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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 의해 강압된 유교 문화 연구 - ‘교육칙어’, ‘호주제도’, ‘현모양처론’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Korean Confucian Culture Coerced by the Japanese Empire : Focusing on ‘Imperial Edict on Education’, ‘hoju(戶主) system’, ‘good wife and wise mother’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시간강사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9-S1A5B5A07-2019S1A5B5A07092081
선정년도 2019 년
연구기간 1 년 (2019년 09월 01일 ~ 2020년 08월 31일)
연구책임자 이은봉
연구수행기관 인천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오늘날 ‘주부의 명절증후군’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낸 제사 문화와 시집살이 문화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이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막연하게 조선시대 그것도 유교 문화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조선시대 여성관련 논문들을 찾아보면, 조선 중기까지만 하더라도 제사는 윤회봉사와 분할봉사가 일반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딸들도 제사를 지냈고 재산도 똑같이 상속 받아서 여자들은 며느리보다 딸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했다. 게다가 고려 시대부터 이어져온 ‘男歸女家婚’, 즉 처가살이가 조선 후기까지도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말하는 시집살이는 없었거나 상대적으로 적었을 것이다.
    오늘날 문제가 되는 장자 중심의 제사 문화와 이로 인한 시집살이 문화의 확산에 대해 많은 연구자들은 親迎禮가 시행되고, 재산과 제사를 장자에게만 물려주는 제도가 본격화되는 임병양란 이후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인구의 10%도 안 되는 양반 문화가 전 인구에게 퍼져 지금과 같은 시집살이 문화로 만들어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시속의 풍속이 아무리 교화서를 보급하고 교육시킨다 해도 쉽게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문화가 전 인구에 보급되어 정착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성리학적 제례 문화가 보편화되어야 가능했다. 실제로 19세기에 이르면 전 인구의 80~90%가 양반임을 지칭하는 사회가 되고, 『주자가례』나 『소학』과 같은 양반서의 보급은 ‘禮’를 형식화시켰다.
    그렇지만 아무리 양반이 늘고, ‘예’가 형식화 되었다 하더라도 이것이 전 인구가 지켜야할 보편 윤리처럼 되기까지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이 특별한 것을 찾아내는 것이 본 연구의 궁극적 목적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여성 억압의 주요 메커니즘을 조선시대 유교 문화에서 찾았다. 그래서 이런 여성 억압이 아주 오래된 전통이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한국의 여성 억압은 가정 내 문제만 놓고 볼 때, ‘독박유아’에서부터 ‘시집살이’까지 모두가 성리학적 가부장제 때문에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 인구가 유교 그것도 성리학적 예법을 따지며 육아는 여성만의 일이고, 여자는 남자의 집으로 시집을 가서 시댁의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게 된 것은 모두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만들어진 전통’이다는 것이 본 연구자의 생각이다. 물론 조선 시대에 이러한 성리학적 문화가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전 인구에 보급되기까지는 물리적으로 강제된 통제와 교육이 있어야 하고, 여기기에 이것을 꼭 지켜야 한다는 왜곡된 당위성이 있어야 가능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어떠한 연구도 우리나라 여성 억압 문제를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만들어진 전통’ 혹은 ‘강압된 유교’에 의한 것이라고 다각적 방면에서 연구한 사람은 없었다. 다만 총독부의 유교정책에 대한 연구, 한국의 호주제도와 관련된 연구 그리고 ‘현모양처’나 ‘여성 교육’에 대한 연구 등이 있었지만 모두 각각의 주제에 대한 개별연구를 하다 보니 이것을 여성 억압의 문제로 연관시켜 제시하지는 못했다. 물론 ‘현모양처’나 ‘여성 교육’에 대한 연구는 간혹 이 문제를 논의했지만 여성에 국한되다보니 일제강점기 통치나 교육 이념 혹은 행정 조직, 사회 환경까지 연구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러한 연구가 대개 일제강점기와 근대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전근대, 특히 조선의 사회문화사적 맥락과 비교 접점을 찾지 못해 그 특수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따라서 본고는 다양한 연구 성과는 물론 당시 신문, 잡지 등 대중매체와 일제강점기를 살아온 여성들의 구술 자료를 토대로 여성 억압이 전통 문화에서 계승되어 온 것이 아닌 일제 강점기 총독부의 교육방침과 호주제도 그리고 현모양처론의 유입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것을 밝혀보고, 이것이 조선의 문화와는 어떻게 구별되는지 연구해보려고 한다.
