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세계 정치의 화두는 냉전 이후 시기의 여러 지역에서 일어나는 미국과의 갈등이다. 이는 9.11 테러로 극대화되었고 이후 아프가니스탄으로 그 이목이 집중되었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과의 관계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
현재 세계 정치의 화두는 냉전 이후 시기의 여러 지역에서 일어나는 미국과의 갈등이다. 이는 9.11 테러로 극대화되었고 이후 아프가니스탄으로 그 이목이 집중되었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과의 관계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아프가니스탄과의 갈등은 탈레반 정부로 집중되는데 이 안에서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의 국민국가의 성격 분석이 가장 우선적으로 분석되어야 할 사항으로 보고 있다. 그것은 탈레반 정부가 1990년대의 산물이 아닌 19세기 영제국주의의 식민정책부터 소련 침공과 미국의 내전 지원에 이르기까지의 끊임없는 외세의 자극에 대한 반응의 일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의 문제는 유럽에서 형성된 국민국가 체계가 비유럽 특히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다민족-다문화 지역에도 합당하는지에 대한 의문에서부터 비롯된다. 여기에 아시아에서의 국민국가의 역사는 제국주의의 역사와 관련을 가질 수밖에 없는 역사적 사실이 추가로 고려되어야 한다.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영국 식민주의, 소련 공산주의, 미국 패권주의의 개입을 받으면서 역사의 주체로서의 위치 설정에 실패하였다. 이 연구는 국제 정치의 의도에 의해 완충국으로 출발하였다가 국가가 지역 갈등을 조장하는 근원으로 변화하고 나아가 결국 지역 갈등을 해소하지 못한 채 실패한 국가로 해체되어 가고 있는 과정을 연구하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강대국의 전략적 개입이 한 국가의 성격 변화에 어떻게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지를 역사적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보면 국제 정치의 전략적 갈등과 협력의 패턴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과정을 통해 화폐와 무기의 형태로 치환되어 특정 국가에 유입되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끝없는 전쟁(외부와의 전쟁 및 내부의 전쟁), 난민 발생, 마약 무역, 갈등의 중앙아시아로의 확산, 테러 수출로 이어지는 데 대한 의미를 찾는 작업이다.
이 연구가 탈레반을 중심으로 하는 것은 그것이 갖는 이슬람 근본주의와의 관계로 인해서이다. 이슬람 근본주의는 현재 중동에서부터 중앙아시아를 거쳐 남아시아에까지 파급되고 그 형태와 의미가 변형 왜곡되면서 그 영향력이 배가되고 있다. 이 연구가 지역 정치에 관한 것이면서 중앙아시아와 인도/남아시아의 역사와의 관련 속에서 이루어져야 함은 이로 인해서이다.
기대효과
이 연구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효과 가운데 가장 우선적인 것은 현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정보이다. 아프가니스탄은 그 특유의 지리적 완충성으로 인해 지역 정치 / 역사 학계에서 소외당해 왔고 그로 인해 이에 대한 학문적 정보가 매우 얕게 쌓여 있는 실정이다. 특히 ...
이 연구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효과 가운데 가장 우선적인 것은 현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정보이다. 아프가니스탄은 그 특유의 지리적 완충성으로 인해 지역 정치 / 역사 학계에서 소외당해 왔고 그로 인해 이에 대한 학문적 정보가 매우 얕게 쌓여 있는 실정이다. 특히 아프가니스탄과 같이 국가라는 개념이 최근에야 발달된 곳에서 국가가 국민들 속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한 분석이 이해의 중요한 단초를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두번째의 기대 효과는 이슬람 근본주의와의 관계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냉전 이후 시기의 미국과 이슬람 근본주의 정치 세력과의 갈등 양상에 대한 이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라크 문제 속에서 이슬람 근본주의가 어떻게 반미주의로 연결되는 가를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전통적으로 (그리고 지금도) 그 국가가 사회와는 무관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이 지역 사람들이 지역 사회에 우선적으로 충성심을 바치는 곳에서 모든 사람들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이슬람뿐이라는 사실이 아프간 이슬람 근본주의의 이해의 열쇠이다. 그렇다면 아프가 이슬람 근본주의는 이라크와 같은 중동의 그것과는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같은지 나아가 인도와 파키스탄 등 남아시아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반미 감정과 어떠한 관계를 갖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해 할 수 있다.
