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식민지사라는 역사를 배경으로 전쟁 전후의 시기에 걸쳐 활동해 온 일본 작가들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은 전쟁을 둘러싼 지식인으로서의 발언이나 식민지정책에서의 역할이 우선적인 추궁의 대상이 된다. 일본민족으로서의 역사적 공동책임 의식을 묻는 것이다. ...
전쟁과 식민지사라는 역사를 배경으로 전쟁 전후의 시기에 걸쳐 활동해 온 일본 작가들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은 전쟁을 둘러싼 지식인으로서의 발언이나 식민지정책에서의 역할이 우선적인 추궁의 대상이 된다. 일본민족으로서의 역사적 공동책임 의식을 묻는 것이다. 식민지체험을 갖고 있는 작가일 경우 식민지에서 영위했던 지배민족으로서의 의식 여부를 둘러싼 비판은 더욱 가중된다. 식민지 통치라는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사실에는 가해자와 피해자, 침략자와 피침략민이라는 대립 구조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노벨상을 받은 귄터 그라스가 자서전 『양파 껍질을 벗기면서(Beim Hauten der Zwiebel)』를 통해 밝힌 소년시절의 경력은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그라스가 열일곱 살에 나치 무장친위대에 입대하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밀란 쿤테라 역시 프랑스로 망명하기 전에 대학에서 제적을 당한 후 군인으로서 체코 전쟁에 가담했다. 제2차세계대전이 진행 중이던 당시 자신은 천황을 위해 죽자고 다짐하기도 했다고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말한다. 그러나 이들은 충분한 역사인식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개인의 과거사를 이야기해 왔다. 그렇지만 역사적인 책임의식과 상관없이 이러한 기억들이 다루어지는 수난사로서의 이야기들도 있다.
근년에 문제가 되었던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의 『요코 이야기(So Far From the Bamboo Grove)』는 저자의 왜곡된 역사기술이 원인이었다. 당시 11세였던 소녀 요코의 작위적인 기억에 바탕을 한 이 이야기는 그녀의 아버지가 731부대의 고위 간부였을 가능성 등이 제기되면서 문제의 소지가 더욱 불거지기도 했다. 그녀의 기억 방식에 있어서의 무책임성에는 분명 잘못이 있다. 또 귀송 사업으로 인해 당시 요코와 같이 피란의 길에 올라 일본으로 가게 된 외지일본인들의 체험기가 ‘전쟁 피해자’로서의 일본인이라는 이미지 형성에 큰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현재까지도 일본 스테디셀러로서 재간되고 있는 후지와라 데이(藤原てい)의 『흐르는 별은 살아 있다(流れる星はいきている)』는 ‘수난담’으로서의 국민적 이야기의 전형으로 평가받고 있다. 제대로 된 역사인식에 대해 비판을 하는 시각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국민적 이야기 속에 나타나 있는 외지출신 일본인들의 아이덴티티에 관해 새롭게 조명해 볼 필요성도 있다고 본다.
외지출신 일본인들은 자신의 과거사를 감추고 ‘순수 일본인’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목숨을 건 피란길 끝에 도착한 일본의 첫 인상이 낯설고 이질적인 장소 같았다고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도, 대외적으로도 그들의 이야기는 수난담만이 강조되어 왔다. 민족 내셔널리즘의 강화를 위해 이들의 개인사는 중요하지 않은 부수적인 문제로 간과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귀송 사업’이라는 귀국조치가 내재하고 있는 폭력적 의미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귀국조치 명령으로 식민지에서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던 ‘귀송자’들은 철저히 비전투원으로서의 일반인을 가리키던 말이다. 식민지정책과 관련된 일본인 관료로서 귀송선을 타고 돌아간 사람들, 그리고 군관계자의 경우에는 ‘복원자(復員者)’나 ‘복원병(復員兵)’이라 불렀다. 이들은 일반인과 다르게 귀국 후 적절한 보상과 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또 귀송자들은 자신의 근거지와 재산을 모두 버리고 규정에 따라 1천 엔씩의 돈만을 갖고 귀송선을 탔다. 남의 땅에서 얻은 재산이기에 당연히 그대로 두고 가야한다는 연합군의 조치였다. 이는 당시 재일조선인들을 비롯해 귀국조치를 받은 재일외국인에게도 동일하게 내려진 명령이었다. 재일조선인들이 일본에게 모든 재산권을 박탈당한 채 단돈 1천 엔만 허용되었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하는데, 이런 시각은 제한적인 사실만을 조명했다고 볼 수 있겠다.
