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말에 밀려온 세계화와 정보화의 파도는 한 국가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지구촌 각 지역에 대한 정보의 질적 향상이 필수적임을 피부로 느끼게 하고 있다. 우리는 인터넷을 비롯한 각종 보도매체를 통해 엄청난 양의 지역정보를 거의 실시간으로 제공받고 있지만, 나 ...
20세기말에 밀려온 세계화와 정보화의 파도는 한 국가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지구촌 각 지역에 대한 정보의 질적 향상이 필수적임을 피부로 느끼게 하고 있다. 우리는 인터넷을 비롯한 각종 보도매체를 통해 엄청난 양의 지역정보를 거의 실시간으로 제공받고 있지만, 나날의 뉴스거리와 공식적인 통계지표와 같은 피상적인 정보만으로 세계적 규모의 무제한 경쟁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 이제 심층적인 수준의 지역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체계적인 방식으로 처리하지 못하는 국가는 세계화의 물결에 표류하고 말 것이다.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지구촌의 정치․경제․사회적 현상들 뒤에 있는 심층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주민의 의식구조와 행동방식을 통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주민의 성장과정에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친 문화에 대한 이해는 해당 지역에 대한 이해의 질을 높이는 관건이 되며, 이를 통해 우리는 피상적인 지역정보의 홍수 속에서 벗어나 문제해결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보를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유럽연합(EU)의 결성으로 세계최대규모의 단일시장이자 정치적 통일체를 구축한 유럽지역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그 지역과의 정치적․경제적 교류와 함께 선진화를 지향하는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해서 필수적인 작업이다. 1994년 1월 공식적으로 출범한 유럽연합은 처음 12개국에서 곧 15개국으로 회원국이 확대되었고, 2002년 1월부터는 회원국 모두 자국의 화폐를 폐기하고 유로화가 전면 통용되고 있으며, 2004년 동구권 국가들까지 가입함으로써 회원국이 25개국에 달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부분에서 실질적인 통합작업을 구체화하고 있는 유럽연합은 정치․경제 블럭이자 동시에 문화공동체의 성격을 뚜렷이 지향하고 있으며, 공동의 유럽사를 새로이 집필하는 등 문화적 통합에도 회원국들이 함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경제적 규모나 문화적 위상을 놓고 볼 때도 미국을 중심으로 한 환태평양지역에 못지않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유럽연합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나라는 독일과 프랑스이며, 두 나라에 대한 이해는 유럽지역 이해의 핵심적 부분이다. 그리고 유럽의 현재를 대상으로 삼는 지역연구는 현실의 다양한 모습들 배후에 자리잡고 있는 문화사적 흐름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삼을 때, 비로소 포괄적인 인식을 가져다 줄 수 있다. 지역주민들이 다함께 빠져들었던 공동의 역사적 경험은 이 지역문화의 뿌리가 되며, 통합된 유럽의 현재를 이해하려는 지역연구는 그 뿌리에 대한 이해를 비켜갈 수 없다. 현재 유럽의 기성세대가 성장과정에서 겪었던 커다란 역사적 변화의 물결인 68운동과 그것이 미친 문화적 파장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일은 오늘의 유럽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과정이다. 아울러 유럽에 대한 기존의 지역연구가 지나치게 실용적인 목적에 경도되어 정치․경제적 표면현상의 분석에 치중함으로써 피상적인 수준을 넘지 못하였다면, 우리의 연구는 68세대의 의식구조와 사유방식의 특성을 밝히고 일상생활문화에서 예술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인 문화현상들을 실증적이고 체계적으로 탐구함으로써 보다 발전된 유럽지역연구의 본보기를 제공하고자 노력하였다
68년 프랑스의 학생시위로부터 촉발되어 짧은 시기에 사회전반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 이 운동은 프랑스에서 같은 해 5월 30일 국회가 해산되고 독일에서는 역시 같은 날 긴급조치법이 발효되면서 진정국면에 접어들었다. 이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스스로를 당장 정치세력화하는 데에는 실패하였지만 향후 양국의 정치, 사회, 문화, 예술의 각 방면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고, 당시에 제기되었던 대안적 제안들은 점진적으로 제도화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회 시스템 변화의 초석으로 작용했다. 당시의 주역이었던 68세대에 속하는 인사들이 현재 두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예술의 여러 분야에서 지도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 68운동은 유럽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적인 코드로 볼 수 있다.
68운동은 정치적으로는 단명한 사건이었으나, 이 운동의 세례를 받았던 사람들의 의식과 사고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침으로써 유럽문화 전반의 지형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은 거대한 문화혁명이었다. 1968년에 유럽을 휩쓸었던 시위는 45년 종전 이후 유럽 사회에 잠재되어 왔던 변혁의 욕구가 폭발한 사건이었고, 이 운동이 시도했던 변혁의 대상은 정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과 사고방식 및 예술을 포함한 사회의 여러 하위 시스템 전반에 걸쳐있다. 68운동을 통해 다양하게 표출된 외침은 억압적인 기성질서에 저항한 분노의 절규이면서 새로운 삶을 향한 희망의 표현이었으며, 그 메시지는 반제국주의․ 반권위주의․ 반자본주의로 집약된다. 유럽인 한 세대 전체가 직․간접적으로 가담함으로써 공통의 경험이 된 이 운동은 그들의 내적 의식과 문화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연구는 총체적인 문화읽기의 차원에서 68운동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하나의 통합적인 패러다임을 밝히려는 시도이다. 우리의 작업은 68년 당시의 시위양상을 정확히 분석하고 그것의 역사적 맥락과 정치, 사회, 경제적 영역에서 이루어진 변화의 의미와 성과를 실증적으로 분석하는 작업과 함께 이 운동이 유럽인의 사유방식과 일상생활 및 문화예술의 광범위한 영역에 미친 영향을 파악하는 작업으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68운동이 불러일으킨 개별 현상을 치밀하게 분석하면서도 거기에 그치지 않고 역사적 사실과 그것이 지닌 심층적․문화적 함의를 드러내고자 노력하였다. 68년 전후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변화양상들, 예컨대 정치영역에서 녹색당과 적군파, 사회영역에서의 시민주도 대안운동, 새로운 주거형태로서의 코뮌과 성개방 현상, 사유방식으로서의 비판이론과 탈중심적 해체주의, 그리고 모든 예술장르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예술적인 도발들을 고립된 현상으로 파악하지 않고 그것들 사이에 내재하고 있는 연관을 드러냄으로써 오늘날 유럽의 문화적 뿌리를 밝히고자 하였으며, 이를 위해서 기호학적 방법을 원용한 포괄적인 문화읽기를 시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