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의 피동 표현이 한국어사 문헌에 언해된 양상을 살피기 위해서는 먼저 고대 중국어의 피동 표현에 어떠한 종류가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 다음으로, 중세·근대어 문헌의 한문 원문이 입력된 말뭉치 자료에서 고대 중국어의 피동 표현을 검색하고, 언해 양상 ...
한문의 피동 표현이 한국어사 문헌에 언해된 양상을 살피기 위해서는 먼저 고대 중국어의 피동 표현에 어떠한 종류가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 다음으로, 중세·근대어 문헌의 한문 원문이 입력된 말뭉치 자료에서 고대 중국어의 피동 표현을 검색하고, 언해 양상을 분석해야 한다. 이와 관련한 연구 방법의 일부를 보이면 아래와 같다.
먼저 고대 중국어에서 피동을 나타내기 위해 어떠한 표현을 사용하였는지 확인한다. 고대 중국어는 특별한 문법적인 표지 없이 동사 자체만으로, 혹은 어순에 의해서 피동의 의미를 나타낼 수 있었다. 따라서 보다 정밀한 연구를 위해서는 피동의 의미를 나타내는 고대 중국어 문장들을 모두 추린 다음, 그것이 한국어로 번역될 때의 양상을 살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작업은 현실적으로 수행하기 쉽지 않다. 본 연구자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고려하여 전형적으로 피동을 나타낸다고 논의되어 온 한자, 즉 ‘爲’, ‘被’, ‘見’ 등이 포함된 구문으로 그 연구 대상을 제한한다. 즉 본 연구의 연구 대상은 ‘爲NP(所)VP’ 구문, ‘被VP’ 구문, ‘見VP’ 혹은 ‘見VP於NP’ 구문 등으로 한정된다.
다음으로 중세·근대어 문헌의 한문 원문 검토를 통해, 고대 중국어의 피동 표현이 어떠한 양상으로 언해되었는지 분석한다. 이와 같은 작업을 위해서는 한문 원문이 입력된 말뭉치 자료와, 이를 분석할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이에 본 연구자는 ‘역사자료 종합 정비 사업 결과물’과 텍스트 에디터 프로그램 EmEditor를 활용한다. 역사자료 종합 정비 사업 결과물은 한문 및 백화 원문이 입력된 말뭉치이기 때문에, 언해문에 대응하는 한문 및 백화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한문과 이에 대응하는 언해가 짝지어진 병렬 말뭉치이므로, 구문의 번역 양상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그리고 EmEditor는 XML 형식의 파일을 다루는 데에 유용하며, 특히 정규식을 활용한 검색이 가능하므로 피동 표현을 나타내는 한문 원문을 쉽게 검색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자료와 분석 도구를 바탕으로, 피동 구문으로 나타나는 피동 표현을 수월히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단계에 따라 연구를 진행하였을 때, 우리는 ‘爲’ 피동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것들을 확인할 수 있다. ‘爲’ 피동은 춘추전국 시대에 새로이 나타난 피동 형식으로, ‘見’ 피동보다는 그 출현이 늦다. ‘爲’ 피동은 ‘爲三軍獲’(三軍에게 포획을 당하다)과 같이 ‘爲VPNP’의 형식으로 사용되다가, 대략 한(漢) 초엽의 文言文에서부터 ‘爲三軍所獲’과 같이 ‘所’가 내포 동사에 삽입되는 ‘爲VP所NP’의 새로운 형식으로 쓰이게 되었다(Pulleyblank 2005: 96).
그런데 중세·근대한국어 시기의 ‘爲VP所NP’ 구문의 번역 양상을 살피기에 앞서, 15세기 이전의 한국어에서는 이러한 구문이 어떻게 언해되었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金星周(2006)에서는 고려시대 석독 구결 자료에 나타나는 ‘爲VP所NP’ 구문의 현토 양상을 논하며, ‘爲VP所NP’ 구문이 화엄경 계열의 문헌에서는 ‘--’로, 유가사지론 계열의 문헌에서는 ‘爲-’로 언해됨을 보였다. 그리고 이들은 고려시대 한국어에서 피동을 전적으로 담당하는 표현으로 볼 수 없음을 논하였다. 또한 이 연구에서는 15세기 언해문에 나타나는 ‘爲VP所NP’ 구문의 언해는 ‘--’ 구문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하였으며, 15세기 한국어에서는 ‘爲VP所NP’ 구문의 번역에 전형적인 피동문이 사용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런데 본 연구자가 15세기 구문의 피동 표현의 언해 양상을 관찰한 결과, ‘爲VP所NP’ 구문은 ‘NP1[피행위자]이 NP2[행위자]{ᄋᆡ/ᄋᆡ게} V옴이 ᄃᆞ외-’와 같은 피동 구문으로 언해되기도 하지만, 피동사로도 언해되며, 심지어 능동사로 언해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고대 중국어의 피동 표현이 반드시 피동문으로 언해되는 것은 아니며, 다양한 번역 양상을 보임을 확인할 수 있다.
더 많은 구문을 관찰한다면 ‘爲’ 피동과 ‘被’ 피동, ‘見’ 피동의 언해 양상에 존재하는 경향성을 포착하고, 이러한 피동 표현들 사이의 공통점이나 차이점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중세·근대한국어 시기의 피동에 대한 이해를 넓힘은 물론, 번역어로서의 중세·근대한국어가 가지는 특징을 밝힐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