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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행록(朝鮮使行錄)과 연행록(燕行錄) 비교 연구 -괴령의 「동사기사시략(東使紀事詩略)」과 홍순학의 「병인연행가(丙寅燕行歌)」를 중심으로-
A Comparative Study on the Records of visiting Joseon(使朝鮮錄) and the Yeonhaengrok -Based on "Dongsagisasiryak" by Kuiling and "Byeongin Yeonhaenga" by Hong Sun-hak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시간강사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8S1A5B5A07074289
선정년도 2018 년
연구기간 1 년 (2018년 09월 01일 ~ 2019년 08월 31일)
연구책임자 장정수
연구수행기관 고려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 과제는 청나라 사신의 조선 사행록과 조선 사신의 연행록을 비교해 봄으로써 이 둘의 문학적 특성을 규명하고, 19세기 후반 중국과 조선이 서로를 어떻게 인식했는가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외국 여행 경험을 기록한 기행문학은 신라시대부터 출현하여 고려를 거쳐 조선후기까지 꾸준히 창작되었다. 주로 중국과 일본을 대상으로 한 사행문학은 조선 전기부터 한문기행문으로 많이 창작되었으며, 조선후기에 이르러서는 청나라 사행이 빈번해지면서 한문연행록, 국문연행록, 연행록가사, 한시, 기행시조 등 다양한 양식으로 확대되어 방대한 작품이 생산되었다.
    그러나 이들 연행문학에 대한 연구는 몇몇 작품에 대한 관심 외에는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하다가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 임기중, 조규익 등에 의해 자료 정리와 개괄적인 논의가 이루어지면서 본격적으로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장르적 측면에서도 가사와 국문연행록에 대한 관심이 선행되었고, 한문 연행록은 2001년 임기중 편 『燕行錄全集』이 출간되어 자료에 대한 접근이 용이해지면서 관심이 일기 시작했다. 그 이후 『노가재연행록』과 『열하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한문연행록의 연구 대상이 확대되어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작품에 대한 번역, 해제, 작품론 등이 이루어졌으며, 연행록의 노정, 사행 중의 문화 교류, 중국에 대한 인식, 연행록에 나타난 연행(演行)의 양상, 연행록의 시대별 특성 연구 등 다양한 측면에서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연행록 연구의 대상 자료가 확대되고, 내용 분석 차원에서 벗어나 상대국에 대한 인식, 서술상의 특성, 작가 의식 등을 밝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조선→중국’ 즉 조선인이 중국에 다녀오면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으며, 중국을 어떻게 인식했는지에 대한 논의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중국→조선’ 즉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인식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연구 성과가 나오지 않은 것은 재고(再考)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에 김한규에 의해 󰡔조선사행록역주(朝鮮使行錄譯註)󰡕(소명, 2012), 󰡔使朝鮮錄硏究: 宋·明·淸 시대 조선 사행록의 사료적 가치󰡕(서강대 출판부, 2011)가 출간됨에 따라 조선 사행록의 존재가 연구자들 사이에 명확하게 인지되었고 비로소 조선 사행록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동월(董越)·공용경(龔用卿) 등의 개별 사행록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으며, 중국 사신들의 조선에 대한 인식, 양국의 경관에 대한 비교 연구 등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조선사행록은 주로 사학계의 주목을 받아 정치사, 외교사, 문화사 측면에서 논의되었고, 문학 쪽의 성과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같은 시기(1866년)에 창작된 조선 사행록인 괴령의 󰡔동사기사시략(東使紀事詩略)󰡕과 홍순학의 「병인연행가」를 대상으로 하여 두 작품의 기행문학으로서의 특성을 비교해 보고, 작가 의식, 상대국에 대한 인식 등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그간 ‘연행록에 나타난 대중국 의식’, ‘조선사행록에 나타난 대조선 의식’ 등의 논의가 소수 이루어졌지만 이는 한쪽의 일방적인 시선, 평면적 시각을 추출하는 데 그친 경향이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비슷한 시기의 작품을 대상으로 하여 서로의 시선을 대치시켜 보고자 한다. 서로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어디에서 머무는지, 공통의 관심사는 무엇인지, 어느 부분에서 서로의 의식이 충돌하는지, 상대방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등을 살펴보고 그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사회·문화적 배경이나 사상 등을 추론해 보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은 자아(自我)와 타자(他者)를 이해하는 중요한 방법이며, 기행문학을 연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기대효과
  • 본 연구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연행록에 대한 자료 정리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본 연구 과제에서는 『동사기사시략(東使紀事詩略)』과 「병인연행가」를 주 자료로 다룰 것이지만, 충실한 논의를 위하여 같은 시기(1866)에 창작된 엄석주의 한문 연행록 『연행록 건곤』(북행일기)의 해제 및 번역 작업을 수행할 것이며, 유인목의 「북행가」를 집중적으로 분석할 것이다. 아울러 조선 사행록과 연행록의 다각적인 비교 분석을 위해 19세기 후반에 지어진 조선 사행록과 한문연행록, 국문연행록에 대한 광범위한 검토 작업을 수행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생성된 중간 성과들은 연행록과 조선 사행록 연구의 자료 확충이라는 중요한 성과를 제공할 것이다.
