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현의 정치학: 미원주민 문학에 나타난 문화 민족주의와 문화 혼종주의 -린다 호건의 『파워』와 레슬리 마몬 실코의 『의식』을 중심으로- The Politics of Representation: Cultural Nationalism and Cultural Hybridization in Linda Hogan’s Power and Leslie Marmon Silko’s Ceremony
본 연구의 목표는 현대 미국 원주민(Native American)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불리는 미원주민 치카소(Chickasaw)부족과 백인 사이의 혼혈 여성작가인 린다 호건(Linda Hogan)의 『파워』(Power)와 미국 원주민 푸에블로(Pueblo)족 출신의 레슬리 실코(Leslie Marmon Silk ...
본 연구의 목표는 현대 미국 원주민(Native American)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불리는 미원주민 치카소(Chickasaw)부족과 백인 사이의 혼혈 여성작가인 린다 호건(Linda Hogan)의 『파워』(Power)와 미국 원주민 푸에블로(Pueblo)족 출신의 레슬리 실코(Leslie Marmon Silko)의 의식」(Ceremony)에 나타난 미원주민의 문화적 정체성에 관한 두 가지 쟁점인 문화 민족주의와 문화 혼종주의를 비교분석하는 것이다. 백인이 사회와 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사회에서 소수 인종, 그 중에서 수탈과 억압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는 미원주민 문화와 사회에 대한 문학적 재현은 백인들의 시선을 통하여 재현되면서 사실상 왜곡을 겪으며 묘사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원주민들의 삶과 문화에 대한 재현에 있어 관찰자나 서술자의 의식이 현실적 조건에 의해 굴절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원주민들이 실제로 경험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실제로 바랐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객관적이고 진실한 시선으로 보기가 불가능하다. 이러한 재현의 한계를 전복시켜 미원주민 문화의 진정한 재현을 찾기 위해서 두 명의 혼혈 미국작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본 연구의 필요성은 파워』와 의식』을 통해 미원주민에 대한 백인의 왜곡된 재현을 전복시키고 ‘원주민들이 실제로 바랐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실제로 경험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객관화시킨 그들의 진정한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오늘날 미원주민 문학에 나타난 문화 정체성에 관한 논의는 현재 미원주민 문학비평계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문화 민족주의와 혼종주의 사이의 논쟁이다. 미원주민들이 백인들에 의해 끊임없이 멸종되고 억압되었음에도 원주민 미국인들의 삶이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는 동력은 무엇인가? 이 두 가지 쟁점 중 어느 쪽이 미원주민들의 삶에 긍정적으로 복무할 수 있는 것인가? 그들이 그들 자신들만의 고유한 전통문화를 고집한 때문일까, 아니면 문화 혼종화 때문일까? 이런 의문에서 시작된 본 연구는 『파워』와 『의식』에 문화 민족주의와 혼종주의가 각각 어떻게 함의되어 있는지를 밝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이 논쟁에서 본 연구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문화적 혼종성 생산이 이론을 넘어 현실과 역사에 얼마나 담보할 수 있을지 하는 것이다. 지배문화를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수용하자는 다문화주의의 주장은 결국 소수 문화가 지배문화에 포섭되어 다시 종속되어버릴 우려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 논쟁에 입각해서 본 연구는 『파워』에서는 인디언 전통과 정체성을 지키려는 민족주의적 관점이 어떻게 노정되어 있고, 『의식』에서는 탈식민주의 담론에 입각한 문화 혼종주의가 어떻게 재현되어 있는지를 밝힌다. 본 연구는 문화 민족주의 담론의 경우 딜릭(Arif Dirlik)과 워맥(Craig S. Womack)의 이론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고, 문화 혼종주의의 경우, 호미 바바(Homi K. Bhabha)와 애쉬크로프트(Bill Ashcroft)와 헬렌 티핀(Helen Tiffin) 탈식민지이론을 중심으로 분석할 것이다.
