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진의 『再出發』(1942), 이기영의 『情熱記』(1948), 『純情』(1941), 채만식의 『황금광시대』(1949), 이광수의 『放浪者』(1949), 박태원의 『金銀塔』(1949), 김동인의 『활민숙』. 한국문학사에서 이 작품들의 존재는 온전히 규명된 적이 거의 없다. 이기영의 『情熱記』(1942)를 제외하면 이들은 ...
김기진의 『再出發』(1942), 이기영의 『情熱記』(1948), 『純情』(1941), 채만식의 『황금광시대』(1949), 이광수의 『放浪者』(1949), 박태원의 『金銀塔』(1949), 김동인의 『활민숙』. 한국문학사에서 이 작품들의 존재는 온전히 규명된 적이 거의 없다. 이기영의 『情熱記』(1942)를 제외하면 이들은 모두 1940년대 이전에 발표된 작품들의 개제작(改題作)으로, 1940년대 이후에 출간된 작품들이며, 식민지 후기부터 해방기에 걸친 작가들의 창작 문제와 출판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증표라고 해도 무방하다. 개작(改作)의 경우 그것은 원작에 가해지는 작가의 주체적인 재창작의 결과로 인식되며, 흔히 작가의식의 변모를 드러내는 표징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개제(改題)의 경우는 좀 복잡하다. 거칠게 나누어 개제는 작가 스스로 그 사유나 배경을 명시적으로 밝혀놓은 작품과, 그 사유나 배경을 전혀 밝히지 않은 작품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전자는 광의의 의미로 개작(改作)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이 경우 대개는 신문이나 잡지에 연재한 후 이를 단행본으로 출간할 때 개제가 이루어짐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연재 도중 개제가 이루어지는 경우나, 이미 출간된 단행본을 재출간하는 과정에서 개제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후자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있다. 후자의 경우는 대개 식민지시대에 신문이나 잡지에서 일차적으로 연재가 이루어진 후 동일 표제로 단행본이 출간되었으나, 이후 개제되어 다른 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재출간된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작가의 이름까지 바뀌는 경우도 목격된다.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암흑기, 해방기의 혼란스러운 사회 사정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본 연구자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자 한다. 이광수, 이기영, 김기진, 채만식, 박태원 같은 대가들에 대한 연구는 전기적 차원에서부터 개별 작품론에 이르기까지 이미 엄청난 성과를 축적한 상태이다. 그런데, 위에 언급한 작품들을 온전하게 다루거나, 개제의 문제에 천학한 논의는 찾기 어렵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상기 작품들이 모두 문학사의 ‘암흑기’라 불리는 1940년대 초나 해방기에 출간된 개제작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많은 연구자들이 상기 작품들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기 못하였거나, 혹은 인식했다 하더라도 단순한 제목 수정의 차원 혹은 원작의 해적판 정도로 받아들인 결과라 생각된다. 본 연구자는 근대 장편소설의 개제 양상을 꼼꼼하게 살펴 분류하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이를 위해 작가 자신이 직접 개제하고 그 배경이나 이유를 명시한 경우와, 작가가 개제 이유나 배경을 제시하지 않은 경우로 나누어 연구를 진행해 나갈 것이다. 후자의 경우 아직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본 연수자는 몇 가지의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현재까지 확인된 작품의 수는 그리 많지 않으나, 이후 자료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더 늘어날 것이라 판단된다. 지금까지 연구되지 않은 개제물들의 정확한 서지사항과 그 내적 계기를 파악하고, 존재하고 있으나 존재하지 않는, 미해결의 영역으로 남아 있던 상기 작품들의 실체를 밝혀 근대 장편소설사의 빈틈을 메우는 것이 본 연구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연구의 대상과 범위는 식민지시기에 발표되었다가 해방 전후에 개제된 장편소설로 한정한다. 본 연구는 근대 장편소설의 개제 양상에 주목하여 연구 대상을 해방 전후 개제작으로 한정하고, 이에 더하여 작가가 개제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는가의 여부를 중점적으로 고찰할 것이다. 일반론의 관점에서 볼 때 개제는 대개 작가가 이미 발표된 작품의 주제를 좀 더 적절하고 선명하게 반영하기 위한 행위로 인식된다. 그러나 상기 작품들처럼 작가와 개제 행위 사이의 명확한 인과관계를 파악하기 힘든 경우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식민지시기에 발표된 장편이 이후 단행본으로 출간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개제의 문제가 해방기라는 시대적 상황과 어떤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분석하는 작업으로 연결될 것이다. 즉, 왜 유명 작가의 장편들이 해방을 전후로 다수 개제되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당대 출판 상황과 작가들의 사정, 그리고 사회적 맥락의 총체 속에서 찾아내는 것이 본 연구의 일차적인 목적이라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1940년대를 전후로 한 한국 문단 및 출판업계의 상황에 대한 면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개제 행위의 의미를 분석한다. 이를 위해 『출판대감』과 같이 당시 출판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자료를 분석하고, 이와 더불어 각 작가들의 창작 활동과 정치적 행보 등을 조명하여 이 시기 개제 행위에 내포된 문학적, 사회적 의미를 추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