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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중반 나선정벌의 추이와 그 동아시아적 의미
Manchu-Korean Expeditions to the Amur: A New Historical Setting in Mid-Seventeenth-Century Northeast Asia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신진연구자지원사업(인문사회)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2S1A5A8024789
선정년도 2012 년
연구기간 1 년 (2012년 05월 01일 ~ 2013년 04월 30일)
연구책임자 계승범
연구수행기관 서강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羅禪征伐이란 17세기 중반 북만주로 남하하던 러시아(나선)를 저지하려던 청의 파병 요구에 따라 조선군이 송화강과 흑룡강 유역으로 1654년과 1658년에 걸쳐 두 차례 출정한 사건을 가리킨다. 그런데 나선정벌의 추이와 실상에 대해서는 아직도 개설서 수준의 이해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저 청의 요구에 따라 두 차례 원정을 감행한 점과 2차 원정 때의 한 전투에서 러시아 군 지휘관 스테파노프(Stepanov)를 전사시키는 전과를 올린 점을 강조하고, 그런 원정을 통해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 데 조선이 기여했음을 부각시키는 정도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이는 다분히 민족적・自國史 시각에 의한 설명으로, 원정의 전체 그림을 그리고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21세기 역사학에도 잘 어울리지 않는다.
    나선정벌은 3개국이 개입한 국제분쟁이며, 종족으로 보면 만주・몽골・한인・西蜀人・조선인・코사크인・러시아인 등에 더해 송화강과 흑룍강 일대의 원주민들까지 참전한 多種族 사건이었다. 따라서 나선정벌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조선・청・러시아 3국의 관련 자료를 함께 놓고 분석해야 한다.
    한편, 나선정벌은 러시아의 동진에 따른 동아시아 국가들, 특히 청과의 충돌로 발생한 사건이지만, 단지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서구 세력이 동쪽으로 접근한 세계사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나선정벌과 유사한 몇 차례의 무력충돌 후에 그 유명한 네르친스크조약(1689)으로 청과 러시아 사이의 국경이 사실상 확정되고 영토분쟁도 거의 종식되는데, 서구 학계에서는 네르친스크조약 자체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 그런 조약의 체결을 가능케 한 이전의 무력충돌에 대해서는 그저 청과 러시아 사이의 일상적인 충돌로 볼 뿐이며, 그 실상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특히 나선정벌에서 조선군이 담당한 역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이런 다양한 문제의식으로, 이 연구에서는 나선정벌을 명·청 교체에 뒤이어 동북아시아에 새롭게 등장한 러시아 세력으로 인해 동북아시아의 국제질서가 새롭게 형성되는 맥락을 만주라는 공간에 초점을 맞춰 살피고자 한다. 그동안 17세기 동북아시아 정세를 논할 때에는 의례히 청의 남방 공략 과정, 조선과 청의 새로운 관계, 일본의 쇄국과 서양과의 교통 등에 중점을 두어 살피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육로를 통해 동북아시아 권역에 진입한 러시아라는 새로운 변수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때 러시아의 등장으로 인해 형성된 새로운 국제질서는 이후 19세기의 서세동점 시에도 그대로 그 틀을 유지하며 작동했으며, 심지어 현재까지 그 기본 틀이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동북아시아에 러시아가 처음 등장한 17세기 중반에 발생한 나선정벌은 단순히 당시의 정세를 파악하는 데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동북아의 역학 구도를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나선정벌의 정확한 추이와 실상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이에, 이 연구에서는 두 차례에 걸친 나선정벌의 추이를 상세히 살피고, 그 의미를 17세기 동북아시아라는 거시적 틀에서 새롭게 해석하는 데 목적을 둔다.