기대효과
본 연구가 『파워』와 『의식』을 통해 문화 민족주의와 혼종주의가 어떻게 함의되고 반영되고 있는지 비교를 통해 살펴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는다. 『파워』에서 작가 호건은 미원주민의 문화 민족주의에 방점을 찍고 서구화된 현대사회의 중심가치관 대신 미원주민 ...
본 연구가 『파워』와 『의식』을 통해 문화 민족주의와 혼종주의가 어떻게 함의되고 반영되고 있는지 비교를 통해 살펴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는다. 『파워』에서 작가 호건은 미원주민의 문화 민족주의에 방점을 찍고 서구화된 현대사회의 중심가치관 대신 미원주민의 생명력 있는 전통적인 삶의 복원과 이정표를 오미슈토를 통해 그렸다. 오늘날 현대인들의 삶의 이정표를 미국 원주민의 전통 문화와 그 가치관에서 찾을 수 있음을 『파워』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정리하면 『파워』는 백인문화에 종속될 수 없는, ‘인디언성’을 바탕으로 하는 미원주민의 독자적 문화야 말로 미국문화를 형성시킬 수 있다는 문화 민족주의를 함의하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의식』은 백인담론에 억압되어온 원주민의 전통적 의식과 문화적 정체성 회복하고 확립하되 그것들을 식민지 이전의 순수한 상태로 회귀하는 배타적 민족 중심주의가 아닌 현대의 다문화사회 속에서 동등한 가치로서 백인문화와 서로 교류와 교배를 함으로써 공존을 지향해야 한다는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백인 문학의 글쓰기와 읽기의 재현이 그들 문화전통으로부터 견인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미국원주민 작가들의 글쓰기도 자신의 문화전통에서 찾으려는 노력을 단순히 배타적 민족주의로 비난할 수만은 없다. 만일 백인서사대로 두 문화 간의 혼종화 작업이 이루어 질 때 미원주민 문화와 같은 소수 문화가 과연 동등한 가치로 백인 문화와 당당히 맞서고 공존할 수 있을까하는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우려가 여전히 존재한다. 그렇다고 본 연구가 호건의 문화 민족주의와 실코의 혼종주의 중에서 어느 쪽이 미원주민 문화의 정체성 확보 및 그들의 삶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복무하고 있는지에 관해 어느 한쪽을 편드는 편향된 시각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본 연구는 문화민족주의건 혼종주의건 미 원주민의 이야기가 미국문학에서 다양하고 풍성한 담론으로 형성되어 미원주민의 정체성 복원과 그것의 추구라는 차원에서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관심사로 추동되기를 기대한다.
연구요약
본 연구 주제의 흐름은 『파워』가 미원주민 역사와 정체성이 삭제되거나 왜곡된 해석에 반대하고 다시 그들의 역사와 정체성을 기록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되어져야 한다는 것이고, 『의식』의 경우 타요(Tayo)의 ‘의식’을 기반으로 백인문화와 미원주민 문화 사이에 분열이 ...
