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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미국의 소리, Voice of America> 한국어 방송에 관한 연구(1945-1950)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연구과제번호 2007-327-A00070
선정년도 2007 년
연구기간 1 년 (2007년 12월 01일 ~ 2008년 11월 30일)
연구책임자 장영민
연구수행기관 상지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1. <미국의 소리> 한국어 방송의 중요성에 관한 인식을 환기하고, 기초적 사실을 고찰한다.
    1942년 8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첫 전파가 발사된 <미국의 소리> 한국어 방송은 해방이 될 때까지 한국인의 항일투쟁 의지를 고취하였다. 국내에서도 일본의 패망을 예고하는 이 방송을 몰래 청취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고, 독립운동가들도 방송에 출연하여 한국인에게 희망을 전달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미국정부의 대한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정책과 군정을 선전하며 우익을 지원하고 공산주의를 배격하는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남한의 국가체제 수립과 한반도 질서 형성에도 중대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또한 <미국의 소리>는 미국의 정치・경제・외교・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정보와 지식을 대량으로 전파하였다. 결과적으로 한국인의 대미 인식과 태도는 말할 나위도 없고, 세계질서의 인식과 가치관의 형성이나 변화, 사회체제의 구조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더구나 직접 방송을 계속 하는 동시에 국내 라디오 프로그램처럼 KBS와 CBS의 방송 네트워크를 통해서 전국에 중계되었으므로 그 정치・사회・문화의 영향력은 막대하였다.
    <미국의 소리>가 한국 현대사에서 차지하던 비중이 이렇게 컸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관련 학술 논문은 해방 이전 방송 활동에 국한된 언론사 논문 단 한 편밖에 나오지 않은 실정이다. 그러므로 기본 자료의 발굴, 수집, 정리, 활용에 역점을 두면서 기초적 사실을 고찰함으로써 한국 현대사와 언론사 분야의 연구를 활성화하는 데 일조하고자 한다.

    2. 정치와 반공 선전매체로서 <미국의 소리>의 기능과 활동을 파악한다.
    <미국의 소리>는 미국정부의 해외선전매체라는 기본적인 성격과 기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어 방송 역시 해방 후 격동하던 정세 속에서 미국정부의 대한정책 목적을 충실하게 선전하였다. 특히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자, 보도 태도는 급격히 반공으로 변경되었고, 남한 단독정부 수립이라는 미국정부의 대한정책의 변화에 보조를 맞추어 갔다. 이후 <미국의 소리>는 중대한 정치 상황에서 미국정부의 정책을 노골적으로, 또는 우회적으로 반영하며 남한 정치세력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미국의 소리>가 소련과 남북한의 공산주의를 배격하고 역선전을 담당하였다. 강력하였던 사이판의 단파 송신시설과 오키나와의 중파 송신시설을 이용하여 소련과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강력한 반공선전과 역선전을 전개하였다. 방송 내용은 공산주의에 대한 불신과 증오를 조장함으로써 남한 주민의 반공의식을 강화하고, 한반도의 분단을 강고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3. <미국의 소리>가 한국 현대문화의 형성과 성격에 미친 영향을 이해한다.
    <미국의 소리> 한국어 방송의 편성을 해방 이전과 이후로 나눈다면, 가장 큰 차이는 해방 이후에는 문화에 관련된 프로그램이 대폭 증가하였다는 점이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미국인의 생활양식, 미국문화를 집중적으로 방송하였는데, 이것은 문화가 미국의 대외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수적인 수단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소리>는 미국문화를 대량으로 방송하였고, 그 결과 한국의 문학・음악・드라마・미술・종교 등 각 분야는 심대한 변화를 겪었다. 오늘날 한국문화가 전통성과 개성을 상실하고 미국적 색채가 농후하게 드러나게 된 원인의 일부를 <미국의 소리>가 제공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을 억설이라고 일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한국 현대문화사와 <미국의 소리>를 비롯한 미국의 문화선전에 대한 관심과 연구의 부족 탓이다. 따라서 한국 현대문화의 형성 초기에 미친, 선전물로서의 미국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역사적 연구가 필요하다.
