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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당패의 어릿광대들 연구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학문후속세대양성_시간강사(인문사회)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1-35C-A00537
선정년도 2011 년
연구기간 1 년 (2011년 09월 01일 ~ 2012년 08월 31일)
연구책임자 최락용
연구수행기관 전북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한국의 전통 공연 예술에는 여러 종류의 광대들이 있는데, 소리광대, 재담광대, 줄광대, 어릿광대 등이 그것이다. 소리광대, 재담광대, 줄광대가 공연의 주역이라면 어릿광대는 주로 그조역 혹은 주역의 상대역을 담당했다. 아울러 온갖 잡스런 놀이에서 우스운 말과 몸짓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역할을 담당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서양의 어릿광대 그것과 전혀 다름이 없다. 어릿광대는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등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 걸쳐 보편적으로 존해왔다. 물론 주역을 맡았던 소리광대, 재담광대, 줄광대 등도 때로는 어릿광대와 같은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런데 배역에 '어릿광대'라는 이름을 본격적으로 달고 등장하는 공연 예술은 남사당패의 '어름(줄타기)'과 '살판(땅재주)', 그리고 '발탈' 등 3가지 뿐이다. '버나(대접돌리기)'의 '매호씨'도 어릿광대에 다름 아니다. 어름은 단독 공연도 가능하지만, 살판과 버나는 단독 공연보다는 대개가 남사당패 공연이 올려질 때, 전체 레러토리의 일부분으로 꼭두각시놀음과 덧뵈기, 풍물놀이, 어름 등과 함께 공연되곤 한다.
    물론 탈놀이의, 말뚝이나, 취발이, 무당굿의 보조무당 등도 어릿광대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연구 범위를 장르별로 나누기 위해 본 연구자는 일단 남사당패의 어릿광대들을 선택했다. 본 연구자는 꼭두각시놀음을 연구하면서 남사당패에 대해서도 얼마간의 연구를 했었다. 남사당패 연구는 항상 미완의 숙제였고, 연구를 재개한다면 어릿광대들을 가장 먼저 연구하리라 다짐했었다.
    왜냐하면 석사 논문인 '꼭두각시놀음의 산받이 연구-한국과 서양 전통 공연 예술의 유사 직능자들과의 비교를 중심으로'를 쓸 때, 산받이와 유사한 역할을 담당하는 무당굿의 악사, 탈놀이의 악사, 판소리의 고수 등을 비교했는데, 역시 비슷한 역할을 했던 남사당패의 어릿광대들은 다루지 않고, 남겨두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숙제였다.
    본 연구자는 박사 학위 이후의 연구 과제를 '한국의 어릿광대 연구'로 정한 바 있다. 그런데 한국의 어릿광대에 관한 연구는 어느 정도 진척이 되어 있었는데, 특히 본 연구자의 박사 논문 심사위원장이셨던 고승길 교수님은 이미 일찍이 인도와 서양, 중국, 한국의 어릿광대들을 비교 연구했다. 또한 몇몇 선학들은 무당굿과 탈놀이, 판소리의 어릿광대적인 양상 연구도 선행했다. 그러나 본 연구자는 외람되게도 선행 연구에 대한 이쉬움이 상당히 컸으며, 미진함을 느꼈다.
    본 연구자는 '한국의 어릿광대'에 관한 연구를 위해서 먼저, 세계의 어릿광대의 비교를 통해 차이점과 공통점을 드러내어 한국 어릿광대만의 고유한 특성을 찾으려했다. 그런 후에 무당굿, 풍물굿, 탈놀이, 인형극, 판소리 등의 어릿광대 연구를 장르별로 차례차례 천착하려했다. 그러나 이미 선행 연구가 있는 장르는 잠시 보류하고, 그동안 숙제로 남긴데다, 선행 연구가 거의 없다시피하며, 남사당 종목들에 '어릿광대'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배역을 먼저 연구하는 쪽으로 선택하려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한국연구재단의 '시간강사연구지원사업'의 취지에 적합하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본 연구자는 '남사당패의 어릿광대들 연구'를 필두로, '한국의 어릿광대-세계 어릿광대들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한국의 어릿광대-무당굿', '한국의 어릿광대-풍물굿', '한국의 어릿광대-탈놀이', '한국의 어릿광대-인형극', '한국의 어릿광대-판소리'라는 제목(가제)으로 논문을 계속 집필해 나갈 계획이다. 현장 공연과 이론이 결합된 본격적인 연구를 통해 서양의 어릿광대(Clown), 익살광대(Buffon), 바보광대(Fool), 궁정광대(Jester), 요술광대(Trickster), 인도의 비두사카 등에 못지 않은 한국 고유의 특성을 담지한 어릿광대가 존재했음을 증명하고자 한다.
