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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 상세정보

石上神宮 七支刀에 대한 一考察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우수논문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0-325-A00052
선정년도 2010 년
연구기간 1 년 (2010년 05월 01일 ~ 2011년 04월 30일)
연구책임자 홍성화
연구수행기관 고려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는 廣開土王碑文과 더불어 韓日古代史에 있어서 최대의 쟁점이 되고 있는 石上神宮 七支刀의 銘文을 재검토하여 4세기말~5세기초 당시 한일관계를 재조명하고자 하였다.

    그동안 石上神宮 七支刀에 대한 일본학계의 통설은 『日本書紀』 神功 52년(372년)조에서 백제의 근초고왕이 사신인 久氐를 통해 七枝刀 1구와 七子鏡 1면 및 각 종의 重寶를 바쳤다고 하는 기사를 근거로 하여 백제에서 일본에 헌상한 바로 그 七支刀로 해석해왔다. 따라서 七支刀의 銘文은 『日本書紀』 神功紀에 나오는 삼한 정벌의 기사와 廣開土王碑文에 나와 있는 辛卯年의 기사를 기초로 하여 고대에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했다고 하는 ‘任那日本府說’의 기원으로 삼고 있는데 이용되고 있었다.

    한국학계에서도 일본학계 통설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日本書紀』 神功紀에 백제가 헌상했던 七枝刀라는 기록을 백제가 하사한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이에 따르는 합리적인 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특히 일본학계와 한국학계 공히 1977년과 1978년 찍은 七支刀 銘文의 확대 근접사진과 1981년 NHK에서 촬영한 X-레이 사진에 대해 크게 주목하지 않고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 왔다.

    하지만, 본 연구에서의 銘文 재검토 결과 그동안의 통설과는 다른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게 되어 한일관계사상의 획기적인 전환을 이루게 되었다. 즉, 七支刀가 제작된 시기는 기존 통설에서 보아왔던 369년이 아니라 408년으로서, 七支刀는 고구려와 백제가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시기에 백제의 지원군으로 왔던 倭王에게 하사되었던 칼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본 연구 결과 그동안 七支刀를 야마토 정권의 韓半島 南部 經營論을 합리화하는 유력한 증거로 보았던 학설은 부정되었다.

    이를 통해 본 연구는 궁극적으로 향후 고대 한일관계에 대한 메타담론을 구축할 수 있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 기대효과
  • 본 연구를 통해 그동안 七支刀와 관련된 많은 난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하여 4~5세기 고대사상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생겼다. 따라서 고대 한일관계를 재조명하는데 향후 학술적 파급효과가 기대된다.

    그동안 『日本書紀』 神功紀와 관련해서는 2주갑 인상설을 적용, 4세기 중엽의 역사적 사실로 보아 일본의 古代王國의 형성과 더불어 이해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를 통해 神功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對韓半島 관련 기사가 야마토 정권의 韓半島 南部 經營論의 출발로 인식되어왔다. 이는 4~5세기 倭에 대한 실질적인 분석이 이루어지지 못했던 데에 그 원인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5세기의 倭에 대해서는 『日本書紀』 仁德紀에서 雄略紀에 이르는 기사가 기년의 문제로 인해 당시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에 그동안 『宋書』 및 『南齊書』, 『梁書』 등의 중국사료를 통해 단편적으로 파악되어 왔다. 하지만, 『宋書』 등 중국사료에 등장하는 倭의 기사도 倭 5王의 한반도 남부에 대한 제군사권의 자칭이나 제수 요청 등으로 인해 당시의 역사상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에 한계를 보여 왔다.

    따라서 5세기대에 한반도와 일본 열도에서 나타나는 현상에 대한 실질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5세기초에 제작된 七支刀의 銘文을 새롭게 해석한 본 연구를 통해 당시 百濟와 倭의 관계를 면밀히 검토해보아야 할 필요가 생겼다. 이는 百濟와 倭의 왕족 간에 혼인에 의한 久爾辛王의 왕통 계보와의 연관성에서 촉발되었을 가능성이 타진되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百濟와 倭, 더 나아가서는 고대 한반도와 일본 열도에 대한 새로운 연구의 틀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기존의 한일관계 연구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百濟와 倭의 관계에 대한 발굴과 복원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 내는데 기여할 것이다.

    또한 근대 이후 일제침략에 이르기까지 日本人의 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征韓論의 바탕에 神功의 三韓정벌의 인식이 있었던 것을 고려하면, 七支刀의 銘文 해석을 통해 『日本書紀』에 나오는 神功의 三韓정벌을 원천적으로 부정할 수 있게 되어 학문적 변화는 물론, 日本人의 인식에도 변화를 촉구하게 되었다. 향후 한일관계의 미래상을 새롭게 그려나가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판단된다.
  • 연구요약
  • 그동안 七支刀에 관한 연구는 銘文에 나오는 연호를 東晋의 369년인 것으로 보고 『日本書紀』 神功紀에 나오는 七枝刀와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여 4세기 중엽에 제작, 전달된 것으로 보아왔다. 이에 따라 백제의 헌상설, 백제의 하사설, 동진의 하사설 등 한일양국 학계의 다양한 논의가 거듭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 七支刀의 X-선 촬영에서 나타난 銘文을 재판독한 결과, 그동안 ‘泰□四年五月十六日丙午’로 보았던 七支刀의 제작일을 十一月十六日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4~6세기 중에 11월16일이 丙午의 日干支를 가진 연도를 산출하여 七支刀의 銘文을 재해석하면 七支刀는 369년이 아닌 408년 백제의 腆支王 4년 11월16일에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뒷면의 ‘百濟王世子奇生聖音故爲倭王旨造’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었지만, ‘奇生聖音’의 銘文은 ‘聖音으로 진귀하게 혹은 신성하게 태어나다’로 해석할 수 있어 ‘부처님의 가호로 왕세자가 진귀하게 태어나 왜왕에게 이 칼을 보낸다’는 뜻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를 통해 七支刀는 久爾辛王이 태어난 408년에 만들어져서 백제의 腆支王이 吉祥의 뜻으로 倭王에 하사했던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의 七支刀 명문 재해석 결과, 그동안 七支刀를 『日本書紀』 神功紀에 근거하여 369년 백제에서 제작되어 372년 백제가 일본에 헌상했다는 설은 타당하지 않게 되었다.

    七支刀는 銘文에서 백제가 泰□라는 연호를 썼던 것, 그리고 銘文의 ‘侯王’은 백제에 신속하고 있던 侯王이라는 의미로 해석되어 百濟王世子인 久爾辛이 진귀하게 태어난 것을 계기로 倭王에게 하사된 칼로 볼 수 있다.

    즉, 한반도 내에서 백제와 고구려가 치열한 전투를 하던 408년 11월 16일 七支刀가 제작되어 이듬해인 409년 『三國史記』 腆支王 5년에 보이는 倭國의 사신에게 전달되었던 것이다.
  • 한글키워드
  • 廣開土王碑文,日本書紀,腆支王,七支刀,久爾辛
  • 영문키워드
  • Ilbonseogi (日本書紀),King Junji (腆支王),Kuisin (久爾辛) ,Seven-Branched Sword (Chiljido,Inscription of King Kwanggaeto (廣開土王碑文),七支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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