본 연구 주제의 흐름은 『파워』가 미원주민 역사와 정체성이 삭제되거나 왜곡된 해석에 반대하고 다시 그들의 역사와 정체성을 기록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되어져야 한다는 것이고, 『의식』의 경우 타요(Tayo)의 ‘의식’을 기반으로 백인문화와 미원주민 문화 사이에 분열이 아닌 화합과 치유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두 소설은 두 주인공이 백인문화와 미원주민 문화 사이에서 갈등과 혼란을 겪다가 어떤 정신적 발전과정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아실현을 한다는 공통된 플롯을 가지고 있다. 『파워』에서는 주인공 오미슈토(Omishto)와 표범여인이라 일컫는 아마 이튼(Ama Eaton)을 중심으로 내러티브가 전개된다. 『의식』 역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후 고향에 돌아온 주인공 혼혈인 타요가 백인중심문화와 미원주민 전통문화 사이에서 갈등을 겪다가 그의 정신적 여정을 통해 그것이 극복된다는 내용이다. 본 연구의 방향은 『파워」와 『의식』에 각각 나타난 문화 민족주의와 문화 혼종주의를 서로 비교, 분석해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의 문제가 아닌 미원주민의 정체성 확립을 추동할 수 있는 담론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쪽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연구 전개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파워』와 『의식』에 공통적으로 나타나 있는 백인동화정책과 그것에 대한 저항을 서로 비교한다. 『파워」의 경우 아마가 속해있는 미원주민 전통사회와 오미슈토의 어머니로 대변되는 자본주의 사이에서 오미슈토가 겪는 갈등과 그녀가 어느 문화권을 선택하는지에 대해 살핀다. 『의식』의 경우 2차 세계대전의 참전용사들인 록키(Rocky)의 동화주의와 에모(Emo)의 저항주의를 비교한 뒤, 타요의 공동체주의를 살펴본다. 둘째, 『파워』에서 표범을 죽인 아마의 재판과정을 통해 미원주민을 바라보는 백인문화의 시각과 오미슈토의 북미원주민의 비극적인 박탈의 역사를 인식하는 과정을 아감벤(Giorgio Agamben)의 ‘포함-배제’와 ‘호모 사케르(Homo Sacer)’ 개념을 바탕으로 살펴본다. 반면 『의식』에서는 백인담론에 대항해 중심주의 권위의 해체를 주장하지만 이질적 문화를 능동적으로 수용해 조화를 이루자는 주장임을 밝힌다. 셋째, 『파워』의 오미슈토가 백인 문명권에서 벗어나 다시 숲으로 들어가 표범여인이 됨으로써 호건이 『파워』에서 적시하진 않았지만 궁극적으로 문화 혼종주의보다는 문화 민족주의를 택했다는 암시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밝힌다. 반면 『의식』의 경우 토착적 공동체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확산적 공동체에 대한 추구로 이어지는 혼종화 과정을 고찰한다. 이 세 가지 소 주제를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동화주의, 저항주의, 공동체주의를 비교한다. 『파워』의 경우 오미슈토의 갈등을 통해 백인자본주의 문화와 미원주민의 전통문화를 서로 비교하되, 궁극적으로는 오미슈토를 내세워 호건이 미원주민 전통문화를 대안사회로 정초하고 있음을 텍스트를 통해 증거할 것이다. 『의식』에서는 ‘어떻게 재현하는 것이 미국 원주민들을 진정으로 보여주는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록키의 동화주의, 에모의 저항주의, 그리고 타요의 ‘이야기하기’를 통한 공동체주의를 서로 비교하며 답을 찾을 것이다. 2) 오미슈토와 타요의 정신적 치유 과정을 논한다. 아마는 두 세계에서 갈등을 겪는 오미슈토를 원주민 부족의 영혼의 세계로 이끌게 되는 심리적인 과정을 밝힌다. 『의식』의 경우에는 라구나족의 늙은 주술사인 쿠시(Ku’oosh)와 주술사 베토니 노인을 서로 비교한다. 쿠시를 배타적 민족주의자로 상정하고 베타니 노인을 그 대안성을 제시하는 문화적 혼종주의자로 상정한다. 그리고 베토니가 들려주는 ‘백인탄생설화’를 통해 미원주민의 순수한 민족적 전통으로의 회귀보다는 변화된 세계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추구하고 지배-피지배관계 해체시켜 동등한 가치창조를 강조해 공동운명체를 형성에 대한 주장을 살펴본다. 3) 오미슈토와 타요의 정체성 인식 과정을 추적한다. 아마를 통해 오미슈토의 인식과정이 문화 민족주의이긴 하나 배타적 민족주의가 아님을 밝힌다. 『의식』의 경우 타요가 백인 사회와 인디언 부족 모두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혼혈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점과, 또 그를 인도하는 베타니 또한 혼혈로서 백인과 인디언 문화를 성공적으로 융화시킨 인물로 설정해 놓은 점은 결국 타요가 이질적인 두 문화를 교류함으로써 문화 혼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입장을 작가 실코가 미리 상정해 놓은 것이라는 점을 밝힌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국문
『파워』와 『의식』은 두 주인공이 백인문화와 미원주민 문화 사이에서 갈등과 혼란을 겪다가 어떤 정신적 발전과정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아실현을 한다는 공통된 플롯을 가지고 있다. 『파워』에서는 주인공 오미슈토(Omishto)와 표범여인이라 일컫는 아마 이튼 ...
