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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한국과 일본에서 연재된 역사소설 비교 연구 - <임꺽정>과 <미야모토 무사시>를 중심으로 -
A comparative Study of Serialization of Historic Novels in Korea and Japan During the 1930s – Focusing Lim Guk-jung and Miyamoto Musashi -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시간강사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6-S1A5B5A07-2016S1A5B5A07915899
선정년도 2016 년
연구기간 1 년 (2016년 11월 01일 ~ 2017년 10월 31일)
연구책임자 이은봉
연구수행기관 인천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1920년대 후반부터 대두된 우리나라의 근대 역사소설은 밖으로는 만주사변(1931)과 안으로는 신간회 해산(1931) 그리고 신문사의 상업화 전략과 맞물리면서 유행하게 되었다. 만주사변 이후 일제의 대륙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한국에 대한 억압과 착취가 강화되었고, 민족통일 단체인 신간회 해산으로 언론․문화에 대한 일제의 탄압이 가중되자 민족주의적 저항문학이 복고사상과 고전에 대한 관심으로 쏠리게 되었다. 이 시기에 나온 대표적인 역사소설이 바로 홍명희의 <임꺽정>이다. 식민지 치하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추구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조선어와 조선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때 신간회 일원으로 있던 홍명희는 정사는 물론 야사의 기록을 바탕으로 하여 조선의 역사는 물론 당시를 살아간 민초들의 역사를 흥미로운 읽을거리로 제공하였다. 특히 양반계급의 모순과 이에 대한 민초들의 반기를 통해 식민지 한국인들의 처지를 대변해주는 것은 물론 민족의식을 함양시켰다.
    반면 일본의 근대 역사소설은 실록이나 전쟁담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대중을 상대로 구연하던 강담(講談)의 전통에서 만들어졌다. 처음부터 독자에게 읽힐 목적으로 써진 신강담은 신문에 연재되거나 대본소에 단행본으로 출판되면서 대중적 역사물로 자리 잡았고, 1910년부터 본격적인 역사소설로 등장했다. 이후 1920년대 메스미디어의 성숙을 기반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역사소설들이 나타났다. 이 역사소설들은 변혁기에 놓여 있는 선각자들의 고뇌 어린 모습을 보여주거나 굶주림을 벗어나지 못하는 하층민들의 삶을 통해 인간의 존재의미를 탐색하였다. 특히 만주사변 이후 대륙 침략을 본격화한 1930년대 연재된 요시카와 에이지의 <미야모토 무사시>는 60여 차례의 대결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검의 신에 미야모토 무사시의 구도자적 삶을 통해 전장에 내몰린 젊은이들에게 어떠한 고전 철학서나 종교 서적보다도 강한 인생의 교훈을 전해주었다. 특히 허구화된 무사도와 개인의 명예를 위한 살인의 정당화를 통해 군국주의를 고취하였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의 근대 역사소설은 서로 다른 시대적 상황에서 창작되었고, 특히 1930년대 만주사변 이후 신문에 연재된 역사소설은 그 차이를 더욱 극명히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렇게 비교 가능한 한․일 역사소설이 존재하고, 이러한 역사소설의 비교를 통해 한․일 문화의 특이성을 밝힐 수 있는 좋은 연구 자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와 같은 비교 연구는 진행되지 않았다. 다만, 2003년에 권영기가 󰡔한일 근대 역사소설 비교 연구󰡕라는 제목으로 박사학위논문을 쓴 바 있지만 권영기의 논문은 초기 역사소설 중심으로 했기 때문에 만주사변 이후 창작된 <임꺽정>과 <미야모토 무사시>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 본 연구에서 다루려는 소설들의 비교는 특히 대륙 침략이 공고해지는 1930년대 시대적 상황 속에서 역사소설 연재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개기가 될 것이라 본다.