  • 기대효과
  • 광대에 관한 연구는 정노식 이후 이두현, 서연호 등 원로 학자들을 거쳐 전경욱, 사진실, 손태도 등 많은 선학들에 의해 깊고 폭넓게 연구되어 왔다. 그러나 어릿광대에 관한 연구는 고승길 이후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게 사실이다. 서양에서는 어릿광대에 관한 연구가 오랫동안 심층적으로 진행되어 대중과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현실과 문학과 영화 등 문화예술의 중요한 소재가 되고 있는 점을 놓고 볼 때, 옛부터 존재해왔던 우리의 전통적인 어릿광대의 연구도 이제는 시도해볼만한 시점이 되었다고 본다.
    옛 기록을 비롯한 각종 자료의 검토 및 전통 공연 예술을 분석을 통해 이러한 작업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어릿광대의 역할은 주역이 아닌 보조역에 지나지 않았고, 신분의 비천함 때문에 그들의 존재감이 사람들의 의식에 크게 어필하지 못해왔다. 지금까지 한국 전통 공연 예술에 대한 학계의 연구가 상당한 정도로 축적된 만큼, 이제는 그동안 사람들과 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부분들을 검토해 마저 연구하는 것도 그리 나쁜 시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시도는 오히려 빈 곳을 메워 한국 전통 공연 예술에 대한 학문적 완성도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 본다. 따라서 본 연구자는 어릿광대 시리즈 연구를 마치면, 한국 전통 공연 예술의 '악사'에 관한 연구를 더 진행할 계획이다. 악사 역시 보조역이다. 삶과 역사, 현실은 모두 거대한(enormous) 숫자의 보조역들이 지탱했다. 어쩌면 그들은 마이너리티가 아니메조리티(enormous)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의 어릿광대에 관한 연구는 미진한 감이 없지 않다. 더구나 산발적이기까지 하다. 본 연구자는 앞으로 장르별로 천착해서 현장 공연과 이론을 결합한 한국 고유의 어릿광대의 특성을 밝혀내고 싶다. '남사당패의 어릿광대들 연구'가 그 첫걸음이다. 더욱이 이 연구는 심우성 선생 이후 본 연구자가 처음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연구의 의의가 클 것으로 생각한다.
  • 연구요약
  • 남사당패의 '어름(줄타기)'의 어릿광대, '살판(땅재주)'의 어릿광대, '버나(대접돌리기)'의 어릿광대인 '매호씨', 그리고 남사당패에서 비롯되어 경기도 광대들이 맥을 잇고 있는 '발탈'의 어릿광대 혹은 주인의 역할은 각각 어름산이와 살판쇠, 버나잡이, 그리고 발탈 등 주역의 상대역(counterpart)인 보조(assistant) 역할을 하는 배우들이다. 이들은 공연을 하는 배우이기도 하지만, 공연자와 청관중을 매개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이들은 공연자와 청관중과의 '중간적인 영역(혹은 전이적인 영역, liminality)', 즉 문지방(혹은 문턱, threshold)에 자리 잡고 있는 존재들이다. 문지방의 영역에서 공연자와 청관중과의 상호작용 관계를 소통시키는 매개적 역할을 한다. 공연자와 청관중과의 거리감을 줄이고, 서로 간의 친밀감을 강화시켜, 청관중으로 하여금 공연에 좀 더 몰입(혹은 동일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로서의 존재이다. 이들은 공연 주체들이 청관중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게끔 만드는 공연 전략적 존재이자, 나아가서는 청관중을 보다 많이 확보하려는 흥ㅇ행 전략적 존재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공연자와 청관중의 연결고리가 되어, 쌍방을 통합시키고, 결국 집단 간의 의사소통을 적극적으로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또한 이들은 가끔 해설자(narrator)의 역할을 맡기도 한다.극 흐름의 앞 뒤를 이끌어주기도 하고, 한 단락의 매듭을 지어주기도한다. 각 주역들의 상대역으로서 리액션을 하며, 극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해설자로서 극의 정보를 청관중에게 제공하고, 여러 사정을 압축적으로 전달한다.
    아울러 그들은 '비판적 청관중으로서의 대표성'을 지니기도 한다. 즉 민중인 청관중의 입장을 대표해 공연의 주역들에게 반응함으로써, 공연자와 청관중을 매개하는 것이다. 한국 전통 공연 예술의 무당굿, 탈놀이, 인형극, 판소리 등은 청관중이 적극적으로든 소극적으로든 공연에 개입한다. 소극적인 개입 양상이 판소리의 추임새라면, 적극적인 개입 양상은 인형극 꼭두각시놀음과 탈놀이에서 목격된다. 어릿광대는 적극적 개입의 경우 중재로, 소극적 개입의 경우 청관중의 입장을 대변하는 대표성을 지닌다.
