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전부 세 차례 개최된 중국의 민국기 전국미술전람회(이하 전국미전)에 드러난 국민국가와 미술에 관한 내용을 규명하기 위한 것이다. 이와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2년여 기간 동안 연구를 진행하였다. 2011년 7월 1일에 시작된 1년차 연구에서는 먼저, ...
본 연구는 전부 세 차례 개최된 중국의 민국기 전국미술전람회(이하 전국미전)에 드러난 국민국가와 미술에 관한 내용을 규명하기 위한 것이다. 이와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2년여 기간 동안 연구를 진행하였다. 2011년 7월 1일에 시작된 1년차 연구에서는 먼저, 중국에서 ‘美術’이라는 한자어의 수입과 그 의미의 변천, 그리고 전국미전의 설치과정을 규명하기 위하여 왕국유(王國維), 채원배(蔡元培) 등의 문집과 그들이 쓴 미술 관련 문헌을 조사하고, 청나라 말기 및 중화민국 정부의 관련 공문서를 분석하였다. 또한 2011년 8월에는 중국 상해 현지조사를 실시하여 『美展特刊』과 『美術』, 『美術界』 등 방대한 문헌자료를 수집함으로써 전국미전의 설치과정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어 2012년 1월에는 대만을 방문하여 顔娟英, 劉瑞寬 등 이 주제에 관한 전문가들을 면담하여 의견을 교환하고, 國立故宮博物院 도서문헌관, 中央硏究員 도서관 등에서 관련 자료를 입수함으로써 향후 연구의 진행에 기여할 중대한 지침을 얻었다.
2차 년도에는 제1회 전국미전의 양상을 규명하는 데 집중하였다. 1차 연도 연구를 통해 입수한 전국미전 도록 『미전특간』의 내용을 입수, 분석하였고, 2012년 7월에는 일본을 방문하여 제1회 전국미전에 참여한 일본인 미술가들의 관련한 자료를 입수함과 아울러 그들이 전국미전에 참여한 배경을 밝히는 데 필요한 자료를 입수하고 일본근대미술사 전문가들과 의견을 교환하였다. 2013년 4월에는 중국 광주를 방문하여 광동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미전특간』, 『미전휘간』 등의 자료를 입수함으로써 향후 충실한 연구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먼저, 제1회 전국미전의 도록인 『미전특간』의 분석을 통하여 비석이나 청동기 등 금석학의 연구대상인 조형물의 탁본과 출품자의 감상문을 합친 특이한 것임을 밝혔다. 그 감상문은 마치 회화에서 제문(題文)과 같은 성격을 띤 것으로, 1차 연도연구에서 중국의 ‘미술’ 개념이 서화(書畵), 서화(西畵), 조소, 공예미술, 건축, 촬영 즉, 사진, 그리고 중국 특유의 장르인 금석 등을 포함하는 분야로 인식되었음을 밝힌 점과 함께 2차년도 연구의 중요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개별 장르의 양상은 보수와 진보의 편차가 커서 당시 출품된 국화(國畵)의 경우는 명나라 말기 이래의 관념적인 산수화가 큰 비중을 차지하였고, 사생을 통해 그린 동물화가 일부 포함되어 있는 정도였다. 그 만큼 전통성이 강하였던 국화의 양상은 적어도 전통회화인 국화에서는 다수 화가들이 보수적인 성향을 나타내고 있었던 사정을 말해주었다. 그에 비하면 서양화의 경우 정확한 데생에 안정된 구도를 특징으로 하는 고전적인 사실주의 작품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으나 르누와르나 세잔느, 고갱과 같이 인상주의나 후기인상주의 경향을 띤 작품들의 수량도 적지 않았다.
제1회 전국미전에 참여한 일본미술가들의 출품작의 전모와 그들의 참여 동기, 그리고 그들의 작품이 가진 특징을 규명한 것은 2차 년도의 연구성과 가운데 중요한 일부분이다. 와다 에이사쿠(和田英作)와 같은 소위 제도권 미술가들은 물론이고 이시이 하쿠테이(石井柏亭)나 우메하라 류자부로(梅原龍三郎)와 같이 이과회(二科會) 멤버였던 재야화가들도 참여함으로써 당시 중국과 일본의 문화교류에서 전국미전이 가지는 중요성을 규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이 전국미전에 참여하게 된 것은 중국미술가 류해속과 이시이 하쿠테이와의 교류도 있었지만, 일본 외무성이 중국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양국의 유대를 강화할 목적으로 일찍부터 중국에 접근한 결과였다. 마사키 나오히코(正木直彦)와 같은 미술행정가를 매개로 이루어진 이와 같은 교류는 1920년대 중일교류는 물론이고 일본의 대중국 외교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2013년 중국 조사를 통하여 입수한 자료 『미전휘간』은 전국미전의 성격과 의의를 논한 글이 실려 당시의 사정을 보다 자세히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당시 『미전휘간』에는 출품작의 소개는 물론이고 전국미전의 성격을 둘러싸고 제기된 여러 미술가의 견해는 논쟁으로 발전하여 당시 미술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서지마(徐志摩)와 서비홍(徐悲鴻)을 중심으로 하여 펼쳐진 논쟁은 당시 중국에서 서양 모더니즘에 대한 인식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의 성격을 가진 것이었다.
1차 년도와 2차 년도의 연구결과는 각각 「근대 중국의 ‘美術’ 개념과 1929년 전국미술전람회」,『개념과 소통』9(한림과학원, 2012)와「민국기 중국의 전국미술전람회 설치와 일본」,『한국근현대미술사학연구』26(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13)로 학술지에 게재되었다. 향후에 「민국기 제1회 전국미전의 미술논쟁」과 「중국 민국기 전국미전의 국화(國畵)」라는 주제로 추가 논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들 논문을 통하여 전국미전을 무대로 전개된 중국근대미술의 다양한 양상을 밝히고자 하며, 중국근대미술을 재구성하는 토대로 삼고자 한다. 또한 3차 년도에 진행한 일본의 문전과 제전, 조선미전 등 동아시아 근대미술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관전들과의 비교연구를 통하여 동아시아 근대 관전의 공통점과 특수성을 규명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