  • 기대효과
  • 1. <미국의 소리>에 관한 최초의 본격적 연구로서 현대사의 재인식과 새로운 영역 개척에 기여한다.
    해방 이후 미국정부는 한국의 미디어, 특히 방송에 대해서는 대단히 적극적인 정책을 추구하였고, 그에 따라 남한은 물론 한반도의 정세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한국의 현대문화와 방송 시스템도 미국적인 색채를 농후하게 갖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사 연구에서는 방송 등 미디어의 중요성이 아직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주로 정치・군사・외교・분야에 편중된 기존의 현대사와 한미 관계 연구에 미디어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 현대문화의 형성과 성격에 관한 연구에 역사적 토대를 제공한다.
    <미국의 소리> 한국어 방송의 프로그램 중에는 미국의 문화와 예술에 관한 것이 적지 않았다. 또한 주요한 청취자들은 한국사회의 상층에 해당하는 사람들로 해방 이후 국가발전과 현대문화 형성에 중대한 역할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방송을 매개로 한 한국 대중문화 형성과정을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아직까지는 외국 이론에 의존하는 ‘문화연구’나 미디어 연구에 비판적 시각을 담은 역사 연구를 제공할 것으로 믿는다.

    3. 제1차 자료의 발굴과 소개로 언론사 연구를 활성화한다.
    이전에도 <미국의 소리>의 중요성에 대해서 인식하고 연구를 시도하였던 언론사 분야의 연구자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이들의 연구에 일차적 난관이 되었던 것은 자료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중요한 자료를 발굴해서 상세히 소개하려는 역사학의 기초 연구는 앞으로 나올 세부적이며 본격적인 연구의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또한 <미국의 소리>를 언급하기는 하였지만, 기본적이며 단편적인 사실의 기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언론사 교과서도 이 부분을 보충할 수 있을 것이며, 학문후속세대의 양성과 배출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 연구요약
  • 1. 기본 자료의 조사와 수집
    <미국의 소리>에 관련된 자료는 미국에서 생산된 것이 100%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자료의 대부분은 매릴랜드 소재 국가문서기록관리청에, 연구 대상 시기의 방송 대본은 뉴욕분소에 소장되어 있다. 그리고 국립중앙도서관과 국사편찬위원회에서도 일부분을 수집해서 공개하고 있지만, 추가적인 자료 수집이 반드시 필요한 실정이다. 가능하면 현지를 직접 방문해서 자료를 수집할 예정이며,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복사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2. <미국의 소리> 한국어 방송의 제도, 정책, 운영 등 기본 사항을 정리한다.
    아직 우리 학계에서는 <미국의 소리> 한국어 방송에 관한 관심이 크지 않고 알려진 바가 많지 않으므로, 박기성의 연구를 보완하는 수준에서 <미국의 소리>에 관한 전반적인 개관을 할 것이다. 이를 통해서 <미국의 소리>의 기본적이며 전체적인 윤곽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3. 미국의 대한정책과 관련된 방송 정책을 고찰한다.
    <미국의 소리>는 미국정부의 해외선전매체였으므로 방송 운용의 가장 중요한 지침이 되었던 미국정부의 대한정책 및 그 목표가 실제 방송 정책과 프로그램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대한정책의 기본 목표와 방향을 규정하고 있는 SWNCC의 여러 directive에서 방송이나 문화, 좁게는 <미국의 소리>에 해당되는 부분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국무부의 문서에서 구체적인 방송 정책, 프로그램, 스케줄 등에 관련된 사실을 상위의 지침과 연결해서 분석한다. 주한미국공보원(USIS)와 주한미국대사관의 보고도 한국어 방송에 적지 않게 참고가 되었다.

    4. 정치 및 반공 선전방송을 분석한다.
