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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학단(茶山學團)’과 다산학 계승양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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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명 인문사회분야지원심화연구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05-079-AS0130
선정년도 2005 년
연구기간 1 년 (2005년 09월 01일 ~ 2006년 08월 31일)
연구책임자 송재소
연구수행기관 성균관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공동연구원 현황 김용태(성균관대학교)
이철희(대동문화연구원)
문중양(서울대학교)
김영진(계명대학교)
이영호(성균관대학교)
조성산(고려대학교)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 강진에서 저술한 <여유당전서>의 분량과 내용이 한 개인의 능력으로 이루기에는 너무나도 광범위하고 방대한 것이었음을 고려해 볼 때, 우리는 다산이 강진에서 만났던 인물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강진에서 다산을 중심으로 모여 활동한 제자들과 승려들은 하나의 학문그룹으로 활발한 지적 교류와 저작활동을 펼쳤다. 그들은 단순한 조력에 머물지 않고 다산학 형성에 중요한 공헌을 하였으며, 훗날 다산학을 후대에 이어주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는 이들을 ‘茶山學團’이라고 지칭하고자 한다. 다산학 형성에 있어서 다산 제자들의 이러한 역할과 위상에도 불구하고, 다산학단 구성원 개개인의 면모가 거의 학계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매우 뜻밖의 일이다. 기존 연구는 다산 개인과 그 저술에만 치중하여 이 협력자들에 주목하지 못했다. 사실 정약용은 그의 외가였던 해남윤씨 일가와 강진에서 양성한 문생제자들의 학문적, 물질적 도움이 없었다면 그의 개인적인 역량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많은 업적을 남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점에서 다산학단 구성원들의 구체적인 학문 업적과 개인 저작들에 대한 집중적인 심화연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다산학의 본원적 모습과 구체적 형성과정, 후대 계승양상이 종합적으로 밝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첫째 다산학의 향방을 밝히는 일이요, 둘째 다산학으로 완성된 근기남인 학문의 최후 모습과 그 전개를 살펴보는 일이 될 것이다. 본 연구단은 이 두 가지를 염두에 두면서 학제간 연구를 통해 과제를 수행하고자 한다.
  • 기대효과
  • (1) 다산학단의 실체를 규명할 수 있다.
    이 연구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정약용 개인에게 지나치게 치중했던 기존 연구경향에서 벗어나 다산학단이라는 새로운 연구대상을 학계에 제공할 수 있게 된다.

    (2) 다산학단의 종합적 연구를 통해 다산학의 후대계승양상을 조명할 수 있다.
    기존연구에서 다산학이 후대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부분적이고 산발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본 연구과제를 통하여 다산학이 다산학단 구성원의 학문적 성과와 어떠한 상호관련성을 갖는지 고찰할 수 있게 된다. 경학, 경세학, 문학, 천문학 분야에서 다산학이 다산학단과 어떠한 관련성을 가졌는가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3) 다산학단을 통하여 19세기 京鄕과 儒佛 간의 소통관계를 규명할 수 있다.
    19세기는 세도정권의 등장과 함께 서울지역의 정치적, 경제적 독점이 심화되어 가던 시기였다. 이것은 학술문예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방의 학자와 문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중앙으로부터 소외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진의 茶山學團이 서울의 학술문예계와 교류하는 과정은 매우 예외적인 것이었다. 또한 서울의 유학계와 당시 조선 불교의 중심지였던 해남, 강진지역이 정약용의 학문적 성취와 정학연의 서울지역 학계와의 교류를 통해 연결되는 과정은 19세기 儒佛關係를 새롭게 조명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다산학단 연구를 통해서 경향과 유불 간의 다양한 소통과 교유 양상이 밝혀짐으로써 19세기 지성사의 인적 네트워크가 더욱 분명해질 수 있을 것이다.

    (4) 19세기 지성사 연구에 중요한 활로를 마련할 수 있다.
    19세기 전반 조선 지성사의 중심에 丁若鏞과 金正喜를 설정해 볼 수 있다. 이들의 학문적 교류는 그 양적인 면을 떠나 당시 최고 지성의 만남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이들과 이들 제자들이 서로 교유했던 서간문, 시 등을 폭넓게 분석하면서 그들 사이의 학문관계를 구체적으로 규명하고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그간 커다란 공백으로 남아있었던 19세기 전반 지성사를 기술하는 데 중요한 기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다산학단의 조명을 통해 지방학계의 학문적, 문예적 동향을 살펴보는 것은 그간 서울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19세기 전반 지성사 연구를 보완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연구요약
  • 제 1 주제: 다산학단과 19세기 초 서울, 近畿 문인과의 교유 양상 연구