  • 한글키워드
  • 청관중,해설자,대표성.,남사당,어릿광대,매개,발탈,버나,살판,어름,광대
  • 영문키워드
  • Orum,Narrator,Namsadang,Salpan,Oritgwangde,Gwangdae,the Representative.,Spectator,Verna,Baltal,mediate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표준국어대사전에 ‘광대’는 ‘㉠가면극, 인형극, 줄타기, 땅재주, 판소리 따위를 하던 직업적 예능인을 통틀어 이르던 말. 한자를 빌려 ‘廣大’로 적기도 한다. 배우(俳優), 배창(俳倡), 창우(倡優), 화척(禾尺). ㉡연극을 하거나 춤을 추려고 얼굴에 물감을 칠하던 일.’이라고 정의한다. ‘어릿광대’는 ‘㉠곡예나 연극 따위에서, 얼럭광대의 재주가 시작되기 전이나 막간에 나와 우습고 재미있는 말이나 행동으로 판을 어울리게 하는 사람. ㉡무슨 일에 앞잡이로 나서서 그 일을 시작하기 좋게 만들어 주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또한 ‘어릿광대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로는 ‘얼럭광대’라는 말도 있다고 나온다.
    남사당놀이는 모두 여섯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순서대로 나열하면 ㉠풍물(풍물놀이), ㉡버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탈놀이), ㉥덜미(꼭두각시놀음) 등이다. 남사당놀이에서는 여타 한국의 전통 공연 예술과는 다르게‘어릿광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공연자들이 등장하는데, ‘버나’의 주요 공연자인 ‘버나쇠(버나잽이)’의 상대역 ‘매호씨(어릿광대)’, ‘살판’의 주요 공연자인 ‘살판쇠(땅재주꾼)’의 상대역 ‘매호씨(어릿광대)’, ‘어름’의 주요 공연자인 ‘어름산이(줄꾼)’의 상대역 ‘매호씨(어릿광대)’ 등 3명이 그들이다. ‘덧뵈기’의 경우, 주요 공연자 ‘꺽쇠’와 상대역 ‘장쇠’, ‘먹쇠’, 또 다른 주요 공연자 ‘샌님’과 상대역 ‘말뚝이’, 이밖의 주요 공연자 ‘먹중’과 상대역 ‘취발이’ 등이 존재한다. 때로는 악사가 ‘매호씨’를 대신하기도 한다. 그런 예로는 ‘덜미’의 ‘산받이’가 있다.
    남사당놀이 가운데 버나와 살판, 줄타기는 ‘규식(規式)이 있는 놀이’인데, ‘우습고 해학적인 놀이’를 함께 한다. 공연자들이 단순히 재주(技藝)를 부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요 공연자와 상대역이 서로 우스꽝스러운 재담과 소리를 주고받는 연극을 한다. 즉 공연자들이 기예와 연극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청관중으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과 흥미를 돋운다. 이 점이 바로 남사당놀이의 공연 전략과 흥행 전략이다.
    고려시대 이후 본격적으로 출현하는 ‘우희(優戱)’는 중국의 자생적인 우희와 적극적으로 교류한 예이다. 이들은 고려시대 산대잡극(山臺雜劇)의 배우들, 즉 악관(樂官)과 구별하여 영관(伶官)이라 부른 ‘우인(優人)’ 또는 ‘창인(倡人)’이었다. 이들은 궁중 행사에 동원되는 것 외에도 점차 성장하는 시정 상공인들을 상대로 그들의 오락적인 요구에 부응하며 생계를 유지하게 되는데, 이로써 직업적인 민간 배우의 출현이 가능해진다. 고려의 우희(배우희, 창우희)가 다분히 시대 비판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조선후기의 산도대감계통극으로 연결이 짐작된다.
    조선 전기에는 광대와 서인은 주로 주질(줄타기), 농령(방울받기), 근두(땅재주) 등 규식이 있는 연희를 담당했고, 수척과 승광대는 웃고 희학하는 연희, 악공은 음악을 담당했다. 광대가 담당한 연희는 전문적인 연희자들만이 연행할 수 있는 기예에 해당되는 것으로 삼국시대 중국에서 들어 온 산악백희계통의 것이고, 수척과 승광대가 담당한 웃고 희학하는 연희는 고려시대의 우희와 통하는 연희로서, 중국 산악백희의 골계희인 우희와 같은 성격의 연희이다. 전경욱은 우희가 ‘수척과 승광대가 행하는 우습고 해학적인 놀이’이며, 모두 임금을 풍간하거나, 부패한 관원을 풍자하는 시사적인 내용, 흉내 내기 등이었으며, 임금도 상연목록을 알고 있을 만큼 당대의 유명 연희였다고 지적한다.
