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최명희의 『혼불』과 박경리의 『토지』를 인류학적 관점으로 다가가 소설 속에 내재되어 있는 다양한 인간의 생활방식과 언어, 예술, 문화, 풍속 등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자 시도하였다. 『혼불』과 『토지』의 문학적 환경과 소설 속에 나타난 사회적 배경, 생활양식 등 ...
필자는 최명희의 『혼불』과 박경리의 『토지』를 인류학적 관점으로 다가가 소설 속에 내재되어 있는 다양한 인간의 생활방식과 언어, 예술, 문화, 풍속 등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자 시도하였다. 『혼불』과 『토지』의 문학적 환경과 소설 속에 나타난 사회적 배경, 생활양식 등의 요소 등을 꼼꼼히 살펴보고자 하였다.
『혼불』에는 혼례의 절차와 장례의 절차가 아주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혼례인 경우에도 강모와 효원의 혼인만을 중심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혼례 모습이 서술되고 있다. 또한『혼불』은 죽음의 의례를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은 청암부인의 삶을 회상하고 청암부인의 정신을 추모하기 위해서였다.『혼불』에서 죽음의례는 죽은 자를 또 다른 세계로 보내는 과정으로 재현되고 있다. 『혼불』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의 시작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최명희는 혼례와 장례를 같은 지평 끝에 놓고 그 둘이 서로 맞물려 원을 그리는 순환론적 세계관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순환론적 세계관은 세상 만물이 연기(緣起)의 법칙 안에서 생멸을 거듭한다는 불교적 인식을 구체화시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혼불』은 식민지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건들보다는 일제에 의해 만주로 강제 이주해온 유랑민들의 역사를 설명하고 묘사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만주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있다.『혼불』은 승자의 편에서 본 역사서술이 아니라 패자의 편에서 다시 보는 역사를 통해, 역사를 해석하는 인식전환의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작가는 역사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존의 판단들을 유보시키고 역사 뒤편에 소외되어 있는 존재들을 각성시키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역사를 되돌아보고 민족정체성을 회복하여 건설적인 미래를 기획하려는 것이다.
박경리의 『토지』는 다양한 인물유형이 등장한다. 지주인 최참판댁을 비롯하여 그 땅을 소작하고 있는 농부들, 노비, 주모, 지식계층, 동학당과 불교도들, 형사, 기독교인 등 조선의 사회계층 전반이 소설 속에 그려지고 있다. 『토지』의 주 무대는 경상도, 간도, 일본의 여러 마을 등인데 각 지역의 풍습과 세시풍속이 소설 속에 세밀하게 묘사되고 있다. 특히 다양한 명절과 풍속 안에 뿌리 깊이 담겨져 있는 관념들은 우리 민족의 사고와 생활방식을 여실히 드러낸다. 『토지』에는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많은 이야기와 노래들이 삽입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영적인 이야기, 귀신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이들 이야기는 인간과 귀신의 혼연일체를 창조해 인간 심층에 내면화되어 있는 복잡한 마음을 표출하기 위한 것이다. 『토지』에 삽입되어 있는 노래에는 춘향의 이별가, 각설이들의 노래, 일꾼의 노래, 기생의 노래, ‘심청전’의 걸유육아노래, 상두가 등이 삽입되어 있는데 이들 노래는 당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恨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박경리는 문화예술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으며 노비, 백정, 기생, 주모 등 하층민의 삶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며 역사를 그린다. 『토지』에는 경상도 방언, 함경도 방언, 전라도 방언, 서울말 등이 풍부하고 생동감 있게 씌여지고 있다. 또한 여러 가지 속담, 관용어구 등 토속적인 언어들이 자주 사용된다. 또한『토지』에는 대화가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후일담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가운데 가공되고 변형되는 구술적 특성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