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국어대사전에 ‘광대’는 ‘㉠가면극, 인형극, 줄타기, 땅재주, 판소리 따위를 하던 직업적 예능인을 통틀어 이르던 말. 한자를 빌려 ‘廣大’로 적기도 한다. 배우(俳優), 배창(俳倡), 창우(倡優), 화척(禾尺). ㉡연극을 하거나 춤을 추려고 얼굴에 물감을 칠하던 일.’이라고 정의한다 ...
표준국어대사전에 ‘광대’는 ‘㉠가면극, 인형극, 줄타기, 땅재주, 판소리 따위를 하던 직업적 예능인을 통틀어 이르던 말. 한자를 빌려 ‘廣大’로 적기도 한다. 배우(俳優), 배창(俳倡), 창우(倡優), 화척(禾尺). ㉡연극을 하거나 춤을 추려고 얼굴에 물감을 칠하던 일.’이라고 정의한다. ‘어릿광대’는 ‘㉠곡예나 연극 따위에서, 얼럭광대의 재주가 시작되기 전이나 막간에 나와 우습고 재미있는 말이나 행동으로 판을 어울리게 하는 사람. ㉡무슨 일에 앞잡이로 나서서 그 일을 시작하기 좋게 만들어 주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또한 ‘어릿광대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로는 ‘얼럭광대’라는 말도 있다고 나온다.
남사당놀이는 모두 여섯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순서대로 나열하면 ㉠풍물(풍물놀이), ㉡버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탈놀이), ㉥덜미(꼭두각시놀음) 등이다. 남사당놀이에서는 여타 한국의 전통 공연 예술과는 다르게‘어릿광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공연자들이 등장하는데, ‘버나’의 주요 공연자인 ‘버나쇠(버나잽이)’의 상대역 ‘매호씨(어릿광대)’, ‘살판’의 주요 공연자인 ‘살판쇠(땅재주꾼)’의 상대역 ‘매호씨(어릿광대)’, ‘어름’의 주요 공연자인 ‘어름산이(줄꾼)’의 상대역 ‘매호씨(어릿광대)’ 등 3명이 그들이다. ‘덧뵈기’의 경우, 주요 공연자 ‘꺽쇠’와 상대역 ‘장쇠’, ‘먹쇠’, 또 다른 주요 공연자 ‘샌님’과 상대역 ‘말뚝이’, 이밖의 주요 공연자 ‘먹중’과 상대역 ‘취발이’ 등이 존재한다. 때로는 악사가 ‘매호씨’를 대신하기도 한다. 그런 예로는 ‘덜미’의 ‘산받이’가 있다.
남사당놀이 가운데 버나와 살판, 줄타기는 ‘규식(規式)이 있는 놀이’인데, ‘우습고 해학적인 놀이’를 함께 한다. 공연자들이 단순히 재주(技藝)를 부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요 공연자와 상대역이 서로 우스꽝스러운 재담과 소리를 주고받는 연극을 한다. 즉 공연자들이 기예와 연극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청관중으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과 흥미를 돋운다. 이 점이 바로 남사당놀이의 공연 전략과 흥행 전략이다.
고려시대 이후 본격적으로 출현하는 ‘우희(優戱)’는 중국의 자생적인 우희와 적극적으로 교류한 예이다. 이들은 고려시대 산대잡극(山臺雜劇)의 배우들, 즉 악관(樂官)과 구별하여 영관(伶官)이라 부른 ‘우인(優人)’ 또는 ‘창인(倡人)’이었다. 이들은 궁중 행사에 동원되는 것 외에도 점차 성장하는 시정 상공인들을 상대로 그들의 오락적인 요구에 부응하며 생계를 유지하게 되는데, 이로써 직업적인 민간 배우의 출현이 가능해진다. 고려의 우희(배우희, 창우희)가 다분히 시대 비판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조선후기의 산도대감계통극으로 연결이 짐작된다.
조선 전기에는 광대와 서인은 주로 주질(줄타기), 농령(방울받기), 근두(땅재주) 등 규식이 있는 연희를 담당했고, 수척과 승광대는 웃고 희학하는 연희, 악공은 음악을 담당했다. 광대가 담당한 연희는 전문적인 연희자들만이 연행할 수 있는 기예에 해당되는 것으로 삼국시대 중국에서 들어 온 산악백희계통의 것이고, 수척과 승광대가 담당한 웃고 희학하는 연희는 고려시대의 우희와 통하는 연희로서, 중국 산악백희의 골계희인 우희와 같은 성격의 연희이다. 전경욱은 우희가 ‘수척과 승광대가 행하는 우습고 해학적인 놀이’이며, 모두 임금을 풍간하거나, 부패한 관원을 풍자하는 시사적인 내용, 흉내 내기 등이었으며, 임금도 상연목록을 알고 있을 만큼 당대의 유명 연희였다고 지적한다.
