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문학 속 여성의 다매체적 변용 - 원형 콘텐츠 상세보기

<메리 스튜어트 Mary Stewart> 원형

기본
정보
출처 실존인물, 1542-1587
인물소개 남성중심의 정치세계에서 사랑과 권력에 이용당하는 비극적인 여성
가족관계 스코틀랜드의 여왕으로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5세와 마리 드 기즈의 딸, 프랑소와 2세와 결혼하여 프랑스의 여왕이 됨, 잉글랜드의 왕위계승권자,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를 통합한 제임스 6세의 어머니
인물
원형
설명

<17세의 메리 스튜어트>
메리 스튜어트는 자신의 노력으로 권력을 쟁취한 것이 아니라 권력을 갖고 태어나 주위의 환심과 아첨 속에서 자라난 오만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온갖 위험과 설움을 딛고 권력을 쟁취하고 선정한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와 흔히 비교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남성중심의 정치세계에 내던져져 결국은 사랑과 권력에 이용당한 비극적인 여성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스코틀랜드의 왕가인 스튜어트의 후손이자 외가 쪽으로는 프랑스의 명문가인 기즈 가 혈통인 메리 스튜어트는 태어나면서부터 정략결혼을 통해 국가 간 권력싸움의 도구로 이용된다. 아버지 제임스 5세가 이른 나이에 죽자 어머니 마리 드 기즈는 생후 9개월 된 메리의 대관식을 치러 왕위에 즉위시킨다. 다섯 살이 된 메리는 프랑스의 왕위계승권자인 프랑소와와의 결혼을 위해 프랑스로 가서 교육을 받는다. 그 후 프랑소와 2세는 프랑스의 왕으로 즉위하고 16세의 메리는 프랑스의 왕비가 된다. 게다가 서열상으로 잉글랜드의 첫 번째 왕위계승권자가 된다. 이로써 메리 스튜어트는 스코틀랜드의 여왕, 프랑스의 왕비, 잉글랜드의 왕위계승권자로서 유럽 최고의 지위를 가진 여성이 된다. 그러나 이듬해 남편과 어머니가 죽자 메리에게는 스코틀랜드를 통치할 의무가 주어진다. 19세의 메리는 가톨릭교도였지만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간의 종교분쟁이 심했던 스코틀랜드를 통치하면서 종교적, 정치적 공존을 꾀한다. 이제 모두의 관심은 메리의 재혼에 쏠린다. 그러나 메리는 왕족이 아닌 스코틀랜드의 귀족이자 자신의 사촌이며 마찬가지로 잉글랜드의 왕위계승권을 갖고 있는 헨리 스튜어트 단리를 두 번째 남편으로 선택한다. 그 다음에 만난 제임스 헵번 보스웰 백작은 메리와 불화하고 있는 헨리 단리를 방화살인한다. 메리는 보스웰 백작과 함께 13일간 지낸 후 임신을 하게 된다. 이 관계에 대해 메리의 자의적 선택이라는 설도 있고 보스웰 백작이 메리를 강제로 범했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메리는 헨리 단리가 죽은 지 3개월 만에 남편살해 공모자로 낙인찍힌 보스웰 백작과 세 번째 결혼을 한다. 그러나 이 일로 민심은 땅에 떨어지고 모레이 백작과 프로테스탄트 귀족들은 불륜과 남편살해의 혐의를 씌어 메리 여왕에 대해 반란을 일으킨다. 결국 메리는 폐위되고 유폐된다. 그리고는 헨리 단리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제임스가 국왕으로 즉위하고 모레이 백작이 실질적인 통치를 맡는다. 이 모든 추락을 인정할 수 없었던 메리는 복위를 위해 탈출을 감행하고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에게 도움을 청한다. 일단은 잉글랜드에 받아들여지지만, 그녀는 헨리 단리의 살해 혐의로 그곳에서 유죄판결을 받는다. 엘리자베스 1세는 메리 스튜어트에게 국빈대우를 해주지만 직접 접견하지는 않고 오랜 기간 유폐생활을 하게 한다. 메리는 가톨릭 세력과 결탁하여 엘리자베스 1세를 몰아내고 자신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왕이 될 모반계획을 끊임없이 꾸미다가 결국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엘리자베스 1세 사후 잉글랜드의 왕위는 메리 스튜어트로 넘어가게 되어 있으므로 엘리자베스 1세의 국교회 지지자들은 가톨릭 교도인 메리의 등극으로 인해 또다시 종교분쟁에 휘말릴 것을 방지하고자 했다. 메리 스튜어트는 유폐된 지 19년만인 1587년 참수형을 당한다. 메리의 아들 제임스는 엘리자베스 1세가 죽은 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통합한 왕이 된다. 그는 잉글랜드의 제임스 6세가 되었고, 스코틀랜드에서는 제임스 1세가 되어 어머니 메리 스튜어트의 소원을 이루게 된다.
인물
유형
권력지향형 여성, 비극적 여성, 희생당하는 여성
변용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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