    어릿광대는 이러한 ‘우습고 해학적인 놀이’를 담당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주를 이룬다. 남사당놀이의 상대역들이 바로 ‘어릿광대’이자 ‘어릿광대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는 공연자들’이다. 이들은 ①공연자 ②청관중의 대표 ③반주 악사 ④부분적 연출자 ⑤공연자와 청관중의 매개자 등 모두 5가지의 역할을 담당하는데, 다음과 같다. ①주요 공연자의 상대 공연자로서, 주요 공연자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공연을 고조시키거나 청관중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시킨다. 아울러 사회적 컨텍스트 즉, 청관중의 윤리적 틀을 반영하는 해설자의 역할을 맡기도 한다. ②청관중의 비판적 대표성을 띠기도 하는데, 공연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청관중을 중심으로 한 동화의 원리를 공연자들에게 요구한다. ③반주 악사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악사들의 우두머리인 상쇠로서 악기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악공이자, 공연 전체의 음악적인 부분을 조율하는 지휘자이다. 극 진행상 주요 공연자들의 창을 따라 하거나 후렴을 부르고 추임새를 매기며, 공연자들이 춤을 추면 반주를 해주는 존재이다. 주요 공연자의 춤과 사설, 노래를 고무시켜 굿판이 긴장력과 집중력을 모으고, 추임새를 넣어 공연의 사설 내용과 표정ㆍ몸짓ㆍ춤사위 등에 호응하여 굿판 전체가 향해있는 현실과 비현실의 통합적 세계 구축에 상승적인 기여를 한다. 악사로서 공연의 극적 긴장이 고조되는 대목에 이르면 광대의 춤과 어우러지는 반주 음악을 통해 신명을 절정에 이르게 해 판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어 청관중을 몰입시키는 역할을 한다. ④장면의 전환이나 주공연자의 동선을 지정하기도 하며, 공연의 흐름과 분위기를 조절하는 부분적 연출자 역할을 한다. ⑤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공연자와 청관중을 매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어릿광대는 주요 공연자와 청관중과의 ‘중간적인 영역(혹은 전이적인 영역, liminality)’에 자리잡고 있는 존재이다. ‘리미널리티’는 통상의 일상적인 문화와 사회, 어떤 상태를 형성하고 시간을 경과시키며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구조적인 지위를 정해가는 과정 사이의 ‘중간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즉, 문지방(혹은 문턱, threshold)에 있음을 나타낸다. ‘리미널리티’는 공연자와 청관중이 하나의 '흐름(flow)'을 통해 어느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일정한 흐름으로서 공통적으로 체험하는 탈경계적 상태를 가리킨다.
    어릿광대는 문지방의 영역에서 공연자와 청관중과의 상호작용 관계를 소통시키는 매개적 역할을 한다. 청관중은 어릿광대를 대표로 내세워, 주요 공연자는 청관중으로 대표되는 어릿광대를 받아들여, 서로 그칠 줄 모르는 상호작용 속에 세계를 통합적으로 볼 수 있는 ‘총체적인 거울(holistic mirror)'을 통해 서로의 내면을 끊임없이 ‘환기(喚起)’시킨다. 왜냐하면 인간은 ‘반성성(反省性, reflexivity)'을 가진 존재이므로, 어느 시대와 사회를 막론하고 공동체가 살아 있는 한 공동체 구성원들의 삶을 비추어 볼 반성의 기재를 구축해놓고 있거나 구축하고자 부단히 노력하기 때문이다. 자기반성(self-reflexivity)을 통해 결국 사회는 올바른 삶을 영위해 나아갈 길을 부단히 ’재형성‘해 나아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어릿광대는 영속적 변환의 ‘문지방’이 아닌 일시적 변환의 ‘문지방’이다. 제의를 통해 공연 참가자들은 영속적 변환의 리미널리티를 통과하게 된다면, 놀이와 연극을 통해서는 일시적 변환을 겪게 된다. 그 일시적 변환의 리미널리티에 어릿광대는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나 동물의 행위를 모방(mimesis)하는 것은 재현(representation) 행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imitation)을 인간의 본성으로 봤다. 인간은 모방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불쾌감을 주는 대상이라 하더라도 극히 정확한 모방을 한다면 쾌감(pleasure)을 느낀다고 말한다. 저속한 모방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 못하고 배척받는다는 것인데, 곧 쾌감이 아닌 불쾌감을 유발시킨다는 의미일 것이다. 또한 인간은 모방을 통해 쾌감을 느낄 뿐만 아니라 타인에 의하여 모방된 것에 대해서도 쾌감을 느낀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덧붙여 말한다. 쾌감은 즐거움을 낳고, 즐거움은 치유의 기능을 지녔다. 모방을 통한 즐거움은 자신과 타자, 나아가서는 공동체를 치유하는 효과를 갖는다. 곧 흉내 내기는 일종의 의사소통의 도구가 된다. 즐거움은 웃음을 동반하는데, 그 웃음은 공동생활의 어떤 요구에 대응하고 있는 것이며, 어떤 사회적 의미를 지닌다고 베르그송은 말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웃음은 늘 집단의 웃음”이라는 앙리 베르그송의 명제의 근원이라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어쩌면 인류가 맨 처음 고안해낸 ‘우습고 해학적인 놀이’가 모방, 즉 흉내 내기였을지도 모른다.