어릿광대는 이러한 ‘우습고 해학적인 놀이’를 담당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주를 이룬다. 남사당놀이의 상대역들이 바로 ‘어릿광대’이자 ‘어릿광대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는 공연자들’이다. 이들은 ①공연자 ②청관중의 대표 ③반주 악사 ④부분적 연출자 ⑤공연자와 청관중의 매개자 등 모두 5가지의 역할을 담당하는데, 다음과 같다. ①주요 공연자의 상대 공연자로서, 주요 공연자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공연을 고조시키거나 청관중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시킨다. 아울러 사회적 컨텍스트 즉, 청관중의 윤리적 틀을 반영하는 해설자의 역할을 맡기도 한다. ②청관중의 비판적 대표성을 띠기도 하는데, 공연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청관중을 중심으로 한 동화의 원리를 공연자들에게 요구한다. ③반주 악사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악사들의 우두머리인 상쇠로서 악기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악공이자, 공연 전체의 음악적인 부분을 조율하는 지휘자이다. 극 진행상 주요 공연자들의 창을 따라 하거나 후렴을 부르고 추임새를 매기며, 공연자들이 춤을 추면 반주를 해주는 존재이다. 주요 공연자의 춤과 사설, 노래를 고무시켜 굿판이 긴장력과 집중력을 모으고, 추임새를 넣어 공연의 사설 내용과 표정ㆍ몸짓ㆍ춤사위 등에 호응하여 굿판 전체가 향해있는 현실과 비현실의 통합적 세계 구축에 상승적인 기여를 한다. 악사로서 공연의 극적 긴장이 고조되는 대목에 이르면 광대의 춤과 어우러지는 반주 음악을 통해 신명을 절정에 이르게 해 판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어 청관중을 몰입시키는 역할을 한다. ④장면의 전환이나 주공연자의 동선을 지정하기도 하며, 공연의 흐름과 분위기를 조절하는 부분적 연출자 역할을 한다. ⑤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공연자와 청관중을 매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어릿광대는 주요 공연자와 청관중과의 ‘중간적인 영역(혹은 전이적인 영역, liminality)’에 자리잡고 있는 존재이다. ‘리미널리티’는 통상의 일상적인 문화와 사회, 어떤 상태를 형성하고 시간을 경과시키며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구조적인 지위를 정해가는 과정 사이의 ‘중간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즉, 문지방(혹은 문턱, threshold)에 있음을 나타낸다. ‘리미널리티’는 공연자와 청관중이 하나의 '흐름(flow)'을 통해 어느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일정한 흐름으로서 공통적으로 체험하는 탈경계적 상태를 가리킨다.
어릿광대는 문지방의 영역에서 공연자와 청관중과의 상호작용 관계를 소통시키는 매개적 역할을 한다. 청관중은 어릿광대를 대표로 내세워, 주요 공연자는 청관중으로 대표되는 어릿광대를 받아들여, 서로 그칠 줄 모르는 상호작용 속에 세계를 통합적으로 볼 수 있는 ‘총체적인 거울(holistic mirror)'을 통해 서로의 내면을 끊임없이 ‘환기(喚起)’시킨다. 왜냐하면 인간은 ‘반성성(反省性, reflexivity)'을 가진 존재이므로, 어느 시대와 사회를 막론하고 공동체가 살아 있는 한 공동체 구성원들의 삶을 비추어 볼 반성의 기재를 구축해놓고 있거나 구축하고자 부단히 노력하기 때문이다. 자기반성(self-reflexivity)을 통해 결국 사회는 올바른 삶을 영위해 나아갈 길을 부단히 ’재형성‘해 나아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어릿광대는 영속적 변환의 ‘문지방’이 아닌 일시적 변환의 ‘문지방’이다. 제의를 통해 공연 참가자들은 영속적 변환의 리미널리티를 통과하게 된다면, 놀이와 연극을 통해서는 일시적 변환을 겪게 된다. 그 일시적 변환의 리미널리티에 어릿광대는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나 동물의 행위를 모방(mimesis)하는 것은 재현(representation) 행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imitation)을 인간의 본성으로 봤다. 인간은 모방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불쾌감을 주는 대상이라 하더라도 극히 정확한 모방을 한다면 쾌감(pleasure)을 느낀다고 말한다. 저속한 모방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 못하고 배척받는다는 것인데, 곧 쾌감이 아닌 불쾌감을 유발시킨다는 의미일 것이다. 또한 인간은 모방을 통해 쾌감을 느낄 뿐만 아니라 타인에 의하여 모방된 것에 대해서도 쾌감을 느낀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덧붙여 말한다. 쾌감은 즐거움을 낳고, 즐거움은 치유의 기능을 지녔다. 모방을 통한 즐거움은 자신과 타자, 나아가서는 공동체를 치유하는 효과를 갖는다. 곧 흉내 내기는 일종의 의사소통의 도구가 된다. 즐거움은 웃음을 동반하는데, 그 웃음은 공동생활의 어떤 요구에 대응하고 있는 것이며, 어떤 사회적 의미를 지닌다고 베르그송은 말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웃음은 늘 집단의 웃음”이라는 앙리 베르그송의 명제의 근원이라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어쩌면 인류가 맨 처음 고안해낸 ‘우습고 해학적인 놀이’가 모방, 즉 흉내 내기였을지도 모른다.