    이 시기 <미국의 소리> 방송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던 뉴스와 같은 시사 프로그램은 정치적 성격을 띤 것이 많았다. 그리고 스트레이트 기사와 논평은 반공이라는 기본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며, 특히 현안에 관련된 보도일수록 반공 편향이 강하였다.
    방송 주제를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하고, 다시 그 하위적인 수준에서 메시지를 세밀히 분석함으로써 미국정부의 목적을 파악할 것이다. 특정한 정치 상황에서 <미국의 소리>가 방송한 주제와 메시지만을 선정해서 분석 작업을 할 것이다. 또한 반공 선전의 변화상도 추적하면서 선전매체로서 <미국의 소리>를 파악하고자 한다.

    5. 미국문화에 관한 방송의 정치적 성격을 이해한다.
    <미국의 소리>에 소개된 미국문화를 선전매체에 의해서 전파된 선전물이라는 관점을 견지하며 그 정치적 성격을 이해하고자 한다. 물론 미국문화 자체와 그것을 전달한 <미국의 소리>를 선전과 정치라는 측면에서만 주목하는 것은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주된 의도에는 미국정부의 세계전략과 대한정책의 목적이 내포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를 전달하는 방송 내용 가운데 선전의 성격이 명백한 사례를 찾아내고 그 정치적 성격을 지적할 것이다.

    6. 청취자의 수용 실태와 방송 효과를 파악한다.
    군정 당국과 미국공보원은 남한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미국의 소리> 청취자 반응 조사를 일찍부터 실시하여 조사 결과를 본국 국무부에 보고하였다. 또한 1949년에는 단순한 반응 조사보다는 훨씬 체계적이며 광범위한 수용 실태 조사가 행해졌다. 이런 자료를 통해서 청취자의 방송 수용 실태와 선전 효과를 알아본다. 그리고 그에 나타난 청취자의 의식과 태도를 통해서 당시 한국사회와 한국인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한글키워드
  • 미국의 소리 한국어 방송 해방 선전방송
  • 영문키워드
  • voice of america korean service liberation propagand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논문은 해방 직후부터 한국전쟁 발발 이전까지 미국에서 방송된 미국의 소리 한국어 방송에 관한 기초적이며 실증적인 연구이다.
    종전 후 미국의 소리는 기구와 인원이 크게 감축되고 소속도 국무부의 ‘국제방송과’로 이전되었다. 그러나 한국어 방송은, 미군의 점령지역이며 좌우 대립이 심하던 한반도를 향한 방송이었으므로, 그 기구와 인력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단파 외에 중파로도 방송하게 되었고, KBS에서도 오전과 저녁 프라임 타임에 중계하였으므로 청취자의 숫자가 크게 늘어났다.
    미국의 소리 방송은 미국정부의 선전매체였으므로 미국정부의 세계전략에, 좁게는 대한정책에 따라서 방송 정책이 수립되고 운용되었다. 남한 점령 초기부터 1946년 9월 한국문제의 유엔이관까지의 방송 정책은 우익을 노골적으로 지지하거나 좌익을 몰아세우지는 않았으나, 제헌선거 국면에서는 적극적인 선전 활동을 하였다. 미국의 소리가 진실을 전달하는 언론매체로서 공정성과 정확성과 중립성 등을 표방하였으나, 본질적으로 선전매체라는 성격과 기능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고, 결정적 순간에서는 선전방송으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한국어 방송의 기본 프로그램은 뉴스, 논평, 특집, 드라마, 음악이었다. 뉴스는 미국뉴스를 포함한 세계뉴스와 남한뉴스로 구분되었고, 논평은 뉴스의 의미를 해설하거나 그 배경을 설명하는 방식이었고, 드라마는 극화한 뉴스쇼였다. 음악방송은 청취자의 관심을 끌고 프로그램 사이에 집어넣는 막간 프로그램과 유사한 것이었다. 특집은 미국을 알리거나 민주주의와 문화 등을 다룬 프로그램이었다. 하루 두 차례 방송된 한국어 방송의 총 방송시간은 적게는 45분과 1시간, 많게는 1시간 30분에 달하였다. 각 프로그램의 방송 시간은 신축적으로 정해졌고, 뉴스 시간이 가장 많았으며, 그 다음은 논평 시간이었다. 드라마와 음악 시간은 뉴스와 논평에 비하여 훨씬 적게 할당되어 전체 방송시간의 약 20% 전후였다.
