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의 목적은 한말에 등장한 현모양처론이 식민지 시기를 거치는 동안에 전통적 여성상으로 재구성되는 과정과 그 원인을 구명하는데 있다. 이를 1920·30년대 한국사회에 등장한 신여성 담론과의 경합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현모양처 여성론이 전통적 ...
이 연구의 목적은 한말에 등장한 현모양처론이 식민지 시기를 거치는 동안에 전통적 여성상으로 재구성되는 과정과 그 원인을 구명하는데 있다. 이를 1920·30년대 한국사회에 등장한 신여성 담론과의 경합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현모양처 여성론이 전통적 여성상으로 자리매김되는 과정에는 신여성의 등장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기 때문이다. 아울러 여기에는 식민지 정치현실에서 민족주의와 식민주의, 양자가 구사한 젠더 정치가 개입되어 있었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하나의 여성상, 더욱이 이데올로기로서의 현모양처는 한말 개화기의 시대적 요구에 의해 등장하였다. 개항 후 조선은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국운이 풍전등화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었다. 특히 을사조약 이후 조선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부강한 국가를 건설하여 국난의 위기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다. 국가적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은 서구 열강이나 일본의 문화를 흡수하여 강력한 근대국가의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었다. 특히 서구적 근대화를 조기에 이룩한 일본은 극복의 대상이자 동시에 따라 배워야할 하나의 모델이기조차 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의 부국강병은 단지 군사력만이 아닌 정치, 경제, 문화적인 근대화로부터 나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서 여성교육의 필요성이 제창되었다. 즉 현모양처론은 문명개화와 그에 따른 여성교육을 주창하기 위해 등장한 여성론이었다. 문화 수준의 향상과 국민 교육의 진흥이 국운의 융성에 필요하다는 개화 지식인들의 교육관이 그것이다. 당시 여성교육은 건강한 아이의 생산, 자식의 개명, 이를 통한 국난 극복 등을 위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적극 주창되었다. 서구에서 산업사회 이후 등장한 전업주부론의 일본적 용어인 현모양처 개념이 도입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즉 현모양처는 시대가 요구하는 지식과 이해력을 겸비한 어머니와 아내의 역할 모델이었다. 때문에 여기에는 전통적인 여성상과는 다른, 새로운 여성상의 이미지가 강하였다. 그렇다면 현모양처가 신사임당으로 이미지화되어, 전통적인 여성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연구의 문제의식은 바로 여기에 있다. 더욱이 현모양처의 역할 규범, 나아가 거기에 내재되어 있는 도덕규범은 '전통'으로 미화되어 한국 사회에 여전히 강한 규정력을 발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IMF 한파 이후 한국 사회는 여성의 경제활동을 강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모양처론은 신현모양처론으로 변용되어 굳건히 한국 여성의 삶을 규정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서 이 연구의 필요성이l 제기된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제국주의의 침략과 식민지라는 역사적 조건 속에서 형성된 현모양처 여성상이 어떠한 방식으로 전통적 여성상으로 재구성되는지를 젠더정치의 관점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현모양처라는 역할 모델이 한국 사회의 어떠한 역사적 배경하에서 등장하는지를 살펴보고, 다음으로는 현모양처 여성상에 대한 비판 세력의 비판 내용은 무엇이었는지를 고찰한 후, 끝으로는 이에 대한 반응으로써 현모양처론이 '전통'적인 모습으로 재구성되는 과정을 구명하고자 한다.
기대효과
연구결과에 대한 기대효과 및 활용방안은 이 연구가 가지는 연구사적 의의를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이 연구의 의의는 다음 네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식민지시기 식민주의와 민족주의가 구사한 젠더정치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 ...