    조선 사행록과 연행록의 비교 연구는 연행문학 연구의 외연을 확대하고 연구방법론에 있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사행문학 연구는 주로 조선-중국, 조선-일본을 대상으로 하여 우리가 그들 나라에 가서 무엇을 보았으며, 어떻게 느끼고 판단했느냐에 초점이 놓여 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는가 즉, 외부인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비치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따라서 ‘상호인식/상호시선’이라는 연구 방향의 전환은 조선-중국뿐만 아니라 조선-일본, 조선-서양으로 그 대상을 확대하여 자아와 타자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이해를 이끌어 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지금껏 연행문학(사행문학)에 대한 교육은 이국의 낯선 풍광이나 풍속을 소개하고, 상세한 묘사 등의 서술 기법을 강조하는 데 치중되어 왔다. 외국을 대상으로 한 기행문학은 이국 풍경과 낯선 문화를 바라보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궁극적으로는 나, 우리 민족,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데로 귀착되어야 한다. 그런 이유에서 연행문학에 대한 교육도 동일한 현상이나 사안에 대해 외부인과 내부인이 어떤 차이를 드러내는가를 묻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며 본 연구에 이에 도움을 제공할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본 연구 과제를 통해 형성된 분석 틀과 자료들은 송-명-청으로 넘어오면서 중국인들의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은 어떻게 변화했는지, 중국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또 어떻게 달라졌는지 해명하는 후속 연구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 연구요약
  • 1) 연구 목적
    본 과제는 청나라 사신의 조선 사행록과 조선 사신의 연행록을 비교해 봄으로써 이 둘의 문학적 특성을 규명하고, 19세기 후반 중국과 조선이 서로를 어떻게 인식했는가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연구 과제를 수행함으로써 연행문학 연구의 외연을 확장하고 새로운 연구 방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2) 연구 대상 자료
    본 연구에서는 19세기 후반 작품 중 1866년 고종의 가례책봉을 위한 進賀謝恩兼奏請使로 북경에 다녀온 홍순학의 「병인연행가」와 청나라 穆宗 同治 5년(1866) 왕비 책봉을 위해 조선에 다녀간 청나라 사신 괴령의 『東使紀事詩略』을 대상 작품으로 선정하였다. 같은 해에 동일한 사안에 대해 사신이 오고간 것을 양쪽에서 기록했다는 것, 두 사람 모두 공적인 신분에서 작품을 창작했다는 점을 고려하였다. 이 외에 홍순학과 함께 사행에 참여한 유인목이 지은 가사 「북행가」와 같은 해 10월 謝恩兼冬至使의 일행으로 북경에 다녀온 엄석주가 지은 「연행록」을 보조 자료로 사용할 것이다.