    방송 주제와 내용의 기조는 미국정부와 군정의 선전에 관련 것이었다. 따라서 방송 주제는 반공에 집중되었고, 미국정부의 대한정책과 미군정, 대외정책, 그리고 소련의 ‘침략주의’와 공산권의 동향을 중요하게 보도하였다. 특히 1947년 하반기부터는 공산주의 비판의 수위가 높아졌고, 공산 측의 선전에 대응하는 역선전 방송도 강화되었다. 또 다른 주요한 주제는 생활양식, 정치와 경제, 학문과 예술, 인물 등 미국 자체를 소개하고 선전하는 것이었다. 뉴스와 논평 프로그램에서는 정치적 성격이 강한 것을, 특집에서는 미국 사회와 문화를 전달하였다고 정리할 수 있다.
    1950년 5월에 나온 ‘미국의 소리에 대한 한국인의 반응 조사’를 통해서 보면, 90%의 응답자가 미국의 소리를 청취하였고, 대학생과 정부관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청취하였다. 선호하는 프로그램은 뉴스, 논평, 음악, 특집의 순이었다. 뉴스에서 더 자세히 듣기를 원하는 주제는 과학이라는 응답이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는 미국에 관한 것이었다. 20대 이하가 좋아한 특집 중에서도 인기가 높았던 것은 ‘당신의 과학’, ‘미국의 문화’,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이었다. 그리고 미국의 소리 프로그램 가운데 선호도가 낮았던 것은 별로 없었지만, 아나운서의 발음과 어휘와 전달력 등에 대해서는 그다지 높은 평가를 하지 않았다. 청취자층이 광범위하였으며, 특히 고학력자와 영향력이 큰 계층이 주요한 청취자였고, 지방보다는 서울 거주자가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고, 청년층보다는 중장년층이 규칙적으로 청취하였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방송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었지만, 적어도 청취자 조사 결과를 본다면, 방송 효과는 적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의 소리가 전체 남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소기의 효과를 얼마나 거두었는지 살펴본다면, 평가는 그다지 긍정적이지는 않다. 해방 이후 라디오가 20만 대에 지나지 않았고, 전체 인구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라디오 청취자였고, 또한 그 중 일부가 미국의 소리를 청취하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미국의 소리는 한국인의 일부만 접근할 수 있었고, 선전 효과도 제한적이었다. 다만 미국의 소리 청취자가 엘리트층이었고, 높은 호응을 보였다는 것은 남한과 미국의 제반 관계에서 주목할 만하다.
  • 영문
  • After the World War II, the posts and personnels of the VOA were remarkedly reduced and the VOA was transferred to the Department of State's International Broadcast Division. But the organization and staffs of the Korean Service were not nearly changed, because the Korean peninsular was the occupied area under the US and Russian Forces, and the struggles were bitter between the Right and the Left. Moreover, it broadcasted by the medium wave as well as the short wave, and the broadcast was relayed by the KBS in the morning and evening prime time hours. So it could get lots of new listeners.
    The VOA was the propaganda medium of the US government, it's broadcast policies were made according to the US foreign strategy and Korean policy aims. The policy of the Korean Service was not to support absolutely for the Right or excessively against the Left from the first period of US occupation to the transfer the Korean matter to the UN on September 1947, but in the first election campaign, it's propaganda hit the peak. Though the VOA presented itself as an organ of journalism, it was naturally the propaganda machine, showed the true face in the moment of decisiveness .