  • 기대효과
  • 우리 사회는 여성 억압의 주요 메커니즘을 모두 조선시대 유교 문화에서 찾는다. 그래서 이런 여성 억압이 아주 오래된 전통이라 생각하고 가르친다. 하지만 전 인구가 유교 그것도 성리학적 예법을 따지며 육아는 여성만의 일이며, 여자는 남자의 집으로 시집을 가서 남자의 집안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게 된 것은 모두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만들어진 전통’이다는 것이 본 연구자의 생각이다. 물론 조선 시대에 이러한 성리학적 문화가 없었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것이 전 인구가 지켜야할 문화로 보급되기까지는 물리적으로 강제된 통제와 교육이 있어야 하고, 여기에 이것을 꼭 지켜야 한다는 왜곡된 당위성이 있어야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어떠한 연구도 우리나라 여성 억압 문제를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만들어진 전통’ 혹은 ‘강압된 유교’에 의한 것이라고 다각적 방면에서 연구한 사람은 없었다.
    본 연구가 잘 마무리 된다면 오늘날 ‘주부의 명절증후군’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낸 제사 문화와 시집살이 문화 그리고 독박육아의 기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전통 문화가 아닌 일본에 의해 만들어지고 강압된 또는 스스로 강압한 문화라는 것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대학에서의 강의뿐만 아니라 도서관, 시민문화센터 등의 인문학 강연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이 일제의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비록 남녀 차별 속에 살았어도 조선시대 여성들이 유지했던 ‘婦權’을 통해 현재 여성의 권위를 신장시킬 방안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이 연구가 선정되어 진행된다면 학술적 논문으로도 그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연구의 결과를 인터넷 매체에 연재하고, 대중서로 출판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계획이다.
  • 연구요약
  • (1) 강압된 유교와 호주 중심의 가족 제도
    근대 초기 일본은 자신들의 근본정신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래서 이것을 유교에서 찾고 천황을 중심으로 한 근본정신을 만들고자 했다. 물론 메이지 초기 유교적 사고방식이 일본의 문명적 발전을 저해한다고 생각한 계몽주의자들은 서양식 도덕교육을 강조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자유 민권 운동이 일어나자 사회는 혼란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메이지 정부는 문부성의 통제와 간섭을 강화하고 종래의 유교주의적 교육을 부활시켰는데, 이것이 바로 천황의 충량한 신민이 되라는 ‘교육칙어’이다.
    일본은 한국을 병합한 뒤 조선인 교육 방침으로 ‘교육칙어’를 이용했고, 이에 총독부는 성균관을 폐지하고 경학원을 설립하여 자신들의 유교 이념을 강압했다. 그리고 조선의 유림 세력을 관리, 통제하기 위해 『경학원잡지』를 발간하여 유교적 문화를 재현하고 전통의례를 계승하며 열부의 공적을 찬미하고 효행을 드러내면서 조선의 윤리 도덕의 기초를 전파했다. 이렇게 전파된 성리학적 의례는 일본에서 들어온 호주제도로 모든 가정의 문화로 정착하게 되었다.
    일본식 가족제도는 남성이 결혼하면 부모 및 형제로부터 벗어나 ‘분가’할 수 있다는 서구의 핵가족 제도와 부계 계통주의에 입각한 무사적 호주 승계제도를 합쳐 만든 근대화의 산물이다. 이에(家)라는 이 제도는 천황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행정적, 국가 조직으로 천황제 통치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일제는 호주 선정의 방식에 유연성을 둔 자신들의 이에제도를 조선의 관습을 따라 부계계승만 인정하는 한국화된 호주제도로 변형해 한국을 지배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제사를 모시고 가문의 계통을 잇는 계승자를 소규모 가족의 호주로 바꾸었기 때문에 가문의 문화가 가족의 문화로 전이되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한국의 호주제도는 호주를 중심으로 한 제사 문화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했다.

    (2) 조선시대 여성 교훈서로 점철된 현모양처론
    일본은 개국 초기 국가의 장래를 책임질 차세대 교육을 담당할 어머니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여성 교육을 강조했는데 이때 대두되었던 것이 ‘賢母’다. 그리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계기로 일본에서는 산업화가 급속히 진전되어 중산계급이 탄생함에 따라 일하고 돌아오는 남편을 위로할 수 있는 따뜻한 가정을 만드는 여성이 요구되었는데 이때 대두되었던 것이 ‘良妻’다.
