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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학과 일본의 근대화 : 이노우에 데츠지로(井上哲次郞)와 다카세 다케지로(高瀨武次郞)를 중심으로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기초연구지원인문사회(창의주제연구)
연구과제번호 2006-321-A00441
선정년도 2006 년
연구기간 1 년 (2006년 11월 01일 ~ 2007년 10월 31일)
연구책임자 이혜경
연구수행기관 인천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의 궁극적 목적은 현대의 가장 적응력 있는 전통으로서 양명학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동아시아 근대화과정에서 양명학의 역할과 현대적 비전의 모색이라는 장기적인 계획을 염두에 두고, 본 연구는 동아시아에서 근대화를 선도했던 일본의 근대 양명학에 대한 연구를 당면과제로 삼는다.
    본 연구는 일본, 중국, 한국이 근대화 과정을 겪으면서, 각 나라에서 주체적으로 근대를 맞이하려는 사람들에게 양명학이 선택되었다는 사실과, 그 양명학의 재해석 과정에서 그들 세 나라 사이에 직적․간접적인 영향 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데서 출발한다. 유일하게 제국주의 대열에 섰던 일본은 근대화과정에서 중국과 한국이 서양문물을 수입하는 통로 역할을 했다. 그런데 서양문물의 수입뿐 아니라, 서구화의 근대화에 제동을 건 문화보수주의의 탄생 역시 일본이 선도했다. 그러므로 근대동아시아에서 양명학의 역할을 알기 위해서는 일본의 근대 양명학에 대한 연구는 선결과제로 요구된다.
    양명학이, 전근대사회에는 위험한 것으로 이단시되고 근대에서는 근대에 적응 가능한 전통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양명학의 주관적 성격과 실천적 성격에 있을 것이다. 그들의 절대적 가치인 ‘마음’은, 근대에 들어와서는 군사적 힘을 앞세운 서구문명의 힘 앞에 주눅 든 아시아인들에게 자존심과 주체성을 갖게 해주는 강력한 무기였다. 또한, 내 ‘마음’을 절대적인 가치로 확립함으로써 가치에 대한 주관적 해석의 길이 열려 있으므로 시대에 적응한 가치체계를 건설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양명의 후학으로서 근대의 동아시아인들은 스스로의 존엄성을 확인하고, 또 만물일체의 인류애가 가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약육강식의 근대국가 시대에 만물일체의 이상은 과거처럼 지고한 가치가 될 수 없었다. 그들은 양명학적 이상과 현실적인 자국의 이익 사이에서 국가를 보편적인 존재로 왜곡하기도 하고, 양명학을 신민적 덕목을 교육하기 위해 이용하기도 했다.
    본 연구는 구체적으로 동경제국대학의 철학과 교수였던 이노우에 데츠지로(井上哲次郞, 1855~1944)와 동경제국대학 중국철학전공 제1호 박사인 다카세 다케지로(高瀨武次郞, 1868~1950)의 양명학을 검토한다. 이 두 사람은 천왕을 정점으로 하는 입헌군주제와 유가윤리가 결합해 탄생된 ‘大日本帝國憲法’의 수호자로서, 한편에서는 자유민권을 저지하고 한편에서는 서양화를 저지하려는 의도에서 양명학을 연구했다. 이들에 의해서 국권주의식으로 해석된 양명학은 다시 중국의 양계초(梁啓超, 1873~1929)와 한국의 박은식(朴殷植, 1859~1925)에게 영향을 주었다. 박은식이나 정인보의 양명학이론에 접근할 때, 그들이 직접적으로 영향 받은 일본의 근대양명학에 대한 실증적 지식은 결여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근대 삼국의 양명학은 각각 특수한 민족적 상황에서 기본적으로 자민족의 이익을 위해 형성된 것이다. 각각의 국가가 어떤 정치적 상황에서 어떻게 양명학을 왜곡했는지 혹은 재해석했는지, 그에 대한 실증적인 검토와 비판적 반성을 통해야만, 양명학으로 대표되는 전통이 자유와 자율, 그리고 민주와 평등 등의 근대적 이념과 만나 동양의 주체성과 특수성을 지키면서 그 이념들을 포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근대를 넘어서서 대동이라는 유토피아로 이끌어줄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에 양명학이 이단시된 영향력은 현재에까지 미치는 것이어서 한국에서 양명학연구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주자학 연구에 비교해서 미미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양명학을 다루려는 본 연구는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일본 근대 양명학에 대해서는 한국 한계에서 거의 볼모지이다. 본 연구는 최근 몇 년 사이에 활기를 띄고 있는 한국양명학에 대한 연구에 미력이나마 직접적인 지원이 될 것이다.