    따라서 본 연구는 1930년대 한국과 일본에서 연재된 역사소설 중 <임꺽정>과 <미야모토 무사시>를 중심으로 이러한 소설이 나오게 된 시대적 배경과 소설 속 역사인식을 통해 각각의 소설이 당시 한국과 일본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 연구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를 기반으로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특이성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이다. 특히 <임꺽정>의 배경이 되는 조선 중기 사회상과 양반계급의 모순, 그리고 이에 반기를 든 민초들의 삶을 통해 조선의 민중사의 자긍심에 대해서도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미야모토 무사시>에서는 일개 무사의 삶을 구도자의 모습으로 그린 작가의 의도 속에 묻어나는 무사도의 허구성, 그리고 개인의 명예를 위해 살인을 정당화하는 무사들의 삶을 통해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군구주의의 실체에 대해서도 알아볼 것이다.
  • 기대효과
  • 1930년대 한국과 일본 신문에 연재된 역사소설 중 당시 독자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은 <임꺽정>과 <미야모토 무사시>는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독자들에게 각 나라의 시대정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임꺽정>의 작가 홍명희는 신간회운동을 통해 비타협적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 간의 민족협동을 추구했듯이, <임꺽정>을 통해 프로문학과 민족문학의 대립을 넘어 진정한 민족문학을 제시하였다. 또한 신간해 해산 이후 비타협적 민족주의 진영은 정치적 입지가 위축되자 문화운동으로 전환해 갔는데 <임꺽정>은 작가가 의도한 바와 같이 ‘조선 정조에 일관된 작품’으로 식민지 한국인들에게 민족의식을 함양시켜주었다. 반면 <미야모토 무사시>의 작가 요시카와 에이지는 중일전쟁 당시 두 번이나 중국에 종군한 경험과 무사시의 구도자적 삶을 통해 전장에 내몰린 일본 젊은이들에게 인생의 교훈을 주었다. 또한 허구화된 무사도를 만들어 자신들의 침략 행위에 정당성을 꾀하면서 군국주의를 고취하였다. 이들 소설들은 연재될 당시에도 상당한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도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대중문예소설이다. 때문에 자칫 학문적 가치가 없을 것 같다고 여겨 연구가 소홀할 수 있지만 이러한 비교 연구를 통해 한․일 두 나라의 문화적 특이성을 밝히는 귀중한 연구가 될 것으로 본다.
    특히 홍명희는 <임꺽정>에서 사화로 얼룩진 조선 중기의 역사를 통해 ‘인’ 없는 예의를 추구하여 허례와 허식만으로 국정을 혼란케 한 양반계급을 비판하면서 신분이 아닌 능력으로 대우받는 평등한 삶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드러냈다. 반면 요시카와 에이지는 <미야모토 무사시>에서 전쟁의 시대가 종식되고 막 평화기를 맞은 에도 시대 초기 무사를 통해 진정한 무사도란 무엇인지 말한다. 하지만 요시카와 에이지가 그리는 무사도는 실제가 아닌 허구화된 무사도로 자신들의 군국주의를 공고히 하기 위한 술책이었다. 왜냐하면 에도 시대 무사의 충은 ‘인’이 없는 상하의 계약을 의미했기 때문에 요시카와 에이지가 말하려는 수기치인의 무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은 같은 중국에서 같은 유학을 받아 들여도 자국의 정치․문화적 상황 속에서 이 학문을 공부하는 주체에 따라 많은 변이가 있음을 보았다. 때문에 이 연구가 잘 마무리 된다면 한․일 양국의 문화의 특이성의 가장 근원을 양반의 예의와 과 무사의 충의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할 삶의 정신도 새롭게 전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본 연구자가 학교에서 주로 하는 ‘교양한문’ 또는 ‘한문의 이해’ 등의 수업에서도 적극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한자와 함께 수용된 유학이 한국과 일본에서 어떻게 변용되었는지. 특히, 한문 강의에서 가장 기본에 되는 ‘충’이나 ‘인’ 또는 ‘의’와 같은 글자들이 각각의 나라에서 어떠한 의미로 쓰이며 왜 이렇게 다르게 사용되는지 등을 강의함으로 해서 한국과 일본의 같으면서 전혀 다른 문화에 대해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양반과 무사 비슷하지만 다른 한국과 일본의 문화의 특이성을 통해 21세기 우리가 가져야할 전통 사유가 무엇인지를 논하는데 중요 자료가 될 것으로 본다.
