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조선시대 국가의례의 기본구조를 갖추는데 있어서의 국장의 절차와 그 의미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길례를 이해하고, 한편으로는 흉례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수행되었다. 국조오례의의 흉례는 중국황제의 상에 ...
이 연구는 조선시대 국가의례의 기본구조를 갖추는데 있어서의 국장의 절차와 그 의미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길례를 이해하고, 한편으로는 흉례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수행되었다. 국조오례의의 흉례는 중국황제의 상에 대한 거애의와 국휼, 사왕의 즉위의, 국왕의 거애와 견사치전의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국가의례의 본질을 이상적으로 담고 있다. 중국과 조선의 예제적 외교질서, 국장, 가례의 하나로 볼 수 있는 즉위의 그리고 흉례의 길례로의 변전 과정 등은 종법사회의 왕권과 그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게다가 흉례는 국가의례 중에서 가장 난해한 분야이며, 죽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로 연구 자체를 기피하는 현상 또한 없지 않다. 그리하여 국조오례의 흉례를 분석하여 국가의례의 본질과 성격 및 당시 지배층이 건설하고자 했던 사회의 특성과 왕권의 의미를 추적하고자 했다.
먼저 목차를 제시해 보면, 1. 머리말, 2. 선초 국상의 거행과 흉례의, 3. 국조오례의 흉례의 의례구조, 4. 흉례 구조상의 특징과 왕권, 5. 흉례 의주에 나타난 예의(禮義)와 질서, 6. 맺음말 등 6개의 장으로 나누어 서술했다.
연구방법은 구조오례의 분석에 있어서는 의주(儀註)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전제되어야 한다. 91개의 의주로 구성된 흉례의 각 절차에 들어있는 의절과 용어 및 의물(儀物)은 정형화된 지위와 상징을 담고 있다. 따라서 국가의례와 당시 사회의 성격을 밝히는데 있어서는 반드시 필요한 방법이라 하겠다.
또한 국조오례의의 내용을 고려사 예지, 세종실록 오례, 중국의 예서 등과 상호 비교하여 검토했다. 고려사 예지, 흉례에는 국휼(國恤), 진위(陳慰)하는 의식, 태묘(太廟)에 부제(祔祭)하는 의식 등 11개 의례가 있는데, 상세 의주는 마련되어 있지 않지만 그 비교를 통해 고려와 조선의 국가적 성격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당개원례의 체제를 골간으로 하는 세종실록 오례, 흉례와 비교하여 국조오례의로 정착되는 과정을 고찰하고, 중국의 예제 자료를 통해 의례의 의미와 조선의 흉례의 고유성을 밝히고자 했다.
대상 자료는 고려와 조선, 중국 자료를 고루 활용했다. 고려는 고려사 예지가 중심이며, 조선은 조선왕조실록과 세종실록 오례, 국조오례의 및 법전류와 문집류 그리고 중국은 의례삼서, 명집례, 당개원례, 통전, 문헌통고, 오례통고, 이십오사 등이다. 중국측 자료는 조선의 의례 의주의 모델이 되었다는 점에서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
연구내용은 먼저 조선 초기 흉례의의 제도화 과정을 밝히고자 했다. 고려는 국휼(國恤) 의식(儀式)을 제정하지 아니하여 사서(史書)에 보이는 대강만을 고려사에 수록하였다. 조선은 신덕왕후 강씨의 승하 때부터 논의되기 시작하였으며, 세종대에 이르러 흉례 등에 대한 정비를 적극 추진했다. 이것이 세종실록 오례로 일단락되었다가 국조오례의 흉례로 완성된 것이다. 국조오례의 흉례 의주는 첫째, 중국황제를 위해 하는 거애의, 둘째, 국왕의 상장례(국휼), 셋째, 청시사시의(請諡賜諡儀), 넷째, 국왕이 친족들을 위해 하는 거애와 견사치전의(遣使致奠儀)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의주의 내용과 특징을 밝혀 흉례의 구조와 의미 및 의례적 성격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특히 국왕의 권위 실현과정과 그 상징적 요소 및 의미, 일반백성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유인요소 그리고 사상적 배경과 연원, 나아가서 통과의례의 측면에서 흉례는 이탈과 전이, 통합의 순환모델을 갖추고 있어, 조선의 국가통합 및 사회질서 확립에 어떠한 기능을 했는지를 밝히고자 했다. 또한 흉례 청시사시의에 나타난 왕권의 정통성을 종법사회의 성격에 비추어 이를 밝히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