    근대 초기, 우리나라에서도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교육이 강조되었고, 여성도 남성과 같이 교육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 ‘현모양처’라는 개념이 유통되었다. 1920년대가 되면서 여성교육이 성장하고 사회경제적 변화를 기반으로 고학력 도시여성들이 등장했는데 이들은 ‘현모양처’론에 의해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스위트 홈’의 안주인이 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공업화의 진전이 미약했던 당시 우리 사회는 신여성들에게 현모양처로서 살아갈 여건을 만들어 줄 수가 없었다.
    게다가 홍양희의 연구에 따르면 이들이 꿈꾸던 근대적 연애결혼의 추구는 일부일처제에서 작동하는 현모양처론을 전복시키는 역설을 만들었다. 이에 현모양처론자들은 대항 논리를 전개함으로서 이러한 분열상을 극복하고자 했다. 그 수단 중에 하나는 ‘신여성’이라는 집단을 ‘나쁜 여성’으로 기표화 하는 작업이었다. 이러한 흐름은 동시에 그동안 문명화되지 못한 것으로 비판받던 ‘옛것’에 대한 찬양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해서 현모양처는 문명화되고 계몽화된 여성의 상징에서 벗어나, 조선의 ‘전통적 여성’의 모습으로 재현되었다.
    하지만 조선의 여성은 사유재산을 통한 경제력과 친정과의 유대가 만든 가정 내 ‘권위’가 있었지만 일제강점기 현모양처는 이러한 ‘婦權’은 상실된 채 오로지 여성 교훈서에 나오는 삶을 살도록 강요받았다. 그리고 이렇게 사는 것이 전통을 지키는 것이고, 민족을 지키는 일이라 교육받았고, 스스로도 이렇게 사는 것이 남편과 아들의 가문을 지키는 일이라 생각했다. 여성의 권위를 제거하고 오로지 제사를 받들고 시부모를 봉양하는 시집살이 문화는 이렇게 ‘만들어진 전통’에서 시작된 것이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통제와 간섭을 강화하기 위해 호적법을 제정하여 천황제 국가를 지탱하는 하부체제로서 ‘가(家)[이에]’ 제도를 재창출했다. 이후 충효사상을 근본으로 한 ‘교육칙어’가 발포되면서 천황의 자식으로서의 신민(臣民)을 만들어냈고, 한국 병합 후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제도를 강제했다. 특히, 일본은 조선시대 제사상속의 관습을 차용한 호주 중심의 가족제도를 강제해 우리가 상속의 진화로 볼 때 원시사회에 있음을 강조하고 이를 통치에 이용하고자 했다. 또한 일본을 통해 유입된 ‘현모양처’론으로 여성교육이 강조되었지만 ‘강압된 유교’와 ‘호주제도’에 의해 조선시대 여성 교훈서에 나오는 단어 그대로의 ‘현모양처’로 재탄생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통’으로 인해 한국 사회는 대부분의 인구가 성리학적 종법을 따지며 제사를 지내고, 여성은 이로 인한 노동을 강요받는 시집살이를 살게 되었다.
  • 영문
  • Since the Meiji Restoration, Japan has established the Family Registration Act to reinforce control and intervention in the lives of its citizens and reinvented the institution of “home/family” (J. ie) as the substructure that supports its imperial state. The same idea and institution were also used to coerce Koreans after the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In addition, Japan stressed the education of women through the notion of a “wise mother and good wife” introduced from Japan, yet with the pressed Confucian tradition and patriarchal family system centering on the head of household in existence already, it ended up recreating the “wise mother and good wife” that had appeared in study materials for women from the Joseon dynasty. With such “invented tradition,” the majority of population in Korean society was forced to follow a clan rule system, hold ancestral rites, and married women, in particular, were pressured into living with the customs and traditions of the in-law’s house (K. sijip sari), which entailed providing labor alone.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여성 억압의 주요 메커니즘을 조선시대 유교 문화에서 찾았다. 그래서 이런 여성 억압이 아주 오래된 전통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 인구가 유교, 그것도 성리학적 예법을 따지며 육아는 여성만의 일이고, 여자는 남자의 집으로 시집을 가서 시댁의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게 된 것은 모두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만들어진 전통’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조선시대에 이러한 성리학적 문화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것이 전 인구에 보급되기까지는 물리적으로 강제된 통제와 교육이 있어야 하고, 여기기에 이것을 꼭 지켜야 한다는 왜곡된 당위성이 있어야 가능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우선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통제와 간섭을 강화하기 위해 호적법을 제정하여 천황제 국가를 지탱하는 하부체제로서 ‘이에[家]’ 제도를 재창출했다. 이후 충효사상을 근본으로 한 ‘교육칙어’가 발포되면서 천황의 자식으로서의 신민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것은 국민 통합을 위해 만들어낸 일본화된 유교였지 전통 유학은 아니었다. 일본은 한국 병합 이후 우리나라에 이러한 제도를 강제했으며 성균관을 폐지하고 만든 경학원을 통해 이러한 유교 문화를 이식했다.
