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10년”, “거꾸로 가는 민주주의” 등의 표현들이 요즘 대화 속에 자주 등장한다. 물론, 이러한 표현들은 최근에 생겨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사회·정치·경제상태의 퇴보에 대한 불만과 실망의 표현임에 틀림없고, 우리에게 ‘문명과 문화가 발전하 ...
“잃어버린 10년”, “거꾸로 가는 민주주의” 등의 표현들이 요즘 대화 속에 자주 등장한다. 물론, 이러한 표현들은 최근에 생겨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사회·정치·경제상태의 퇴보에 대한 불만과 실망의 표현임에 틀림없고, 우리에게 ‘문명과 문화가 발전하고 있는가?’라는 문제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결국 우리의 사유는 인류역사의 진보문제로 확장될 수밖에 없다.
역사의 진보에 대해 강한 확신을 갖고 그 징표를 찾기 위해 오래 동안 노력하였던 칸트는 역사의 진보문제와 관련하여 우리에게 많은 논의거리를 남겨놓았다. 그는 역사를 인간의 자유의지가 외부로 나타난 현상이라 규정짓고, 역사의 과정을 이성능력의 계발을 통한 도덕화의 과정으로 보기 때문에, 그에게 역사의 진보 문제는 바로 인류 전체의 진보, 도덕의 진보, 자유 실현의 문제였다. 따라서 사회의 발전이나 역사의 진보에 관한 고금의 논의들은 칸트의 역사철학적 사유를 간과할 수 없다.
칸트는 역사철학이라는 제목으로 하나의 독립된 저서는 남기지 않았지만, 말년에 이르기까지 시기적으로 간격을 두고 출판된 많은 논문들에서 역사철학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 나갔다. 「낙관주의에 관한 시론」(1759),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1784), 「세계 시민적 관점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1784), 「헤르더의 인류역사의 철학에 대한 이념」(1785), 「추측해 본 인류역사의 기원」(1786), 「이론적으로는 옳을 수 있지만 실천을 위해서는 쓸모가 없다는 속언에 대하여」(1793), 「만물의 종말」(1794), 「영구평화론」(1795), 「다시 제기된 문제: 인류는 더 나은 상태를 향해 계속해서 진보하고 있는가?」(1798) 등의 논문들 외에도 『판단력비판』(1790), 『실용적 관점에서 본 인간학』(1798), 『도덕형이상학』(1797) 등과 같은 저서들에서도 역사의 진행과 진보의 문제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역사철학에 관한 칸트의 입장이 이처럼 여러 논문과 저서에 산재하는 이유는 그의 역사철학이 인간학, 윤리학, 정치학, 형이상학, 인류학 등의 내용을 심도 있게 다루기 때문이다.
칸트는 말년까지 초월철학적 관찰방식을 통해 자신의 철학체계를 완성해 갔다. 그의 역사철학적 논문들의 발표시기는 비판철학의 시기와 많은 부분 겹쳐있으며, 그 논문들 곳곳에 비판철학적 시도들을 찾아 볼 수 있다. 본 논문은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칸트 역사철학적 논문들과 초월철학의 관계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하고, 진보문제에 대한 그의 입장을 한국의 현실에 비추어 반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