  • 기대효과
  • 먼저 국내 저널에 한글로 발표함으로써 그동안 개설서 수준으로, 그것도 자국사 시각에서 막연히 알고 있던 나선정벌의 실상을 학계에 구체적으로 보고할 것이다. 더 나아가, 나선정벌 자체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서구 학계에 이 사건을 소개하고 조선군의 역할을 부각시키는 차원에서 영어 저널에도 발표할 계획을 갖고 있다. 특히 본인은 이미 영어 저널에도 몇 편의 논문을 발표한 바 있기에,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본다. 아울러, 한국과 러시아에 비해 나선정벌 관련 자료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중국 학계에도 영어 저널을 통해 학문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또한 이 연구의 큰 주제가 군사적전이자 조선의 해외 파병 문제와 관련된 만큼 언론을 통한 홍보와 사회적 관심을 끌기에도 좋은 소재요, 주제라고 생각한다.
    이 연구가 성공적으로 완결된다면, 아예 신유의 󰡔북정록󰡕을 영어로 譯註하고 러시아 자료도 영어로 역주해 한데 묶어 미국에서 출판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런 작업을 통해 그동안 거의 공백으로 남아있던 러시아 동진의 마지막 상황과 그에 대처한 동북아시아인들, 특히 조선인의 대응을 세계 학계에 알릴 수 있다고 본다.
  • 연구요약
  • 2절 「17세기 중반 만주의 정세와 나선정벌의 배경」에서는 청의 入關 이후 인구의 급격한 감소를 겪은 만주 일대의 상황과 때마침 우랄산맥을 넘은 지 불과 60년도 안 되어 동북아시아에 나타난 러시아의 빠른 東進으로 말미암은 만주 일대의 긴장상태, 그리고 그런 만주와 국경을 접하던 조선의 위기의식 등을 한데 묶어 입체적으로 설명함으로써 나선정벌의 추진 동기와 그 의미를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배경지식을 갖출 것이다. 특히 17세기 중반에 러시아가 청과의 충돌을 불사하면서까지 극동에 확고한 기지를 건설하려 한 이유를 당시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모피무역과 관련해 설명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러시아의 동진 관련 영어권 단행본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계획이다. 아울러 당시 청의 주력군은 南明 공략을 위해 대거 중원으로 이동한 상태였는데, 그렇다면 당시 만주 일대에 분포한 淸軍의 병력 규모와 화력이 어떠했는지도 조사할 것이다. 이런 배경이 튼튼하게 확보되어야, 청이 조선의 銃手兵을 구체적으로 지목해 파병하도록 요구해온 정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조선의 파병 규모에 대해서도 당시의 정국과 관련해 전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3절 「제1차원정의 추이와 특징」에서는 1654년에 청의 요구와 조선의 순응으로 시작된 청・조선 연합군의 출정과 러시아 군과의 충돌을 상기한 모든 자료들을 대조하면서 사실에 가깝게 재구성할 것이다. 당시 조선군 사령관은 邊岌이었는데, 그는 독자적인 진중일기를 남기지는 않았지만, 귀국한 후에 조정에 올린 보고서에 출정에서부터 귀환에 이르기까지의 대강이 들어있다. 전투 상황도 설명이 되어 있는데, 시간적 선후 관계가 모호한 부분이 있으므로, 스테파노프가 올린 보고서의 내용과 일일이 대조하면서 분석할 필요가 있다.
    4절 「제2차원정의 추이와 특징」에서는 1658년에 추진된 2차 원정의 내용을 상기한 모든 자료들을 대조하며 재구성할 것이다. 특히 이때는 조선군 사령관 申瀏의 진중일기가 남아있어 당시의 전황과 상황을 매우 생생하게 전한다. 그러나 스테파노프의 보고서 및 그의 전사 후에 작성된 생존자 심문조서 등의 내용을 보면, 전투의 상황과 전사자의 숫자, 피차간의 타격과 피해 정도에 대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다. 또한 전투의 지형지물에 대한 묘사에서도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있다. 따라서 이런 점들을 본격적으로 대조하며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를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해 최소한의 일정으로 송화강과 흑룡강의 전투 장소를 문헌기록과 대조하며 답사할 계획이다.