    정약용과 홍석주, 김매순, 이재의 등 노론계 학자들과의 학술 교유에 대해서는 기존 연구들에 충실히 소개되어 있다. 이들은 광나루와 양수리 등 인근 지역을 거주지로 하여 漢江 水路를 통해 빈번히 왕래하면서 학문적으로 상호 補益이 되었다. 그러나 다산의 경우 학술로 연구가 편중되어 문학 부분, 특히 解配 이후의 문학 교유 양상에 대해서는 연구가 소홀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다산의 歸鄕을 계기로 정학연, 학유 형제를 비롯한 다산학단 구성원들과 서울, 근畿 지역의 학인, 문사들과의 교유는 매우 활발해졌다. 그 교유의 실상 및 문학에 대한 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 부분에서는 다산학단 구성원 가운데 시문학으로 가장 두드러졌던 정학연의 교유와, 해남, 강진의 초의, 황상, 이청, 이강회 등이 서울의 학인, 문사들과 맺은 교유 양상을 살핌으로써 유배지에서 꽃피웠던 다산학이 어떻게 서울, 근기로 연결 또는 확장되는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제 2 주제: 다산시학의 계승과 변화양상 연구

    다산학단이 활동한 19세기 전반기는 조선후기 문예사에서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북학파를 뒤이어 秋史 金正喜 등이 청대 학술을 수용하면서 문예사조의 새로운 변화를 이끈 것이다. 다산과 추사는 서신을 왕래하면서 상호간의 학문에 대하여 토론한 바 있었고, 이로부터 다산학단의 초의선사, 정학연, 학유 형제, 황상, 윤정기 또한 추사형제 및 그 문하의 인물들과 밀접하게 교유하였다. 그런데 다산과 추사는 그들이 논쟁한 경학뿐만 아니라 문예론에서도 상반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詩言志, 文以載道에 근거하여 匡濟一世를 추구한 정약용의 시론과 文字香, 書卷氣로 대표되는 추사의 시론은 매우 현격한 것이었다. 다산학단이 다산으로부터 출발하여 추사계와 접맥된다는 점은 19세기 시문학사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산학단 구성원중 시문학분야에서 주목할 인물은 황상, 정학연, 윤정기 등이다. 이들의 시론 분석을 통해서 19세기 시문학사의 독특한 흐름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제 3 주제 다산학단의 경세학과 현실관 연구

    다산학단은 정약용의 경세학을 계승하면서 이를 한층 더욱 발전시켰다. 기존연구에서 다산학은 근기 남인 경세학의 총집대성으로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다산학을 계승 발전시킨 다산학단 인물들의 경세학과 현실관은 근기 남인 학문의 전통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정리되어 나갔는지를 살펴본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다산학단의 경세학 연구를 통해 19세기 경세학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경세학을 실용기술학과 인문지리학 분야로 나누어 서술하고자 한다. 실용기술학 부분에서는 이강회와 정학연을 중심으로 그들의 이용후생학을 조명하고자 하며, 다산학단의 인문지리학 연구에서는 윤정기, 이청, 이강회의 저작들을 중심으로 다산학과의 상호연계성과 변화발전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다산학단의 경세학과 그것의 기반인 현실관이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제 5 주제: 다산학단의 천문학 연구

    다산학단은 천문학에도 매우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최근에 발굴된 李청(田+靑)(1792-1861)의 <정관편>은 다산학단의 천문학 연구수준이 어느 정도까지 도달했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역작이었다. <정관편>은 이청의 말년인 1860년경에 집필된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천문역산 분야에서 활발한 집필 활동을 펼쳤던 崔漢綺(1803-1877), 南秉哲(1817-1863), 南秉吉(1820-1869)의 천문역산 분야의 저서들과 비교되는 매우 흥미로운 저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청의 <정관편>은 노론에 비해서 천문역산 분야의 문헌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남인, 특히 다산학단의 천문역산에 대한 논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헌이었다. 19세기 편찬된 조선의 천문역산 문헌들 중에서 가장 체계적이고 분량도 많은 <정관편>에 대한 연구는 다산학 속에서 천문학 인식과 전개과정, 나아가 19세기 조선 천문학의 발전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제 6 주제: 19세기 지성사 속에서 다산학단의 위상