  • 연구요약
  • 1장. 1930년대 시대 상황
    1931년 9월 18일 대륙 침략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할 목적으로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은 이듬해 초 만주를 점령하고 괴뢰 만주국을 세웠다. 이후 일본은 본격적인 파시즘 체제로 전환했으며, 일본 내에서도 새로운 동아의 건설을 담당할 진정으로 위대한 역사적 국민임을 강조하고 내외의 정비건설에 매진할 것을 호소했다. 요시카와 에이지는 <미야모토 무사시>라는 소설을 통해 진정한 무사도란 무엇인지, 그리고 이러한 무사도를 ‘국가총동원법’ 이후 국민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면서 전개한 ‘정신 동원’ 캠페인에 활용코자 했다.
    1920년대~30년대 한국의 민족해방운동은 민족주의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의 두 흐름으로 파악될 수 있다. 그런데 두 흐름은 민족운동 이념, 방법, 주도세력 등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고 민족주의 좌파와 사회주의자들의 민족협동전선으로 창립된 것이 신간회였다. 이 단체의 일원이었던 홍명희는 <임꺽정>을 통해 프로문학과 민족문학의 대립을 넘어서 진정한 민족문학을 제시하고자 했다.
    2장. 민족의식 함양과 <임꺽정>
    <임꺽정>의 시대 배경은 연산군에서 중종을 거쳐, 인종에서 명종으로 이어지는 시기로 왕조의 기틀을 세운 시대였기 때문에 갈등과 다툼이 증폭되는 때이기도 했다. ‘봉단편’, ‘피장편’, ‘양반편’에 걸쳐 소개된 각종 사화로 점철되는 양반계급의 역사에서 홍명희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임꺽정이라는 도적이 나올 수밖에 없던 시대를 묘사하기 위함이었고, 이 피에 물든 역사가 우리의 역사였기 때문이었다.
    홍명희는 우리가 흔히 동일시하기 쉬운 양반의 사상과 유자의 사상을 나누어 설명한다. 유자나 양반 모두가 숭상하는 ‘인의예지’를 예로 들면서 인을 중시하면 유자, 예나 의를 중시하면 양반으로 구분한다. 이렇게 구분되는 주된 원인은 양반이라는 말이 애초 문무의 관료를 지칭했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홍명희는 “만일 무사정신을 한말로써 표현한다면 ‘충’이 되는 것같이 양반사상을 한말로써 표현한다면 예의다”라고 말한다. ‘인’ 없는 무사의 충이 상하의 계약을 의미하는 것처럼 ‘인’ 없는 예와 의는 양반의 허례와 허식일 뿐이다. 때문에 정치는 혼란해졌고,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임꺽정>을 통해 작가가 말하려고 한 것은 신분이 아닌 능력으로 대우받는 평등한 삶이었을 것이다. 꺽정이 처음부터 역심을 품고 반란을 주도 했던 것은 아니라 불평등한 삶을 살다보니 도적이 된 것이다. 홍명희는 이러한 조선의 역사 특히 백성들의 역사를 이처럼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 해서 식민지 치하에 우리 민족에게 역사의식과 민족의식을 함양코자 했다.
    3장. 군주주의 고취와 <미야모토 무사시>
    일본 문화 속에 녹아든 무사적 충의는 오랜 전란 속에서 만들어진 무사들 간의 의리에서 비롯된 정신으로 유가에서 말하는 충과는 차이가 있다. 주군이 나에게 영지나 봉록을 주었으니 나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목숨을 바치는 일종의 계약인 것이다. 무사들에게는 백성과 국가보다는 주군과 자신의 명예가 우선이었다. 따라서 쇼군에게 백성은 그저 조세를 납부하기 위한 존재였으며, 무사에게 백성은 자신들이 필요한 물자를 공급해 주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사실 이러한 무사도는 메이지 유신 이후 신분제도가 폐지되면서 무사 계급의 종식과 함께 사라진 듯했다. 그러나 청일전쟁 이후 무사도가 재평가되었고, 일본인들은 무사도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했다. 게다가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괴로 만주국을 세운 1932년 무렵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은 무사도를 일본 민족, 일본 국민의 도덕과 동일시했다.