    5절 「나선정벌과 17세기 중반 동북아 정세」에서는 지금까지의 사실 확인 작업을 토대로 삼아, 나선정벌이 비단 조선의 화력이나 청의 군사작전 차원을 넘어 이후 동북아시아의 국제 긴장 관계의 추이에 어떤 방향으로 작용했는지 살피고 해석한다. 조선군이 직접 참전한 것은 1654년과 1658년에 걸친 두 차례에 걸친 원정이지만, 1차 원정 이전에도, 2차 원정 후에도, 두 원정의 사이에도 청과 러시아는 흑룡강 일대를 따라 틈틈이 전투를 벌였다. 이런 일련의 상황을 나선정벌과 연결해 한데 묶어 고찰하고, 그런 사건들이 어떤 식으로 어떻게 작용해 이후 네르친스크조약으로 연결되는지, 특히 그 과정에서 조선군이 참전한 송화강과 흑룡강 일대 전투가 갖는 의미를 새롭게 해석한다.
  • 한글키워드
  • 나선정벌, 러시아, 카자크, 청, 조선, 만주, 송화강, 흑룡강, 한국, 중국
  • 영문키워드
  • Expedition, Russia, Cossak, Qing, Choson, Manchu, Sungari River, Heirung River, Amur River, Korea, China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청의 入關(1644)을 계기로 많은 인구가 중원으로 이동함에 따라 만주 일대의 인구는 크게 줄었다. 또한 남쪽에서 여전히 항거하는 南明을 제압하는 데 군사력을 집중하다보니, 만주 일대 청의 군사력은 이전에 비해 크게 약해졌다. 한반도의 조선도 만주 일대에 관심을 가질 처지가 아니었다. 만주지역을 夷狄의 땅으로 간주해온 전통적 인식 틀도 한 요인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삼전도항복(1637) 이후로는 청의 내정간섭을 견뎌내는 일만으로도 힘에 부쳤기 때문이다. 17세기 중반에 까자크인을 앞세운 러시아가 흑룡강과 송화강을 따라 만주 일대에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한 것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였다. 흑룡강 일대를 따라 청과 러시아 사이에 벌어진 연이은 전투에서 큰 효과를 보지 못한 청은 조선군의 화력을 이용하고자, 1654년과 1658년 두 차례에 걸쳐 조선에 銃手兵의 파병을 요구했다. 당시 청의 요구를 거절할 형편이 아니었던 조선 조정은 각각 150명에서 250명 규모의 소규모 부대를 출정시켰으니, 이것이 이른바 나선정벌이다. 이 논문에서는 조선과 러시아의 자료를 토대로 삼아 서로 대조함으로써, 그동안 개설 수준에 머물던 나선정벌의 추이를 자세히 고증해 재구성한다. 또한 그동안 다소 민족적 시각에서 나선정벌의 역사적 의의를 일부 과장한 기존 설명을 넘어, 17세기 중반에 새롭게 형성된 만주 일대의 새로운 국제질서라는 맥락에서 사실적으로 재해석한다.