연구결과에 대한 기대효과 및 활용방안은 이 연구가 가지는 연구사적 의의를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이 연구의 의의는 다음 네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식민지시기 식민주의와 민족주의가 구사한 젠더정치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이는 민족주의가 여성을 동원하는 방식 뿐만 아니라 식민지 정책사 연구를 더욱 풍부하게 할 수 있다. 둘째, 일제의 정책과 민족담론이 식민지 이후 우리의 삶에 미친 영향을 알려 준다. 특히 가정생활과 그의 핵심 이데올로기인 현모양처론은 조선인의 일상생활과 밀접히 관련되는 것으로 한국인들의 문화적 정체성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현모양처 여성상은 어떠한 방식으로 조선사회에서 흡수·융해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아울러 여성들이 현모양처 여성상을 내면화시킬 수 있는 기제로 작용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셋째, 이 연구는 사회학과 여성학과의 학제적 연구에 기본적인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 여성담론과 가정 이데올로기에 관한 주제는 사회학과 여성학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가 진행되고 분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이론화 작업에 실증력을 부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넷째, 성의 본질론에 입각한 성별역할분담론은 근대 이후에, 일종의 만들어진 전통이었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현존하는 식민지 유산을 청산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식민지 시기 정책의 잔재가 우리의 전통이라는 틀로 가장하고 아직도 한국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지나친 가족주의, 가족 내에서의 권위주의적인 위계 질서, 그리고 그것이 국가로 확대되어 나타나는 정치인들의 권위주의 등이 그것이다. 특히 비민주적인 가족법이나, 불합리한 성별역할분담을 합리화하는 기제로 작용하는 전통이 실제로는 식민지 이후의 역사적 산물이다. 본 연구는 이 점을 밝힘으로써, 식민지가 남긴 유산을 철저히 극복하고 보다 민주적이고 양성평등이 실현된 사회로 나아가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기대한다. 다섯째, 이러한 연구 성과는 우리사회의 양성 평등교육을 하는데 그 내용적 기반을 제공할 수 있다. 1999년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는 '남녀차별금지기준(안)'을 마련하여, 학생 등 교육대상자 선발에서 성별차이를 두지 말 것과 남녀역할에 편견을 갖도록 교육 또는 생활지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두었다. 즉 교육기관에서 여학생에게 현모양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등 남녀의 역할에 대한 편견을 갖도록 지도하는 것을 성차별 행위로 규정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성별역할분담론에 내재된 젠더정치의 의미와 역사적 배경을 교육에 도입한다면, 그 효과가 배가되지 않을까 한다.
연구요약
이 연구는 전체가 3개의 장으로 이루어졌다. 먼저, 제1장에서는 한말에 현모양처론이 등장하는 배경과 그 내용을 다룰 것이다. 주로 한말과 1910년대가 연구대상이다. 다음으로, 제2장에서는 그 이전과 마찬가지로 현모양처 담론이 여성담론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한편 ...
이 연구는 전체가 3개의 장으로 이루어졌다. 먼저, 제1장에서는 한말에 현모양처론이 등장하는 배경과 그 내용을 다룰 것이다. 주로 한말과 1910년대가 연구대상이다. 다음으로, 제2장에서는 그 이전과 마찬가지로 현모양처 담론이 여성담론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한편, 동시에 다른 편에서 제기되는 현모양처론에 대한 비판들이 어떠한 제세력을 통해 이루어지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끝으로, 제3장에서는 현모양처론 비판, 그것에 대한 대응으로서 현모양처론이 전통을 이용하는 방식을 고찰할 것이다. 이를 통해 식민지 시기 현모양처론은 전통의 이름으로 재구축되었음을 구명하고자 한다. 각 장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제1장에서는 현모양처 여성상이 도입되는 과정과 그 내용을 살펴볼 것이다. 한말과 식민지 초기인 1910년대가 주요한 분석대상이다. 한말과 식민지 초기 조선의 계몽 지식인들은 민족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여성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하였다. 