    19세기 들어 노론 세도정권이 등장하고, 서울과 지방의 정치, 경제, 학문의 균형성이 무너지면서 조선 사회는 급격히 경직되는 모습을 보였다. 세도정권에 대항해서 같은 노론 안에서조차 비판세력이 등장하였고, 다른 당파에서도 이에 대한 견제의 목소리가 강하게 표출되고 있었다. 이중에서 조선 사회의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단순한 비판에서 벗어나 대안으로 방대한 경세학을 구축했던 정약용은 당대에 이미 그 명성이 지식인 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정약용은 강진지역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18년 간의 세월을 보내는 중 <여유당전서>라는 저작을
  • 한글키워드
  • 윤정기,정약전,황상,이청,김정희,경세학,천문학,19세기 지성사,다산 정약용,다산학,다산학단,실학,남인,강진,정학연,이강회,혜장,초의,정학유
  • 영문키워드
  • Hye-jang,Hwang Sang,Satecraft theory,Kim Jung-hee,Yi Chung,Yun Jung-ki,astronomy,Silhak,Dasan school,Dasan study,Dasan Jung Yak-yong,Jung Hak-yeon,Jung Hak-you,Cho-ui,Yi Kang-Hoi,the intellectual history 19th century Korea,Jung Yak-jun,Nam-in(Southerners)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 강진에서 저술한 <여유당전서>의 분량과 내용이 한 개인의 능력으로 이루기에는 너무나도 광범위하고 방대한 것이었음을 고려해 볼 때, 우리는 다산이 강진에서 만났던 인물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진에서 다산을 중심으로 모여 활동한 제자들과 승려들은 하나의 학문그룹으로 활발한 지적 교류와 저작활동을 펼쳤다. 그들은 단순한 조력에 머물지 않고 다산학 형성에 중요한 공헌을 하였으며, 훗날 다산학을 후대에 이어주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는 이들을 ‘茶山學團’이라고 지칭하였다. 다산학 형성에 있어서 다산 제자들의 이러한 역할과 위상에도 불구하고, 다산학단 구성원 개개인의 면모가 거의 학계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매우 뜻밖의 일이다. 기존 연구는 다산 개인과 그 저술에만 치중하여 이 협력자들에 주목하지 못했다. 그들에게서 보이는 다산학 계승양상을 다산학과 조선후기 실학의 지평에서 밝혀보고자 했던 것이 본 연구과제의 목적이었다.
    제1주제에서는 丁學淵의 생애와 시세계, 교유활동을 살펴보아 그가 가졌던 19세기 시단에서의 위상을 찾아보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유배지에서 꽃피웠던 다산학이 어떻게 서울, 근기지역으로 연결 또는 확장되었는지를 고찰했다. 제2주제 다산시학의 계승과 변화 부분에서는 정학연과 윤정기를 통해서 다산시학의 계승과 변주 양상을 살펴보았다. 제3주제 李綱會의 經世論 부분에서는 이강회를 통하여 정약용의 경세학이 어떻게 계승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이강회는 주례 연구에 북학사상을 융합하였고 군주권과 법·기강을 중시하는 경세이념을 주장하였다. 제4주제 舫山 易學의 特徵과 그 易學史的 位相에서는 舫山 尹廷琦의 󰡔易傳翼󰡕을 통해서 다산학단의 역학 연구를 살펴보았다. 윤정기의 역학은 도상역을 배척하고, 象과 爻變을 중심으로 하는 상수역을 근간으로 삼고 있었으며, 주자의 그것에 기반하고 있었다. 제5주제 이청의 󰡔정관편󰡕과 천문학 이해에서는 다산학단은 천문학 이해를 다루었다. 󰡔정관편󰡕에 대한 연구는 다산학 속에서 천문학 인식과 전개과정, 나아가 19세기 조선 천문학의 발전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제6주제다산학단 시문학의 실학적 성격에 대하여 부분에서는 다산학단 구성원들이 가졌던 시문학의 공통된 특성들을 살펴보았다. 제7주제 다산학단연구서설에서는 조선후기 실학사 속에서 다산학단이 차지하는 위상을 서술하였다.
  • 영문
  • Taking into consideration that the volume and contents of <Yeo-yu-dang-jeon-seo> written by Dasan Yang Yong Jeong in Gangjin where he was deported were too gigantic for a single person to handle, we can’t helping taking notice of such figures as Dasan had met in Gangjin at those times. The disciples and Buddhist monks that worked together around Dasan in Gangjin had developed proactive intellectual exchange and writing activities in a form of a united studying group. They not only stayed in touch with assistance in Dasan but also made a crucial contribution to formation of Dasan Study, which would happen to play a role of extending Dasan Study to another generation in the following. In this respect, we called them ‘Dasan School’. Regardless of such roles and prestige of the Dasan disciples in the course of formation of Dasan Study, it is outstandingly out of expectation that every feature of Dasan School members has not been known to the academia. The purpose of this study, therefore, is to disclose such aspects to succeeding to, as seen from them, Dasan Study and realism in the later half of Choson Dynasty.