  • 기대효과
  • 양명학은 강한 주체성과 실천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이론체계이며, 그 실천의 궁극적 방향은 만물을 한몸으로 여기는 유토피아의 실현이다. 서양에 대한 자신들의 자존심을 지키고 주체적으로 변화를 주도하고자 했던 근대의 아시아인들은 양명학을 다시 꺼내들었다. 양명의 후학으로서 그들은 스스로의 존엄성을 확인하고, 또 만물일체의 인류애를 실현하려는 이상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약육강식의 제국주의·식민지의 구도 속에서 그들이 스스로의 존엄성을 확인하는 일도, 또 만물일체의 인류애를 실현하는 일도 쉽지는 않았다.
    국가주의적인 경향, 정부 주도의 산업화 속에서 잠식된 인권, 도덕의식의 이중성, 농촌생활의 황폐화 등, 우리의 근대를 반성해야 할 지금의 시점에서 백 년 전에 그 문제와 생사를 걸고 악전고투했던 양명학자들의 실상을 검토하는 것은, 최소한 우리가 수행해야 할 반성에 구체적인 실마리를 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서양문명과 마주해서 주체성을 지키면서 타인을 배우려고 시도하고, 나아가 대동이라는 보편적 인류애를 실현시키려는 이상 역시 품고 있었던 그들의 의도 자체는 여전히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본 연구를 통해 그러한 의도가 어느 정도로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인가, 또한 실현되었을 때 파생될 수 있는 다른 문제점 등에 대해서 숙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며, 나아가 다른 대안을 생각하도록 하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또한 근대화과정을 이해하는데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근대화를 반성하는 작업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단서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서구화 일변도의 근대화과정의 문제점에 대해 반성하는 한편, 주체성의 중요성에 대해 환기하는 작용도 기대한다.
    본 연구는 학문적으로도, 상대적으로 취약한 한국의 일본연구에도 자극을 줄 수 있을 것이며, 한국의 근대를 정리하는데도 하나의 자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개별적인 세부 연구를 바탕으로 해야만 동아시아전체로 연구지평을 넓히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또한 동아시아의 근대화 과정의 상호연관과 특수성을 다룰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함으로써, 근대화 연구의 시각을 동아시아로 확대하고, 그 안에서의 일반성과 특수성을 이해하는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작업은 결국, 한국의 근대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리라 생각한다.
    학문적·사회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그대로 교육에 적용되어, 학생들에게 주체적 근대화 노력의 구체적 실례를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획득해야할 근대화의 참 가치에 대해 반성하는 기회를 줄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근대의 양명학에 대해 학습할 기회를 실마리로 해서, 전통과 근대의 관계에 대해서도 반성적으로 사유할 기회를 갖도록 할 것이다. 그러한 반성적 사유는 과거의 가치체계의 현재의 가치체계가 공존 내지 불화를 일으키고 있는 우리 가치체계의 현주소에 대해서도 주체적으로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 연구요약
  • 본 연구가 대상으로 하는 시기는 신·구, 동·서의 문화가 교차되는 시기이다. 그러므로 근대 일본 양명학이라는 사상체계가 어떤 사상들을 흡수하면서 또는 어떤 사상과 충돌하면서 형성되는지에 대한 역사적인 접근과 함께, 다층적인 다양한 요소들이 어떤 논리로 구성되어 하나의 사상체계를 형성하는지에 대한 구조적으로 접근 역시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서양철학의 방법론을 동양철학 연구에 이용한 이노우에 데츠지로와 그의 제자로서 양명학자를 자처했던 다카세 다케지로의 사상체계를 다음의 내용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1)일본의 근대양명학의 성립과정을 검토하고 그 해석체계의 구조를 밝힌다. 주관적이며 실천적인 양명학의 특징이 근대라는 특수성, 그리고 일본의 정치적 특수성과 맞물려 어떤 결과를 만들어 냈는지 검토한다. 또한 서양의 문명을 정리하고 처리하면서 도입한 논리에 대해 검토한다.