    이와 같은 시기인 나온 <미야모토 무사시>는 60여 차례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불패의 성검인 미야모토 무사시를 통해 진정한 무사도란 무엇인지 말한다. 무사시가 생각하는 무사도란 백성을 위해 자신을 수양하여 국가를 다스리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명예가 필요하기 때문에 결투를 해 최고의 자리에 올라야 한다. 그래서 작가는 살인을 명예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이를 통해 자국민들에게 군국주의를 고취시켰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세계의 어느 나라든지 국민국가에 유리한 쪽으로 ‘전통’의 이미지는 조작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1930년대 한국과 일본에서 연재된 역사소설에 나타난 각국의 전통에 대한 이미지는 사뭇 다른 전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제국주의 시대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던 우리나라에서 연재된 󰡔임꺽정󰡕은 ‘전통’의 이미지를 조작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통해 임꺽정과 같은 도둑이 나올 수밖에 없던 시대를 반성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여 민족의식을 함양시켰다. 반면 지배국이었던 일본에서 연재된 󰡔미야모토 무사시󰡕는 과거에는 없는 ‘전통’을 만들어 침략전쟁에 활용하면서 군국주의를 고취했다. 물론 작가의 성향도 다르고, 처한 환경도 다르기 때문에 이 두 소설만으로 1930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소설을 특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신문연재소설을 통해 각국의 정신이라 말할 수 있는 ‘양반’과 ‘무사’를 다루었다는 점에서는 그 비교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 두 소설은 당시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독자들에게 각 나라의 시대정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홍명희는 󰡔임꺽정󰡕에서 사화로 얼룩진 조선 중기의 역사를 통해 ‘인’ 없는 예와 의를 추구하여 허례와 허식만으로 국정을 혼란케 한 양반계급을 비판하면서 신분이 아닌 능력으로 대우받는 평등한 삶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드러냈다. 반면 요시카와 에이지는 󰡔미야모토 무사시󰡕에서 60여 차례의 대결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검의 신을 통해 진정한 무사도란 무엇인지 말하였다. 하지만 요시카와 에이지가 그리는 무사도는 실제가 아닌 허구화된 무사도로 자신들의 군국주의를 공고히 하기 위한 술책이었다. 왜냐하면 에도 시대 무사의 충은 ‘인’이 없는 상하의 계약을 의미했기 때문에 요시카와 에이지가 말하려는 수기치인의 무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특히 󰡔임꺽정󰡕의 작가 홍명희는 신간회운동을 통해 비타협적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 간의 민족협동을 추구했듯이, 󰡔임꺽정󰡕을 통해 프로문학과 민족문학의 대립을 넘어 진정한 민족문학을 제시하였다. 또한 신간해 해산 이후 비타협적 민족주의 진영은 정치적 입지가 위축되자 문화운동으로 전환해 갔는데 󰡔임꺽정󰡕은 작가가 의도한 바와 같이 ‘조선 정조에 일관된 작품’으로 식민지 한국인들에게 민족의식을 함양시켜주었다. 반면 일본은 총력전체제 하에서 유학적 관념으로 포장된 무사도에 비판을 가하면서 전통적 무사들이 가진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 헌신의 도덕으로 무사도를 미화했다. 그리고 이러한 죽음의 미학으로 내부 구성원의 전의를 다졌다. 이러한 시기에 󰡔미야모토 무사시󰡕의 작가 요시카와 에이지는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두 번이나 중국에 종군한 경험과 무사시의 구도자적 삶을 통해 전장에 내몰린 일본 젊은이들에게 무엇이 진정한 애국인지 가르쳐주었고, 애국이라는 이름의 군국주의를 고취시켰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은 같은 학문을 받아 들여도 자국의 정치 ․ 문화적 상황 속에서 이 학문을 공부하는 주체에 따라 많은 변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만들어진 무사도로 현재를 살아가는 일본은 21세기 자신들이 가져야할 정신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 봐야할 것이고, 자기반성을 통해 우리 것을 버려버린 우리는 21세기 우리가 지켜야할 전통이 무엇인지 되새겨 봐야할 것이다.