    연구에 따르면, 특정 상황에서 사람의 의사 표현의 93퍼센트가 비언어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우리가 누군가와 한 번의 상호작용을 하는 과정에서 동원되는 비언어적 요소들은 무려 1000가지에 이른다고도 한다. 우리 뇌의 의사소통 체계는 상대가 말을 몇 마디 하기도 전에 상대에 대해 알아야 할 정보들을 제공하는 각각의 비언어적 상호작용에 빠르게 반응한다고 한다. 따라서 신체언어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려주는 핵심이라 하겠다.
    1996년 이탈리아의 학자들이 인간과 영장류에서 발견한 거울뉴런(mirror neuron)은 인간의 모방과 공감 능력의 근원으로 파악되고 있다. 거울 뉴런은 유리의 근육과 신체 움직임을 통제하는 일종의 운동신경세포인데, 인간을 훨씬 ‘인간다운’ 모습으로 만든다고 한다. 인간은 서로에게 유대와 공감을 느끼도록 진화했는데, 바로 거울뉴런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거울에 비친 상처럼 상대를 따라하고 모방하는 ‘미러링(mirroring)’은 인간 상호간의 친밀감과 신뢰 형성에 아주 효과적인데, 얼굴 표정ㆍ호흡ㆍ목소리 등 오감을 동원한 모든 신체언어가 사용된다는 것이다.
    풍자는 어떤 주제를 우스꽝스럽게 만들거나, 거기에 대한 재미ㆍ멸시ㆍ분노ㆍ냉소 등의 태도를 환기시킴으로써 그것을 격하시키는 문학적 기법을 말한다고 한다. 희극(골계, comedy)은 웃음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해서 유발하지만, 풍자는 ‘조소(嘲笑, ridicule)'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이 두 가지는 구별된다. 즉 풍자는 웃음을 무기로 사용하고, 그것으로써 작품의 외부에 존재하는 어떤 과녁을 겨냥하는 것이다. 그 과녁은 한 개인일 수도 있고(인물 풍자의 경우), 인물 유형이거나, 어떤 계층이나, 제도, 국가, 인류 전체이기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희극적인 것이나 풍자적인 것은 그 대상(혹은 상대)이 서로 양 극단일 경우에 특히 더욱 명확해진다. 풍자는 인간의 악덕이나 우스운 행동의 교정으로서 사용된다. 그래서 사회극(social drama)에서는 더없이 유용한 수단이 된다. 그리하여 공동체로 하여금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들을 ‘반성(reflection)’하게함으로써 그 공동체를 유지ㆍ보전해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든다.
    희극성(골계, comic)의 양상으로는 기지(wit), 풍자(satire), 아이러니(irony), 해학(익살, humor), 패러디(parody) 등이 있다. ‘기지’는 통상 무관하거나 사리에 어긋난다고 생각되는 사상을 의외의 측면에서 갑자기 서로 연결시켜서 교묘하게 표현하는 특색이 있는 지적 요소가 강한 골계이고, ‘풍자’는 그것이 신랄한 조소나 비난을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합리한 사상에 대한 예리한 공격성을 갖는 경우가 많다. ‘아이러니(반어)’는 본래 소크라테스적 문답법에서 유래하는 역설적 수사법의 내용인데, 긍정ㆍ부정의 상호침투적 성격과 그 야유적 기분이 결합된 일종의 기지적 표현을 통해 감추어진 표현 내용―저의―을 나타내는 것인데, 풍자만큼 예리한 공격성을 갖지 못하며, 또한 해학과 같은 우월적 타애성도 없다. ‘해학’은 종종 골계의 모든 형태 중에서 가장 높은 미적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해학의 본질은 대상이나 그 표현보다도 주관의 태도에 있기 때문에 인생관ㆍ세계관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따라서 각 개인의 세계에 대한 근본 태도에 따라 낙천적 해학과 염세적 해학으로 구별되기도 한다.