    (2)그러한 철학적 입장에서 파생된 사회사상을 검토하고 사회적 정치적 배경 하에서 수행했던 역할을 검토한다.
    (3)근대일본이라는 특수한 시공에서 탄생한 근대양명학이 어떻게 고전양명학을 왜곡했는지, 그 왜곡이 교정되어 양명학이 진정으로 자신의 정신을 살리면서 근대의 해방정신과 갈등하지 않고 미래의 정신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있는지 전망한다.
    일본의 양명학연구자 吉田公平에 의하면 일본에 양명학이 전래된 1600년경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일본에는 몇 차례의 양명학 붐이 있었는데, 가장 큰 규모의 붐은 메이지시기에 있었다. 즉 ‘大日本帝國憲法’(1889년)과 ‘敎育勅語’(1890년)가 발포되어 이른바 國體가 확립되고 동시에 서양사상에 대한 과도한 경도가 반성되면서 동양사상, 특히 유교사상을 재평가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부국강병을 위해 ‘국민’의 시민권을 ‘臣民’의 한도 내에서 인정하고 국민의 ‘臣民’화를 강화하기 위해 유교윤리가 최대한 활용되었던 것이다.
    이노우에 데츠지로(井上哲次郞, 1855~1944)는 신설된 東京제국대학을 1회로 졸업하고(철학전공) 정부장학생으로 독일에 6년 동안 유학했다. 귀국 후 그는 동경대학 철학과의 첫 번째 일본인 교수가 되었다. 그런데 귀국 후 그가 몰두했던 일은 독일관념론을 일본에 소개하는 일보다도 이른바 동양철학의 연구였다. 3부작이라고 불리는『日本陽明學派之哲學』(1900),『日本古學派之哲學』(1902),『日本朱子學派之哲學』(1905)은 동서문화의 융합을 시도한 것이었다. 즉 동양철학의 내용을 서양철학의 방법에 의해 해석하려고 한 시도였다. 그의 작업은 국가주의의 입장에서 시도된 것으로 조급하고 안이한 절충과 종합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유교를 근대의 빛으로 비추어 체계적으로 파악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받는다. 『日本陽明學派之哲學』에서 그가 엮은 일본양명학의 계보에는 다분히 그의 정치적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그 융합의 방향이 국권주의의 강화였다는 일본적 특징을 잠시 접어두면, 이노우에의 시도는 동서문화의 융합이라는 점에서, 현대신유가라고 불리는 이론체계의 선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카세 다케지로(高瀨武次郞, 1868~1950)는 이노우에가 교수로 재임하고 있던 동경제국대학 문학부에서 중국철학 전공 제1호 박사학위를 받았다. ‘교육칙어’에서 수용된 국가주의적 유교는 중국철학 전문가인 다카세에 의해 보다 분명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의 업적은 주로 양명학에 관한 것에 집중되어 있는데{󰡔日本之陽明學󰡕(1898), 󰡔陽明學階梯󰡕(1900), 󰡔陽明學詳傳󰡕(1904), 󰡔陽明學新論󰡕(1906), 󰡔陽明主義の修養󰡕(1918), 󰡔傳習錄講義󰡕(1919), 󰡔陽明學講話󰡕(1928)}, 그에게 양명학은 객관적 학문의 대상이 아니라 실천의 지침이었다. 그는 ‘교육칙어’로 표상되는 유교주의적인 천황 국가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서양에서 수입된 문명, 특히 윤리적 이기주의와 기독교를 공격하기도 했는데, 그 작업은 맹자가 유학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도입했던 이단비판의 형태를 띤다.