  • 영문
  • In every country in the world, the image of “tradition” often tends to be fabricated in the direction of benefiting the nation state. However, in the serialized historical novels of 1930s Korea and Japan, the images of tradition of the respective countries unfolded in quite a different fashion. In Im Ggeok-jeong, which came out during the period of Japanese rule, the “tradition” was hardly fabricated, but actually shown in its unsugarcoated bare state as it is, so as to reflect on the history and period that gave rise to a bandit like Im Ggeok-jeong and find new paths to evoke the national awareness. On the other hand, in Miyamoto Musashi, which was serialized in Japan, the ruling nation, the “tradition” which did not exist prior to that was created to be utilized for the purpose of war of aggression and arouse militarism among its people. In particular, Hong Myeong-hui, the author of Im Ggeok-jeong expressed his critical position against the aristocratic class of Korea called yangban and aspiration towards egalitarian life by portraying the aristocrats who pushed for proprieties (ye) and righteousness (ui) that lacked benevolence (in) in their so-called pursuit of Confucian values, which led to empty formalities and vanity that eventually caused chaos in the affairs of the state. In the end, he expressed his advocacy for meritocratic society where people are treated equally and values merits over rank. In contrast, Yoshikawa Eiji talks about the true Japanese warrior, a.k.a. samurai’s code of conduct through the invincible god-like swordsman who was never defeated in his six dozen fights and duals in Miyamoto Musashi. Nowever, the warrior’s code he portrayed in the novel is not a real one, but a fictionalized and fabricated one that he created to solidify the militarism of Japanese empire at the time.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세계의 어느 나라든지 국민국가에 유리한 쪽으로 ‘전통’의 이미지는 조작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1930년대 한국과 일본에서 연재된 역사소설에 나타난 각국의 전통에 대한 이미지는 사뭇 다른 전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제국주의 시대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던 우리나라에서 연재된 󰡔임꺽정󰡕은 ‘전통’의 이미지를 조작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통해 임꺽정과 같은 도둑이 나올 수밖에 없던 시대를 반성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여 민족의식을 함양시켰다. 반면 지배국이었던 일본에서 연재된 󰡔미야모토 무사시󰡕는 과거에는 없는 ‘전통’을 만들어 침략전쟁에 활용하면서 군국주의를 고취했다. 물론 작가의 성향도 다르고, 처한 환경도 다르기 때문에 이 두 소설만으로 1930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소설을 특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신문연재소설을 통해 각국의 정신이라 말할 수 있는 ‘양반’과 ‘무사’를 다루었다는 점에서는 그 비교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 두 소설은 당시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독자들에게 각 나라의 시대정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홍명희는 󰡔임꺽정󰡕에서 사화로 얼룩진 조선 중기의 역사를 통해 ‘인’ 없는 예와 의를 추구하여 허례와 허식만으로 국정을 혼란케 한 양반계급을 비판하면서 신분이 아닌 능력으로 대우받는 평등한 삶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드러냈다. 