    3) 연구 내용
    이 연구에서는 두 작품의 구성 및 서술 방식을 검토해 본 다음, 사행 중 작가의 태도, 관심사, 상대국에 대한 인식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예상되는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서론 / 2. 내용 및 구성, 서술 방식 / 3. 작가의 태도 및 상호 인식 3-1) 작가의 태도: 충실한 황제의 심부름꾼, 성실한 여행자/관찰자 3-2) 상호인식: 예의바른 번국(藩國), 균열하는 종주국 / 4. 결론

    4) 연구 방법 및 진행 절차
    ◆ 구조 분석을 통한 구성 및 서술 방식 파악
    『동사기사시략』은 일기형식의 산문으로 일정을 서술하고 각 지역에 도착할 때마다 시를 한두 수씩 지어 감회를 술회하는 양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唱和詩를 외교에 활용한 문화와 관련이 있으며, 조선 사행록의 저자들이 모두 당대 일류의 文士 출신이라는 점과 관련이 있다. 「병인연행가」는 서두와 결말, 往程과 回程, 연경 체류와 귀가 재회 등 기행가사의 구성 요소를 잘 갖춘 한글 가사이다. 일정별로 다양한 견문과 감회를 노래하였는데, 송별연, 중국의 문물, 생활풍속 등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특징이다. 정보의 정확한 기록과 전달에 주력하였는데, 규방의 여인들을 주독자로 삼아 여행 체험을 공유하고자 한 것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본다.
    ◆ 노정 분석을 통한 두 작가의 시선 비교
    朝行과 燕行의 노정은 기본적으로 일치하지만 관심을 갖는 풍경과 장소는 당연히 차이가 날 것으로 예상한다. 『동사기사시략』에서는 중국 내의 자연경관·풍속에 대한 관심이 보이지 않으며, 遼東 지역의 군사적 중요성과 연로의 관아, 지방관의 정치 능력 등에 대한 관심이 나타난다. 반면 「병인연행가」에서는 古蹟, 三學士·효종과 관련된 장소에 관심을 가지며, 중국의 번화한 건축물에 많은 관심을 드러낸다. 조선 내 노정에 있어서는 『동사기사시략』에서는 주로 경치, 접빈 태도 등에 관심을 보이고, 「병인연행가」에서는 명승과 유적, 지방 관아에서 제공하는 연회와 공연 등에 관심을 보인다. 이러한 시선의 차이는 작가의 신분과 취향, 당시의 정치·문화적 배경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추정한다.
    ◆ 작가의 태도 및 상호인식 분석
    괴령에게서는 ‘충실한 황제의 심부름꾼/시인’의 면모가, 홍순학에게서는 ‘성실한 여행자/관찰자’의 면모가 강하게 드러난다. 괴령은 의례를 과오 없이 행하여 임금의 위엄을 드높이고 욕되게 하지 않겠다는 사명감을 강하게 풍긴다. 그리하여 사적인 체험이나 관심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공적인 업무 수행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또한 조선의 질박한 풍속, 검소함을 칭찬하며 이하응과 이우석의 시와 그림을 칭찬하기도 하는데, 이는 대국 칙사의 너그러움과 종주국의 우월의식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홍순학의 경우는 25살의 소년 서장관으로 처음 사행에 참여하게 된 젊은이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작품 곳곳에 드러나고 있다. 또한 대명의리론이 약화되어 있으면서도 보수성이 드러나며, 서양 세력에 의해 균열되는 청나라의 사정을 파악하는 시선도 포착된다.
    ◆ 사행문화에 대한 이해와 19세기 후반 조선과 중국의 정치사 파악
    두 작품의 내용과 특성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행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사행단 파견 절차 및 노정, 사신 접대, 칙서를 받는 행사 등에 대한 연구 성과를 고찰할 것이다. 또한 19세기 후반 동아시아 국제정세의 변화 및 朝淸의 사회·정치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 습득 작업도 수행해 나갈 것이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고(本稿)는 청나라 사신의 조선사행록(朝鮮使行錄)과 조선 사신의 연행록(燕行錄)을 비교해 봄으로써 이 둘의 문학적 특성 및 상호 인식을 구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고종 3년(1866) 4월에 고종의 가례책봉(嘉禮冊封)을 주청(奏請)하기 위해 북경(北京)에 다녀온 홍순학(洪淳學)의 「병인연행가(丙寅燕行歌)」와 그해 8월 고종의 가례책봉을 위해 조선에 다녀간 청나라 사신 괴령(魁齡)이 지은 『동사기사시략(東使紀事詩略)』을 비교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우선 두 작품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작가의 사행(使行) 태도와 창작 목적을 살펴보았다. 「병인연행가(丙寅燕行歌)」는 전형적인 연행가사(燕行歌辭)로 연행사(燕行使)로 발탁된 것에 대한 자부심과 여행객으로서의 호기심이 강하게 드러난 반면, 『동사기사시략(東使紀事詩略)』에는 사신(使臣) 신분에 대한 자괴감과 시인(詩人)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강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작가의 태도는 작품의 창작 목적과도 관련이 된다. 홍순학은 집안의 여성 독자들을 위해 한글로 가사를 지었으므로, 이색적인 건축물, 낯선 풍속, 이국적인 경관(景觀) 등 자신의 견문(見聞)을 가능한 성실하게 설명하고 묘사하는 데 주력한다. 이에 반해 괴령의 『동사기사시략』은 시문집(詩文集)의 성격을 띠는 것으로, 자신이 사신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음을 알리고 여행 중의 경험과 소회(所懷)를 담은 시를 소개함으로써 자신의 시작(詩作) 능력을 발휘하였다.