세 번째의 기대 효과는 포스트 식민주의에 대한 이해이다. 19세기 이후 식민주의가 만들어 놓은 여러 체계들이 그것이 종식된 이후 아시아 지역에서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떠한 항구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포스트 식민의 독립 아프가니스탄은 중앙 집중의 국민 국가 체제를 충실히 유지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볼 때 식민주의의 완벽한 유산이었다. 따라서 중앙 집중의 국민 국가의 단일 정체성이 창출된 이후 식민주의로부터 이어지는 중앙의 권력은 모든 자원을 독점하고 그에 반하는 모든 종류의 ‘주변’은 사회 경제적 불평등 속에서 ‘중심’으로부터의 분리를 끊임없이 요구하였여 왔다. 여기에 소련과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끊임없는 제국주의적 간섭은 결국 아프가니스탄의 국민국가로서의 실패를 가져 오게 한다. 이것이 절정에 다다른 곳이 탈레반 정부이다.
연구요약
1. 서론 국제 정치의 의도에 의해 완충국으로 출발하였다가 국가가 지역 갈등을 조장하는 근원으로 변화하고 나아가 결국 지역 갈등을 해소하지 못한 채 실패한 국가로 해체되어 가고 있는 과정을 연구하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강대국의 전략적 개입이 한 국가의 성격 ...
1. 서론 국제 정치의 의도에 의해 완충국으로 출발하였다가 국가가 지역 갈등을 조장하는 근원으로 변화하고 나아가 결국 지역 갈등을 해소하지 못한 채 실패한 국가로 해체되어 가고 있는 과정을 연구하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강대국의 전략적 개입이 한 국가의 성격 변화에 어떻게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지를 역사적으로 연구한다.
2. 탈레반 이전의 국제 관계와 아프가니스탄 국가 2.1. 국제 갈등의 각축장으로서의 완충국 설정 영국과 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을 완충국으로 ‘독립’시키는 것을 용인한다. 그것은 완충국이야말로 양 제국을 떨어뜨려 놓기에 충분하고 동시에 각 부족들의 세력을 약화하는데 적합하다고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완충국으로서의 아프가니스탄은 필연적으로 외세의 화폐와 무기에 종속되어 있는 본질적인 ‘독립국’으로서의 모순을 배태하게 된다. 영국과 러시아 제국의 뒤를 잇는 세력인 미국과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의 완충국으로서의 역할에 만족하면서 상호 협력을 모색하는 관계를 유지한다. 특히 냉전기에 완충국으로서의 아프가니스탄은 중앙아시아의 국제 정치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하나의 정치 체제가 형성되었지만 그 하나의 정치 체제는 오히려 국가와 사회와의 관계를 더욱 불안하게 한다.
2.2. 소련과 미국의 개입과 그 유산 이러한 불안한 균형이 깨진 것은 아프가니스탄의 1978년 공산주의 쿠데타와 1979년 소련의 군사 침략이다. 근대 국가가 형성된 이후 처음 당해 본 외침으로 인해 아프간 사회가 파탄 지경으로 몰림. 소련과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의 개발에 소용되는 비용의 50배에 달하는 양을 파괴 목적으로 퍼부음. 양 제국주의 가운데 하나는 몰락하고 하나는 철수한 후 결과는 복구 불능, 통치 불능, 기능 불능 뿐. 국가는 좌절당하고 국경 주변의 각 부족 세력들이 충돌하여 불안을 가중시킬 뿐.
2.3. 제네바 협약과 새로운 질서의 추구 유엔 사무총장의 중재에 따라 소련의 철군과 미국-파키스탄의 무자히딘에 대한 원조 중지를 제네바 협정으로 체결함으로써 아프가니스탄에서 갈등 대신 협상이 문제 해결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파키스탄 또한 아프가니스탄의 내정에 불간섭한다는 원칙을 천명한다. 하지만 정작 협약은 아프가니스탄이 어떻게 국민국가를 유지하고 운영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계획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이 여전한 내전과 국민국가 정치성의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이 조약의 미완성으로 인해서인 것이다.
3. 탈레반의 정부 정책과 국가 3.1. 이슬람 근본주의와 사회 정책 이슬람 근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개인과 집단, 교육 (특히 여성에 관한), 문명과 문화, 전통과 변화에 관한 기본 개념은 서구에서 발달한 것과는 전혀 다르다. 따라서 이슬람 근본주의를 정책으로 삼고 있는 탈레반 정부는 기본적으로 반서구적이고 폐쇄적일 수밖에 없다. 탈레반은 무자히딘의 하라캇(Harakat) 당과 보수적인 울레마와 물라들이 채택한 사회관으로부터 직접적 영햐을 받았다. 그들이 여성들이 일하는 것을 금지하는 등 1960년대의 사회로 회귀하고자 하는 것은 다우드의 개혁과 아프간인민민주당(PDPA)의 쿠데타와 14년간 소련이 배후 조정 한 정부 속에서 부패가 성장하였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탈레반 정부의 모든 정책은 이로부터 비롯된다.