  • 한글키워드
  • 다카세 다케지로(高瀨武次郞),일본,근대화,이노우에 데츠지로(井上哲次郞),양명학
  • 영문키워드
  • Japan,Modernization,Yangmingxue,Takase Takejiro,Inoue Tetsujiro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가 대상으로 하는 시기는 신·구, 동·서의 문화가 교차되는 시기이다. 구체적으로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서양철학의 방법론을 동양철학 연구에 이용한 이노우에 데츠지로와 그의 제자로서 양명학자를 자처했던 다카세 다케지로의 사상체계를, 다음의 방법에 의거해 분석했다.
    (1)일본의 근대양명학의 성립과정을 검토하고 그 해석체계의 구조를 밝힌다. 주관적이며 실천적인 양명학의 특징이 근대라는 특수성, 그리고 일본의 정치적 특수성과 맞물려 어떤 결과를 만들어 냈는지 검토한다. 또한 서양의 문명을 정리하고 처리하면서 도입한 논리에 대해 검토한다.
    (2)그러한 철학적 입장에서 파생된 사회사상을 검토하고 사회적 정치적 배경 하에서 수행했던 역할을 검토한다.
    (3)근대일본이라는 특수한 시공에서 탄생한 근대양명학이 어떻게 고전양명학을 왜곡했는지, 그 왜곡이 교정되어 양명학이 진정으로 자신의 정신을 살리면서 근대의 해방정신과 갈등하지 않고 미래의 정신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있는지 전망한다.
    일본의 양명학연구자 吉田公平에 의하면 일본에 양명학이 전래된 1600년경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일본에는 몇 차례의 양명학 붐이 있었는데, 가장 큰 규모의 붐은 메이지시기에 있었다. 즉 ‘大日本帝國憲法’(1889년)과 ‘敎育勅語’(1890년)가 발포되어 이른바 國體가 확립되고 동시에 서양사상에 대한 과도한 경도가 반성되면서 동양사상, 특히 유교사상을 재평가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부국강병을 위해 ‘국민’의 시민권을 ‘臣民’의 한도 내에서 인정하고 국민의 ‘臣民’화를 강화하기 위해 유교윤리가 최대한 활용되었던 것이다.
    이노우에 데츠지로(井上哲次郞, 1855~1944)는 신설된 東京제국대학을 1회로 졸업하고(철학전공) 정부장학생으로 독일에 6년 동안 유학했다. 귀국 후 그는 동경대학 철학과의 첫 번째 일본인 교수가 되었다. 그런데 귀국 후 그가 몰두했던 일은 독일관념론을 일본에 소개하는 일보다도 이른바 동양철학의 연구였다. 3부작이라고 불리는『日本陽明學派之哲學』(1900),『日本古學派之哲學』(1902),『日本朱子學派之哲學』(1905)은 동서문화의 융합을 시도한 것이었다. 즉 동양철학의 내용을 서양철학의 방법에 의해 해석하려고 한 시도였다. 그의 작업은 국가주의의 입장에서 시도된 것으로 조급하고 안이한 절충과 종합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유교를 근대의 빛으로 비추어 체계적으로 파악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받는다. 『日本陽明學派之哲學』에서 그가 엮은 일본양명학의 계보에는 다분히 그의 정치적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그 융합의 방향이 국권주의의 강화였다는 일본적 특징을 잠시 접어두면, 이노우에의 시도는 동서문화의 융합이라는 점에서, 현대신유가라고 불리는 이론체계의 선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카세 다케지로(高瀨武次郞, 1868~1950)는 이노우에가 교수로 재임하고 있던 동경제국대학 문학부에서 중국철학 전공 제1호 박사학위를 받았다. ‘교육칙어’에서 수용된 국가주의적 유교는 중국철학 전문가인 다카세에 의해 보다 분명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의 업적은 주로 양명학에 관한 것에 집중되어 있는데{『日本之陽明學』(1898),『陽明學階梯』(1900),『陽明學詳傳』(1904),『陽明學新論』(1906),『陽明主義の修養』(1918),『傳習錄講義』(1919),『陽明學講話』(1928)}, 그에게 양명학은 객관적 학문의 대상이 아니라 실천의 지침이었다. 그는 ‘교육칙어’로 표상되는 유교주의적인 천황 국가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서양에서 수입된 문명, 특히 윤리적 이기주의와 기독교를 공격하기도 했는데, 그 작업은 맹자가 유학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도입했던 이단비판의 형태를 띤다.