『파워』와 『의식』은 두 주인공이 백인문화와 미원주민 문화 사이에서 갈등과 혼란을 겪다가 어떤 정신적 발전과정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아실현을 한다는 공통된 플롯을 가지고 있다. 『파워』에서는 주인공 오미슈토(Omishto)와 표범여인이라 일컫는 아마 이튼(Ama Eaton)을 중심으로 내러티브가 전개된다. 『의식』 역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후 고향에 돌아온 주인공 혼혈인 타요가 백인중심문화와 미원주민 전통문화 사이에서 갈등을 겪다가 그의 정신적 여정을 통해 그것이 극복된다는 내용이다. 본 연구의 방향은 『파워」와 『의식』에 각각 나타난 문화 민족주의와 문화 혼종주의를 서로 비교, 분석해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의 문제가 아닌 미원주민의 정체성 확립을 추동할 수 있는 담론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쪽으로 이루어졌다. 연구 전개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파워』와 『의식』에 공통적으로 나타나 있는 백인동화정책과 그것에 대한 저항을 서로 비교한다. 『파워」의 경우 아마가 속해있는 미원주민 전통사회와 오미슈토의 어머니로 대변되는 자본주의 사이에서 오미슈토가 겪는 갈등과 그녀가 어느 문화권을 선택하는지에 대해 살핀다. 『의식』의 경우 2차 세계대전의 참전용사들인 록키(Rocky)의 동화주의와 에모(Emo)의 저항주의를 비교한 뒤, 타요의 공동체주의를 살펴본다. 둘째, 『파워』에서 표범을 죽인 아마의 재판과정을 통해 미원주민을 바라보는 백인문화의 시각과 오미슈토의 북미원주민의 비극적인 박탈의 역사를 인식하는 과정을 아감벤(Giorgio Agamben)의 ‘포함-배제’와 ‘호모 사케르(Homo Sacer)’ 개념을 바탕으로 살펴본다. 반면 『의식』에서는 백인담론에 대항해 중심주의 권위의 해체를 주장하지만 이질적 문화를 능동적으로 수용해 조화를 이루자는 주장임을 밝힌다. 셋째, 『파워』의 오미슈토가 백인 문명권에서 벗어나 다시 숲으로 들어가 표범여인이 됨으로써 호건이 『파워』에서 적시하진 않았지만 궁극적으로 문화 혼종주의보다는 문화 민족주의를 택했다는 암시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밝힌다. 반면 『의식』의 경우 토착적 공동체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확산적 공동체에 대한 추구로 이어지는 혼종화 과정을 고찰한다. 이 세 가지 소 주제를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동화주의, 저항주의, 공동체주의를 비교한다. 『파워』의 경우 오미슈토의 갈등을 통해 백인자본주의 문화와 미원주민의 전통문화를 서로 비교하되, 궁극적으로는 오미슈토를 내세워 호건이 미원주민 전통문화를 대안사회로 정초하고 있음을 텍스트를 통해 증거할 것이다. 『의식』에서는 ‘어떻게 재현하는 것이 미국 원주민들을 진정으로 보여주는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록키의 동화주의, 에모의 저항주의, 그리고 타요의 ‘이야기하기’를 통한 공동체주의를 서로 비교하며 답을 찾을 것이다. 2) 오미슈토와 타요의 정신적 치유 과정을 논한다. 아마는 두 세계에서 갈등을 겪는 오미슈토를 원주민 부족의 영혼의 세계로 이끌게 되는 심리적인 과정을 밝힌다. 『의식』의 경우에는 라구나족의 늙은 주술사인 쿠시(Ku’oosh)와 주술사 베토니 노인을 서로 비교한다. 쿠시를 배타적 민족주의자로 상정하고 베타니 노인을 그 대안성을 제시하는 문화적 혼종주의자로 상정한다. 그리고 베토니가 들려주는 ‘백인탄생설화’를 통해 미원주민의 순수한 민족적 전통으로의 회귀보다는 변화된 세계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추구하고 지배-피지배관계 해체시켜 동등한 가치창조를 강조해 공동운명체를 형성에 대한 주장을 살펴본다. 3) 오미슈토와 타요의 정체성 인식 과정을 추적한다. 아마를 통해 오미슈토의 인식과정이 문화 민족주의이긴 하나 배타적 민족주의가 아님을 밝힌다. 『의식』의 경우 타요가 백인 사회와 인디언 부족 모두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혼혈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점과, 또 그를 인도하는 베타니 또한 혼혈로서 백인과 인디언 문화를 성공적으로 융화시킨 인물로 설정해 놓은 점은 결국 타요가 이질적인 두 문화를 교류함으로써 문화 혼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입장을 작가 실코가 미리 상정해 놓은 것이라는 점을 밝힌다.
