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주제: 다산학단과 19세기 초 서울, 近畿 문인과의 교유 양상 연구
정약용과 홍석주, 김매순, 이재의 등 노론계 학자들과의 학술 교유에 대해서는 기존 연구들에 충실히 소개되어 있다. 이들은 광나루와 양수리 등 인근 지역을 거주지로 하여 漢江 水路를 통해 빈번히 ...
제 1 주제: 다산학단과 19세기 초 서울, 近畿 문인과의 교유 양상 연구
정약용과 홍석주, 김매순, 이재의 등 노론계 학자들과의 학술 교유에 대해서는 기존 연구들에 충실히 소개되어 있다. 이들은 광나루와 양수리 등 인근 지역을 거주지로 하여 漢江 水路를 통해 빈번히 왕래하면서 학문적으로 상호 補益이 되었다. 그러나 다산의 경우 학술로 연구가 편중되어 문학 부분, 특히 解配 이후의 문학 교유 양상에 대해서는 연구가 소홀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다산의 歸鄕을 계기로 정학연, 학유 형제를 비롯한 다산학단 구성원들과 서울, 근畿 지역의 학인, 문사들과의 교유는 매우 활발해졌다. 그 교유의 실상 및 문학에 대한 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 부분에서는 다산학단 구성원 가운데 시문학으로 가장 두드러졌던 정학연의 교유와, 해남, 강진의 초의, 황상, 이청, 이강회 등이 서울의 학인, 문사들과 맺은 교유 양상을 살핌으로써 유배지에서 꽃피웠던 다산학이 어떻게 서울, 근기로 연결 또는 확장되는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제 2 주제: 다산시학의 계승과 변화양상 연구
다산학단이 활동한 19세기 전반기는 조선후기 문예사에서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북학파를 뒤이어 秋史 金正喜 등이 청대 학술을 수용하면서 문예사조의 새로운 변화를 이끈 것이다. 다산과 추사는 서신을 왕래하면서 상호간의 학문에 대하여 토론한 바 있었고, 이로부터 다산학단의 초의선사, 정학연, 학유 형제, 황상, 윤정기 또한 추사형제 및 그 문하의 인물들과 밀접하게 교유하였다. 그런데 다산과 추사는 그들이 논쟁한 경학뿐만 아니라 문예론에서도 상반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詩言志, 文以載道에 근거하여 匡濟一世를 추구한 정약용의 시론과 文字香, 書卷氣로 대표되는 추사의 시론은 매우 현격한 것이었다. 다산학단이 다산으로부터 출발하여 추사계와 접맥된다는 점은 19세기 시문학사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산학단 구성원중 시문학분야에서 주목할 인물은 황상, 정학연, 윤정기 등이다. 이들의 시론 분석을 통해서 19세기 시문학사의 독특한 흐름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제 3 주제 다산학단의 경세학과 현실관 연구
다산학단은 정약용의 경세학을 계승하면서 이를 한층 더욱 발전시켰다. 기존연구에서 다산학은 근기 남인 경세학의 총집대성으로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다산학을 계승 발전시킨 다산학단 인물들의 경세학과 현실관은 근기 남인 학문의 전통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정리되어 나갔는지를 살펴본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다산학단의 경세학 연구를 통해 19세기 경세학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경세학을 실용기술학과 인문지리학 분야로 나누어 서술하고자 한다. 실용기술학 부분에서는 이강회와 정학연을 중심으로 그들의 이용후생학을 조명하고자 하며, 다산학단의 인문지리학 연구에서는 윤정기, 이청, 이강회의 저작들을 중심으로 다산학과의 상호연계성과 변화발전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다산학단의 경세학과 그것의 기반인 현실관이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제 5 주제: 다산학단의 천문학 연구
다산학단은 천문학에도 매우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최근에 발굴된 李청(田+靑)(1792-1861)의 <정관편>은 다산학단의 천문학 연구수준이 어느 정도까지 도달했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역작이었다. <정관편>은 이청의 말년인 1860년경에 집필된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천문역산 분야에서 활발한 집필 활동을 펼쳤던 崔漢綺(1803-1877), 南秉哲(1817-1863), 南秉吉(1820-1869)의 천문역산 분야의 저서들과 비교되는 매우 흥미로운 저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청의 <정관편>은 노론에 비해서 천문역산 분야의 문헌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남인, 특히 다산학단의 천문역산에 대한 논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헌이었다. 19세기 편찬된 조선의 천문역산 문헌들 중에서 가장 체계적이고 분량도 많은 <정관편>에 대한 연구는 다산학 속에서 천문학 인식과 전개과정, 나아가 19세기 조선 천문학의 발전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제 6 주제: 19세기 지성사 속에서 다산학단의 위상
19세기 들어 노론 세도정권이 등장하고, 서울과 지방의 정치, 경제, 학문의 균형성이 무너지면서 조선 사회는 급격히 경직되는 모습을 보였다. 세도정권에 대항해서 같은 노론 안에서조차 비판세력이 등장하였고, 다른 당파에서도 이에 대한 견제의 목소리가 강하게 표출되고 있었다. 이중에서 조선 사회의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단순한 비판에서 벗어나 대안으로 방대한 경세학을 구축했던 정약용은 당대에 이미 그 명성이 지식인 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정약용은 강진지역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18년 간의 세월을 보내는 중 <여유당전서>라는 저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