    두 작품에 담긴 상대국(相對國)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면, 여타의 연행록(燕行錄)이나 조선사행록(朝鮮使行錄)에 나타나는 것과 큰 차이가 발견되지 않는다.
    홍순학의 「병인연행가」는 청나라의 발달한 문물에 압도당하면서도 그 가치를 애써 무시하고 만주족의 무례함과 천박함을 드러냄으로써 자존감을 지키고자 하였다. 그는 번화한 도성과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 등에 찬탄하면서도 사치와 방탕이라는 유가적 가치관으로 그 가치를 절하한다. 또한 일상적인 풍속에 대해서도 거부 반응을 보이며 비판하는데,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틀리다’고 하는 태도는 조선 지식인의 폐쇄적인 인식을 반영한다. 그 외에도 이 작품에는 여타의 연행록(燕行錄)과 마찬가지로 존명배청(尊明排淸) 사상이 바탕에 깔려 있다. 명(明)은 무조건 옳고, 청(淸)은 무조건 틀렸으며, 조선은 소중화(小中華)라는 인식은 조선인이 만주족, 몽골족, 서양인보다 우위에 있다는 우월감으로 표출된다.
    괴령은 비록 점잖게 우회적으로 표현했지만, ‘淸은 조선의 종주국이며, 조선은 보잘 것 없는 나라’라는 중국인의 전통적인 조선관(朝鮮觀)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조선에 대해 이야기할 때 흔히 언급되는 ‘예의 바른 나라’라는 것은 기자(箕子) 이후 우리나라가 중국의 문화적 지배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검소하고 소박하다’는 것은 중국에 비해 발달하지 못한 나라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두 작품이 동아시아의 국제관계가 격변하는 19세기 후반에 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통적인 상호인식을 보여주는 것은, 아직은 형식적으로나마 ‘조공(朝貢)-책봉(冊封)’이라는 조선과 중국의 전통적인 외교관계가 유지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두 작품의 성격과 창작 목적 또한 외교관계 등 민감한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후 서양열강의 침략으로 조선과 淸의 관계가 변화를 겪게 되면 서로에 대한 인식은 좀 더 비판적인 양상을 띠게 됨을 확인할 수 있다.
  • 영문
  • This article aims to compare the two Sahaengrok(使行錄), were written by the envoys dispatched from Qing Dynasty to Joseon Dynasty and from Joseon Dynasty to Qing Dynasty, and clarify the literary characteristics and mutual recognition of them.
    For this purpose, following works were selected for comparison. <Byeongin Yeonhaenga(丙寅燕行歌)> was written by Hong Soon-hak visited Beijing to asking for the King Gojong’s installation ceremony in April 1866 and <Dongsagisasiryak(東使紀事詩略)> was written by Kuiling who was the envoy of Qing Dynasty and dropped Joseon for the installation ceremony in August.
    First of all, I examined the author's envoying attitude and purpose of creation to to underst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two works.