    The basic programs of the Korean Service were news, commentary, feature, and music. News consisted of world news including the American news, and the Korea news, commentary programs explained the meaning of news and it's background. Drama was a kind of the news show dramatized. Music programs were similar to the interlude in a concert. Feature put the introduce and propagandize the culture and democracy of US.
    The Korean-language programs, which were broadcasted twice a month, took from an hour and a half when long to 45minutes or an hour when short. The schedule of each program was flexibly managed but news and editorials took up the largest part, respectively. Much smaller amount of time was allocated to Dramas and music-related programs that took up approximately 20%of the entire broadcasting time.
    Topics and contents were based on US government and propaganda of military administration. In turn, the themes for the broadcasting programs were concentrated on anticommunism, focusing primarily on US government's policies toward Korea, its foreign policies, Soviet's aggressive policies and movements of communists. The criticism on the communism intensified since the end of 1947 and the counter-propaganda against that of communists' was strengthened. The other important themes were to introduce and make public announcements of US itself with its life styles, politics and economy, academies and arts, and famous figures.
    According to the Survey of Koreans' reaction to VOA in May, 1950, 90% of respondents have listened to VOA. College students and administrator in the government spent the largest time in listening to it. The programs of preference were ranked in the order of news, editorials, music and features. The topic that they wish to listen more in depth was science, ranking the information about US into second place. There were not many programs showing low popularity but respondents refuse to give high scores for broadcaster's pronunciation, vocabulary used, and delivery. The listeners greatly varied while it is noticeable that high-education receivers and people of much influence were main listeners, residents in Seoul showed more favorable response, and middle-aged men regularly listened to it instead of the young.
    The report on the Korean reactions to VOA shows the propagandic effects. But the effects to the Korean peoples was very limited, and the evaluation was not so positive. Radio receive sets were only 200,000, about 10% of the population estimated as a radio listener, and a small part of them listened to the broadcast of the VOA. Therefor, the Korean people could hear the VOA, not so many numbers. However, the listeners were the elite in the Korean society and received very favorably.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종전 후 미국의 소리는 기구와 인원이 크게 감축되고 소속도 국무부의 ‘국제방송과’로 이전되었다. 그러나 한국어 방송의 기구와 인력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한국과’의 책임자인 에드워드 쿤즈 박사 외에 한국어 아나운서와 작가와 번역자가 예닐곱 명이 있었다. 과장은 한국어 방송의 제작과 방송과 운영 전반에 걸쳐 관리와 감독의 권한을 행사하였다. 전 세계에 방송된 영어 프로그램은 미국인 작가가 대본을 집필하였다. 한국어 프로그램도 미국인 작가가 집필하고, 그 영어 원고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한국인 아나운서가 대본을 작성하여 방송하기도 하였다. 단파 외에 중파로도 방송하게 되었고, KBS에서도 오전과 저녁 프라임 타임에 중계하였으므로 청취자의 숫자가 크게 늘어났다.
    미국의 소리 방송은 미국정부의 선전매체였으므로 미국정부의 세계전략에, 좁게는 대한정책에 따라서 방송 정책이 수립되고 운용되었다. 남한 점령 초기부터 1946년 9월 한국문제의 유엔이관까지의 방송 정책은 우익을 노골적으로 지지하거나 좌익을 몰아세우지는 않았으나, 제헌선거 국면에서는 적극적인 선전 활동을 하였다. 미국의 소리가 진실을 전달하는 언론매체로서 공정성과 정확성과 중립성 등을 표방하였으나, 본질적으로 선전매체라는 성격과 기능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저널리즘의 원칙을 준수하려는 노력도 기울여졌지만, 결정적 순간에서는 선전방송으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한국어 방송의 기본 프로그램은 뉴스, 논평, 특집, 드라마, 음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때로 발표와 인터뷰 등과 같은 특별 프로그램이 방송되기는 하였다. 뉴스는 미국뉴스를 포함한 세계뉴스와 남한뉴스로 구분되었고, 논평은 뉴스를 자세히 해설하거나 그 배경을 설명하는 방식이었고, 드라마는 뉴스에서 소재를 찾아 극화한 뉴스쇼였다. 음악방송은 청취자의 관심을 끌고 프로그램 사이에 집어넣는 막간 프로그램과 유사한 것이었다. 특집은 미국을 알리거나 민주주의와 문화 등을 다룬 프로그램이었다. 하루 두 차례 방송된 한국어 방송의 총 방송시간은 적게는 45분과 1시간, 많게는 1시간 30분에 달하였다. 각 프로그램의 방송 시간은 신축적으로 정해졌고, 뉴스 시간이 가장 많았으며, 그 다음으로는 논평 시간이었다. 드라마와 음악 시간은 뉴스와 논평에 비하여 훨씬 적게 할당되어 전체 방송시간의 약 20% 전후였다.