반면 요시카와 에이지는 󰡔미야모토 무사시󰡕에서 60여 차례의 대결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검의 신을 통해 진정한 무사도란 무엇인지 말하였다. 하지만 요시카와 에이지가 그리는 무사도는 실제가 아닌 허구화된 무사도로 자신들의 군국주의를 공고히 하기 위한 술책이었다. 왜냐하면 에도 시대 무사의 충은 ‘인’이 없는 상하의 계약을 의미했기 때문에 요시카와 에이지가 말하려는 수기치인의 무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특히 󰡔임꺽정󰡕의 작가 홍명희는 신간회운동을 통해 비타협적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 간의 민족협동을 추구했듯이, 󰡔임꺽정󰡕을 통해 프로문학과 민족문학의 대립을 넘어 진정한 민족문학을 제시하였다. 또한 신간해 해산 이후 비타협적 민족주의 진영은 정치적 입지가 위축되자 문화운동으로 전환해 갔는데 󰡔임꺽정󰡕은 작가가 의도한 바와 같이 ‘조선 정조에 일관된 작품’으로 식민지 한국인들에게 민족의식을 함양시켜주었다. 반면 일본은 총력전체제 하에서 유학적 관념으로 포장된 무사도에 비판을 가하면서 전통적 무사들이 가진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 헌신의 도덕으로 무사도를 미화했다. 그리고 이러한 죽음의 미학으로 내부 구성원의 전의를 다졌다. 이러한 시기에 󰡔미야모토 무사시󰡕의 작가 요시카와 에이지는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두 번이나 중국에 종군한 경험과 무사시의 구도자적 삶을 통해 전장에 내몰린 일본 젊은이들에게 무엇이 진정한 애국인지 가르쳐주었고, 애국이라는 이름의 군국주의를 고취시켰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은 같은 학문을 받아 들여도 자국의 정치 ․ 문화적 상황 속에서 이 학문을 공부하는 주체에 따라 많은 변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만들어진 무사도로 현재를 살아가는 일본은 21세기 자신들이 가져야할 정신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 봐야할 것이고, 자기반성을 통해 우리 것을 버려버린 우리는 21세기 우리가 지켜야할 전통이 무엇인지 되새겨 봐야할 것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홍명희는 󰡔임꺽정󰡕에서 사화로 얼룩진 조선 중기의 역사를 통해 ‘인’ 없는 예와 의를 추구하여 허례와 허식만으로 국정을 혼란케 한 양반계급을 비판하면서 신분이 아닌 능력으로 대우받는 평등한 삶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드러냈다. 반면 요시카와 에이지는 󰡔미야모토 무사시󰡕에서 전쟁의 시대가 종식되고 막 평화기를 맞은 에도 시대 초기 무사를 통해 진정한 무사도란 무엇인지 말한다. 하지만 요시카와 에이지가 그리는 무사도는 실제가 아닌 허구화된 무사도로 자신들의 군국주의를 공고히 하기 위한 술책이었다. 왜냐하면 에도 시대 무사의 충은 ‘인’이 없는 상하의 계약을 의미했기 때문에 요시카와 에이지가 말하려는 수기치인의 무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은 같은 중국에서 같은 유학을 받아 들여도 자국의 정치․문화적 상황 속에서 이 학문을 공부하는 주체에 따라 많은 변이가 있음을 보았다. 때문에 이 연구가 잘 마무리 된다면 한․일 양국의 문화의 특이성의 가장 근원을 양반의 예의와 과 무사의 충의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할 삶의 정신도 새롭게 전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본 연구자가 학교에서 주로 하는 ‘교양한문’ 또는 ‘한문의 이해’ 등의 수업에서도 적극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한자와 함께 수용된 유학이 한국과 일본에서 어떻게 변용되었는지. 특히, 한문 강의에서 가장 기본에 되는 ‘충’이나 ‘인’ 또는 ‘의’와 같은 글자들이 각각의 나라에서 어떠한 의미로 쓰이며 왜 이렇게 다르게 사용되는지 등을 강의함으로 해서 한국과 일본의 같으면서 전혀 다른 문화에 대해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양반과 무사 비슷하지만 다른 한국과 일본의 문화의 특이성을 통해 21세기 우리가 가져야할 전통 사유가 무엇인지를 논하는데 중요 자료가 될 것으로 본다.
  • 색인어
  • 신문연재소설, 양반, 무사, 민족의식, 군국주의,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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