  • 영문

  • This research have studied on the doctrines of Yangming-xue陽明學 that is referred as the most practicable tradition in the modern age. The study focused on the modern philosophy of Yangming-xue in Japan, which led the modernization of East Asia. Accordingly, the research aimed at the roles and the influence of the Yangming-xue’s doctrines in the modernization of East Asia, and set a long-term goal on the study into the modern vision, based on the philosophy of Yangming-xue.
    Inoue Detzujiro井上哲次郞, the professor of department of philosophy in Tokyo Imperial University, and Dakasse Dakajiro高瀨武次郞, the first Ph. D. of Chinese philosophy in Tokyo Imperial University, closely investigated into the doctrines of Yangming-xue. The two scholars strongly supported the Japanese Imperialism of which the constitutional monarchism, having the emperor as the head of the system, was combined with the Confucian ethics. They inquired into the doctrines of Yangming-xue with the intention of impeding the democratic rights and the westernization. Their philosophy of Yangming-xue, based on the extreme patriotism, influenced Liang Qi-chao梁啓超 in China and Park Eun-sik朴殷植 in Korea.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 현대의 가장 적응력 있는 전통으로서 양명학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동아시아 근대화과정에서 양명학의 역할과 현대적 비전의 모색이라는 장기적인 계획을 염두에 두고, 본 연구는 동아시아에서 근대화를 선도했던 일본의 근대 양명학에 대한 연구를 과제로 삼았다.
    본 연구는 일본, 중국, 한국이 근대화 과정을 겪으면서, 각 나라에서 주체적으로 근대를 맞이하려는 사람들에게 양명학이 선택되었다는 사실과, 그 양명학의 재해석 과정에서 그들 세 나라 사이에 직적․간접적인 영향 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데서 출발했다. 유일하게 제국주의 대열에 섰던 일본은 근대화과정에서 중국과 한국이 서양문물을 수입하는 통로 역할을 했다. 그런데 서양문물의 수입뿐 아니라, 서구화의 근대화에 제동을 건 문화보수주의의 탄생 역시 일본이 선도했다.