연구에 따르면, 특정 상황에서 사람의 의사 표현의 93퍼센트가 비언어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우리가 누군가와 한 번의 상호작용을 하는 과정에서 동원되는 비언어적 요소들은 무려 1000가지에 이른다고도 한다. 우리 뇌의 의사소통 체계는 상대가 말을 몇 마디 하기도 전에 상대에 대해 알아야 할 정보들을 제공하는 각각의 비언어적 상호작용에 빠르게 반응한다고 한다. 따라서 신체언어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려주는 핵심이라 하겠다.
1996년 이탈리아의 학자들이 인간과 영장류에서 발견한 거울뉴런(mirror neuron)은 인간의 모방과 공감 능력의 근원으로 파악되고 있다. 거울 뉴런은 유리의 근육과 신체 움직임을 통제하는 일종의 운동신경세포인데, 인간을 훨씬 ‘인간다운’ 모습으로 만든다고 한다. 인간은 서로에게 유대와 공감을 느끼도록 진화했는데, 바로 거울뉴런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거울에 비친 상처럼 상대를 따라하고 모방하는 ‘미러링(mirroring)’은 인간 상호간의 친밀감과 신뢰 형성에 아주 효과적인데, 얼굴 표정ㆍ호흡ㆍ목소리 등 오감을 동원한 모든 신체언어가 사용된다는 것이다.
풍자는 어떤 주제를 우스꽝스럽게 만들거나, 거기에 대한 재미ㆍ멸시ㆍ분노ㆍ냉소 등의 태도를 환기시킴으로써 그것을 격하시키는 문학적 기법을 말한다고 한다. 희극(골계, comedy)은 웃음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해서 유발하지만, 풍자는 ‘조소(嘲笑, ridicule)'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이 두 가지는 구별된다. 즉 풍자는 웃음을 무기로 사용하고, 그것으로써 작품의 외부에 존재하는 어떤 과녁을 겨냥하는 것이다. 그 과녁은 한 개인일 수도 있고(인물 풍자의 경우), 인물 유형이거나, 어떤 계층이나, 제도, 국가, 인류 전체이기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희극적인 것이나 풍자적인 것은 그 대상(혹은 상대)이 서로 양 극단일 경우에 특히 더욱 명확해진다. 풍자는 인간의 악덕이나 우스운 행동의 교정으로서 사용된다. 그래서 사회극(social drama)에서는 더없이 유용한 수단이 된다. 그리하여 공동체로 하여금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들을 ‘반성(reflection)’하게함으로써 그 공동체를 유지ㆍ보전해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든다.
희극성(골계, comic)의 양상으로는 기지(wit), 풍자(satire), 아이러니(irony), 해학(익살, humor), 패러디(parody) 등이 있다. ‘기지’는 통상 무관하거나 사리에 어긋난다고 생각되는 사상을 의외의 측면에서 갑자기 서로 연결시켜서 교묘하게 표현하는 특색이 있는 지적 요소가 강한 골계이고, ‘풍자’는 그것이 신랄한 조소나 비난을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합리한 사상에 대한 예리한 공격성을 갖는 경우가 많다. ‘아이러니(반어)’는 본래 소크라테스적 문답법에서 유래하는 역설적 수사법의 내용인데, 긍정ㆍ부정의 상호침투적 성격과 그 야유적 기분이 결합된 일종의 기지적 표현을 통해 감추어진 표현 내용―저의―을 나타내는 것인데, 풍자만큼 예리한 공격성을 갖지 못하며, 또한 해학과 같은 우월적 타애성도 없다. ‘해학’은 종종 골계의 모든 형태 중에서 가장 높은 미적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해학의 본질은 대상이나 그 표현보다도 주관의 태도에 있기 때문에 인생관ㆍ세계관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따라서 각 개인의 세계에 대한 근본 태도에 따라 낙천적 해학과 염세적 해학으로 구별되기도 한다.
‘패러디’는 하나의 양식, 어조, 등장인물, 장르 혹은 단순하게 드라마적인 하나의 상황을 기초로 만들어진다. 패러디가 교훈적이거나 교화적인 목표를 가질 때, 순수하게 사회적이고 철학적 혹은 정치적인 풍자문학과 유사성을 갖는다. 이럴 때 패러디의 목표는 근본적으로 신중해야하는데, 그 이유는 비판되는 가치들에 교환가치들의 일관성 있는 체계를 대립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패러디에 비판의 의도가 없을 때, 오직 양식을 깨트리기 위한 파괴형태로 형식화되거나 그로테스크하고 부조리해진다. 이러한 골계의 양상들은 때로는 변화무쌍하게 전환(transition)을 시도해 그 희극성을 높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