    그리고 조선시대 제사상속의 관습을 차용한 호주 중심의 가족제도를 강제해 우리가 상속의 진화로 볼 때 원시사회에 있음을 강조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행정시스템을 정비해 통치하고자 했다. 이로써 가문이 아닌 가족이 제사를 잇는 시대가 되었고, 전 인구가 종법에 의한 성리학적 예법을 형식적으로 따지는 사회가 만들어졌다.
    또한 자본주의화에 의한 서양 가족의 형성에서 만들어진 현모양처 개념이 일본을 통해 유입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여성교육이 강조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여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장래를 책임질 차세대 교육을 위한 현명한 어머니와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밖에서 일하고 돌아오는 남편이 편히 쉴 수 있는 가정을 꾸리는 어진 아내를 만들기 위한 교육이었다.
    그러나 일본과 달리 산업화가 진전되지 않고, 핵가족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한국에서는 이러한 현모양처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결국 이러한 교육을 받은 ‘신여성’은 사치와 허영, 안일만 일삼는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문명화되지 못한 것으로 비판 받던 ‘옛것’에 대한 찬양이 이어졌고, 현모양처는 단어 그대로 조선시대 여성 교훈서에 나오는 여성으로 재창출되었다.
    이처럼 일제에 의해 강압된 호주제도와 현모양처는 그들이 왜곡한 관습과 뒤섞이면서 마치 우리의 오래된 전통인 것처럼 만들어졌다. 그리고 차츰 이것을 지키는 것이 민족을 지키는 일인 것처럼 우리 안에 각인되었다. 게다가 산업화로 경제력을 빼앗긴 여성들은 부권(婦權)을 상실한 채 전업주부로서의 삶을 강요당하면서도 이것이 오래된 관습이라 여기며 받아들여졌다. 본고의 이와 같은 연구가 일제에 의해 왜곡된 관습을 바로잡고, 미약하나마 부권(婦權)을 신장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본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우리 사회는 여성 억압의 주요 메커니즘을 모두 조선시대 유교 문화에서 찾는다. 그래서 이런 여성 억압이 아주 오래된 전통이라 생각하고 가르친다. 하지만 전 인구가 유교 그것도 성리학적 예법을 따지며 육아는 여성만의 일이며, 여자는 남자의 집으로 시집을 가서 남자의 집안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게 된 것은 모두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만들어진 전통’이다는 것이 본 연구자의 생각이다. 물론 조선 시대에 이러한 성리학적 문화가 없었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것이 전 인구가 지켜야할 문화로 보급되기까지는 물리적으로 강제된 통제와 교육이 있어야 하고, 여기에 이것을 꼭 지켜야 한다는 왜곡된 당위성이 있어야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어떠한 연구도 우리나라 여성 억압 문제를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만들어진 전통’ 혹은 ‘강압된 유교’에 의한 것이라고 다각적 방면에서 연구한 사람은 없었다.
    본 연구가 잘 마무리 된다면 오늘날 ‘주부의 명절증후군’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낸 제사 문화와 시집살이 문화 그리고 독박육아의 기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전통 문화가 아닌 일본에 의해 만들어지고 강압된 또는 스스로 강압한 문화라는 것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대학에서의 강의뿐만 아니라 도서관, 시민문화센터 등의 인문학 강연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이 일제의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비록 남녀 차별 속에 살았어도 조선시대 여성들이 유지했던 ‘부권’을 통해 현재 여성의 권위를 신장시킬 방안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 색인어
  • 교육칙어, 충효사상, 제사상속, 호주제도, 현모양처, 시집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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