    방송 주제와 내용의 기조는 미국정부와 군정의 선전이었다. 따라서 방송 주제는 무엇보다 반공에 집중되었고, 미국정부의 대한정책과 미군정, 대외정책, 그리고 소련의 ‘침략주의’와 공산권의 동향을 중요하게 보도하였다. 특히 1947년 하반기부터는 공산주의 비판의 수위가 높아졌고, 공산 측의 선전에 대응하는 역선전 방송도 강화되었다. 또 다른 주요한 주제는 생활양식, 정치와 경제, 학문과 예술, 인물 등 미국 자체를 소개하고 선전하는 것이었다. 뉴스와 논평 프로그램에서는 정치적 성격이 강한 것을, 특집에서는 미국 사회와 문화를 전달하였다고 정리할 수 있다.
    1950년 5월에 나온 ‘미국의 소리에 대한 한국인의 반응 조사’를 통해서 보면, 90%의 응답자가 미국의 소리를 청취하였고, 대학생과 정부관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청취하였다. 선호하는 프로그램은 뉴스, 논평, 음악, 특집의 순이었다. 뉴스에서 더 자세히 듣기를 원하는 주제는 과학이라는 응답이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는 미국을 필두로 극동과 유럽에 관한 것이었다. 20대 이하가 좋아한 특집 중에서도 인기가 높았던 것은 ‘당신의 과학’, ‘미국의 문화’,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이었다. 그리고 미국의 소리 프로그램 가운데 선호도가 낮았던 것은 별로 없었지만, 아나운서의 발음과 어휘와 전달력 등에 대해서는 그다지 높은 평가를 하지 않았다. 청취자층이 광범위하였으며, 특히 고학력자와 영향력이 큰 계층이 주요한 청취자였고, 지방보다는 서울 거주자가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고, 청년층보다는 중장년층이 규칙적으로 청취하였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방송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었지만, 적어도 청취자 조사 결과를 본다면, 방송 효과는 적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의 소리가 전체 남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소기의 효과를 얼마나 거두었는지 살펴본다면, 평가는 그다지 긍정적이지는 않다. 해방 이후 라디오가 20만 대에 지나지 않았고, 전체 인구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라디오 청취자였고, 또한 그 중 일부가 미국의 소리를 청취하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미국의 소리는 소수의 한국인에게 접근할 수 있었고, 선전 효과도 제한적이었다. 다만 미국의 소리 청취자가 엘리트층이었고, 높은 호응을 보였다는 것은 남한과 미국의 제반 관계에서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미국의 소리 한국어 방송의 역사를 이해한다.
    2. 미국의 대한선전을 이해한다.
    3. 선전매체로서 미국의 소리 한국어 방송을 이해한다.
    4. 최근 극동방송이 재개한 미국의 소리 한국어 방송 중계의 의미를 파악한다.
  • 색인어
  • 미국의 소리 한국어방송 VOA 라디오 방송 국제방송 선전 냉전 심리전
  • 연구성과물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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