    ‘패러디’는 하나의 양식, 어조, 등장인물, 장르 혹은 단순하게 드라마적인 하나의 상황을 기초로 만들어진다. 패러디가 교훈적이거나 교화적인 목표를 가질 때, 순수하게 사회적이고 철학적 혹은 정치적인 풍자문학과 유사성을 갖는다. 이럴 때 패러디의 목표는 근본적으로 신중해야하는데, 그 이유는 비판되는 가치들에 교환가치들의 일관성 있는 체계를 대립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패러디에 비판의 의도가 없을 때, 오직 양식을 깨트리기 위한 파괴형태로 형식화되거나 그로테스크하고 부조리해진다. 이러한 골계의 양상들은 때로는 변화무쌍하게 전환(transition)을 시도해 그 희극성을 높이기도 한다.
  • 영문

  • A Study on Eoritgwangdaes of Namsadangpae


    The aim of this study to examine Eoritgwangdaes of Namsadangpae on the viewpoint of Performance Studies. To accomplish this purpose, the actual performance materials has been handed down to the present and the documents which have been examined and reported, should be synthesized and analyzed. So I collected actual performance materials which was published and recorded by video tapes, and ethnography on Korean traditional performance.
    In the process of research, the interdisciplinary method is applied. In the method of this study, I used the methods of ‘inquiry’ and ‘presentaion’ which is Marxian political economic theory. And I used general categories of dialectical materialism that is called ‘the universal’, ‘the particular’ and ‘the individual’. As a result of research into method, I quite understood that ethno-dramatics was very useful to analyze ‘the individual’. I find out that we had to interdigitate interdisciplinarily between ethno-dramatics and Marxian political economic theory and dialectical materialism. That is to say that the theories of Victor Turner and Richard Schechner, Karl Marx and Friedrich Engels are applied in this study.
    The performance has meanings with the internalization of social conflicts, the reproduction of the order of ranks and power structure, the potential recovery and resistance of injustice, and ecological point as revival and harmony.
    Namsadangpae is a vagabond theatre of Korean traditional performance in the old days. In the past years, Korea had been dozens of vagabond theatre like Namsadangpae. They were called various name that was ‘Gwangdaepae’, ‘Sadangpa’e, ‘Golippae’, ‘Jungmaegupae’, ‘Daegwangdaepae’, ‘Gutjungpae’, ‘Sotdaejaengipae’, ‘Punggakjaengipae’, ‘Choranipae’, ‘Zzanjipae’, and so on.
    But Those have disappeared into the history. In the end, the only one Namsadangpae left among vagabonds theatre of Korean traditional performance. Various Performances of Namsadangpae is unified vagabonds theatre of Korean traditional performance. Various Performances of Namsadangpae are constructed six kinds that are ⓐPungmulnori ⓑBeona ⓒSalpan ⓓEorum ⓔDeotboegi ⓕDeolmi. In briefly explain, ⓐPungmulnori is performed by instrument and dance, making the best use of that instruments are ‘Ggwaenggari’, ‘jing’, ‘Janggo’, ‘Sogo’, and so on. ⓑBeona is spinning plates, in different word, Daejeopdoligi ⓒSalpan is to make a somersault, in other word, Ddangjaeju ⓓEorum is rope dancing, in other word, Jultagi ⓔDeotboegi is a mask drama ⓕDeolmi is a puppetry, in different word, Kokdugaksinorum and Parkceomjinorum.
    The name of called Eoritgwangdae appear on the stage that are three events amomg Performances of Namsadangpae. Those are Beona, Salpan, Eorum. Somtimes Eoritgwangdae is called Maehossi. Eoritgwangdae just alike Clown or Fool, jester, trickster, buffoon, villains in occidental significance.
    Many scholars suggest that the most ancient Eoritgwangdaes have been found in the Samguk periods, around 2000 BCE. Contrary to Eoritgwangdaes have traditionally served a socio-religious and psychological role, and traditionally the role of priest and clown have been held by the same persons.
    Performance of Eoritgwangdaes was developed from a broad tradition of historical performances, and it is difficult to point out a singular tradition or even a few different ones as being the primary precursors to Eoritgwangdaes. However there are a few past prominent forms of entertainment contemporarily linked to clowning as its possible antecedents.
    On top of this there are many non-European clowning traditions (including clown-like figures in African, Asian, Oceanian theatre), North American nativeshaman traditions to consider which may or may not have influenced what we now think of as a clown in the Western world.
    Eoritgwangdaes play a various roles in Namsadang’s performance. First, as a peformer. Scondly, as a representative of a critical audience. Thirdly, as a musician of accompanied by instruments. forth, as a partial director. And last, as a mediator between major performer and audience.
    Richard Schechner suggests that “to treat any object, work, or product “as” performance―a painting, a novel, a shoe, or anything at all―means to investigate what object does, how it interacts with other objects or beings, and how it relates to other objects or beings. Performances exist only as actions, interactions, and relationship.” And he finds seven functions of performance: “①To entertain ②To make something that is beautiful ③To mark or change identity ④To make or foster community ⑤To heal ⑥To teach, persuade, or convince ⑦To deal with the sacred and /or the demonic.”