다음 세대를 짊어질 아이들을 교육시킬 당사자인 여성들을 개화시킬 필요에 의해 여성 교육이 강조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여성들을 신학문을 익히고 신사상을 받아들여 현모양처로 다시 태어나도록 기대를 받고 있었다. 그리하여 처음에 교육받은 여성을 바라보는 국가와 민족의 시선에는 어느 정도의 기대가 담겨 있었다. 즉 이 당시 현모양처론은 여성교육론과 함께 등장한, 여성교육론을 설파하기 위한 새로운 여성상이었던 것이다. 결국 여성은 모성을 통해 자기 규정성을 발휘하기를 요구받았으며, 이는 식민주의자나 민족주의자들에서 공통된 것이었다. 이는 그들이 서구 문명론의 입장에서 국가와 민족을 의식하는 있었기 때문이다. 식민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조선의 여성을 일본 제국의 국민으로 통합하기 위한 일환으로, 제국의 제2의 국민 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조선 여성의 모성을 이용하고자 하였다. 조선여성을 일본의 교육시스템으로 끌어들여 여성교육을 하였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조선인을 일본 국민으로 통합코자 하는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정책적 측면에서 제기된 것이었다. 제2장에서는 여성교육을 통해 탄생한 신여성 집단의 현모양처론에 대한 반격을 고찰할 것이다. 특히 현모양처론을 신랄하게 비판한 1920년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계열의 여성들의 행보와 그들의 문제제기가 주요한 분석대상이다. 즉 여성교육을 통해 등장한 신여성들은 식민지 지배당국과 민족주의자들의 기대 수준에 부합되지만은 않았다. 실제로 신여성이라 불린 여성들은 그 사회적 기대를 훨씬 뛰어넘어 자신들을 위한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었다. 당시 신여성들은 일본을 거쳐 도입된 서구의 자유주의사상들, 즉 여성 자신의 성에 대한 탐구와 가부장제로부터의 해방을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김일엽과 나혜석의 행동과 사상은 연애와 결혼이라는 측면에서 이러한 면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신여성들의 연애관, 정조관, 결혼관의 표명과 그에 상응하는 행동은 그동안 여성들에게 금기시되었던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제3장은 현모양처론이 신여성들의 비판에 재반격을 가하는 방식을 구명할 것이다. 가부장제에 대한 공격과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신여성들의 행보는 식민지 국가 권력 뿐만 아니라, 조선의 식민지 지식인에게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전자가 식민지 여성정책의 차원에서라면, 후자는 조선 민족 전통의 교란자라는 차원에서 그들에게 대응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여성담론은 새로운 변신의 과정을 겪는다. 새로운 여성상으로 이미지화되기 보다는 전통적인 어머니상으로 재현되었기 때문이다. 순결한 민족성의 담지자로서 가정과 여성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현모양처는 전통과 결합하는 양상을 띠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이들은 신여성이라는 새로운 기표를 생산하고 신여성운동에 적대적으로 대응하였다. 특히 모던걸이라는용어는 허영이나 서구적인 문물에 현혹된 퇴폐적이고 병리적인 현상을 동반하는 하나의 상징으로까지 여겨졌다. 결국 식민지시기 신여성 담론은 당시 지배적인 여성 담론이었던 현모양처론에 한편으로는 타격을 가하였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결과적으로 그것을 전통의 모습으로 재현시키는 기능을 수행한 이중적이고 복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한글키워드
현모양처,전통,신여성,젠더,식민주의
,민족주의,여성교육,모던걸,신여성담론
영문키워드
Wise Mother and Good Wife,Women's Education,Colonialism
,Nationalism,Gender,Modern Girl,Tradition,New Women Discourse,New Women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국문
각 장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제1장에서는 현모양처 여성상이 도입되는 과정과 그 내용을 살펴보았다. 한말과 식민지 초기인 1910년대가 주요한 분석대상이었다. 한말과 식민지 초기 조선의 계몽 지식인들은 민족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여성교육이 무엇 ...