    <Byeongin Yeonhaenga(丙寅燕行歌)> is a typical Yeonhaeng Gasa and revealed strongly the pride in being selected as a envoy and the curiosity as a journeyer. On the other hand, it revealed strongly a sense of shame as an envoy and the desire to be recognized as a poet in <Dongsagisasiryak(東使紀事詩略)>. This writers's attitude is related to the creating purpose of the works. Hong Soon-hak, wrote Gasa in Hangul for the female readers in the house, focused on attempting to faithfully explain and portray his own knowledge, such as exotic buildings, strange customs, and exotic landscapes. On the contrary, Kuiling's <Dongsagisasiryak(東使紀事詩略)> is a collection of poems, which informs that he has faithfully carried out the mission as an envoy and introduces the poems of the travel experiences and excitements, and exerted the his writing poem ability.
    If we investigate the perceptions of the other country in the two works, we cannot find much difference with what appears in other Yeonhaengrok or Records of visiting Joseon. Hong Soon-hak's <Byeongin Yeonhaenga(丙寅燕行歌)> tries to protect his self-esteem by revealing the rudeness and frivolity of the Manchu people while being overwhelmed by the developed culture of the Qing dynasty. He admires the bustling capital city and the splendid and magnificent buildings, but also devaluates the luxury and debauchery with the Confucian values. In addition, he reject and criticize everyday customs and his attitude of not being able to admit 'difference' and saying 'wrong' reflects the closed perception of Korean intellectuals. In addition, it is based on the thoughts of respecting Ming Dynasty and excluding Qing Dynasty as well as other Yeonhaengrok. The perception that the Ming Dynasty is right unconditionally, the Qing Dynasty is unconditionally wrong, and Joseon is a small China is expressed by a sense of superiority that the Koreans are superior to Manchu people, Mongols, and Westerns.
    Although Kuiling expressed gently in a detouring way, but could not escape the traditional chinese view of Joseon that Qing dynasty is the dominant country of Joseon and Joseon is a trifling country. When they talk about Joseon, ‘the courteous country’, commonly mentioned, means that Korea is under cultural rule of China after Giza. In addition, ‘frugality and simplicity’ means that the country is less developed than China.
    Although these two works were written in the late 19th century when the international relations of East Asia were disrupted, it still shows the traditional mutual recognition. However, it can be said that the traditional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Joseon and China, which are still maintained formally.
    In addition, it is assumed that the feature and purpose of the two works would have been limited in dealing positively with the sensitive issues such as the diplomatic relations. Afterwards, when the relationship between Joseon and Qing dynasty changed due to the invasion of Western powers, the awareness of each other became more critical.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고(本稿)는 청나라 사신의 조선사행록(朝鮮使行錄)과 조선 사신의 연행록(燕行錄)을 비교해 봄으로써 이 둘의 문학적 특성 및 상호 인식을 구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고종 3년(1866) 4월에 고종의 가례책봉(嘉禮冊封)을 주청(奏請)하기 위해 북경(北京)에 다녀온 홍순학(洪淳學)의 「병인연행가(丙寅燕行歌)」와 그해 8월 고종의 가례책봉을 위해 조선에 다녀간 청나라 사신 괴령(魁齡)이 지은 『동사기사시략(東使紀事詩略)』을 비교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우선 두 작품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작가의 사행(使行) 태도와 창작 목적을 살펴보았다. 