    Accordingly, Eoritgwangdae interacts with audience very closely, and relates with a cultural context of history. And Eoritgwangdae is not only open to audience, but also may foster community. So that audience immediately and constantly participate in performance through the opened communication system.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남사당놀이는 모두 여섯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순서대로 나열하면 ㉠풍물(풍물놀이), ㉡버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탈놀이), ㉥덜미(꼭두각시놀음) 등이다. 남사당놀이에서는 여타 한국의 전통 공연 예술과는 다르게‘어릿광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공연자들이 등장하는데, ‘버나’의 주요 공연자인 ‘버나쇠(버나잽이)’의 상대역 ‘매호씨(어릿광대)’, ‘살판’의 주요 공연자인 ‘살판쇠(땅재주꾼)’의 상대역 ‘매호씨(어릿광대)’, ‘어름’의 주요 공연자인 ‘어름산이(줄꾼)’의 상대역 ‘매호씨(어릿광대)’ 등 3명이 그들이다. ‘덧뵈기’의 경우, 주요 공연자 ‘꺽쇠’와 상대역 ‘장쇠’, ‘먹쇠’, 또 다른 주요 공연자 ‘샌님’과 상대역 ‘말뚝이’, 이밖의 주요 공연자 ‘먹중’과 상대역 ‘취발이’ 등이 존재한다. 때로는 악사가 ‘매호씨’를 대신하기도 한다. 그런 예로는 ‘덜미’의 ‘산받이’가 있다.
    남사당놀이 가운데 버나와 살판, 줄타기는 ‘규식(規式)이 있는 놀이’인데, ‘우습고 해학적인 놀이’를 함께 한다. 공연자들이 단순히 재주(技藝)를 부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요 공연자와 상대역이 서로 우스꽝스러운 재담과 소리를 주고받는 연극을 한다. 즉 공연자들이 기예와 연극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청관중으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과 흥미를 돋운다. 이 점이 바로 남사당놀이의 공연 전략과 흥행 전략이다.
    어릿광대는 이러한 ‘우습고 해학적인 놀이’를 담당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주를 이룬다. 남사당놀이의 상대역들이 바로 ‘어릿광대’이자 ‘어릿광대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는 공연자들’이다. 이들은 ①공연자 ②청관중의 대표 ③반주 악사 ④부분적 연출자 ⑤공연자와 청관중의 매개자 등 모두 5가지의 역할을 담당하는데, 다음과 같다. ①주요 공연자의 상대 공연자로서, 주요 공연자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공연을 고조시키거나 청관중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시킨다. 아울러 사회적 컨텍스트 즉, 청관중의 윤리적 틀을 반영하는 해설자의 역할을 맡기도 한다. ②청관중의 비판적 대표성을 띠기도 하는데, 공연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청관중을 중심으로 한 동화의 원리를 공연자들에게 요구한다. ③반주 악사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악사들의 우두머리인 상쇠로서 악기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악공이자, 공연 전체의 음악적인 부분을 조율하는 지휘자이다. 극 진행상 주요 공연자들의 창을 따라 하거나 후렴을 부르고 추임새를 매기며, 공연자들이 춤을 추면 반주를 해주는 존재이다. 주요 공연자의 춤과 사설, 노래를 고무시켜 굿판이 긴장력과 집중력을 모으고, 추임새를 넣어 공연의 사설 내용과 표정ㆍ몸짓ㆍ춤사위 등에 호응하여 굿판 전체가 향해있는 현실과 비현실의 통합적 세계 구축에 상승적인 기여를 한다. 악사로서 공연의 극적 긴장이 고조되는 대목에 이르면 광대의 춤과 어우러지는 반주 음악을 통해 신명을 절정에 이르게 해 판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어 청관중을 몰입시키는 역할을 한다. ④장면의 전환이나 주공연자의 동선을 지정하기도 하며, 공연의 흐름과 분위기를 조절하는 부분적 연출자 역할을 한다. ⑤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공연자와 청관중을 매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어릿광대는 주요 공연자와 청관중과의 ‘중간적인 영역(liminality)’에 자리 잡고 있는 존재이다. ‘리미널리티’는 통상의 일상적인 문화와 사회, 어떤 상태를 형성하고 시간을 경과시키며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구조적인 지위를 정해가는 과정 사이의 ‘중간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즉, 문지방(문턱)에 있음을 나타낸다. ‘리미널리티’는 공연자와 청관중이 하나의 '흐름(flow)'을 통해 어느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일정한 흐름으로서 공통적으로 체험하는 탈경계적 상태를 가리킨다. 어릿광대는 문지방의 영역에서 공연자와 청관중과의 상호작용 관계를 소통시키는 매개적 역할을 한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서양에서는 어릿광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 연구가 진행되어 다음과 같은 여러 부류로 나눈다. ①바보광대(fool, jester): 신체 불구자나 난쟁이로 사실이든 가장해서든 미친 짓이나 어리석은 짓을 해서 즐거움을 주면서 가장 높은 신분의 후원자들까지도 조롱하고 욕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던 희극적인 인물이다. 셰익스피어를 비롯, 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어릿광대를 창조해낸 극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②익살 광대(clown): 팬터마임이나 서커스에서의 익살꾼. 특이한 분장과 옷차림, 바보스런 행동, 익살 등으로 폭소를 자아낸다. 전통극에 나오는 바보나 궁정의 어릿광대와는 달리 노골적이고 생생한 묘사, 엉뚱한 상황의 연출, 활기찬 행동이 특징인 일련의 작품을 연기한다. ③허풍쟁이(Buffoon): 어울리지 않는 용모와 행동을 통해 즐거움을 주는 어릿광대. ④악당(Villains): 영화 배트맨의 아주 비열한 복수의 악당 조커와 여자 친구 할리 퀸 역시 어릿광대이다.