본 연구 과제는 몇 가지 의미 있는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선은 귀송 사업이 갖는 의미를 일본 내에서 이질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었던 식민지출신 일본인상을 구체적인 텍스트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일본에서도 귀송은 민족 수난사라는 이름으로 미화되어 민족 내셔널리즘 형성의 재료가 되었다. 식민지출신 작가들이 갖는 정체성이 문제시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식민지출신이라는 과거를 감추며 살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이 문학적으로 형성해 놓은 고향상실감, 그리고 국가, 민족에 대한 대항 의식은 지금껏 전후일본의 미군점령이라는 한계적 시야 속에서만 언급되었다. 그러나 본 연구 과제는 그들의 원체험을 선명히 하고 그 원체험이 그들의 문학에 미치고 있는 영향을 분석해 보겠다. 전후일본에 존재하는 외지출신 작가들의 존재감을 부각시켜 과거의 식민주의가 낳은 균열로서의 전후일본상을 조명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현대 일본 문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제시되고 있는 ‘월경(越境)’의 문제를 <외지 귀송>작가들의 경계성을 통해 살펴본다. 여기서 말하는 경계성은 여러 의미에서의 경계넘기이다. 일본 국민의 내셔널리즘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수행한 ‘국어’라는 언어 내셔널리즘의 경계를 넘어 활동하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 다와다 요코, 쓰지 히토 나리 등이 주목을 받고 있다. 자국어의 경계를 넘음으로써 국가 간의 지형적 경계도 넘고 있는 월경 작가들이다. 현대적 의미에서 이러한 경계넘기는 세계를 무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국경, 민족의 경계넘기라는 여러 의미에서의 월경은, 문학의 장르간의 경계넘기와도 관련이 있다. 최근의 이러한 경향의 문학적 풍토를 제공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작가들의 대부분이 <외지 귀송파>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이 가장 영향을 받은 일본 작가로서 거론하여 화제가 된 아베 고보(安部公房). 그는 관념적 순수소설의 문단 풍토에 쉬르레알리즘 수법을 도입해 대중적 아방가르드 문학의 절정을 이루었다. 또한 순수소설, SF소설, 라디오극본, 시나리오, 희곡 등의 장르적 경계를 넘나들기도 하였다. 역시 순수소설로 시작했으나 광고카피, 번역, 작사, 극본, 시나리오 등의 창작을 통해 엔터테인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쓰키 히로유키(五木寛之). 일본판 『백경』이라는 호평을 받은 『고래의 신(鯨神)』으로 등단해 일본 관능소설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우노 고이치로(宇能鴻一郎)는 사가 시마쇼라는 필명으로 추리소설계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조선에서 귀송된 히노 게이조(日野啓三)는 외지출신으로서 일본어 구사에 있어서의 한계를 고백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을 비롯한 외지출신 작가들의 작품 대부분이 유려한 일본적 표현이 불가능한 원인으로서 원체험을 들고 있다. 그들의 원체험이 순수소설 창작에의 한계와 연동되어 그 돌파구를 대중성 있는 각종 분야로 이행함으로써 찾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들 <외지 귀송파>의 공통적인 특색으로서 작품 내에 외부인을 등장시켜 그 외지인의 시선으로 일본을 묘사하고 있는 것 역시 그들의 원체험과 깊이 관련이 있다. 이러한 풍토가 현대 일본 작가들에게 미친 영향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다. 이렇게 민족, 국가적 경계넘기, 문학 장르간의 경계넘기라는 패러다임의 근간을 제공한 <외지 귀송>작가들의 문학사적 지형을 새롭게 그려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판단되며, 일본 내에서도 이러한 연구는 아직까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아직까지 한일관계는 일본 정치 지도자의 야스쿠니 참배 문제나 역사 망언, 독도 영유권 문제 등을 둘러싸고 좋지 않은 마찰을 빗고 있다. 반면에 이러한 정치적 기류와는 달리 문화교류는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한류가 일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한국에서는 일본 소설이 독자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이와 같은 문화 교류의 긍정적 측면은 정치적인 현안으로 고착된 냉각 상태를 완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의 민족 내셔널리즘의 분석과 더불어 그 민족 내셔널리즘이 낳은 배타적인 태도를 넘어서려는 <외지 귀송>작가들의 실천에 대한 고찰은 현재 시점에서 더욱 중요시된다. <외지 귀송>작가들은 국가적 역사의 과오를 민족이라는 굴레 때문에 평생 ‘원죄’로 짊어져 왔다. 그로 인해 일본, 일본인이라는 틀 속에서 안주하며 외부에 대한 경계를 만드는 자세를 버리고 그 내부에서 끊임없이 일본, 일본인을 상대화해 온 <외지 귀송>작가들의 자기인식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전후일본 문학자들에 대한 한시적 시각에 의한 연구 자세에서 벗어나 일본을 다각적으로 바라보는 시야를 획득함은, 한국 문학의 세계화에 대한 폭넓은 안목의 확보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점에서 본 연구 과제의 현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