3.2. 경제 정책과 생존의 문제 탈레반은 기본적으로 국가주의와 자급주의를 경제 정책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외국과의 교역, 금융 자본의 활성화, 도시 산업의 활성화 등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억제하고 있다. 미국 중심의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탈레반의 경제 정책은 결국 경제의 피폐화와 인민의 생존권 박탈이라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3.3. 국제 관계와 그 한계 탈레반은 태생적으로 파키스탄과 그를 통해 지신들을 지원해 준 미국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쇄국주의 정책과 이슬람 근본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반미주의는 급기야 테러와 연계되게 하였고 이로 인해 국제 사회의 고립을 자처하게 된다. 사실 탈레반의 정책과 행위들이 국제 사회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고 그로 인해 국제 사회가 탈레반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형평성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그것은 탈레반 이외의 탈레반 정부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국제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문제는 탈레반 정부의 반미-테러주의와 관련하여 생각할 수밖에 없다.
4. 결론 탈레반 정부는 아프가니스탄의 국가로서의 존립을 흔들었다. 이는 크게 다음의 세 가지의 역사적 결과와 연계된다. 그 가운데 첫째는 헤게모니 통치의 실패이고, 둘째는 지역 갈등 구조의 고착이며 셋째는 국민국가의 실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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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리반(Taliban)은 현대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매우 독특한 성격의 권력이다. 초기에는 신학생 출신 게릴라 집단 정도의 미미한 권력이었던 것이 2년 만에 24년간의 내전을 종식시키고 최고 권력으로 등극한 것이나, 집권 후 권력을 행사하면서 정치, 사회, 경제 ...
탈리반(Taliban)은 현대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매우 독특한 성격의 권력이다. 초기에는 신학생 출신 게릴라 집단 정도의 미미한 권력이었던 것이 2년 만에 24년간의 내전을 종식시키고 최고 권력으로 등극한 것이나, 집권 후 권력을 행사하면서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여러 가지 부면에서 중세 사회에서나 있음직한 극단적 정책을 사용하여 전 세계의 지탄을 받은 것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게다가 미국의 위협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에 대한 ‘양도’를 거부함으로써 결국 초토화되어 권좌에서 쫓겨나간 것이나, 쫓겨난 이후에도 여전히 칸다하르(Qandahar)를 중심으로 하는 남부에서도 상당한 세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탈리반은 이슬람의 두 강대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이 지구상의 유일한 초강대국 미국과 동맹하여 1994년 기획 제작한 작품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성공리에 권력 최상층에 등극하게 된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공산주의 지배 체제가 붕괴한 후 무자히딘 지도부가 보여준 부정, 부패, 무능력 등으로 인해 아프간 인민들이 그들에 대해 총체적으로 불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사회적으로는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된 내전으로 인해 전통적 부족 지도부조차 사실상 소멸되어 실제적으로 사회 권력이 궤멸되어 있었다는 사실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결국 탈리반 출현이라는 역사적 현상은 외부 세력들에 의한 강요 속에서 한 국민국가가 처한 위기에 대한 극단적 해결책이었다. 그러한 극단적 상황의 산물인 탈리반 정부가 자신들의 통치 정책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이라는 하나의 국가에 대한 성격을 어떻게 만들고 그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하고 유지하였는가 하는 문제가 이 글의 주제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슬람 급진주의라는 추상성이 1990년대 후반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시공의 환경에서 정부라는 구체성을 통해 어떻게 실체화되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된다. 그러면서 이 문제는 탈리반 정부 치하 아프가니스탄이 국가로서 어떠한 성격으로 규정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아프가니스탄의 ‘실패한’ 국가로서의 성격 해석이 이 글이 제시하고자 하는 핵심 문제인 것이다.
영문
Afghanistan stands on the brink of a humanitarian disaster of unimaginable dimensions. The Taliban emerged in large measure because after the collapse of the Soviet Union at the end of 1991, the United States lost their interest in the politics of Wes ...