각 장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제1장에서는 현모양처 여성상이 도입되는 과정과 그 내용을 살펴보았다. 한말과 식민지 초기인 1910년대가 주요한 분석대상이었다. 한말과 식민지 초기 조선의 계몽 지식인들은 민족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여성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하였다. 다음 세대를 짊어질 아이들을 교육시킬 당사자인 여성들을 개화시킬 필요에 의해 여성 교육이 강조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여성들을 신학문을 익히고 신사상을 받아들여 현모양처로 다시 태어나도록 기대를 받고 있었다. 그리하여 처음에 교육받은 여성을 바라보는 국가와 민족의 시선에는 어느 정도의 기대가 담겨 있었다. 즉 이 당시 현모양처론은 여성교육론과 함께 등장한, 여성교육론을 설파하기 위한 새로운 여성상이었던 것이다. 결국 여성은 모성을 통해 자기 규정성을 발휘하기를 요구받았으며, 이는 식민주의자나 민족주의자 모두에게 공통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서구 문명론의 입장에서 국가와 민족을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식민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조선의 여성을 일본 제국의 국민으로 통합하기 위한 일환으로, 제국의 제2의 국민 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조선 여성의 모성을 이용하고자 하였다. 조선여성을 일본의 교육시스템으로 끌어들여 여성교육을 하였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조선인을 일본 국민으로 통합코자 하는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정책적 측면에서 제기된 것이었다. 제2장에서는 여성교육을 통해 탄생한 신여성 집단의 현모양처론에 대한 반격을 고찰하였다. 특히 현모양처론을 신랄하게 비판한 1920년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계열의 여성들의 행보와 그들의 문제제기가 주요한 분석대상이었다. 즉 여성교육을 통해 등장한 신여성들은 식민지 지배당국과 민족주의자들의 기대 수준에 부합되지만은 않았다. 실제로 신여성이라 불린 여성들은 그 사회적 기대를 훨씬 뛰어넘어 자신들을 위한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었다. 당시 신여성들은 일본을 거쳐 도입된 서구의 자유주의사상들, 즉 여성 자신의 성에 대한 탐구와 가부장제로부터의 해방을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김일엽과 나혜석의 행동과 사상은 연애와 결혼이라는 측면에서 이러한 면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신여성들의 연애관, 정조관, 결혼관의 표명과 그에 상응하는 행동은 그동안 여성들에게 금기시되었던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제3장은 현모양처론이 신여성들의 비판에 재반격을 가하는 방식을 구명하였다. 가부장제에 대한 공격과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신여성들의 행보는 식민지 국가 권력 뿐만 아니라, 조선의 식민지 지식인에게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전자가 식민지 여성정책의 차원에서라면, 후자는 조선 민족 전통의 교란자라는 차원에서 그들에게 대응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여성담론은 새로운 변신의 과정을 겪는다. 새로운 여성상으로 이미지화되기 보다는 전통적인 어머니상으로 재현되었기 때문이다. 순결한 민족성의 담지자로서 가정과 여성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현모양처는 전통과 결합하는 양상을 띠게 되었던 것이다. 이들은 신여성이라는 새로운 기표를 생산하고 신여성운동에 적대적으로 대응하였다. 특히 모던걸이라는용어는 허영이나 서구적인 문물에 현혹된 퇴폐적이고 병리적인 현상을 동반하는 하나의 상징으로까지 여겨졌다. 결국 식민지시기 신여성 담론은 당시 지배적인 여성 담론이었던 현모양처론에 한편으로는 타격을 가하였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결과적으로 그것을 전통의 모습으로 재현시키는 기능을 수행한 이중적이고 복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영문
As a product of industrialization in the West, necessity for unity of nation to develop industry in Japan, these views of womanhood have come into world. But in colonial Korea, the view of 'wise mother and good wife' is directly not connected with in ...