영문
This paper attempts to examine cultural essentialism and cultural hybridism regarding Native Americans’ cultural identity in Linda Hogan’s Power and Leslie Marmon Silko’s Ceremony. The two novels have a common feature that the Omishto in Power and Tay ...
This paper attempts to examine cultural essentialism and cultural hybridism regarding Native Americans’ cultural identity in Linda Hogan’s Power and Leslie Marmon Silko’s Ceremony. The two novels have a common feature that the Omishto in Power and Tayo in Ceremony seek their identity respectively during the journeys of their lives, but Omishto is inclined to cultural essentialism and Tayo cultural hybridism. To be concrete, it examines assimilationism in assimilation policy and resistance against it in two novels. And then it analyzes cultural nationalism through the relation between Omishto and Ama Eaton in Power, and examines cultural hybridism through medicine man Betonie’s story telling in Ceremony.
연구결과보고서
초록
미국 원주민문학이 미국 사회에서 관심을 받게 된 것은 20세기 초 ‘할렘 르네상스’로 상징되는 미 흑인문학과 비교해 볼 때 상당히 늦은 편이다. 1950년대 이후에야 주목할 만한 미원주민계 작품들이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소설사에서 미원주민들은 자신들의 목 ...
미국 원주민문학이 미국 사회에서 관심을 받게 된 것은 20세기 초 ‘할렘 르네상스’로 상징되는 미 흑인문학과 비교해 볼 때 상당히 늦은 편이다. 1950년대 이후에야 주목할 만한 미원주민계 작품들이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소설사에서 미원주민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주로 백인들의 눈과 펜을 통하여 재현되면서 단순화되고 억압된 존재, 그 스스로의 목소리는 지워지고 백인들의 편견과 욕망이 투사된 타자로서 존재했던 것이다. 미국사회에서 백인이 사회와 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현실적 조건 하에서 소수 인종, 그 중에서 수탈과 억압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는 미원주민의 문화와 사회에 대한 문학적 재현은 대부분 백인들에 의해 왜곡을 겪으며 묘사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원주민들의 삶과 문화에 대한 재현에 있어 관찰자나 서술자의 의식이 현실적 조건에 의해 굴절될 수밖에 없다. 알폰소 오르티즈(Alfonso Ortiz) 또한 “서구 문명의 관점으로 보면, 미국에서의 인디언과 백인의 관계사는 백인들이 인디언의 과거를 그들 자신의 역사, 그들 자신의 내부적 담론 안으로 동화시키려고 시도해 온 역사이다”(혹시 & 아이버슨 21)고 말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원주민들이 실제로 경험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바랐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객관적 시선으로 판단하기가 불가능하다. 