  • 영문
  • Manch-Korean Expeditions to the Amur: A New Historical Setting in Mid-Seventeenth-Century Northeast Asia

    With the Manchu conquest of Ming China in the mid-1600s, Manchuria became a sparsely populated region: the majority of the Manchu population left their homeland and rushed to China. The Qing authority also concentrated all its energy on the military campaigns against Ming loyalists in the south. The Koreans on the peninsula also abandoned Manchuria, not only because they regarded it as a barbaric land but also because they never wanted to offend the Manchu. It was in this situation that new-comers began to infiltrate into northern Manchuria alongside the Amur (Heilung) River and the Sungari River. The Manchu-Korean joint expeditions to the Amur were planned and launched subsequently. In the early phase of the Manchu-Russian/Cossack conflicts, the Manchu suffered some successive defeats because they were surpassed in firepower and mobility. In the mid-1650s, for this reason, the Manchu authority demanded twice that Chosŏn send some troops armed with Korean-type muskets. Referring to Korean and Russian sources, this paper examines and provides the details of the expeditions and interprets the historical meaning of the expeditions in the context of the emergence of a new political topography in Northeast Asia in the mid-1600s.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청의 入關(1644)을 계기로 많은 인구가 중원으로 이동함에 따라 만주 일대의 인구는 크게 줄었다. 또한 남쪽에서 여전히 항거하는 南明을 제압하는 데 군사력을 집중하다보니, 만주 일대 청의 군사력은 이전에 비해 크게 약해졌다. 한반도의 조선도 만주 일대에 관심을 가질 처지가 아니었다. 만주지역을 夷狄의 땅으로 간주해온 전통적 인식 틀도 한 요인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삼전도항복(1637) 이후로는 청의 내정간섭을 견뎌내는 일만으로도 힘에 부쳤기 때문이다. 17세기 중반에 까자크인을 앞세운 러시아가 흑룡강과 송화강을 따라 만주 일대에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한 것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였다. 흑룡강 일대를 따라 청과 러시아 사이에 벌어진 연이은 전투에서 큰 효과를 보지 못한 청은 조선군의 화력을 이용하고자, 1654년과 1658년 두 차례에 걸쳐 조선에 銃手兵의 파병을 요구했다. 당시 청의 요구를 거절할 형편이 아니었던 조선 조정은 각각 150명에서 250명 규모의 소규모 부대를 출정시켰으니, 이것이 이른바 나선정벌이다. 이 논문에서는 조선과 러시아의 자료를 토대로 삼아 서로 대조함으로써, 그동안 개설 수준에 머물던 나선정벌의 추이를 자세히 고증해 재구성한다. 또한 그동안 다소 민족적 시각에서 나선정벌의 역사적 의의를 일부 과장한 기존 설명을 넘어, 17세기 중반에 새롭게 형성된 만주 일대의 새로운 국제질서라는 맥락에서 사실적으로 재해석한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먼저, 최종 연구성과물을 지난 6월에 이미 <<사학연구>> 110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학회, 2013)에 <17세기 중반 나선정벌의 추이와 그 동아시아적 의미>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게재하였다. 이는 그동안 나선정벌의 추이에 대해 개설 수준으로 알고 있던 국내 학계에 매우 정치한 전투상황을 보고한 의의가 있다. 이로써 애초의 활용계획을 100% 완수하였다. 이에 더해 현재 시점에서 몇 가지 추가 활용계획을 짜고 추진 중이다. (a) 현재 세계 학계에 나선정벌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으며, 그나마 일부 언급한 경우에도 그 원정에 조선군이 참전한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다. 따라서 이번 연구성과를 토대로 이를 영어 논문으로 발전시켜 영어권 저널에 게재할 계획을 세우고 준비 중이다. (b) 나선정벌은 현재 중국의 흑룡강성내에서 발생했음에도, 중국측 자료가 거의 없는 탓에 중극인 학자들조차 이런 사실을 거의 모르고 있다. 이는 러시아와의 충돌 과정을 매우 상세히 연구한 흑룡강성관계자들도 모르는 현실이다. 따라서 이번 연구성과물을 중국어로 번역해 중국 저널에 싣는 문제를 신중하게 고려 중이다. 왜냐하면 나선정벌 관련 중국 자료는 거의 없기 때문에, 청과 러시아 사이의 전투가 1650년대에 이미 송화강과 흑룡강 일대에서 전개되었음을 중국 학계에도 알리는 의의가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c) 2차 원정 당시 조선군 사령관으로서 매우 상세한 진중일기를 남긴 신유의 <<북정록>을 한글로 쉽게 역주해 보급하기 위해 지난 8월에 서해문집 출판사와 신유의 <<북정록>>을 역주해 2014년에 출간한다는 계약을 체결한 상태이다. 이런 작업과 병행해 <<북정록>>을 영어로도 역주한 후에 원고를 다듬고, 영어 작성한 논문을 한데 묶어 영어 단행본으로 출간할 계획을 세우고 추진 중이다. 일단은 한글 역주를 마무리한 후에 진행할 예정이다.
  • 색인어
  • 조선, 나선, 러시아, 송화강, 흑룡강, 의란현, 영고탑,효종, 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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