As a product of industrialization in the West, necessity for unity of nation to develop industry in Japan, these views of womanhood have come into world. But in colonial Korea, the view of 'wise mother and good wife' is directly not connected with industrialization. Because imperial Japan was planning to make Korea into a channel of supply of foodstuffs to foster the growth of industry. If so, what is the purpose that Japan intended to make Korean girls into 'wise mothers and good wives' through the school system. We are able to know it by looking into the change process of educational policy and press comments on this question. There are two reasons. On the one hand, Japan intended to integrate Korean women into Japanese nation-state. Accordingly it was proper that the family system reforms in order to render devoted service to the Japanese Emperor. Because the traditional family system in Korea is priority to kinship rather than the state. The other, the view of 'wise mother and good wife' is indispensable Japan to counteract against Western ideas. As assertions of liberal thought or socialist ideology prevent imperial Japan from absolutely dominating Korea, Japan tried to protect Korean women from influences of Western ideology. Conclusionally, Japan intended to make girls into 'wise mothers and good wives' so that women may gain immunity, be finally integrated into Japan. In this course, It is to make traditional women's model by nationalism and colonialism.
연구결과보고서
초록
각 장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제1장에서는 현모양처 여성상이 도입되는 과정과 그 내용을 살펴보았다. 한말과 식민지 초기인 1910년대가 주요한 분석대상이었다. 한말과 식민지 초기 조선의 계몽 지식인들은 민족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여성 ...
각 장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제1장에서는 현모양처 여성상이 도입되는 과정과 그 내용을 살펴보았다. 한말과 식민지 초기인 1910년대가 주요한 분석대상이었다. 한말과 식민지 초기 조선의 계몽 지식인들은 민족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여성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하였다. 다음 세대를 짊어질 아이들을 교육시킬 당사자인 여성들을 개화시킬 필요에 의해 여성 교육이 강조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여성들을 신학문을 익히고 신사상을 받아들여 현모양처로 다시 태어나도록 기대를 받고 있었다. 그리하여 처음에 교육받은 여성을 바라보는 국가와 민족의 시선에는 어느 정도의 기대가 담겨 있었다. 즉 이 당시 현모양처론은 여성교육론과 함께 등장한, 여성교육론을 설파하기 위한 새로운 여성상이었던 것이다. 결국 여성은 모성을 통해 자기 규정성을 발휘하기를 요구받았으며, 이는 식민주의자나 민족주의자 모두에게 공통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서구 문명론의 입장에서 국가와 민족을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식민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조선의 여성을 일본 제국의 국민으로 통합하기 위한 일환으로, 제국의 제2의 국민 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조선 여성의 모성을 이용하고자 하였다. 조선여성을 일본의 교육시스템으로 끌어들여 여성교육을 하였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조선인을 일본 국민으로 통합코자 하는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정책적 측면에서 제기된 것이었다. 제2장에서는 여성교육을 통해 탄생한 신여성 집단의 현모양처론에 대한 반격을 고찰하였다. 특히 현모양처론을 신랄하게 비판한 1920년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계열의 여성들의 행보와 그들의 문제제기가 주요한 분석대상이었다. 즉 여성교육을 통해 등장한 신여성들은 식민지 지배당국과 민족주의자들의 기대 수준에 부합되지만은 않았다. 실제로 신여성이라 불린 여성들은 그 사회적 기대를 훨씬 뛰어넘어 자신들을 위한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었다. 