이것은 원주민에 관한 담론이 백인 위주로 진행되어왔다는 뜻이다. 예컨대 백인들은 식민지 시대의 자연관을 ‘울부짖는 황야’(howling wilderness)로 재현해 왔고, 원주민을 ‘고귀한 야만인’으로 그려왔다. ‘황야’는 유럽계 미국인들의 문화의식 속에 뿌리박혀 있는 낡은 개념으로 문명과 야만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사유와 연관되어 있다. “이 개념에 따라 유럽 출신 이주자들은 인디언들을 아메리카 황야의 일부, 이를테면 말살하고 몰아내야 할 어떤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그 정체를 드러냈다”(혹시 & 아이버슨 22-23). 크레이그 워맥(Craig S. Womack)은 ‘인디언성’(Indianness)의 낭만화에 반대하면서 “인디언성은 사실 현실적 경험과 동떨어져 있어 오히려 유럽중심주의 논리에 복무하는 음험한 ‘정치행위’이다”(359)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백인들에 의해 저질러진 이분법적인 도식에 갇힌 미원주민문화는 낯설고 이질적인 것으로만 재현될 뿐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미국원주민(Native American) 문화의 진정한 재현을 찾기 위해 두 명의 혼혈 미국작가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두 작가는 “인디언과 백인의 상호관계를 공명정대하고 정직하게 다루는 새로운 역사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역사는 또한 인디언의 입장에서 백인과 인디언 간의 역사적 만남을 바라보며, 인디언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역사가 되어야 한다”(혹시 & 아이버슨 20)는 오르티즈의 의견과 결을 같이하고 있다. 그래서 본 연구는 미국원주민 문학을 대표하는 혼혈여성작가인 린다 호건(Linda Hogan)과 미원주민 푸에블로(Pueblo)족 출신의 레슬리 마몬 실코(Leslie Marmon Silko)가 각각 쓴 파워(Power)와 의식(Ceremony)을 통해 미원주민에 대한 백인의 왜곡된 재현을 전복시키고 ‘원주민들이 실제로 경험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실제로 바라는 것이 무엇이었는지’에 관해 객관화된 그들의 진정한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미원주민들이 백인들에 의해 끊임없이 멸종되고 억압되었음에도 원주민 미국인들의 삶이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는 동력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이 그들 자신들만의 고유한 전통문화를 고집한 때문일까, 아니면 탈식민주의 이론에 따른 문화 혼종화 때문일까? 본 연구는 파워와 의식에 문화 민족주의와 혼종주의가 각각 어떻게 반영되어 있고 함의되어 있는지를 밝힌다. 파워에서는 인디언 전통과 정체성을 지키려는 민족주의적(문화 본질주의적) 관점이 어떻게 노정되어 있고, 반면 실코가 “푸에블로 문화는 배제보다는 포함을 추구한다. 푸에블로 인디언들은 기능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 받아들여 포함시키고자하는 충동을 가지고 있다”(Gattuso 6)고 밝히기도 했듯이, 의식에서는 탈식민주의 담론에 입각한 문화 혼종주의가 어떻게 재현되어 있는지를 밝힌다. 다시 말해 위 두 작품을 통해 미원주민의 문화적 정체성에 관한 서로 상반된 두 가지 쟁점인 문화 민족주의(문화 본질주의)와 문화 혼종주의를 비교분석한다.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파워는 백인 문화와 부족사회의 전통문화의 충돌을 통해 인간중심적인 현대문명이 어디로 나아가야할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호건은 현대사회의 부정적인 문제를 논하면서 성별, 인종, 빈부의 차이 등으로 인해 사회가 둘로 갈라져 경계화되고 사회 지배계층 ...