「병인연행가(丙寅燕行歌)」는 전형적인 연행가사(燕行歌辭)로 연행사(燕行使)로 발탁된 것에 대한 자부심과 여행객으로서의 호기심이 강하게 드러난 반면, 『동사기사시략(東使紀事詩略)』에는 사행(使行)의 고달픔과 사신(使臣) 신분에 대한 자괴감이 강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작가의 태도는 작품의 창작 목적과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홍순학은 집안의 여성 독자들을 위해 한글로 가사를 지었으므로, 이색적인 건축물, 낯선 풍속, 이국적인 경관(景觀) 등 자신의 견문(見聞)을 가능한 성실하게 설명하고 묘사하는 데 주력한다. 이에 반해 괴령의 『동사기사시략』은 조선 사행의 경험을 담은 시문집(詩文集)으로, 자신이 사신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음을 알리고 여행 중의 경험과 소회(所懷)를 담은 시문집을 발간함으로써 자신의 문학적 역량을 인정받고자 하여 창작했다. 따라서 『동사기사시략(東使紀事詩略)』에는 견문의 구체적 묘사나 보고보다는 여행객으로서 느끼는 소회를 토로한 것이 작품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두 작품에 담긴 상대국(相對國)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면, 여타의 연행록(燕行錄)이나 조선사행록(朝鮮使行錄)에 나타나는 것과 큰 차이가 발견되지 않는다. 홍순학의 「병인연행가」는 청나라의 발달한 문물에 압도당하면서도 그 가치를 애써 무시하고 만주족의 무례함과 천박함을 드러냄으로써 자존감을 지키고자 하였다. 그는 번화한 도성과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 등에 황홀함을 느끼고 찬탄하면서도 사치와 방탕이라는 유가적 가치관으로 그 가치를 절하한다. 또한 그는 일상풍속에 대해서 강한 거부 반응을 보이는데, 이는 가치 평가가 불가능한 문화에 대해서도 소중화(小中華) 의식을 투영하여 판단하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기후나 지형 등 환경에 의해 형성된 문화적인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다름’을 ‘틀리다’고 주장하는 태도는 조선 지식인의 폐쇄적인 인식을 드러낸다. 그 외에도 이 작품에는 여타의 연행록(燕行錄)과 마찬가지로 존명배청(尊明排淸) 사상이 곳곳에 나타난다. 명(明)은 무조건 옳고, 청(淸)은 무조건 틀렸으며, 조선은 소중화(小中華)라는 인식은 명의 유속(遺俗)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 만주족의 풍속에 대한 무조건적인 부정, 몽골족과 서양인보다 조선인이 우위에 있다는 우월감 등으로 표출된다.
    괴령은 비록 점잖게 우회적으로 표현했지만, ‘淸은 조선의 종주국이며, 조선은 보잘 것 없는 나라’라는 중국인의 전통적인 조선관(朝鮮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에 대해 이야기할 때 흔히 언급되는 ‘예의 바른 나라’라는 것은 기자(箕子) 이후 우리나라가 중국의 문화적 지배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검소하고 소박하다’는 것은 중국에 비해 산업이 발달하지 못한 나라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한양에 이르기까지의 험난한 사행 길을 언급한 시가 많이 있는데, 비록 시인의 감수성으로 아름답게 그리고 있지만 이 또한 조선이 산업과 여러 측면에서 발달하지 못한 비문명국이라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작품은 동아시아의 국제관계가 격변하는 19세기 후반에 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외교관계 등 예민한 국제 정세를 직접적으로 담아내지는 못하고 있다. 「병인연행가」에는 당시 淸의 상황에 대한 단편적인 언급과 서양인에 대한 적대감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괴령의 『동사기사시략』에서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추론할 수 있는 내용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두 작품은 여전히 전통적인 상호인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아직은 형식적으로나마 ‘조공(朝貢)-책봉(冊封)’이라는 조선과 중국의 전통적인 외교관계가 유지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두 작품의 성격과 창작 목적 또한 외교관계 등 민감한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후 서양열강의 침략으로 조선과 淸의 관계가 변화를 겪게 되면 서로에 대한 인식은 좀 더 비판적인 양상을 띠게 됨을 확인할 수 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연구 결과
    본고에서는 고종 3년(1866) 4〜8월에 고종의 가례책봉(嘉禮冊封)을 주청(奏請)하기 위해 북경에 다녀온 홍순학의 「병인연행가」와 그해 8〜11월에 고종의 가례책봉을 위해 조선에 다녀간 청나라 사신 괴령(魁齡)이 지은 『동사기사시략(東使紀事詩略)』을 비교함으로써 19세기 조선사행록(朝鮮使行錄)과 연행록(燕行錄)의 상호인식을 고찰하였다.
    두 작품은 사행(使行) 태도와 창작 목적에서 차이를 지니며 이는 작품의 내용에도 영향을 미쳤다. 「병인연행가」는 전형적인 연행가사로 연행사(燕行使)로 발탁된 것에 대한 자부심과 여행객으로서의 호기심이 강하게 드러난 반면, 『동사기사시략』에는 사신 신분에 대한 자괴감과 시인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강하게 드러났다. 홍순학은 집안의 여성 독자들을 위해 한글 가사를 지었으므로, 자신의 견문(見聞)을 가능한 자세하게 기록함으로써 특별한 경험을 공유하고자 하였다. 이에 반해 괴령은 여행 중의 경험과 소회(所懷)를 담은 훌륭한 시를 창작하는 데에 의미를 부여하였다.