Afghanistan stands on the brink of a humanitarian disaster of unimaginable dimensions. The Taliban emerged in large measure because after the collapse of the Soviet Union at the end of 1991, the United States lost their interest in the politics of West Asia and left Afghanistan exposed to the predation of its self-interested neighbours. In fact, the Taliban were pre-eminently a military organization rather than a political movement. The United States and Pakistan supported the Taliban because they have been broader in its scope and ultimately far more ambitious in its goal than that of other regional powers for their Afghan candidates. Long-term dependence of Afghan Islamism on other Islamic revival movements and the consequent hostility to Liberal Islam and Western culture made the Taliban inject them and accentuate their society in Afghan nation. The rise of the Taliban focussed on Sharia law rather than the idea of an Islamic state. For the purpose, the Taliban never hesitated to establish central power to make a clean sweep of the corrupt elements. They directed their position to intermingle Islamism and Pashtunism for the latter only grant them authoritarian power in Afghanistan. We may understand their stand on Pashutunism and policy of excessively restrict education for girls and their human rights in this context. The ethnic and tribal bias has affected the Taliban's ability to gain legitimacy in the eyes of many Afghans, despite their sway over almost areas of Afghanistan. The Talban's failure to put together a coherent government concerned with nation building, public welfare, economic development and so on has been connected to prevalence of a daily-war culture. The overriding fear is that, as they lack a government, a party or a coherent strategy, the only way the Taliban can keep their movement together is to continue the war. A way must be found to demilitarize Afghan society, not merely in its institutions but in its mind-sets, by creating space for the growth of civilian authority and mechanism for civil representation. In this circumstances, the most important thing for the reconstruction of Afghanistan is a continuous and prolonged process of negotiations between diverse internal interest groups and external powers such as United States, Russia, Pakistan, Iran and so on. What the Talibans fail to recognize is that the peace would again has turned into violence in the history of modern Afghanistan if those in power eliminate the opposition. For the Taliban government the nation-state was just an institution pf power that commands its people or subjects. Politics was never seen as the preoccupation of the masses.
연구결과보고서
초록
19세기 초 처음 국가의 형태를 갖출 때 아프가니스탄은 중앙 정부와 반(半)자치의 부족 집단 사이의 연방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연방 구조는 1978년의 공산 쿠데타와 소련의 군사 침공 그리고 무자히딘의 항전과 부족 간의 내전이 전개되면서 심하게 훼손되 ...
19세기 초 처음 국가의 형태를 갖출 때 아프가니스탄은 중앙 정부와 반(半)자치의 부족 집단 사이의 연방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연방 구조는 1978년의 공산 쿠데타와 소련의 군사 침공 그리고 무자히딘의 항전과 부족 간의 내전이 전개되면서 심하게 훼손되었다. 소련 및 러시아 그리고 영국 및 미국이라는 제국주의에서부터 파키스탄, 이란 등 주변국까지에 이른 외세의 간섭 특히 무자히딘과 탈리반을 지원하여 자신들의 승리를 일군 미국이 보여준 비도덕적인 태도는 아프가니스탄이라는 하나의 국민국가를 실패 속으로 전락시키는 결정적 원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 상황에 등장한 탈리반은 국민국가의 통합보다는 아프가니스탄 최대 권력 집단인 파슈툰족이 권력을 행사하여야 한다는 탈리반 집단 내부에서의 실제적 동의에 의존함으로써 국가 정체성 존립에 심대한 타격을 가했다. 탈리반의 폐쇄적 이슬람주의는 서구문화를 부정하고 그것을 폭력적인 수단에 호소하여 거부하는 것이다. 이는 이슬람 사회의 각지에 출현하고 있는 많은 급진주의 활동의 하나이지만 그렇다고 범이슬람 세계의 보편적 현상은 아니다. 그것은 아프가니스탄의 제국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 정치 역학의 특수한 상황이 만들어 낸 시대의 산물이다. 그것은 20여 년간 진행된 전쟁의 일상화 속에서 사회의 질서를 전통 가치를 통해 지키고자 한 파슈툰 부족주의와 결합한 것이다. 사실 그러한 급진적 이슬람주의는 아프가니스탄의 탈리반에게서만 발견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탈리반이 인류의 이단아로서 취급된 것은 그들이 이슬람의 여러 급진주의와는 달리 담론 차원의 존재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특정 지역을 통치하는 정치 권력으로서 자신들의 신념 (특히 반미 반서구주의)을 인민들에게 부과하는 정치적 실체의 입장에 있었기 때문이다. 탈리반 정부는 1970년대 다우드 정권이 시도한 공화제 개혁과 1978년 공산주의 정권의 쿠데타 및 14년간의 소련의 배후 통치 등을 통해 드러난 부정부패의 만연을 일소하기 위해 과거 회귀의 방편을 택하였다. 탈리반 세력이 반(反)부정부패를 통한 사회 정화에 주요 초점을 맞추었을 뿐, 국민국가로서의 정체성 확보나 정부 기구 수립은 물론이고 공공 복지, 경제 개발, 사회 통합 등 정부로서 해결해야 할 최소한의 과제들에 대해서도 집중을 하지 않은 것은 모두 이러한 외세 개입의 유산을 극복할 만한 역량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철저하게 파슈툰족을 위한 파슈툰족의 권력을 행사하였고, 그러한 사실은 그들이 이슬람을 통합 이데올로기로 삼는 전국 통합 권력임에도 불구하고 국가를 대표하는 권력으로 내외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한 것이다.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1.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이해 2.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이해 3. 반미주의의 전개에 대한 이해
1.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이해 2.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이해 3. 반미주의의 전개에 대한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