당시 신여성들은 일본을 거쳐 도입된 서구의 자유주의사상들, 즉 여성 자신의 성에 대한 탐구와 가부장제로부터의 해방을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김일엽과 나혜석의 행동과 사상은 연애와 결혼이라는 측면에서 이러한 면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신여성들의 연애관, 정조관, 결혼관의 표명과 그에 상응하는 행동은 그동안 여성들에게 금기시되었던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제3장은 현모양처론이 신여성들의 비판에 재반격을 가하는 방식을 구명하였다. 가부장제에 대한 공격과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신여성들의 행보는 식민지 국가 권력 뿐만 아니라, 조선의 식민지 지식인에게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전자가 식민지 여성정책의 차원에서라면, 후자는 조선 민족 전통의 교란자라는 차원에서 그들에게 대응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여성담론은 새로운 변신의 과정을 겪는다. 새로운 여성상으로 이미지화되기 보다는 전통적인 어머니상으로 재현되었기 때문이다. 순결한 민족성의 담지자로서 가정과 여성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현모양처는 전통과 결합하는 양상을 띠게 되었던 것이다. 이들은 신여성이라는 새로운 기표를 생산하고 신여성운동에 적대적으로 대응하였다. 특히 모던걸이라는용어는 허영이나 서구적인 문물에 현혹된 퇴폐적이고 병리적인 현상을 동반하는 하나의 상징으로까지 여겨졌다. 결국 식민지시기 신여성 담론은 당시 지배적인 여성 담론이었던 현모양처론에 한편으로는 타격을 가하였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결과적으로 그것을 전통의 모습으로 재현시키는 기능을 수행한 이중적이고 복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연구결과에 대한 기대효과 및 활용방안은 이 연구가 가지는 연구사적 의의를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이 연구의 의의는 다음 다섯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식민지시기 식민주의와 민족주의가 구사한 젠더정치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
연구결과에 대한 기대효과 및 활용방안은 이 연구가 가지는 연구사적 의의를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이 연구의 의의는 다음 다섯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식민지시기 식민주의와 민족주의가 구사한 젠더정치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이는 민족주의가 여성을 동원하는 방식 뿐만 아니라 식민지 정책사 연구를 더욱 풍부하게 할 수 있다. 둘째, 일제의 정책과 민족담론이 식민지 이후 우리의 삶에 미친 영향을 알려 준다. 특히 가정생활과 그의 핵심 이데올로기인 현모양처론은 조선인의 일상생활과 밀접히 관련되는 것으로 한국인들의 문화적 정체성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현모양처 여성상이 어떠한 방식으로 조선사회에서 흡수․융해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아울러 여성들이 현모양처 여성상을 내면화시킬 수 있는 기제로 작용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셋째, 이 연구는 사회학과 여성학과의 학제적 연구에 기본적인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 여성담론과 가정 이데올로기에 관한 주제는 사회학과 여성학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가 진행되고 분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이론화 작업에 실증력을 부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넷째, 성의 본질론에 입각한 성별역할분담론은 근대 이후에, 일종의 만들어진 전통이었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현존하는 식민지 유산을 청산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식민지 시기 정책의 잔재가 우리의 전통이라는 틀로 가장하고 아직도 한국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지나친 가족주의, 가족 내에서의 권위주의적인 위계 질서, 그리고 그것이 국가로 확대되어 나타나는 정치인들의 권위주의 등이 그것이다. 특히 비민주적인 가족법이나, 불합리한 성별역할분담을 합리화하는 기제로 작용하는 전통이 실제로는 식민지 이후의 역사적 산물이다. 본 연구는 이 점을 밝힘으로써, 식민지가 남긴 유산을 철저히 극복하고 보다 민주적이고 양성평등이 실현된 사회로 나아가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기대한다. 다섯째, 이러한 연구 성과는 우리사회의 양성 평등교육을 하는데 그 내용적 기반을 제공할 수 있다. 1999년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는 ‘남녀차별금지기준(안)’을 마련하여, 학생 등 교육대상자 선발에서 성별차이를 두지 말 것과 남녀역할에 편견을 갖도록 교육 또는 생활지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두었다. 즉 교육기관에서 여학생에게 현모양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등 남녀의 역할에 대한 편견을 갖도록 지도하는 것을 성차별 행위로 규정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성별역할분담론에 내재된 젠더정치의 의미와 역사적 배경을 평등한 인간화 교육에 도입한다면, 그 효과가 배가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