    In the first topic of the writing, it aims to find a prestige of the world of poetry in the 19th century by reviewing life, writings, and intercourse activities of Hak Yeon Jeong.

    In the second topic of succession to and change in Dasan’s poetic world, such succession to and change in Dasan’s poetic world were taken into consideration through Hak Yeon jeong.

    In the third topic of governing theory of Gang Hoi Yi, Gang Hoi Yi combined Zhou-rye studies with buk-hak ideology and asserted that monarchy, laws and regulations should be reinforced in his governing ideology.

    In the fourth topic of characteristics of bangsan's learning of Change and its historic prestige, a dynamic study of Dasan Academic Group was taken into consideration through bangsan Jeong Gi Yun’s ‘yeok-jeon-ik’.

    In the fifth topic of the study on "jeong-gwan part" can be deemed important in that the astronomy can be recognized, its developmental process can be noticed, and further the entire development in the 19th century can be illuminated by reflecting upon Dasan Study.

    The sixth topic of the study on Practical Learnig's aspects of poetry literature of Dasan school aim to explain characteristics of literature of Dasan school.

    The seventh topic of the aspect of Dasan Academic Group and realism in the later half of Choson Dynasty describes a prestige which is occupied by the Dasan Academic Group in the history of realism in the later half of Choson Dynasty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제1주제 酉山 丁學淵의 생애와 시세계: 본 연구는 다산학단 구성원 가운데 시문학으로 가장 두드러졌던 정학연의 교유와, 해남, 강진의 초의, 황상, 이청, 이강회 등이 서울의 학인, 문사들과 맺은 교유 양상을 살핌으로써 유배지에서 꽃피웠던 다산학이 어떻게 서울, 근기로 연결 또는 확장되는지를 고찰했다.

    제2주제: 다산시학의 계승과 변화: 다산 시학의 계승 양상은 "시는 經으로써 근본을 삼고, 史로써 波瀾을 삼는다.(詩以經爲根柢, 以史爲波瀾)"는 ‘經史’중시의 시론에서 확인된다. 도덕적 수양과 학문의 축적을 강조한 이 주장은 아들 유산 정학연과 외손 방산 윤정기로 계승되며 동일하게 주장되지만, 또한 각기 다른 관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다산은 경세사상에 입각하여 위 주장을 전제했다면, 유산과 방산은 개성적 시세계를 창출하기 위한 기반으로 여겼다. 유산이 ‘王孟韋柳’류를 추종하며, 가을의 연작시를 즐겨지었으며, 방산 또한 ‘紅葉’과 같은 가을의 풍물을 중심으로 시세계를 구축하였다는 점에서 ‘경사’중시의 변화된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제3주제 李綱會의 經世思想: 다산학단은 정약용의 경세학을 계승하면서 이를 한층 더욱 발전시켰다. 기존연구에서 다산학은 근기 남인 경세학의 총집대성으로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다산학을 계승 발전시킨 다산학단 이강회의 경세학과 현실관은 근기 남인의 실학사상이 어떻게 최종적으로 정리되어 나갔는지를 살펴본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이강회는 주례 연구에 북학사상을 융합하면서 다산학을 한 층 더 발전시켰다. 또한 수레와 배에 대한 선진적인 논의를 전개시켰고 군주권과 법·기강을 중시하는 경세이념을 주장하였다.

    제4주제 舫山 易學의 特徵과 그 易學史的 位相: 다산학단의 일원이었던 舫山 尹廷琦는 󰡔易傳翼󰡕이라는 저작을 남겼다. 이를 통해서 다산학단 역학 연구의 일 양상을 알 수 있다. 윤정기의 역 해석은 괘와 괘, 효와 효 사이의 유기적 연관, 象의 중시로 인한 설괘전과 대상전의 중요성 강조, 효변에 의해 생성된 之卦의 괘상을 本卦 해석의 결정적 근거로 규정하는 ‘변화’ 중시의 역 해석 방법 등을 주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근거하여 방산 역학의 특징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象과 爻變의 중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역학사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윤정기의 역학은 도상역을 배척하고, 상과 효변을 중심으로 하는 상수역을 근간으로 삼고 있는데, 다산학파의 상수역은 바로 주자의 그것에 기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좀더 세밀한 고증이 필요하지만 다산과 방산이 상과 효변을 중심으로 하는 자신들의 역학체계의 근원을 주자의 역학에서 구하고 있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제5주제 이청의 󰡔정관편󰡕과 천문학 이해: 다산학단은 천문학에도 매우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이청의 󰡔정관편󰡕은 다산학단의 천문학 연구수준이 어느 정도까지 도달했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역작이었다. 이청의 󰡔정관편󰡕은 노론에 비해서 천문역산 분야의 문헌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남인, 특히 다산학단의 천문역산에 대한 논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헌이었다. 19세기 편찬된 조선의 천문역산 문헌들 중에서 가장 체계적이고 분량도 많은 󰡔정관편󰡕에 대한 연구는 다산학 속에서 천문학 인식과 전개과정, 나아가 19세기 조선 천문학의 발전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정관편󰡕 연구를 통해서 이청의 천문학 연구는 풍부한 자연철학적 사색을 가졌던 최한기와 전문가적인 역산지식을 가졌던 남병철의 중간적 성격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제6주제 茶山學團’ 詩文學의 實學的 성격에 대하여: 다산학단 시문학이 가지고 있는 실학적 성격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다산학단은 강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정약용의 사회시 전통을 계승하고 있었으며 전문적인 저작의 집필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러한 점은 다산학단 시문학의 중요한 특징들이었다.


