿐 아니라 건축학과 지리학적 입장이 함께 고려된, 우리의 입장에서 연구된 한국 주도적인 발해 상경성 연구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으로 이번 기회에 융합연구를 추진하고자 했다.
본 연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1년간 진행된 연구방법 및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 북한, 중국이 출판한 발굴보고서에는 조사대상 유적이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중복된 경우도 있고, 심지어 동일한 유적이라도 해석을 달리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고고학적인 입장의 내용이 주이기 때문에 편협된 記述이 적지 않다. 이에 대한 분석을 위해서는 조사대상 발굴보고서인 ① 東亞考古學會, 東京城-渤海國上京龍泉府址の發掘調査-, 東方考古學叢刊 甲種 第5冊, 1939. ②-1 조중공동고고학발굴대, 중국동북지방의 유적발굴보고(1963∼1965), 사회과학원출판사, 1966. ②-2 中國社會科學院考古硏究所 編著, 六頂山與渤海鎭唐代渤海國的貴族墓地與都城遺址-, 中國田野考古學報告集 考古學專刊 丁種 第五十六號, 中國大百科全書出版社, 1997. ③ 黑龍江省文物考古硏究所 編著, 渤海上京城-1998∼2007年度考古發掘報告書-, 文物出版社, 2009. 네 책을 면밀히 분석하였다. 유적의 원형이 어떠했을까를 판정하는 작업은 매우 어렵고 난감한 일이다. 시기가 앞설수록 원형에 가까운 반면, 늦을수록 기술적 발전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둘째, 상경성 발굴보고서를 근거로 일본, 북한, 중국, 한국은 많은 연구성과를 내놓았다. 일본이 제일 앞서며, 그 뒤를 북한과 중국이 따랐다. 한국은 1990년대 유적 접근이 가능한 이후부터 결과를 내놓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시기별과 주제별로 나누어 각 국가별 연구성과를 정리해 보았다. 시기별이란 일본이 조사를 시작한 1930년대부터 중국이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최근까지를 의미한다. 주제별이란 上京城 관련 人文·自然環境 중 建築, 考古, 歷史地理的 立場이 고려된 都城制度 및 都市計劃, 城郭建築, 宮闕建築, 寺刹建築의 특징이다.
셋째, 중국은 상경성 유적 조사 및 정비 사업에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2000년대 이후 중국의 괄목할만한 경제발전이 근간이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급속한 도심화의 진행으로 많은 유적이 명확한 보호대책 없이 훼손되어가고 있다. 상경성도 예외는 아니다. 근래에 상경성은 많은 변화가 있어왔다. 필자는 1990년대 초부터 상경성을 답사하여 적지 않은 당시의 유적 사진을 확보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유적이 어떻게 변모되어 왔는지 지금의 유적현황을 기준으로 변화양상을 소개하고자 했다. 또한 이를 통해 상경성의 올바른 보존을 위해서는 어떠한 점이 고려되어야 하는지 원칙을 제안하여 발해문화 연구의 씨앗을 뿌리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