    두 작품의 창작 목적이 다른 까닭에 작가가 관심을 갖는 요소도 차이를 보인다. 홍순학의 경우는 중국은 물론 조선에서도 고적(古跡)이나 건축물, 시전(市廛), 연희(演戲), 의식주 관련 풍속 등 눈에 보이는 색다른 것들에 관심을 기울인 반면, 괴령의 경우는 여행 중에 만나는 경물(景物)과 여행객으로서 느끼는 소회를 표현하는 데 집중하였다.
    두 작가의 상대국에 대한 인식은 전통적인 대청관(大淸觀), 대조선관(對朝鮮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개인적인 특성에 따라 세부적인 차이를 드러냈다. 「병인연행가」는 존명배청(尊明排淸) 의식을 바탕으로 하면서 서구열강에 대한 강한 반감을 보여주었다. 괴령은 ‘淸은 조선의 종주국이며, 조선은 보잘 것 없는 나라’라는 중국인의 전통적인 조선관(朝鮮觀)을 견지하고 있었으나 점잖은 성품인지라 그러한 의식을 우회적으로 표현했으며, 시인의 감수성으로 조선의 아름다운 풍광을 잘 그려내었다.
    이 두 작품이 이러한 경향을 띠는 것은 당시 동아시아의 국제관계가 격변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형식적으로나마 ‘조공(朝貢)-책봉(冊封)’이라는 조선과 중국의 전통적인 외교관계가 유지되고 있었으며, 대원군과 청나라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던 분위기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2. 활용 방안
    본 연구에서 수행한 조선사행록과 연행록 비교 연구는 기행문학 연구의 외연을 확대하고 연구방법론에 있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본고에서는 19세기 조선과 청의 사행록을 비교하였지만 이 방법론을 조선과 중국, 조선과 일본, 조선과 서구의 기행문학 연구에 적용한다면 우리나라와 주변국과의 교유 양상을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시대에 따라,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상호인식이 어떤 변화를 겪어 왔는지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껏 사행문학에 대한 교육은 이국의 낯선 풍광이나 풍속을 소개하고, 상세한 묘사 등의 서술 기법을 강조하는 데 치중되어 왔다. 외국을 대상으로 한 기행문학 연구는 눈에 보이는 이국적인 요소들을 찾아내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궁극적으로는 나, 우리 민족,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데로 귀착되어야 한다. 그런 이유에서 이 연구는 타자(他者)가 우리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우리는 타자(他者)를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방법을 문학 수업에 도입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대상국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요소를 뽑아서 비교해 보게 한다면 기행문학 작품을 재미있고 독자적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두 작품을 큰 틀에서 비교하였는데, 이 연구를 기반으로 하여 좀 더 세부적인 연구로 발전시킬 수 있다. ‘동일한 장소에 대한 양쪽의 해석 차이’와 같은 세부 주제를 추출하여 논의를 진행시킨다면 상대국에 대한 인식을 좀 더 세심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며, 개별 작품의 특성도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 색인어
  • 괴령(魁齡), 기행가사(紀行歌辭), 기행문학(紀行文學), 대외인식(對外認識), 《동사기사시략(東使紀事詩略)》,명나라, 병인연행가(丙寅燕行歌)>, 북행가(北行歌)>, 《사조선록(使朝鮮錄)》, 사행가사(使行歌辭), 사행록(使行錄) , 상호인식(相互認識), 서양열강, 서양인, 소중화(小中華) 의식, 엄석주(嚴錫周), 연행가사(燕行歌辭, 연행록(燕行錄), <연행록>, 외교관계(外交關係), 유가적(儒家的) 가치관(價値觀), 유인목(柳寅睦), 조공(朝貢)-책봉(冊封) 관계, 조선사행록(朝鮮使行錄), 존명배청(尊明排淸, 청(淸)나라, 홍순학(洪淳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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