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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한성백제(漢城百濟)의 시간적(時間的) 상한(上限)과 하한(下限)
The Chronological Study on Hanseong Period of Baekje
이논문은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한성백제의 영역 변천 연구 -동계와 북계를 중심으로- | 심재연(한림대학교) )의 '원자료'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 한국연구재단 기초학문자료센터 DB구축사업 참여 관련분야 전문가가 추가 입력한 정보입니다.
학술지명 百濟硏究(THE PAEKCHE YONKU) (ISSN : 1226-6906)
발행정보 2011-01-01 / Vol.53 No.0 / pp. 131 ~ 157
발행처/학회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PAEKCHE RESEARCH INSTITUTE CHUNGNAM NATIONAL UNIVERSITY)
색인어 철기문화, 연문화, 고조선, 위만조선, 낙랑군, 절대연대, 점토대토기, 단결문화, 크로우노프카문화, 경질무문토기, 말갈, 한성백제, 적석총, 부뚜막, 원말갈토기, 매장공간, 마을, 지역적 차이, 유물복합체
연계링크 출처: 한국교육학술정보원
  • 주초록(메인언어)
  • 한성백제의 시간적 상한과 하한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그 이유는 근본적으로 자료를 접하는 연구자의 시각차이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백제 토기의 출현, 한성 1기와 2기의 구분, 475년 한성 함락이란 역사적 사건이 지닌 고고학적 의미에 대해 검토해 보았다. 출현기 백제 토기는 전 기종이 완성된 형태로 나타난 것이 아니어서 고배, 삼족기, 꼭지달린 뚜껑은 존재하지 않았다. 직구호와 대형 호, 꼭지없는 뚜껑이 출현하고 원삼국기 이래의 유문타날 장란형토기와 심발형토기가 성행하는 점진적인 모습이 출현기의 실상이었을 것이다. 그 시점은 3세기 후반 경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풍납토성 출토 시유도기와 전문도기의 연대관에 기초하고 있지만 4세기 초로 내려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성 1기와 2기를 구분짓는 근거는 토기의 경도나 표면 처리방식이 될 수 없어서 한성 2기에도 다량의 연질, 와질의 토기류가 사용된 것이 백제 토기의 특징이다. 1기와 2기의 획기는 4세기 중엽이란 기존 통설이 여전히 유효한데 늦어도 360년대에는 유개고배류와 꼭지달린 뚜껑 등이 존재하였다. 그 출현시점은 분명치 않은데 한성 1기의 늦은 단계일 가능성이 높으며 유개고배는 4세기 이후에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 몽촌토성 출토 스에키, 풍납토성 출토 가야 토기와 고구려 토기를 한성 함락인 475년 이후에 배치하는 것은 불가하며, 지방의 수장묘 출토 중국 도자기류는 약간의 전세 기간을 인정하더라도 연대 결정 기준으로서의 자료적 가치는 충분히 지닌 것으로 판단된다.


    (http://www.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1a0202e37d52c72d&control_no=e9bd950bf32fc062ffe0bdc3ef48d419#redirect)
  • 메타작성자초록
  • 본 자료는 최종결과물(결과보고서)의 원자료이다.

    본 연구는 한성백제의 영역 변천에 관한 연구로, 경기북부지역과 영서지역의 고고문화를 분석하기 위하여 상이성과 상사성 및 영역화와 변화 과정을 고찰하였다. 이 때 본 자료의 시기별 고고문물 연구가 주요하게 활용되었다.
  • 부초록(다른언어)
  • There has been a lot of controversy regarding the upper and lower limit in time period of Hansung Baekje. The main reason resulted from the different perspectives of researchers who were engaged in the related material. Potteries from Baekje did not appear in many varieties at first, but appeared gradually. The time period of it was estimated to be late 3rd century because of the era of Chinese potteries excavated in Pungnap Walled site. Yet, there is possibility that it might be early 4th century. The transition period from 1st to 2nd Hansung period has been believed to be during the middle of the 4th century. In the 360s, pedestal bowls and lids with a knob were found. It is not still clear when they started to use it, but it seems they might have appeared during the late 1st Hansung period, while pedestal bowls appeared after the 4th century. Sueki, excavated from Mongchon Walled site, and Gaya and Goguryeo potteries excavated from Pungnap Walled site traces back to 475, in which Hansung collapsed. Chinese potteries found in the great tomb, which were spread in the region, were thought to be significantly important material in a sense that they can tell the time period.


    (http://www.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1a0202e37d52c72d&control_no=e9bd950bf32fc062ffe0bdc3ef48d419#redir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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