    제7주제: 다산학단연구서설: 조선 사회의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단순한 비판에서 벗어나 대안으로 방대한 경세학을 구축했던 정약용은 당대에 이미 그 명성이 지식인 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정약용은 강진지역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18년간의 세월을 보내면서 󰡔여유당전서󰡕를 집필하였다. 이 저작은 다산학단이라는 제자그룹의 도움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따라서 다산학 형성에 다산학단의 역할을 큰 것이었으며 조선후기 실학사 속에서 이들의 존재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다산학단의 실체를 규명하였다. 이 연구과제를 수행함으로써 정약용 개인에게 지나치게 치중했던 기존 연구경향에서 벗어나 다산학단이라는 새로운 연구대상을 학계에 제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2) 다산학단의 종합적 연구를 통해 다산학의 후대계승양상을 조명하였다. 기존연구에서 다산학이 후대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부분적이고 산발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본 연구과제를 통하여 다산학의 형성이 다산학단 구성원의 학문적 성과와 어떠한 상호관련성 속에서 이루어졌는지를 알 수 있었다. 경학, 경세학, 문학, 천문학 분야에서 다산학이 다산학단의 학문적 성과와 어떠한 관련성을 가졌는가를 살펴볼 수 있었다.

    (3) 다산학단의 연구를 통하여 19세기 京鄕과 儒佛 간의 소통관계를 규명하였다. 19세기는 세도정권의 등장과 함께 서울지역의 정치적, 경제적 독점이 심화되어 가던 시기였다. 이것은 학술문예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방의 학자와 문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중앙으로부터 소외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진의 茶山學團이 서울의 학술문예계와 교류하는 과정은 매우 예외적인 것이었다. 또한 서울의 유학계와 당시 조선 불교의 중심지였던 해남, 강진지역이 정약용의 학문적 성취와 정학연의 서울지역 학계와의 교류를 통해 연결되는 과정은 19세기 儒佛關係를 새롭게 조명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다산학단 연구를 통해서 경향과 유불 간의 다양한 소통과 교유 양상을 밝힘으로써 19세기 지성사의 인적 네트워크가 더욱 분명해질 수 있다. 본 공동연구는 이러한 점을 포괄적으로 밝히고자 했다.

    (4) 본 공동연구를 통하여 19세기 지성사 연구에 중요한 활로를 마련할 수 있다. 19세기 전반 조선 지성사의 중심에 丁若鏞과 金正喜를 설정해 볼 수 있다. 이들의 학문적 교류는 그 양적인 면을 떠나 당시 최고 지성의 만남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이들과 이들 제자들이 서로 교유했던 서간문, 시 등을 폭넓게 분석하면서 그들 사이의 학문관계를 구체적으로 규명하고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그간 커다란 공백으로 남아있었던 19세기 전반 지성사를 기술하는 데 중요한 기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다산학단의 조명을 통해 지방학계의 학문적, 문예적 동향을 살펴보는 것은 그간 서울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19세기 전반 지성사 연구를 보완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5) 이청의 󰡔정관편󰡕 연구를 통해서 다산학단 천문학 연구의 실태를 좀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정관편은 당시 다산학단 천문학 연구의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저서로서 이를 통해서 다산학단의 천문학 이해 수준과 그것이 차지하는 사상사적 위치를 알 수 있었다.
  • 색인어
  • 다산 정약용, 다산학, 다산학단, 실학, 남인, 강진, 정약전, 정학연, 정학유, 초의, 혜장, 이강회, 윤정기, 황상, 이청, 김정희, 경세학, 천문학, 19세기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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