    이 어릿광대들은 예로부터 오랫동안 궁중의 오락과 희곡문학 등의 주인공으로 사랑받았지만, 민중과 어린이들의 정서를 대변하기도 했다. 현대의 거대한 문화 및 인터테인먼트 산업 속에서도 그들의 존재는 필수 불가결하며, 앞으로도 그 영향력은 줄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근대 이후 현대에 이르는 우리나라 연극의 배우와 어릿광대들이 서양 연극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로인해 과거와는 단절된 모습인 것으로 많은 사람들은 흔히 생각한다. 또한 근대 이전 우리나라에도 서양 연극(drama, theatre)과 같은 양식이 존재했을 것이냐며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서양의 공연 예술(혹은 연희)의 개념일 뿐, 역사적ㆍ사회적ㆍ철학적 배경이 달랐던 동양에 그대로 적용시키는 것은 스스로 벌거벗은 임금님 꼴임을 인정하는 우매한 짓일 것이다.
    한국에는 고유의 공연 예술 양식이 존재했으며, 광대와 어릿광대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실록과 야담문학, 설화 등에 나타난 여러 모습은 서양의 광대와 어릿광대들과 견주어도 그 다양성과 개성 면에서 결코 손색이 없다. 오히려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존재감마저 엿보이며, 몇몇은 유사한 구석도 없지 않다.
    서양의 리얼리즘 연극이 재현(representation)이라는 한계의 벽에 부딪쳤을 때, 브레히트, 아르또를 필두로 한 많은 서양의 연극인들이 동양의 공연 예술에 영감을 받아 그 수용 양상의 폭을 넓혀 그들의 연극 살찌웠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우리의 전통 공연 예술에 대한 더욱 심도 있는 연구가 절실한 실정이다. 현대의 배우(광대)들도 무조건적인 서양 배우들의 흉내 내기에 집착하고, 또 그것을 권위로 내세울 것이 아니라 우리 전통 공연 예술의 배우(광대)들의 여러 양상들을 연구하고 받아 들여 우리나라의 광대들이 과거와 현재의 연속선상에 존재한다는 것임을 파악해야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 광대의 정체성(identity)일 것이다. 따라서 남사당패의 어릿광대들 연구는 첫 번째 고려 대상으로서의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것을 발견하고, 깊이 연구하여 진실을 확보해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는 서양적인 것들의 무조건적인 수용이 아닌, 우리의 것을 자랑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정체성의 확보가 중요하며, 나아가 전 세계적 보편성마저 확보해야 한다. 최근 한류의 영향이 전 세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실정에서, 좀 더 ‘우리의 것’을 알릴 수 있는 ‘공연 캐릭터’들이 필요하다. 즉, ‘한국의 어릿광대’들에 대한 연구가 절실하다. 무당이나 인형극의 ‘홍동지’, 탈놀이의 ‘말뚝이’와 ‘취발이’ 등은 전 세계적으로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 한국 고유의 캐릭터들이다. 이러한 어릿광대들의 연구는 지금껏 학문적으로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다. 따라서 본 연구자는 ‘한국의 어릿광대’를 주제로 연구를 계속 진행해서 고유성(unique)과 개성(특성)을 이끌어 내고자 한다. 그 첫 걸음이 바로 ‘남사당패의 어릿광대들’ 연구이다.
  • 색인어
  • 남사당, 버나, 살판, 어름, 덧뵈기, 덜미(꼭두각시놀음), 어릿광대, 매호씨, 매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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