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총력전 체제 하 ‘이동’하는 극장이었던 이동극단과 ‘종이연극(紙芝居)’에 주목하고, 국책 연극의 이동성이 제국과 식민지 현실의 장에서 어떻게 실천되고 구축되었는지를 실증적으로 밝히는데 목적이 있다. 일제 말기 이동극단의 공연에는 일반적인 연극을 비롯해 ...
본 연구는 총력전 체제 하 ‘이동’하는 극장이었던 이동극단과 ‘종이연극(紙芝居)’에 주목하고, 국책 연극의 이동성이 제국과 식민지 현실의 장에서 어떻게 실천되고 구축되었는지를 실증적으로 밝히는데 목적이 있다. 일제 말기 이동극단의 공연에는 일반적인 연극을 비롯해서 야담이나 만담 등의 레퍼토리가 채워졌고, 당시에 ‘종이연극’, ‘조희연극’, ‘조희광대’, ‘카미시바이’, ‘화극(畵劇)’ 등으로 혼용되어 명명되던 ‘종이연극’이 포함되었다. ‘종이연극’이라는 용어의 근간은 일본식 조어 ‘카미시바이(紙芝居)’에서 비롯된 것이다. 본 연구는 이동연극 중에서는 ‘종이연극’이라는 구체적인 실천과 장르에 주목하고, 식민지 ‘조선(朝鮮)’ 및 ‘대만(臺灣)’과 식민지 종주국으로서의 ‘일본(日本)’에서 종이연극이 기획되는 과정을 비교․고찰하고자 한다. 이것은 조선과 일본, 일본과 대만, 조선과 대만이라는 이항관계를 넘어 일본 내지(內地)와 복수(複數)의 식민지 상황의 문화구조적 관련성을 추출하려는 것이다.
‘종이연극’은 식민지 조선에서 최말단까지 틈입하여, 거리와 장터, 신사, 공원, 학교, 유치원, 강연회, 애국부인회, 도나리구미(隣組,10가구 구성의 반상회), 모자회(母子會) 등에서 구연(口演)되었다. 중일전쟁 이후 학교 교육에 활용되거나 피식민자들의 시국인식을 철저히 하기 위해 총독부가 적극적으로 유치한 종이연극은 ‘총동원’이라는 전시체제기의 ‘비상시’적 시대상황 하에서 공연되었던 계몽적 이벤트였다. 종이연극은 ‘이동성’과 ‘용이성’이라는 전쟁수행의 최대 장점을 인정받아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는 시점까지 제국과 식민지에서 실천되었던 제국의 움직이는 무대였다. 1941년에 성립된 내지의 ‘일본이동연극연맹’은 전시 하 프로파간다 예술로서의 이동연극 이념을 표명했고, 산하 협회의 조직과 인적구성, 이동연극대의 인력 구성과 이동 방식, 이동연극 작품 선정과 공연 수행방식 등에 관한 일련의 매뉴얼을 획정했다. 이는 조선총독부 문화정책과 조선연극문화협회 활동 방안 등에 그대로 하달되면서 조선의 이동연극 초기 정착을 가능케 했다. 일본교육카미시바이협회(日本敎育紙芝居協會)가 조선은 물론이고 식민지 대만에 미친 영향과 수순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그동안의 많은 식민지 문화연구들이 증명해냈듯이, 내지와 식민지의 신민(臣民)들이 총동원되어 전쟁 승리를 향해 진격하고 있던 전시체제기에 제국 일본은 새로운 체제의 구축과 재편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걸친 전방위적인 영역에서 시도했다. 그리고 각 식민지들을 문화적으로 통합하려는 정책과 함께 전쟁 총동원이라는 긴박하고 중요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일본이 패전의 순간까지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코자 했던 이동연극으로서의 종이연극의 경우, 그 구체적 수행의 양상이 어떠했는지를 연구할 필요가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일제 말기 조선의 ‘국민연극’이 내선일체의 ‘진심(誠)’과 ‘황민성’을 의심받으며 ‘저열한 연극’으로 비판받을 때, 유일하게 낙관적 전망 하에 연극적 실천에 찬사를 받은 것은 ‘이동연극’이었다. 제국의 문화정책 입론자들이 당시의 도회 중심 연극공연이 가진 각종 문제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면서 전혀 새로운 국민연극을 개척할 수 있는 영역으로 이동연극을 꼽았기 때문이다. 또 도시 뿐만 아니라 농산어촌의 대중들도 전쟁에 참여해야함을 고려할 때 “농산어촌과 공장 등에도 건전오락을 제공하고, 이동연극을 통해 싸우는 연극을 시도함으로써 전조선 민중의 것이 되어야”하는 이동연극은 ‘가능성의 연극’이자 ‘국민문화의 미래형(未來形)’이었다. 그중에서도 ‘종이연극’은 민중의 최하위 말단까지 침투하여 적성(赤誠)을 고양하고 국민의 신체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전쟁 말기 일제가 가장 강조했던 선전예술이었다. 본 연구는 조선과 일본, 대만이라는 세 개의 항을 설정하고, 일제 말기의 대동아 혹은 동아시아라는 상상의 범주 안에서 제국과 식민지의 문화 상황이 연동하는 방식을 고찰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종이연극’이라는 문화 수행을 염두하고, 종이연극의 제도적 안착과 프로파간다 문화운동의 공과(功過) 혹은 동일성과 차이를 분석해내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일본 제국의 전쟁 확대와 전면화가 초래한 대동아공영권의 황국신민 만들기 프로젝트는 식민지 조선과 대만을 대상으로 한 기존의 동화주의(同化主義)를 일층 강화하고 확장한 형태였다. 본 연구는 이상의 전제들을 바탕으로 전시 체제기 일본 제국의 확장되는 통치권역을 종이연극이라는 이동 미디어를 중심으로 종합적이고 입체적으로 규명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