파워는 백인 문화와 부족사회의 전통문화의 충돌을 통해 인간중심적인 현대문명이 어디로 나아가야할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호건은 현대사회의 부정적인 문제를 논하면서 성별, 인종, 빈부의 차이 등으로 인해 사회가 둘로 갈라져 경계화되고 사회 지배계층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그들의 패배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그들을 침묵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지배계급인 백인들이 아감벤이 말하는 예외상태를 끊임없이 만들어 인종, 성별, 계층 사이의 경계선 긋기를 하는 절망 속에서 오미슈토가 미원주민의 전통문화와 가치관으로 회귀한 것은 미원주민의 전통문화를 중시하는 문화 본질주의로 나아가고자하는 호건의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호건은 파워에서 배타적 민족주의를 고집한 것은 아니다. 호건은 주체를 인정하려면 타자를 또 다른 주체로 존중해줄 때 비로소 스스로의 진정한 주체가 성립한다고 생각한다. “영혼이 없는 문명세계가 산산이 부서져 우리에게서 사라질 것”(Power 189)이라는 걸 우려해 “이 세계가 균형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아무리 절망적이고 불법적인 방법이라 하더라도 어떤 조처를 취해야만 한다”(Power 189)는 아마의 인식과 행위는 곧 서구문명을 배척하고 자신의 원주민 문화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원주민의 고유한 문화를 통해 현재 위험에 빠져 있는 서구문명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의식에서 타요는 앞서 주술사 베토니의 ‘백인창조설’의 서사를 듣고 두 문화 사이의 갈등과 혼란을 극복하고, 새로운 의식의 필요성에 확신을 가지게 되어, 결국 새로운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다성적 사회인으로서의 가능성을 담보한다. 타요가 백인 사회와 인디언 부족 모두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혼혈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점과, 또 그를 인도하는 베토니 또한 혼혈로서 백인과 인디언 문화를 성공적으로 융화시킨 인물로 설정해 놓은 점은 결국 타요가 이질적인 두 문화를 교류함으로써 문화 혼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입장임을 작가가 미리 상정해 놓은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파워에서 호건은 백인문화에 종속될 수 없는, ‘인디언성’을 바탕으로 하는 미원주민의 독자적 문화야 말로 미국문화를 형성시킬 수 있다는 문화 민족주의를 그렸다. 반면 의식은 백인담론에서 억압되어온 원주민의 전통적 의식과 문화적 정체성을 회복하고 확립하되 그것들을 식민지 이전의 순수한 상태로 회귀하는 배타적 민족 중심주의가 아닌 현대의 다문화사회 속에서 동등한 가치로서 백인문화와 서로 교류와 교배를 함으로써 공존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본 연구는 호건의 문화 민족주의와 실코의 문화 혼종주의 중에서 어느 쪽이 미원주민 문화의 정체성 확보와 그들의 삶에 유의미한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데에 관해서는 어느 한쪽을 편들지 않았다. 다만 백인 문학의 글쓰기와 읽기의 재현이 그들의 문화전통으로부터 견인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미국원주민 작가들의 글쓰기도 자신의 문화전통에서 찾으려는 노력을 단순히 문화민족주의로 비난할 수만은 없다. 만일 백인서사대로 두 문화 간의 혼종화 작업이 이루어 질 때, 미원주민 문화와 같은 소수 문화가 과연 동등한 가치로 백인 문화와 당당히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을까하는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우려가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본 연구는 문화민족주의건 혼종주의건 미 원주민의 이야기가 미국문학에서 다양하고 풍성한 담론으로 형성되어 미원주민의 정체성 복원과 그것의 추구라는 차원에서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관심사로 추동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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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의식』, 린다 호건, 레슬리 마몬 실코, 문화 민족주의, 문화 혼종주의, 정체성, 미국 원주민, 재현, 아마, 오미슈토, 타요, 쿠시, 베토니, 호모 사케르, 동화정책, 저항주의, 탈식민주의, 인디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