    양명학이, 전근대사회에는 위험한 것으로 이단시되고 근대에서는 근대에 적응 가능한 전통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양명학의 주관적 성격과 실천적 성격에 있다. 그들의 절대적 가치인 ‘마음’은, 근대에 들어와서는 군사적 힘을 앞세운 서구문명의 힘 앞에 주눅 든 아시아인들에게 자존심과 주체성을 갖게 해주는 강력한 무기였다. 또한, 내 ‘마음’을 절대적인 가치로 확립함으로써 가치에 대한 주관적 해석의 길이 열려 있으므로 시대에 적응한 가치체계를 건설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양명의 후학으로서 근대의 동아시아인들은 스스로의 존엄성을 확인하고, 또 만물일체의 인류애가 가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약육강식의 근대국가 시대에 만물일체의 이상은 과거처럼 지고한 가치가 될 수 없었다. 그들은 양명학적 이상과 현실적인 자국의 이익 사이에서 국가를 보편적인 존재로 왜곡하기도 하고, 양명학을 신민적 덕목을 교육하기 위해 이용하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동경제국대학의 철학과 교수였던 이노우에 데츠지로(井上哲次郞, 1855~1944)와 동경제국대학 중국철학전공 제1호 박사인 다카세 다케지로(高瀨武次郞, 1868~1950)의 양명학을 검토했다. 이 두 사람은 천왕을 정점으로 하는 입헌군주제와 유가윤리가 결합해 탄생된 ‘大日本帝國憲法’의 수호자로서, 한편에서는 자유민권을 저지하고 한편에서는 서양화를 저지하려는 의도에서 양명학을 연구했다. 이들에 의해서 국권주의식으로 해석된 양명학은 다시 중국의 양계초(梁啓超, 1873~1929)와 한국의 박은식(朴殷植, 1859~1925)에게 영향을 주었다. 박은식이나 정인보의 양명학이론에 접근할 때, 그들이 직접적으로 영향 받은 일본의 근대양명학에 대한 실증적 지식은 결여할 수 없는 부분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양명학은 강한 주체성과 실천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이론체계이며, 그 실천의 궁극적 방향은 만물을 한몸으로 여기는 유토피아의 실현이다. 서양에 대한 자신들의 자존심을 지키고 주체적으로 변화를 주도하고자 했던 근대의 아시아인들은 양명학을 다시 꺼내들었다. 양명의 후학으로서 그들은 스스로의 존엄성을 확인하고, 또 만물일체의 인류애를 실현하려는 이상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약육강식의 제국주의·식민지의 구도 속에서 그들이 스스로의 존엄성을 확인하는 일도, 또 만물일체의 인류애를 실현하는 일도 쉽지는 않았다.
    국가주의적인 경향, 정부 주도의 산업화 속에서 잠식된 인권, 도덕의식의 이중성, 농촌생활의 황폐화 등, 우리의 근대를 반성해야 할 지금의 시점에서 백 년 전에 그 문제와 생사를 걸고 악전고투했던 양명학자들의 실상을 검토하는 것은, 최소한 우리가 수행해야 할 반성에 구체적인 실마리를 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서양문명과 마주해서 주체성을 지키면서 타인을 배우려고 시도하고, 나아가 대동이라는 보편적 인류애를 실현시키려는 이상 역시 품고 있었던 그들의 의도 자체는 여전히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본 연구를 통해 그러한 의도가 어느 정도로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인가, 또한 실현되었을 때 파생될 수 있는 다른 문제점 등에 대해서 숙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며, 나아가 다른 대안을 생각하도록 하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또한 근대화과정을 이해하는데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근대화를 반성하는 작업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단서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서구화 일변도의 근대화과정의 문제점에 대해 반성하는 한편, 주체성의 중요성에 대해 환기하는 작용도 기대한다.
    본 연구는 학문적으로도, 상대적으로 취약한 한국의 일본연구에도 자극을 줄 수 있을 것이며, 한국의 근대를 정리하는데도 하나의 자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개별적인 세부 연구를 바탕으로 해야만 동아시아전체로 연구지평을 넓히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또한 동아시아의 근대화 과정의 상호연관과 특수성을 다룰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함으로써, 근대화 연구의 시각을 동아시아로 확대하고, 그 안에서의 일반성과 특수성을 이해하는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작업은 결국, 한국의 근대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리라 생각한다.
    학문적·사회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그대로 교육에 적용되어, 학생들에게 주체적 근대화 노력의 구체적 실례를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획득해야할 근대화의 참 가치에 대해 반성하는 기회를 줄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근대의 양명학에 대해 학습할 기회를 실마리로 해서, 전통과 근대의 관계에 대해서도 반성적으로 사유할 기회를 갖도록 할 것이다. 그러한 반성적 사유는 과거의 가치체계의 현재의 가치체계가 공존 내지 불화를 일으키고 있는 우리 가치체계의 현주소에 대해서도 주체적으로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 색인어
  • 일본, 근대화, 양명학, 이노우에 데츠지로(井上哲次郞), 다카세 다케지로(高瀨武次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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